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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3권, 순조 1년 12월 11일 癸丑 2/3 기사 / 1801년 청 가경(嘉慶) 6년

군신의 대륜에 관한 송환기의 진소

국역

우찬성 송환기(宋煥箕)가 진소(陳疏)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아! 군신(君臣)의 대륜(大倫)은 실로 영원히 없어질 수 없는 떳떳한 도리입니다. 신이 비록 지극히 어리석다 하여도 한 부분의 병이(秉彝)는 가지고 있으니, 어찌 그것이 중요하고도 큰 것인 줄 모르겠습니까? 신이 이미 도(道)를 품고서 자중(自重)하는 자가 아니고 또 세속(世俗)을 피하여 은거(隱居)하는 자도 아니니, 전후의 은명(恩命)이 내렸을 때에 만번 죽기를 무릅쓰고 간곡히 사양하기를 마지 아니한 것은 진실로 작은 본분을 지키는 병통인 정(情) 때문에 모두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성상의 유시(諭示)에서 신의 선조인 문정공(文正公) 신 송시열(宋時烈)이 우리 효묘(孝廟)를 섬겼던 것으로써 신에게 책면(責勉)하시어 ‘의리를 밝히고 마음을 바르게 하며, 학문을 천명하고 사학(邪學)을 물리치라.’는 것으로써 하교하시기까지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얼마만큼의 세도(世道)를 책임져야 할 것인데, 신과 같이 못난이가 담당할 바이겠습니까? 신은 실로 지극히 용렬하고도 비루하여 언제나 선조를 욕되게 아니함이 없었는데, 명을 듣고는 부끄럽고 황공하여 더욱 몸둘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아! 천리(天理)가 캄캄하게 꽉 막히고 인심(人心)이 미혹하여 나쁜 데 빠진 지가 오래 되었으며, 정학(正學)이 점점 쇠약해지고 사설(邪說)이 멋대로 행하여지는 것이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우리 성고(聖考)께서 의리를 밝히고 마음을 바르게 하며 학문을 부식하고 사학을 물리치는 뜻에 힘쓰시었던 바는 보통일 뿐이 아니었으니, 실로 우리 효묘(孝廟)의 의지와 사업을 계승하신 것입니다. 이제 전하께서 어리신 나이에 등극(登極)하시어 그 덕교(德敎)를 새롭게 하시니, 간대(艱大)한 사업을 인수하시고 계술(繼述)하는 도를 다한 것이 또한 어찌 이 뜻에서 벗어나겠습니까? 이 맨처음에 청명(淸明)하게 하시는 정치로써 동조(東朝)께서 옹호하여 도와 주신 정사(政事)를 본받으시어 무릇 처치한 바가 대단히 엄하고도 바르므로 크게 대의(大義)를 환하게 드러내고 정학(正學)을 높이 보호함이 있었습니다. 근래에 흉역(凶逆)의 변은 실로 옛날에까지 뻗쳐 보아도 없었던 바인데, 다행스럽게 하늘이 종팽(宗祊)을 도와서 원악(元惡)을 주륙하게 되어 징계와 주토를 통쾌하게 행하였으므로, 이 다음부터 인심이 바르게 되고 사설이 종식(終熄)되게 됨을 진실로 기대할 수 있겠으나, 그 의리를 밝히고 학문을 천명하게 하는 방도에 있어서는 더욱 조금도 소홀하게 함이 마땅하지 않을 것이니, 그윽이 생각하건대 아마도 이는 성학(聖學)을 힘쓰고 성덕(聖德)을 닦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근래에 삼가 듣건대 성학이 더욱 진취되고 성덕이 더욱 새롭게 되시어 치화(治化)의 융성함이 장차 날로 아름답고 광대한 데로 오른다 하니, 훌륭하신 일이 아니겠습니까? 마음에 잊혀지지 아니하는 외로운 진심에서 더욱 크게 기원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스스로 그만둘 수가 없었기로 이제 일에 따라 진독(陳瀆)하여 성교(聖敎)의 정중한 뜻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흐려진 정신과 쇠약한 기력으로 미치지 못할 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실로 우매하고 비루한 식견(識見)으로는 감히 망령되게 논할 바가 아닙니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의 말은 더욱 제왕(帝王)의 학문에 간절하므로, 옛부터 부름을 당한 선비들이 처음 등연(登筵)하여 이로써 널리 진달한 것이 많았었는데, 신은 지난번에 말씀 들린 바가 없었으니 또한 어찌 부끄러운 한탄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신의 선조 문정공이 효묘께서 등극하신 처음에 당하여 주자(朱子)의 소(疏) 두어 단락을 정돈하여 올리기를, ‘삼가 생각건대, 이 말은 이미 예람(睿覽)을 거쳤고 연신(筵臣)도 또한 이미 강문(講聞)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절실하고 지극한 훈계를 마땅히 탕반(湯盤)418) 에 비교하여 싫어함이 없이 항상 마음에 간직한다면 또한 어찌 독진(瀆進)한 것에 혐의가 되겠습니까?’ 하였는데, 지금 신이 감히 이 전례에 의거하여 그 소의 한 단락을 취하고 또 선신(先臣)의 봉사(封事) 가운데에서 그 한 조항을 들어서 다음에 작진합니다. 가령 신으로 하여금 죽음이 없이 전석(前席)에 이르게 된다 하여도 그 비문(備問)하는 바가 또한 이에서 더함이 없을 것이니, 삼가 마음을 맑게 하여 반성하소서. 신이 차지한 직명(職名)을 거의 죽게 되는 가운데에서 오래도록 헛되게 지니고 있어 밤낮으로 번민하고 송축(竦蹙)하고 있으니, 삼가 바라건대 빨리 체직 해면을 내리시어 마음을 편안케 하도록 하여 주소서.

