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실록5권, 순조 3년 5월 27일 庚申 1/1 기사 / 1803년 청 가경(嘉慶) 8년
중관 양대의를 광양현에 정배하다. 이에 대한 영사 서용보의 논의
국역
중관(中官) 양대의(梁大宜)를 광양현(光陽縣)에 정배(定配)하였다. 이보다 앞서 강연(講筵)에서 영사(領事) 서용보(徐龍輔)가 말하기를,
"내수사에서 청선 군주(淸璿郡主)의 묘막(墓幕)을 조성할 때에 잡물(雜物)을 진배(進排)하는 일로 전후 여러 차례 경기 감영에 이문(移文)하였다고 합니다. 내수사에서 직접 여러 도에 관문을 보낼 수 없는 것은 법의(法意)가 지극히 엄중하니, 청컨대 해당 차지 내관(次知內官)을 해부로 하여금 나처(拿處)하게 하소서."
하였다. 내관 양대의가 납공(納供)하기에 미쳐 ‘경기 감영에 이보(移報)한 바가 있었으나, 이는 전에도 그 전례가 있었다.’는 말이 있었으므로, 하교하기를,
"직접 관문을 보내는 것이 비록 그 전례가 있다 하나 이미 대신이 아뢴 바가 있으니, 공죄(公罪)로서 감방(勘放)하도록 하라."
하였다. 판의금 조진관(趙鎭寬)·지의금 한만유(韓晩裕)가 아울러 진소하여 엄중한 처분을 내려서 뒷 폐단을 막을 것을 청하니, 임금이 금부 당상에게 내린 비답의 내용에 특교로서 직접 관문을 보내게 한 것은 전례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일전에 나문하도록 한 것은 대개 대신을 대우하기 위한 하교라고 하였다. 이에 서용보가 또한 차자(箚子)를 올리기를,
"나라에 내수사가 있는 것은 본래 삼대(三代)의 영전(令典)이 아니었으니, 예로부터 명석(名碩)의 의논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단지 옛날과 지금은 그 마땅함이 다름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인순(因循)해 왔는데, 남아(南衙)093) 와 북시(北寺)094) 는 방한(防限)이 엄절하여 한 번 혹시라고 어길 경우 유폐(流弊)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이 비록 긴급하더라도 외읍(外邑)에 관계되면, 반드시 사유(事由)를 갖추어 입계(入啓)한 다음 판하(判下)하기를 기다려 비국에 이보(移報)하고, 비국의 지위(知委)를 기다려야 할 따름입니다. 비록 그 사이에 혹 한두 가지 이치에 어긋난 사례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모두 유사(攸司)의 과실이니, 뒷날에 와서 끌어대어 근거로 삼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를 사륜(絲綸)에 드러내고 조지(朝紙)095) 에 반포한 것이 마치 성헌(成憲)과 구전(舊典)처럼 하였으니 일초(一初)의 다스림에 허물이 되고 말류(末流)의 폐단을 열어 놓게 되는 것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요(堯)·순(舜)을 본받는 성상의 생각으로서 어찌하여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삼가 원하건대, 명을 도로 거두셔서 성덕(聖德)을 빛내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금오에 내린 비답은 나의 생각이 주밀(周密)하지 못한 소치이다. 지금 경의 차자를 보건대, 계도(啓導)하는 정성이 말 밖에 넘치니, 처음에는 두렵다가 이어서 또 확고한 신념(信念)이 서게 되었다. 청한 대로 하도록 하겠다."
하고, 인하여 금부 당상에게 비답을 고쳐서 내리기를,
"내가 어찌 한 환시를 애석하게 여기겠는가? 경의 말이 옳으니, 특별히 정배하도록 하라."
하였다.
- [註 093] 남아(南衙) : 재상들이 일을 보는 관아.
- [註 094] 북시(北寺) : 환관들이 일을 보는 관아.
- [註 095] 조지(朝紙) : 승정원(承政院)에서 매일 아침 그 전날 조정에서 처리된 일들을 적어 돌리는 관보(官報). 조보(朝報)라고도 불림.
원문
○庚申/配中官梁大宜于光陽縣。 先是, 講筵領事徐龍輔言: "內需司以淸璿郡主墓幕造成時, 雜物進排事, 移文畿營, 前後屢次云。 內司之不得直關諸道, 法意至嚴, 請當該次知內官, 令該府拿處。" 及內官梁大宜納供, 有移報畿營, 前有其例之語, 敎曰: "直關雖有其例, 旣有大臣所秦, 以公罪勘放。" 判義禁趙鎭寬、知義禁韓晩裕竝陳疏, 請嚴賜處分, 以杜後弊。 上賜禁堂批有特敎直關, 其例非一二, 日前拿問, 蓋爲待大臣之敎。 龍輔亦上箚曰:
國之有內司, 本非三代令典, 自古名碩之論, 可按而知。 祇緣古今異宜, 因循至今, 而南衙北寺, 防限截嚴, 一或違越, 流弊難言。 故事雖緊急, 關係外邑, 則必須具由入啓, 待判下移報備局, 以俟備局之知委而已。 雖其間或有一、二謬例, 此皆攸司之失也, 不當援據於後。 而今乃發之絲綸, 頒之朝紙, 殆若成憲舊典, 然其爲累一初之治, 啓末流之弊, 不可勝言。 以聖上動法堯、舜之念, 豈爲是哉? 伏願收還, 以光聖德。
批曰: "金吾之批, 予未及周思之致。 今見卿箚, 啓導之誠, 溢於言外, 始而瞿然, 繼又犂然。 所請依施。" 仍改賜禁堂批曰: "予豈惜一宦侍哉? 卿言好矣, 特爲定配。"
순조 3년 (1803) 5월 27일
순조실록5권, 순조 3년 5월 27일 庚申 1/1 기사 / 1803년 청 가경(嘉慶) 8년
중관 양대의를 광양현에 정배하다. 이에 대한 영사 서용보의 논의
국역
중관(中官) 양대의(梁大宜)를 광양현(光陽縣)에 정배(定配)하였다. 이보다 앞서 강연(講筵)에서 영사(領事) 서용보(徐龍輔)가 말하기를,
"내수사에서 청선 군주(淸璿郡主)의 묘막(墓幕)을 조성할 때에 잡물(雜物)을 진배(進排)하는 일로 전후 여러 차례 경기 감영에 이문(移文)하였다고 합니다. 내수사에서 직접 여러 도에 관문을 보낼 수 없는 것은 법의(法意)가 지극히 엄중하니, 청컨대 해당 차지 내관(次知內官)을 해부로 하여금 나처(拿處)하게 하소서."
