순조실록30권, 순조 28년 1월 1일 辛丑 4/6 기사 / 1828년 청 도광(道光) 8년
모든 지방관에게 교시하다
국역
하령(下令)하기를,
"우리 나라 8도의 방백(方伯)과 4도(都)의 수신(守臣)들은 이 유시(諭示)를 들으라. 나라는 백성이 없으면 의지할 곳이 없고 백성은 농사가 아니면 먹을 것이 없다. 백성은 나라에 있어서, 농사는 백성에 있어서 어찌 중차대한 존재가 아니겠는가? 오늘날 민생에 있어서 거꾸로 매어달린 듯한 위급함이 닥쳐왔고 나라의 형세는 믿을 만한 곳이 없다. 어떻게 우리 백성으로 하여금 농사짓고 길삼하는 시기를 놓치지 않게 하며, 굶주리지도 않고 춥지도 않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승평의 세대에서 화기있게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 봄이 되면 밭갈고 여름되면 김을 매어 한해 동안을 애써 일하느라고 얼굴은 여위고 등은 햇볕에 그을며 손과 발은 모두 갈라 터지니, 곡식 낱알 하나하나가 고통으로 만들어진 것이나 배부르게 먹도록 놓아 두지 않고 아무리 풍성한 수확을 하더라도 마침내 쌀독은 비었다. 위로는 나라의 제사나 어공(御供)의 물품을 올리고 아래로는 세금이나 조적(糶糴)007) 을 바쳐야 하며 겸하여 야박한 정사는 그들의 고혈(膏血)을 착취하고, 가혹한 형벌은 백성을 매로써 다스린다. 관청의 독촉은 성화같고 백성의 쇠잔한 목숨은 스스로 함정에 빠져 도로에서 울부짖으며 유리(流離)하고 사망(死亡)하는 자가 줄을 잇대었다. 만일 위에 있는 자가 조금이라도 측은한 마음을 가지어 백성을 어루만지는 은혜를 조금이나마 베푼다면, 백성의 곤궁함이 여기까지 이르렀겠는가?
우리 조종(祖宗)의 깊고 두터운 은혜가 사람의 뼛 속까지 스며들었고, 또한 우리 대조(大朝)의 넓고 큰 은혜는 백성을 자식처럼 보아서, 온 8역(八域)의 민생들이 인천(仁天)의 우로(雨露)에 양육받아 모두들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러러 받드는 성의를 가지지 않는 이가 없어서 백성 중에 누구 하나 흩어져 유리(流離)하는 자가 없으니, 그들을 배양(培養)함이 오래됨을 알겠다. 백성의 성품은 본래 선(善)한 것인데, 나와 같이 부덕(否德)한 사람이 외람되이 대리 청정(代理聽政)하는 직무를 맡아, 밤낮으로 근심하기를 마치 엷은 얼음을 디디는 것같이 한다. 비록 백성을 사랑하는 고심(苦心)은 가졌으나 아직까지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는 실속있는 정사는 못하였다. 백성이 나에게 바라는 마음은 목마르는 자가 마실 물을 구하듯 하지마는, 내가 백성을 대접하기는 마치 깜빡 잊은 듯하니 백성들은 장차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나는 진실로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 나는 아직 어린 나이로 궁중(宮中) 속에 깊숙이 살아서 오로지 편안함을 낙(樂)으로 삼고 민생(民生)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옛날 주 문왕(周文王)이 백성을 상(傷)한 자처럼 보던 것은 오히려 논할 것도 없고, 한(漢)나라에서 백성에게 진대(賑貸)하던 은혜도 베풀 겨를이 없었으니, 민정(民情)을 저버리어 스스로 몸둘 바를 모르겠다.