주자가 그 임금에게 고하기를, ‘학문을 하는 방도는 궁리(窮理)하는 것보다 더 앞서는 것이 없는데, 궁리의 요체는 반드시 독서(讀書)에 있고, 독서의 방법은 차례를 좇아서 자세함에 이르는 것보다 더 귀중함이 없으며, 차례를 좇아서 자세함에 이르는 근본은 또 공경함에 마음을 두어 뜻을 가지는 데에 있으니, 이는 바꿀 수 없는 이치입니다. 대저 천하의 일은 이치가 있지 아니함이 없어서 군신(君臣)이 된 자는 군신의 이치가 있고 부자(父子)가 된 자는 부자의 이치가 있으며, 부부(夫婦)는 부부대로, 형제(兄弟)는 형제대로, 붕우(朋友)는 붕우대로의 이치가 있으며 출입 기거(出入起居)와 일에 응하고 물건을 접하는 즈음에 이르러서도 또한 각각 이치가 있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를 궁구함이 있다면 군신의 큰 것으로부터 사물(事物)의 미미한 데까지 이르러 그것이 그렇게 된 까닭과 그 당연한 바를 알지 못함이 없어서 약간의 의심도 없을 것이며, 착한 것이 있으면 좇고 악한 것은 버리게 되어 조금의 누도 없을 것이니, 이는 학문을 하는 것이 궁리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습니다. 천하의 이치를 논함에 이르러서는 요묘(要妙)하고 정밀하여 각각 마땅한 바가 있어서 고금(古今)에 구하여 보아도 옮겨서 바꿀 수 없으니, 오직 옛 성인(聖人)이라야 능히 다할 수 있어서 그 행한 바와 말한 것이 천하 후세의 바뀌지 않는 대법(大法)이 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 나머지는 순리(順理)한 자는 군자(君子)가 되어 길하고 거스르는 자는 소인이 되어 흉하며, 길한 것이 큰 자는 능히 사해(四海)를 보전하여 법이 될 수 있고 흉한 것이 심한 자는 그 몸을 보전할 수 없어서 경계를 삼을 수 있을 것이니, 이는 찬연(燦然)한 자취요 필연(必然)의 효과로서, 대개 경훈(經訓)과 사책(史冊)의 가운데에 갖추어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천하의 이치를 궁구하고자 하면서 즉시 이로써 궁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담을 바로 대하고 서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는 궁리하는 것은 반드시 독서하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대저 독서함에 있어서 그 좋아하지 않는 자는 본디 태만하고 중단하게 되어 성취하는 바가 없을 것이고, 그 좋아하는 자도 또 많은 것을 탐하고 광대한 것을 힘써 때때로 그 시초는 시작하지 않고서 갑작스레 그 마침을 탐구하고 여기에는 궁구하지 않고서 홀연히 저기에 뜻을 두니, 이로써 비록 다시 하루 종일 부지런히 애쓴다 하더라도 휴식하지 못하여 마음 먹은 단서만 몹시 바쁘고, 항상 서두르고 바싹 뒤쫓아 가는 듯함이 있어도 조용하게 가라앉는 즐거움이 없을 것입니다. 이 또 어찌 능히 깊이 믿고 자득(自得)하여 항상 오래도록 싫어하지 않음이 저 태만하고 중단되어 성취하는 바가 없는 것과 다름이 있겠습니까?