하였다. 내관 양대의가 납공(納供)하기에 미쳐 ‘경기 감영에 이보(移報)한 바가 있었으나, 이는 전에도 그 전례가 있었다.’는 말이 있었으므로, 하교하기를,
"직접 관문을 보내는 것이 비록 그 전례가 있다 하나 이미 대신이 아뢴 바가 있으니, 공죄(公罪)로서 감방(勘放)하도록 하라."
하였다. 판의금 조진관(趙鎭寬)·지의금 한만유(韓晩裕)가 아울러 진소하여 엄중한 처분을 내려서 뒷 폐단을 막을 것을 청하니, 임금이 금부 당상에게 내린 비답의 내용에 특교로서 직접 관문을 보내게 한 것은 전례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일전에 나문하도록 한 것은 대개 대신을 대우하기 위한 하교라고 하였다. 이에 서용보가 또한 차자(箚子)를 올리기를,
"나라에 내수사가 있는 것은 본래 삼대(三代)의 영전(令典)이 아니었으니, 예로부터 명석(名碩)의 의논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단지 옛날과 지금은 그 마땅함이 다름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인순(因循)해 왔는데, 남아(南衙)093) 와 북시(北寺)094) 는 방한(防限)이 엄절하여 한 번 혹시라고 어길 경우 유폐(流弊)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이 비록 긴급하더라도 외읍(外邑)에 관계되면, 반드시 사유(事由)를 갖추어 입계(入啓)한 다음 판하(判下)하기를 기다려 비국에 이보(移報)하고, 비국의 지위(知委)를 기다려야 할 따름입니다. 비록 그 사이에 혹 한두 가지 이치에 어긋난 사례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모두 유사(攸司)의 과실이니, 뒷날에 와서 끌어대어 근거로 삼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를 사륜(絲綸)에 드러내고 조지(朝紙)095) 에 반포한 것이 마치 성헌(成憲)과 구전(舊典)처럼 하였으니 일초(一初)의 다스림에 허물이 되고 말류(末流)의 폐단을 열어 놓게 되는 것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요(堯)·순(舜)을 본받는 성상의 생각으로서 어찌하여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삼가 원하건대, 명을 도로 거두셔서 성덕(聖德)을 빛내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금오에 내린 비답은 나의 생각이 주밀(周密)하지 못한 소치이다. 지금 경의 차자를 보건대, 계도(啓導)하는 정성이 말 밖에 넘치니, 처음에는 두렵다가 이어서 또 확고한 신념(信念)이 서게 되었다. 청한 대로 하도록 하겠다."
하고, 인하여 금부 당상에게 비답을 고쳐서 내리기를,
"내가 어찌 한 환시를 애석하게 여기겠는가? 경의 말이 옳으니, 특별히 정배하도록 하라."
하였다.
- [註 093] 남아(南衙) : 재상들이 일을 보는 관아.
- [註 094] 북시(北寺) : 환관들이 일을 보는 관아.
- [註 095] 조지(朝紙) : 승정원(承政院)에서 매일 아침 그 전날 조정에서 처리된 일들을 적어 돌리는 관보(官報). 조보(朝報)라고도 불림.
원문
○庚申/配中官梁大宜于光陽縣。 先是, 講筵領事徐龍輔言: "內需司以淸璿郡主墓幕造成時, 雜物進排事, 移文畿營, 前後屢次云。 內司之不得直關諸道, 法意至嚴, 請當該次知內官, 令該府拿處。" 及內官梁大宜納供, 有移報畿營, 前有其例之語, 敎曰: "直關雖有其例, 旣有大臣所秦, 以公罪勘放。" 判義禁趙鎭寬、知義禁韓晩裕竝陳疏, 請嚴賜處分, 以杜後弊。 上賜禁堂批有特敎直關, 其例非一二, 日前拿問, 蓋爲待大臣之敎。 龍輔亦上箚曰:
國之有內司, 本非三代令典, 自古名碩之論, 可按而知。 祇緣古今異宜, 因循至今, 而南衙北寺, 防限截嚴, 一或違越, 流弊難言。 故事雖緊急, 關係外邑, 則必須具由入啓, 待判下移報備局, 以俟備局之知委而已。 雖其間或有一、二謬例, 此皆攸司之失也, 不當援據於後。 而今乃發之絲綸, 頒之朝紙, 殆若成憲舊典, 然其爲累一初之治, 啓末流之弊, 不可勝言。 以聖上動法堯、舜之念, 豈爲是哉? 伏願收還, 以光聖德。
批曰: "金吾之批, 予未及周思之致。 今見卿箚, 啓導之誠, 溢於言外, 始而瞿然, 繼又犂然。 所請依施。" 仍改賜禁堂批曰: "予豈惜一宦侍哉? 卿言好矣, 特爲定配。"
원본
순조 3년 (1803) 5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