지금 삼양(三陽)008) 이 처음 이르러 만물이 장차 소생하려고 하니 이는 바로 우리 백성들이 밭에 나아가 농사를 시작할 시기이다. 지난 가을에 흉년이 들었는데 아직 굶주리는 병통은 없는가? 가난한 옛집에서 빈궁한 생활 중에 양식이 떨어지는 급함은 없는가? 서주(西疇)를 가는 소를 세내는 밑천도 응당 없으며, 남쪽 논에 모를 내는 말은 반드시 수고로운 탄식이 많을 것이다. 만일 아래 위의 밭들을 한결같이 묵혀 버린다면, 읍(邑)을 설치하여 관리(官吏)는 무엇에 쓰려고 두었겠는가? 도신(道臣)의 자리에 있는 자는 온 도(道)를 순심(巡審)하면서 수령들의 잘잘못을 가려 출척(黜陟)하게 하고, 수령(守令)에 있는 자는 몸소 들판을 돌아 다니며 농사와 길삼을 권장하여 마침내 만백성으로 하여금 모두 기쁘게 하고 8방(八方)에 풍년이 들게 한다면, 주야로 애쓰는 임금의 근심을 풀어줄 것이고 백성들이 구렁에 쓰러지는 우환도 아마 없어질 것이니, 어찌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겠는가? 궁궐의 뜰에서 만리나 떨어진 곳도 지척(咫尺)처럼 볼 수 있으니 지방관을 한 번 접견하면 알 수 있으며, 임금의 손 안에 있는 태아검(太阿劍)009) 은 본래 사정(私情)이 없다. 모두 각자가 잘 알아서 혹시라도 그릇됨이 없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307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註 007] 조적(糶糴) : 환곡(還穀)을 방출하고 수납하는 것. 즉 봄에 백성들에게 나라의 곡식을 대여해 주는 것을 조(糶)라 하고, 가을에 백성들로부터 대여했던 곡식에 10분의 1씩 이자를 붙여 거두어 들이는 것을 적(糴)이라 하였음.
- [註 008] 삼양(三陽) : 음력 정월(正月)을 이름. 《주역》에 정월이 태(泰)괘가 되는데, 이는 3개의 양효(陽爻)가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칭하며, 태괘(泰卦)는 상곤(上坤)·하건(下乾)으로 천지(天地)가 화합하여 만물(萬物)을 소생시키는 뜻이 있음.
- [註 009] 태아검(太阿劍) : 옛날 보검의 이름. 임금의 권한을 뜻함.
원문
○令曰: "惟我八道方伯四都守臣, 咸聽此諭。 國非民無以爲依, 民非農無以爲食, 民之於國, 農之於民, 豈不重且大歟? 目今民生, 有倒懸之急, 國勢無可恃之道矣。 安得使吾民, 無失農桑, 不飢不寒, 各自樂於昇平和氣之域耶? 噫! 春耕夏耘, 終歲勤苦, 背面焦枯, 手足皺坼, 粒粒辛苦, 不歸口腹之充, 穰穰收穫, 終見甁罌之空。 上而應粢盛御供之需, 下以備貢賦糶糴之納, 兼又剝割之政, 浚其膏血, 苛毒之刑, 濫加笞箠。 官督急於星火, 殘命自就穽陷, 呼號道路, 流亡相續。 若使在上者, 少垂惻隱之心, 略施撫字之澤, 則民之困瘁, 一至此極哉? 粤自祖宗深仁厚澤, 浹人骨髓, 且我大朝洪恩廣惠, 視之如子, 凡八域含生, 莫不涵育於仁天雨露之中, 咸知愛戴之誠, 不作渙散之擧者, 可見其培養已久。 民性本善, 顧余否德, 猥膺代聽, 夙夜憂懼, 如履薄氷。 雖有愛民之苦心, 尙無惠民之實政。 民之望余, 如渴求飮, 余之視民, 頓若相忘, 民將謂何? 余實多愧。 尙在沖年, 深處宮禁, 只知宴安之爲樂, 不識民生之疾苦。 周文如傷之視, 尙矣毋論, 漢家賑貸之恩, 亦此未遑, 孤負民情, 靡所自措。 方今三陽初屆, 萬品將蘇, 此政吾民卽田耕作之時, 前秋告歉, 能無飢餓之病耶? 窮蔀喫貧, 能無絶糧之急耶? 西疇耕牛, 應無賃貰之資, 南畝秧馬, 必多勞苦之歎。 若使上下之田, 終成一望之陳, 則設邑置官, 將焉用彼? 在藩之臣則巡審一路, 黜陟臧否, 守土之臣則躬行田野, 勸課農桑, 竟使萬姓咸熙, 八方皆登, 則庶可解宵旰之憂, 亦可無顚連之患, 曷不休哉? 曷不休哉? 階前萬里, 知在一接, 手裏太阿, 本自無私。 咸各知悉, 無或有誤。"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307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순조실록30권, 순조 28년 1월 1일 辛丑 4/6 기사 / 1828년 청 도광(道光) 8년