공자(孔子)가 이른바 ‘급속히 하려 하면 도달하지 못한다.’하고, 맹자(孟子)가 이른바 ‘날래게 진출한 자는 급속히 물러간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을 이른 것입니다. 진실로 능히 이를 거울로 삼아서 돌이켜 생각함이 있다면 마음이 한결같은 데에 잠기어 오래도록 옮겨지지 않아서 읽은 글의 문의(文意)가 한데 이어지고 앞뒤의 연락이 잘 통하여 자연히 점점 스며들고 널리 화합하게 되어 마음과 이치가 하나로 합쳐져 선(善)을 권면하는 것이 깊어지고 악(惡)을 경계하는 것이 간절해질 것입니다. 이는 차례를 좇아 자세함에 이르는 것이 독서(讀書)의 법이 되는 것입니다. 대저 자세함에 이르는 근본은 마음에 있는데, 마음이란 지극히 텅 비고 신령하여 신묘(神妙)함을 헤아릴 수 없어서 항상 일신(一身)의 주체가 되어 만사(萬事)의 요점을 지녔으므로 잠깐이라도 간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마는, 한결같이 자각하지 못하고 내달리고 휘날려서 물욕(物慾)을 몸 바깥에서 따른다면 일신이 주체가 없고 만사가 요점이 없게 되어 비록 그 고개를 숙이고 쳐들며 뒤돌아보는 사이에도 대개 이미 그 몸의 있는 바를 자각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능히 성인(聖人)의 말씀을 반복하고 사물을 참고하여 의리가 지당한 데로 귀결되기를 구하는 것이겠습니까? 공자가 이른바 ‘군자(君子)가 자중(自重)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학문을 하면 고루하지 않는다.’고 한 것과 맹자가 이른바 ‘학문(學問)의 방도는 다른 것이 없다. 그 방심(放心)을 구하는 것뿐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를 이른 것입니다. 진실로 능히 삼가고 두렵게 생각하여 항상 이런 마음을 간직하여 하루 종일 엄연히 물욕에 침란(侵亂)받지 않는다면 글을 읽고 이치를 관찰함에 있어서 앞으로 언제나 통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고, 일에 응하고 물건을 접함에 있어서 앞으로 처하여 부당함이 없을 것이니, 이는 공경함에 마음을 두어 뜻을 가지는 것이 독서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두어 가지 말은 다 어리석은 신하가 평생 동안 학문을 하는 데 몹시 어렵게 고행하여 이미 시험했던 효과였습니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성현(聖賢)이 다시 나온다 해도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이 이와 같은 데에 지나지 않아서, 유독 벼슬이 없는 빈천한 선비만 마땅히 종사할 바가 아니니, 대개 비록 제왕(帝王)의 학문이라도 자못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근년 이래로 풍속이 경박하고 누추하여 사대부(士大夫)들 사이에 이런 말을 듣고는 으레 모두 도학(道學)이라고 지칭하면서 물리쳐 버린 뒤에야 그만두니 이러한 까닭에 초야(草野)에 묻힌 학덕(學德) 높은 선비[食芹]는 자통(自通)할 길이 없어서 늘 남아 있는 경서(經書)를 안고 한갓 개탄하는 것만 간절하였는데, 오늘날 이에 황제 폐하(皇帝陛下)께서 처음으로 청명(淸明)하게 하실 생각을 가지시어 다른 것을 기호(嗜好)하심이 없으시고 유독 문학(問學)에만 부지런히 하시어 게을리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이 이러한 시기를 당하여 특별히 인대(引對)를 힘입었으므로 감히 고루함을 잊고 문득 말씀을 드리니, 삼가 생각건대 성명(聖明)께서는 깊이 살펴보시어 시험삼아 그 말을 몸에 징험하여 일찍 잠이 깨어 새벽에 일어나서 오늘의 뜻을 잊지 말고 스스로 힘써 쉬지 말아서 덕화(德化)가 환히 빛나게 함으로써, 다른 때에 방국(邦國)을 잘 다스리어 편안하게 하기를 상(商)나라 고종(高宗)과 같이 하시고 쇠약함을 흥기시켜 난리를 평정하기를 주(周)나라 선왕(宣王)과 같게 하셔서 인주(人主)가 학문을 강론하는 효과를 밝히시고 우뚝하게 만세토록 제왕(帝王)의 표준이 되신다면, 신이 비록 전야(田野)에 물러나 숨어서 세상과 영원히 사절한다 하더라도 더불어 영광이 있겠습니다. 문정공 송시열이 효종 대왕(孝宗大王)께 고하기를, ‘전소(前疏)에 이른바 학문에 힘써서 마음을 바르게 하라는 것은, 옛부터 인군(人君)이 누가 마음을 바르게 하여 출치(出治)하고자 하지 않겠습니까마는, 그러나 한갓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만 말하고 학문에 근본을 두지 않는다면 끝내 착수할 곳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대개 마음이란 것은 환히 통하고 허령(虛靈)하여서 천리(天理)가 온전히 갖추어졌으나, 또 형체(形體)의 가운데에 얽매었으니 인욕(人慾)의 사사로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번갈아 사라졌다 자랐다 하여 일신의 시비(是非)·득실(得失)과 국가의 치란(治亂)·안위(安危)가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천리란 것은 대단히 정밀하여 본래 성취(聲臭)로 접할 수 없는데, 이른바 인욕이란 것은 각각 그 기능을 좇아 뒤섞여 함께 나아가서 기쁘게 할 수 있는 것 아님이 없으니, 어느 곳으로부터 온 바를 추구해 본다면 실로 천리에서 시작하여 천리를 해침이 구더기가 젓에서 나와 도리어 젓을 해치는 것과 같습니다. 인욕이 날로 치성하고 천리가 날로 망한다면 이 마음의 가운데에 축적되는 바는 티끌만 지저분할 뿐일 것이니, 어떻게 그 바름을 얻어 근본을 삼아서 수신(修身)·제가(齊家)하여 나라에까지 미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물욕의 가리움을 제거한 다음에야 저절로 부정(不正)함이 없게 되어 그 본체(本體)가 넓고 크며 밝고 환한 것이 일용(日用)의 사이에 탁연(卓然)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학문의 공이 아니면 어떻게 이와 같이 되겠습니까?

