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실록10권, 순조 7년 11월 21일 戊午 1/3 기사 / 1807년 청 가경(嘉慶) 12년
주강하여 논어의 민무신 불립장을 강하다
국역
주강하여, 《논어》 민무신 불립장(民無信不立章)을 강(講)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군사·식량·신(信)의 세 가지 중에서 만약 전진(戰陣)에 임하여 적을 대하고 있을 때 부득이하여 마땅히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마땅히 먼저할 것인가?"
하니, 특진관(特進官) 김이영(金履永)이 말하기를,
"한(漢)나라는 장판교(長板橋)의 싸움에서 군사와 식량이 모두 핍절(乏絶)하였으니, 강릉(江陵)의 사졸(士卒) 십여 만 명이 남부 여대(男負女戴)하여 배반하지 않고 온 것은 그 신의 때문이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을 이른 것이 아니다. 한(漢)나라 고제(高帝)가 세 겹의 포위 가운데 있 어 일이 급박하게 벌어지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마땅히 한쪽을 터뜨려 몰래 나올 즈음에 반드시 부득이하여 세 가지 가운데 버려야 할 것이 있었다면 어떤 것을 마땅히 버렸겠는가?"
하니, 시독관(侍讀官) 서유망(徐有望)이 말하기를,
"비록 이런 때를 당하더라도 신의는 더욱 버릴 수 없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10권 47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594면
원문
순조 7년 (1807) 11월 21일
순조실록10권, 순조 7년 11월 21일 戊午 1/3 기사 / 1807년 청 가경(嘉慶) 12년
주강하여 논어의 민무신 불립장을 강하다
국역
주강하여, 《논어》 민무신 불립장(民無信不立章)을 강(講)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군사·식량·신(信)의 세 가지 중에서 만약 전진(戰陣)에 임하여 적을 대하고 있을 때 부득이하여 마땅히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마땅히 먼저할 것인가?"
하니, 특진관(特進官) 김이영(金履永)이 말하기를,
"한(漢)나라는 장판교(長板橋)의 싸움에서 군사와 식량이 모두 핍절(乏絶)하였으니, 강릉(江陵)의 사졸(士卒) 십여 만 명이 남부 여대(男負女戴)하여 배반하지 않고 온 것은 그 신의 때문이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을 이른 것이 아니다. 한(漢)나라 고제(高帝)가 세 겹의 포위 가운데 있 어 일이 급박하게 벌어지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마땅히 한쪽을 터뜨려 몰래 나올 즈음에 반드시 부득이하여 세 가지 가운데 버려야 할 것이 있었다면 어떤 것을 마땅히 버렸겠는가?"
하니, 시독관(侍讀官) 서유망(徐有望)이 말하기를,
"비록 이런 때를 당하더라도 신의는 더욱 버릴 수 없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10권 47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594면
원문
원본
순조 7년 (1807) 1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