모든 지방관에게 교시하다
국역
하령(下令)하기를,
"우리 나라 8도의 방백(方伯)과 4도(都)의 수신(守臣)들은 이 유시(諭示)를 들으라. 나라는 백성이 없으면 의지할 곳이 없고 백성은 농사가 아니면 먹을 것이 없다. 백성은 나라에 있어서, 농사는 백성에 있어서 어찌 중차대한 존재가 아니겠는가? 오늘날 민생에 있어서 거꾸로 매어달린 듯한 위급함이 닥쳐왔고 나라의 형세는 믿을 만한 곳이 없다. 어떻게 우리 백성으로 하여금 농사짓고 길삼하는 시기를 놓치지 않게 하며, 굶주리지도 않고 춥지도 않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승평의 세대에서 화기있게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 봄이 되면 밭갈고 여름되면 김을 매어 한해 동안을 애써 일하느라고 얼굴은 여위고 등은 햇볕에 그을며 손과 발은 모두 갈라 터지니, 곡식 낱알 하나하나가 고통으로 만들어진 것이나 배부르게 먹도록 놓아 두지 않고 아무리 풍성한 수확을 하더라도 마침내 쌀독은 비었다. 위로는 나라의 제사나 어공(御供)의 물품을 올리고 아래로는 세금이나 조적(糶糴)007) 을 바쳐야 하며 겸하여 야박한 정사는 그들의 고혈(膏血)을 착취하고, 가혹한 형벌은 백성을 매로써 다스린다. 관청의 독촉은 성화같고 백성의 쇠잔한 목숨은 스스로 함정에 빠져 도로에서 울부짖으며 유리(流離)하고 사망(死亡)하는 자가 줄을 잇대었다. 만일 위에 있는 자가 조금이라도 측은한 마음을 가지어 백성을 어루만지는 은혜를 조금이나마 베푼다면, 백성의 곤궁함이 여기까지 이르렀겠는가?
우리 조종(祖宗)의 깊고 두터운 은혜가 사람의 뼛 속까지 스며들었고, 또한 우리 대조(大朝)의 넓고 큰 은혜는 백성을 자식처럼 보아서, 온 8역(八域)의 민생들이 인천(仁天)의 우로(雨露)에 양육받아 모두들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러러 받드는 성의를 가지지 않는 이가 없어서 백성 중에 누구 하나 흩어져 유리(流離)하는 자가 없으니, 그들을 배양(培養)함이 오래됨을 알겠다. 백성의 성품은 본래 선(善)한 것인데, 나와 같이 부덕(否德)한 사람이 외람되이 대리 청정(代理聽政)하는 직무를 맡아, 밤낮으로 근심하기를 마치 엷은 얼음을 디디는 것같이 한다. 비록 백성을 사랑하는 고심(苦心)은 가졌으나 아직까지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는 실속있는 정사는 못하였다. 백성이 나에게 바라는 마음은 목마르는 자가 마실 물을 구하듯 하지마는, 내가 백성을 대접하기는 마치 깜빡 잊은 듯하니 백성들은 장차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나는 진실로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 나는 아직 어린 나이로 궁중(宮中) 속에 깊숙이 살아서 오로지 편안함을 낙(樂)으로 삼고 민생(民生)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옛날 주 문왕(周文王)이 백성을 상(傷)한 자처럼 보던 것은 오히려 논할 것도 없고, 한(漢)나라에서 백성에게 진대(賑貸)하던 은혜도 베풀 겨를이 없었으니, 민정(民情)을 저버리어 스스로 몸둘 바를 모르겠다.