이른바 학문이란 것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공경함을 주체로 삼아 마음에 두고 학문을 강론하여 밝히며 잡념이 없이 공허하고 전일(專一)한 가운데에 조용히 잠기고 학문하여 밝게 분변하는 즈음에 기미(幾微)를 해결한다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이전에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더욱더 엄숙하게 되어 조금이라도 치우친 것이 없는 데에 이를 것이니, 이는 공경함을 주체로 삼은 공효(功效)로써 천리(天理)를 간직하는 근본이 될 것이며, 수작(酬酌)이 여러 가지로 변화하는 곳에서 그 선(善)과 악(惡)을 삼가하는 것이 더욱더 정밀하게 되어 조금의 어긋남이 없는 데에 이를 것이니, 이는 학문을 강론한 공효로써 인욕(人慾)을 막는 일이 될 것입니다. 수많은 성인(聖人)들의 전수(傳授)한 심법(心法)이 이 두 가지 단서에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순(舜)임금이 우(禹)임금에게, ‘사심(私心)을 물리치고 마음을 전일하게 가져라.[惟精惟一]’ 한 것과 공자가 안자(顔子)에게, ‘사욕을 누르고 예절(禮節)을 좇으라.[克己復禮]’ 한 것도 다 이를 밝혔을 뿐이었으니, 그렇다면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자가 이 일을 버려 두고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제왕(帝王)은 평상시에 깊숙하고 은밀한 속에서 거처하며, 아랫사람을 대할 때 침착하고 묵중한 체면을 즐겨하니, 그 마음을 바르게 하였는지 못하였는지의 실상을 엿볼 수 없을 것 같으나, 그 부험(符驗)이 외부에 나타나는 것은 마침내 가릴 수 없는 바가 있어서 여러 사람이 보는 바이고 여러 사람이 손가락질하는 바일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두렵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순임금과 우임금, 공자와 안자는 ‘정일(精一)’과 ‘극복(克復)’의 전수가 있었는데, 또 이어서 ‘상고할 수 없는 말은 듣지 말고 여러 사람에게 묻지 않는 계략은 쓰지 말 것이며, 처해 있는 왕위(王位)에서 마땅히 삼가하여 그 선(善)을 하려고 원하는 마음을 공경히 닦도록 하라. 만일 사해(四海)의 백성이 곤궁한 지경에 이르게 되면 임금의 천록(天祿)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라고 말하였고, ‘정성(鄭聲)419) 을 물리치고 영인(佞人)을 멀리하라. 정성은 음탕하고 영인은 위태롭다.’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그 본말(本末)이 일치되고 표리(表裏)가 서로 인연하여 깨끗하고 순수하게 조금의 하자나 가리어짐이 없어서 백왕(百王) 때까지 바꿀 수 없는 큰 법도가 되는 것입니다. 어찌 이단(異端)과 속학(俗學)이 안팎을 분리하고 마음과 종적을 판별하여 이 마음으로써 텅 비고 아무것도 없는 한 법을 삼아서 정사(政事)에 시행했다는 것이 바로 관상(管商)420) 의 말을 쓰는 것과 같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높고 멀다 하지 말 것이며 진부(陳腐)하다고 하지 말아서 겸허한 심지(心志)로 처음부터 끝까지 학문에 종사하여 급속한 효과를 바라지 말고 중도에서 폐지함이 없이 여러 성인들의 마음을 한 마음에 모아서 한 마음으로 수많은 일들의 근본을 삼는다면, 이른바 천지(天地)의 위치를 편안하게 하고 만물의 생육을 이루는 데에 참여해 도와서 고상한 미묘(微妙)가 이에서 더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혹시 성의(聖意)를 유념하시어 소홀함이 없게 하신다면 대단히 다행스럽겠습니다.

신이 삼가 주자가 앞뒤로 임금에게 고한 것을 상고하건대, 무릇 일과 학문을 논술한 것이 일찍이 알맞고 적절하며 정밀하고 상세하지 않음이 없어 반드시 독서·궁리·강학·정심하는 것으로 먼저 하여야 할 일을 삼았으니, 어찌 그 출치(出治)의 근본이 실제로 여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옛날의 착한 임금은 겸손한 뜻으로 학문에 종사하지 아니함이 없었으나, 후세의 습속(習俗)이 옮겨져 더욱 비루해지고 도학(道學)과 정사(政事)가 나뉘어져서 두 갈래가 되었으니, 이는 바로 주자가 일생 동안 일찍이 개탄하게 여겼던 바입니다. 문정공이 논한 성학(聖學)이란 것도 또한 주자의 말씀에 벗어나지 않았는데, ‘학문을 논함에는 물건을 유실하지 않고 정치를 논함에는 반드시 학문에 근본을 둔다.’라고 말하였으니, 물건을 유실하지 않았으므로 학문이 유용하게 되고 반드시 학문에 근본을 두었으므로 정치가 그 도(道)를 얻은 것입니다. 아! 제왕의 학문이 궁리·정심에 조금이라도 소홀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정돈하여 올린 바는 말이 상세하고 뜻이 갖추어져서 더욱 독서·강학이 궁리·정심의 요체가 되고, 궁리·정심은 수기(修己)·입정(立政)의 근본이 됨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깊이 예념(睿念)에 유의하소서."

