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실록19권, 순조 16년 3월 19일 己亥 2/2 기사 / 1816년 청 가경(嘉慶) 21년
김교근이 장계를 올려 고창 현감 서양보가 관청 아전을 구타한 일을 고하다
국역
전라 감사 김교근(金敎根)이 장계를 올리기를,
"고창 현감(高敞縣監) 서양보(徐良輔)가 관청 아전이 불손한 말을 한 것에 분노하여 마거목(馬擧木)과 횡강목(橫杠木)으로 마구 때리고 그의 아비를 잡아다가 구타하여 모두 죽었습니다. 유사(攸司)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의금부에서 형신(刑訊)하여 자복을 받은 뒤에 대신에게 물어서 처단하자고 청하였다. 좌의정 한용귀(韓用龜)가 아뢰기를,
"옛날 선묘조(宣廟朝) 때에 함경남도 절도사 소흡(蘇潝)이 사적(私的)인 원한으로 북도의 관노(官奴) 두 사람을 죽였는데, 유사(有司)가 남형(濫刑)으로 조율(照律)하였습니다. 선정신(先正臣) 이이(李珥)가 아뢰기를,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인다는 것이 법에 있어 용서할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유사가 남형으로 법을 적용하였으니 국법을 크게 문란하게 한 것입니다.’라고 하자, 성상께서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이번 서양보는 법에 없는 형벌을 지나치게 시행하여 부자(父子)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으니, 이 역시 선정(先正)이 이른바 법에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죽인 사람은 바로 관장(官長)을 꾸짖고 욕한 관하의 아전이므로, 소흡이 타도(他道)의 관노를 죽인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상명(償命)의 법은 갑자기 의논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그가 범한 바를 살펴보면 지극히 참독하여 보통 함부로 살인한 것으로만 법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처벌의 등급을 올려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고, 우의정 김사목(金思穆)은 아뢰기를,
"하리(下吏)가 원망의 말을 마구 한 것만도 분수를 매우 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죄를 자백한 것으로 인하여 대뜸 상명(償命)을 의논한다면 수령과 아전의 위계가 혹시 이로 말미암아 엄하지 않을까 염려되니, 차율(次律)을 적용해도 형벌을 잘못 사용한 데에는 이르지 않을 듯합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대신의 의논에 따라 그 다음 법으로 시행하며, 서양보에게 곤장 1백 대의 속전(贖錢)을 받고 온성부(穩城府)에 유(流) 3천 리로 정배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97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원문
○全羅監司金敎根狀啓: "高敞縣監徐良輔, 發怒於官廳吏之語涉不恭, 以馬擧木橫杠木亂打, 又捉打其父, 幷致命, 請令攸司稟處。" 義禁府刑訊取服後, 請詢大臣處之。 左議政韓用龜以爲, "昔在宣廟朝, 咸鏡南道節度使蘇潝, 以私怨, 殺北道官奴二人, 有司照以濫刑之律。 先正臣李珥啓曰, ‘殺人者死, 在法罔赦, 而有司照以濫刑之律, 大紊國法矣。’ 上, 嘉納之。 今此徐良輔之濫施法外之刑, 以致父子竝命者, 亦先正所謂在法罔赦。 而第其所殺, 卽管下吏詬罵官長者, 非如蘇潝所殺之他道官奴也。 償命之典, 雖難遽議, 究厥所犯, 極其憯毒, 不可以尋常濫殺, 照勘而已。 合施加等之律云。" 右議政金思穆以爲, "下吏之肆發怨言, 已極犯分。 因渠承款, 遽議償命, 官與吏之等威, 或恐由是而不嚴, 擬之以次律, 似不至失刑云。" 敎曰: "依大臣議, 以次律爲之, 徐良輔杖一百收贖, 穩城府流三千里定配。"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97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순조 16년 (1816) 3월 19일
순조실록19권, 순조 16년 3월 19일 己亥 2/2 기사 / 1816년 청 가경(嘉慶) 21년
김교근이 장계를 올려 고창 현감 서양보가 관청 아전을 구타한 일을 고하다
국역
전라 감사 김교근(金敎根)이 장계를 올리기를,
"고창 현감(高敞縣監) 서양보(徐良輔)가 관청 아전이 불손한 말을 한 것에 분노하여 마거목(馬擧木)과 횡강목(橫杠木)으로 마구 때리고 그의 아비를 잡아다가 구타하여 모두 죽었습니다. 유사(攸司)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의금부에서 형신(刑訊)하여 자복을 받은 뒤에 대신에게 물어서 처단하자고 청하였다. 좌의정 한용귀(韓用龜)가 아뢰기를,
"옛날 선묘조(宣廟朝) 때에 함경남도 절도사 소흡(蘇潝)이 사적(私的)인 원한으로 북도의 관노(官奴) 두 사람을 죽였는데, 유사(有司)가 남형(濫刑)으로 조율(照律)하였습니다. 선정신(先正臣) 이이(李珥)가 아뢰기를,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인다는 것이 법에 있어 용서할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유사가 남형으로 법을 적용하였으니 국법을 크게 문란하게 한 것입니다.’라고 하자, 성상께서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이번 서양보는 법에 없는 형벌을 지나치게 시행하여 부자(父子)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으니, 이 역시 선정(先正)이 이른바 법에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죽인 사람은 바로 관장(官長)을 꾸짖고 욕한 관하의 아전이므로, 소흡이 타도(他道)의 관노를 죽인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상명(償命)의 법은 갑자기 의논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그가 범한 바를 살펴보면 지극히 참독하여 보통 함부로 살인한 것으로만 법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처벌의 등급을 올려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고, 우의정 김사목(金思穆)은 아뢰기를,
"하리(下吏)가 원망의 말을 마구 한 것만도 분수를 매우 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죄를 자백한 것으로 인하여 대뜸 상명(償命)을 의논한다면 수령과 아전의 위계가 혹시 이로 말미암아 엄하지 않을까 염려되니, 차율(次律)을 적용해도 형벌을 잘못 사용한 데에는 이르지 않을 듯합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대신의 의논에 따라 그 다음 법으로 시행하며, 서양보에게 곤장 1백 대의 속전(贖錢)을 받고 온성부(穩城府)에 유(流) 3천 리로 정배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97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원문
○全羅監司金敎根狀啓: "高敞縣監徐良輔, 發怒於官廳吏之語涉不恭, 以馬擧木橫杠木亂打, 又捉打其父, 幷致命, 請令攸司稟處。" 義禁府刑訊取服後, 請詢大臣處之。 左議政韓用龜以爲, "昔在宣廟朝, 咸鏡南道節度使蘇潝, 以私怨, 殺北道官奴二人, 有司照以濫刑之律。 先正臣李珥啓曰, ‘殺人者死, 在法罔赦, 而有司照以濫刑之律, 大紊國法矣。’ 上, 嘉納之。 今此徐良輔之濫施法外之刑, 以致父子竝命者, 亦先正所謂在法罔赦。 而第其所殺, 卽管下吏詬罵官長者, 非如蘇潝所殺之他道官奴也。 償命之典, 雖難遽議, 究厥所犯, 極其憯毒, 不可以尋常濫殺, 照勘而已。 合施加等之律云。" 右議政金思穆以爲, "下吏之肆發怨言, 已極犯分。 因渠承款, 遽議償命, 官與吏之等威, 或恐由是而不嚴, 擬之以次律, 似不至失刑云。" 敎曰: "依大臣議, 以次律爲之, 徐良輔杖一百收贖, 穩城府流三千里定配。"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97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원본
순조 16년 (1816) 3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