지금 삼양(三陽)008) 이 처음 이르러 만물이 장차 소생하려고 하니 이는 바로 우리 백성들이 밭에 나아가 농사를 시작할 시기이다. 지난 가을에 흉년이 들었는데 아직 굶주리는 병통은 없는가? 가난한 옛집에서 빈궁한 생활 중에 양식이 떨어지는 급함은 없는가? 서주(西疇)를 가는 소를 세내는 밑천도 응당 없으며, 남쪽 논에 모를 내는 말은 반드시 수고로운 탄식이 많을 것이다. 만일 아래 위의 밭들을 한결같이 묵혀 버린다면, 읍(邑)을 설치하여 관리(官吏)는 무엇에 쓰려고 두었겠는가? 도신(道臣)의 자리에 있는 자는 온 도(道)를 순심(巡審)하면서 수령들의 잘잘못을 가려 출척(黜陟)하게 하고, 수령(守令)에 있는 자는 몸소 들판을 돌아 다니며 농사와 길삼을 권장하여 마침내 만백성으로 하여금 모두 기쁘게 하고 8방(八方)에 풍년이 들게 한다면, 주야로 애쓰는 임금의 근심을 풀어줄 것이고 백성들이 구렁에 쓰러지는 우환도 아마 없어질 것이니, 어찌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겠는가? 궁궐의 뜰에서 만리나 떨어진 곳도 지척(咫尺)처럼 볼 수 있으니 지방관을 한 번 접견하면 알 수 있으며, 임금의 손 안에 있는 태아검(太阿劍)009) 은 본래 사정(私情)이 없다. 모두 각자가 잘 알아서 혹시라도 그릇됨이 없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307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註 007] 조적(糶糴) : 환곡(還穀)을 방출하고 수납하는 것. 즉 봄에 백성들에게 나라의 곡식을 대여해 주는 것을 조(糶)라 하고, 가을에 백성들로부터 대여했던 곡식에 10분의 1씩 이자를 붙여 거두어 들이는 것을 적(糴)이라 하였음.
- [註 008] 삼양(三陽) : 음력 정월(正月)을 이름. 《주역》에 정월이 태(泰)괘가 되는데, 이는 3개의 양효(陽爻)가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칭하며, 태괘(泰卦)는 상곤(上坤)·하건(下乾)으로 천지(天地)가 화합하여 만물(萬物)을 소생시키는 뜻이 있음.
- [註 009] 태아검(太阿劍) : 옛날 보검의 이름. 임금의 권한을 뜻함.
원문
○令曰: "惟我八道方伯四都守臣, 咸聽此諭。 國非民無以爲依, 民非農無以爲食, 民之於國, 農之於民, 豈不重且大歟? 目今民生, 有倒懸之急, 國勢無可恃之道矣。 安得使吾民, 無失農桑, 不飢不寒, 各自樂於昇平和氣之域耶? 噫! 春耕夏耘, 終歲勤苦, 背面焦枯, 手足皺坼, 粒粒辛苦, 不歸口腹之充, 穰穰收穫, 終見甁罌之空。 上而應粢盛御供之需, 下以備貢賦糶糴之納, 兼又剝割之政, 浚其膏血, 苛毒之刑, 濫加笞箠。 官督急於星火, 殘命自就穽陷, 呼號道路, 流亡相續。 若使在上者, 少垂惻隱之心, 略施撫字之澤, 則民之困瘁, 一至此極哉? 粤自祖宗深仁厚澤, 浹人骨髓, 且我大朝洪恩廣惠, 視之如子, 凡八域含生, 莫不涵育於仁天雨露之中, 咸知愛戴之誠, 不作渙散之擧者, 可見其培養已久。 民性本善, 顧余否德, 猥膺代聽, 夙夜憂懼, 如履薄氷。 雖有愛民之苦心, 尙無惠民之實政。 民之望余, 如渴求飮, 余之視民, 頓若相忘, 民將謂何? 余實多愧。 尙在沖年, 深處宮禁, 只知宴安之爲樂, 不識民生之疾苦。 周文如傷之視, 尙矣毋論, 漢家賑貸之恩, 亦此未遑, 孤負民情, 靡所自措。 方今三陽初屆, 萬品將蘇, 此政吾民卽田耕作之時, 前秋告歉, 能無飢餓之病耶? 窮蔀喫貧, 能無絶糧之急耶? 西疇耕牛, 應無賃貰之資, 南畝秧馬, 必多勞苦之歎。 若使上下之田, 終成一望之陳, 則設邑置官, 將焉用彼? 在藩之臣則巡審一路, 黜陟臧否, 守土之臣則躬行田野, 勸課農桑, 竟使萬姓咸熙, 八方皆登, 則庶可解宵旰之憂, 亦可無顚連之患, 曷不休哉? 曷不休哉? 階前萬里, 知在一接, 手裏太阿, 本自無私。 咸各知悉, 無或有誤。"
- 【태백산사고본】 30책 30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307면
- 【분류】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