하니, 비답을 내리고 가납(嘉納)하였다.

  • [註 418] 탕반(湯盤) : 《대학》 탕지반명(湯之盤銘)의 약칭.
  • [註 419] 정성(鄭聲) : 춘추 시대(春秋時代) 정(鄭)나라의 음탕한 음악.
  • [註 420] 관상(管商) : 춘추 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 제(齊)나라의 관중(管仲)과 진(秦)나라의 상앙(商鞅)으로, 모두 부국 강병(富國强兵)의 정책을 주장한 법가(法家)임.

원문

○右贊成宋煥箕陳疏。 略曰:

嗚呼! 君臣大倫實天經地義, 萬世不可泯之彝常也。 臣雖至愚, 亦有一端秉彝, 豈不知其重且大哉? 臣旣非抱道自重者, 又非避世高蹈者, 則前後恩命之下, 屢冒萬死, 懇辭不已者, 誠以涯分病情, 俱不能堪也。 玆者聖諭, 乃以臣之先祖文正公臣時烈之事我孝廟者, 責勉於臣, 至以 ‘明理正心, 闡學闢邪’ 爲敎, 是何等世道之責, 而如臣無似所敢擔夯乎? 臣實至庸極陋, 無往而非忝先者, 聞命慙惶, 益無所容措也。 噫! 天理之晦塞, 人心之陷溺久矣, 正學之寖衰, 邪說之肆行極矣。 我聖考所惓惓於明正扶闢之義者, 不啻尋常, 實承我孝廟志事也。 今殿下沖年御極, 維新厥德, 其膺艱大之業, 而盡繼述之道, 亦豈外於斯義? 以是始初淸明之治, 克體東朝擁佑之政, 凡所處置, 極嚴且正, 誕有以昭闡大義, 崇衛正學矣。 比者凶逆之變, 實是亘古所未有, 而幸而天佑宗祊, 元惡就戮, 懲討快行, 從此人心之正、邪說之熄, 誠有可幾, 而若其明理闡學之道, 尤不宜少忽, 竊恐是在於懋聖學、修聖德矣。 近伏聞, 聖學益進, 聖德益新, 治化之隆, 將日躋於休熙矣, 於不休哉? 耿耿孤衷, 冞切顒祝, 自不能已, 今欲隨事陳瀆, 以不孤聖敎鄭重之義, 則不惟昏眊精力, 有所不逮, 實非懜陋見識, 所敢妄論矣。 竊念格、致、誠、正之說, 尤切於帝王之學, 自昔被徵之士, 初登筵多以此敷陳, 而臣於曏時, 未有所獻, 亦安得無愧恨也? 臣之先祖文正公, 當孝廟臨御之初, 繳進朱子疏數段曰: ‘伏想此說, 已經睿覽, 而筵臣亦已講聞。 然此等切至之訓, 當比湯盤, 不厭常存, 則亦何嫌於瀆進哉?’ 今臣敢據此例, 取其疏一段, 且就先臣封事中, 擧其一條而繳進如左。 假使臣無死而得至前席, 其所備問, 亦無以加此, 伏惟澄省焉。 臣所叨職名, 許久虛帶於垂死之中, 日夜悶戚, 伏乞亟賜遞免, 俾得安意就盡。 朱子告其君曰, ‘爲學之道, 莫先於窮理, 窮理之要, 必在於讀書, 讀書之法, 莫貴於循序而致精; 而致精之本, 則又在於居敬而持志, 此不易之理也。 夫天下之事, 莫不有理, 爲君臣者有君臣之理, 爲父子者有父子之理, 爲夫婦、爲兄弟、爲朋友, 以至於出入、起居、應事、接物之際, 亦莫不各有理焉。 有以窮之, 則自君臣之大, 以至事物之微, 莫不知其所以然, 與其所當然, 而無纖芥之疑, 善則從之, 惡則去之, 而無毫髮之累, 此爲學所以莫先於窮理也。 至諭天下之理, 則要妙精微, 各有攸當, 亘古今不可移易, 惟古之聖人, 爲能盡之, 而其所行所言, 無不可爲天下後世不易之大法。 其餘則順之者爲君子而吉, 背之者爲小人而凶。 吉之大者, 則能保四海, 而可以爲法, 凶之甚者, 則不能保其身, 而可以爲戒。 是其燦然之跡, 必然之效, 蓋莫不具於經訓、史冊之中。 欲窮天下之理, 而不卽是以窮之, 則是正墻而立爾, 此窮理所以必在乎讀書也。 若夫讀書, 則其不好之者, 固怠忽間斷, 而無所成矣, 其好之者, 又不免乎貪多而務廣, 往往未啓其端, 而遞已欲探其終, 未究乎此, 而忽已志在乎彼, 是以雖復終日勤勞, 不得休息, 而意緖忽忽, 常若有所奔趨迫逐, 而無從容涵泳之樂。 是又安能深信自得, 常久不厭, 以異於彼之怠忽間斷, 而無所成者哉? 孔子所謂, ‘欲速則不達,’ 《孟子》所謂, ‘進銳者退速,’ 正謂此也。 誠能鑑此, 而有以反之, 則心潛於一, 久而不移, 而所讀之書, 文意接連, 血脈貫通, 自然漸漬浹洽, 心與理會, 而善之爲勸者深, 惡之爲戒者切矣。 此循序致精, 所以爲讀書之法矣。 若夫致精之本, 則在於心, 而心之爲至虛至靈, 神妙不測, 常爲一身之主, 以提萬事之綱, 而不可有頃刻之不存者也。 一不自覺, 而馳騖飛揚, 以徇物慾於軀殼之外, 則一身無主, 萬事無綱, 雖其俯仰顧眄之間, 蓋已不自覺其身之所在, 而況能反覆聖言, 參考事物, 以求義理至當之歸乎? 孔子所謂, ‘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 孟子所謂, ‘學問之道, 無他。 求其放心而已矣’ 者, 正謂此也。 誠能嚴恭寅畏, 常存此心, 使其終日儼然, 不爲物慾之所侵亂, 則以之讀書, 以之觀理, 將無往而不通, 以之應事, 以之接物, 將無處而不當矣, 此居敬持志, 所以爲讀書之本也。 此數語者, 皆愚臣平生爲學艱難辛苦已試之效。 竊意, 聖賢復生, 所以敎人, 不過如此, 不獨布衣韋帶之士所當從事, 蓋雖帝王之學, 殆亦無以易之。 特以近年以來, 風俗薄陋, 士大夫間, 聞此等語, 例皆指爲道學, 必排去之而後已, 是以食芹之美, 無路自通, 每抱遺經, 徒切慨歎。 今者乃遇皇帝陛下, 始初淸明, 無他嗜好, 獨於問學, 孜孜不倦。 而臣當此之時, 特蒙引對, 故敢忘其固陋, 而輒以爲獻, 伏惟聖明, 深賜省覽, 試以其說, 驗之於身, 早寤晨興, 無忘今日之志, 而自强不息, 以緝熙于光明, 使異時嘉靖邦國, 如商高宗, 興衰撥亂, 如周宣王, 以著明人主講學之效, 卓然爲萬世帝王之標準, 則臣雖退伏田野, 與世長辭, 與有榮矣。 文正公 時烈告于孝宗大王曰, "前疏所謂勉學以正心者, 自古人君, 孰不欲正心以出治哉? 然徒言正心, 而不本於學, 則終無下手處矣。’ 蓋心之爲物, 洞徹虛靈, 天理全具, 而又囿於形體之中, 則不能無人慾之私矣。 二者迭爲消長, 而一身之是非得失、國家之治亂安危, 無不由之矣。 然所謂天理者, 極其精微, 本無聲臭之可接。 而所謂人慾者, 則各從其官, 雜然竝進, 無非可悅之心者, 推原所自, 則實本於天理, 而害天理如蟲蛆之生於醢而反害醢也。 人慾日熾, 天理日亡, 則此心之中, 所積者塵垢汚穢而已, 何以得其正以爲本, 而可以修身齊家, 以及於國哉? 故欲正其心者, 必去物慾之蔽然後, 自無不正, 而其本體之廣大光明者, 卓然呈露於日用之間矣。 然非學問之功, 何以與此? 而所謂學問者無他。 主敬以存之, 講學以明之, 從容涵泳於虛閑靜一之中, 剖析幾微於學聚問辨之際, 則不覩不聞之前, 而戒愼恐懼者, 愈嚴愈肅, 以至於無一毫之偏倚者, 此主敬之效, 而所以存天理之本也, 酬酢萬變之處, 而謹其善惡者, 愈精愈密, 以至於無一毫之差謬者, 此講學之效, 而所以遏人慾之事也。 千聖相傳之心法, 不出此兩端, 故舜 禹之精一, 孔、顔之克復, 皆所以明此而已, 然則欲正其心者, 捨是事何以哉? 然帝王居常處遽密之中, 接下喜淵默之體, 其所以正心與不能之實, 若不可得而窺者, 而其符驗之著於外者, 則終有所不得而掩, 不啻若十目所視, 十手所指, 可不懼哉? 是以舜、禹、孔、顔有精一克復之傳, 而又必繼之曰, ‘無稽之言勿聽, 不詢之謀勿用, 謹乃有位, 敬修其可願。 四海困窮, 天祿永終。’ 曰: ‘放鄭聲, 遠佞人。 鄭聲淫, 侫人殆。’ 此其本末一致, 表裏相因, 精白純粹, 無少瑕翳, 而爲百王不易之大法。 豈若異端俗學, 離內外判心跡, 以此心爲空無一法, 而所以施於政事者, 直用管、商之說哉? 伏願殿下, 勿以爲高遠, 勿以爲陳腐, 虛心遜志, 終始典學, 毋冀速效, 毋廢半途, 會千聖之心於一心, 而以一心爲萬事之本, 則所謂, ‘位天地, 育萬物,’ 參贊峻極之妙, 不外乎此矣。 倘留聖意, 毋忽則幸甚。 臣謹按朱子之前後告君, 凡所以論事論學, 未嘗不剴切精詳, 必以讀書窮理講學正心爲先務, 豈非以其出治之本, 實在斯歟? 古之哲辟, 莫不遜志典學, 而後世習俗, 轉益卑陋, 道學政事, 分爲二途, 此正朱子一生所嘗致慨者也。 文正公之所論聖學者, 亦不外乎朱子說, 而以爲 ‘論學, 不遺乎物, 論治, 必本於學。’ 不遺乎物, 故學爲有用, 必本於學, 故治得其道。 噫! 帝王之學, 其可少忽於窮理正心乎? 今所繳進者, 語詳意備, 益可見其讀書講學, 爲窮理正心之要, 而窮理正心, 爲修己立政之本也。 伏乞深留睿念。

賜批嘉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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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3권, 순조 1년 12월 11일 癸丑 2/3 기사 / 1801년 청 가경(嘉慶) 6년

군신의 대륜에 관한 송환기의 진소

국역

우찬성 송환기(宋煥箕)가 진소(陳疏)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아! 군신(君臣)의 대륜(大倫)은 실로 영원히 없어질 수 없는 떳떳한 도리입니다. 신이 비록 지극히 어리석다 하여도 한 부분의 병이(秉彝)는 가지고 있으니, 어찌 그것이 중요하고도 큰 것인 줄 모르겠습니까? 신이 이미 도(道)를 품고서 자중(自重)하는 자가 아니고 또 세속(世俗)을 피하여 은거(隱居)하는 자도 아니니, 전후의 은명(恩命)이 내렸을 때에 만번 죽기를 무릅쓰고 간곡히 사양하기를 마지 아니한 것은 진실로 작은 본분을 지키는 병통인 정(情) 때문에 모두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성상의 유시(諭示)에서 신의 선조인 문정공(文正公) 신 송시열(宋時烈)이 우리 효묘(孝廟)를 섬겼던 것으로써 신에게 책면(責勉)하시어 ‘의리를 밝히고 마음을 바르게 하며, 학문을 천명하고 사학(邪學)을 물리치라.’는 것으로써 하교하시기까지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얼마만큼의 세도(世道)를 책임져야 할 것인데, 신과 같이 못난이가 담당할 바이겠습니까? 신은 실로 지극히 용렬하고도 비루하여 언제나 선조를 욕되게 아니함이 없었는데, 명을 듣고는 부끄럽고 황공하여 더욱 몸둘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아! 천리(天理)가 캄캄하게 꽉 막히고 인심(人心)이 미혹하여 나쁜 데 빠진 지가 오래 되었으며, 정학(正學)이 점점 쇠약해지고 사설(邪說)이 멋대로 행하여지는 것이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우리 성고(聖考)께서 의리를 밝히고 마음을 바르게 하며 학문을 부식하고 사학을 물리치는 뜻에 힘쓰시었던 바는 보통일 뿐이 아니었으니, 실로 우리 효묘(孝廟)의 의지와 사업을 계승하신 것입니다. 이제 전하께서 어리신 나이에 등극(登極)하시어 그 덕교(德敎)를 새롭게 하시니, 간대(艱大)한 사업을 인수하시고 계술(繼述)하는 도를 다한 것이 또한 어찌 이 뜻에서 벗어나겠습니까? 이 맨처음에 청명(淸明)하게 하시는 정치로써 동조(東朝)께서 옹호하여 도와 주신 정사(政事)를 본받으시어 무릇 처치한 바가 대단히 엄하고도 바르므로 크게 대의(大義)를 환하게 드러내고 정학(正學)을 높이 보호함이 있었습니다. 근래에 흉역(凶逆)의 변은 실로 옛날에까지 뻗쳐 보아도 없었던 바인데, 다행스럽게 하늘이 종팽(宗祊)을 도와서 원악(元惡)을 주륙하게 되어 징계와 주토를 통쾌하게 행하였으므로, 이 다음부터 인심이 바르게 되고 사설이 종식(終熄)되게 됨을 진실로 기대할 수 있겠으나, 그 의리를 밝히고 학문을 천명하게 하는 방도에 있어서는 더욱 조금도 소홀하게 함이 마땅하지 않을 것이니, 그윽이 생각하건대 아마도 이는 성학(聖學)을 힘쓰고 성덕(聖德)을 닦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근래에 삼가 듣건대 성학이 더욱 진취되고 성덕이 더욱 새롭게 되시어 치화(治化)의 융성함이 장차 날로 아름답고 광대한 데로 오른다 하니, 훌륭하신 일이 아니겠습니까? 마음에 잊혀지지 아니하는 외로운 진심에서 더욱 크게 기원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스스로 그만둘 수가 없었기로 이제 일에 따라 진독(陳瀆)하여 성교(聖敎)의 정중한 뜻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흐려진 정신과 쇠약한 기력으로 미치지 못할 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실로 우매하고 비루한 식견(識見)으로는 감히 망령되게 논할 바가 아닙니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의 말은 더욱 제왕(帝王)의 학문에 간절하므로, 옛부터 부름을 당한 선비들이 처음 등연(登筵)하여 이로써 널리 진달한 것이 많았었는데, 신은 지난번에 말씀 들린 바가 없었으니 또한 어찌 부끄러운 한탄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신의 선조 문정공이 효묘께서 등극하신 처음에 당하여 주자(朱子)의 소(疏) 두어 단락을 정돈하여 올리기를, ‘삼가 생각건대, 이 말은 이미 예람(睿覽)을 거쳤고 연신(筵臣)도 또한 이미 강문(講聞)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절실하고 지극한 훈계를 마땅히 탕반(湯盤)418) 에 비교하여 싫어함이 없이 항상 마음에 간직한다면 또한 어찌 독진(瀆進)한 것에 혐의가 되겠습니까?’ 하였는데, 지금 신이 감히 이 전례에 의거하여 그 소의 한 단락을 취하고 또 선신(先臣)의 봉사(封事) 가운데에서 그 한 조항을 들어서 다음에 작진합니다. 가령 신으로 하여금 죽음이 없이 전석(前席)에 이르게 된다 하여도 그 비문(備問)하는 바가 또한 이에서 더함이 없을 것이니, 삼가 마음을 맑게 하여 반성하소서. 신이 차지한 직명(職名)을 거의 죽게 되는 가운데에서 오래도록 헛되게 지니고 있어 밤낮으로 번민하고 송축(竦蹙)하고 있으니, 삼가 바라건대 빨리 체직 해면을 내리시어 마음을 편안케 하도록 하여 주소서.

주자가 그 임금에게 고하기를, ‘학문을 하는 방도는 궁리(窮理)하는 것보다 더 앞서는 것이 없는데, 궁리의 요체는 반드시 독서(讀書)에 있고, 독서의 방법은 차례를 좇아서 자세함에 이르는 것보다 더 귀중함이 없으며, 차례를 좇아서 자세함에 이르는 근본은 또 공경함에 마음을 두어 뜻을 가지는 데에 있으니, 이는 바꿀 수 없는 이치입니다. 대저 천하의 일은 이치가 있지 아니함이 없어서 군신(君臣)이 된 자는 군신의 이치가 있고 부자(父子)가 된 자는 부자의 이치가 있으며, 부부(夫婦)는 부부대로, 형제(兄弟)는 형제대로, 붕우(朋友)는 붕우대로의 이치가 있으며 출입 기거(出入起居)와 일에 응하고 물건을 접하는 즈음에 이르러서도 또한 각각 이치가 있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를 궁구함이 있다면 군신의 큰 것으로부터 사물(事物)의 미미한 데까지 이르러 그것이 그렇게 된 까닭과 그 당연한 바를 알지 못함이 없어서 약간의 의심도 없을 것이며, 착한 것이 있으면 좇고 악한 것은 버리게 되어 조금의 누도 없을 것이니, 이는 학문을 하는 것이 궁리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습니다. 천하의 이치를 논함에 이르러서는 요묘(要妙)하고 정밀하여 각각 마땅한 바가 있어서 고금(古今)에 구하여 보아도 옮겨서 바꿀 수 없으니, 오직 옛 성인(聖人)이라야 능히 다할 수 있어서 그 행한 바와 말한 것이 천하 후세의 바뀌지 않는 대법(大法)이 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 나머지는 순리(順理)한 자는 군자(君子)가 되어 길하고 거스르는 자는 소인이 되어 흉하며, 길한 것이 큰 자는 능히 사해(四海)를 보전하여 법이 될 수 있고 흉한 것이 심한 자는 그 몸을 보전할 수 없어서 경계를 삼을 수 있을 것이니, 이는 찬연(燦然)한 자취요 필연(必然)의 효과로서, 대개 경훈(經訓)과 사책(史冊)의 가운데에 갖추어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천하의 이치를 궁구하고자 하면서 즉시 이로써 궁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담을 바로 대하고 서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는 궁리하는 것은 반드시 독서하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대저 독서함에 있어서 그 좋아하지 않는 자는 본디 태만하고 중단하게 되어 성취하는 바가 없을 것이고, 그 좋아하는 자도 또 많은 것을 탐하고 광대한 것을 힘써 때때로 그 시초는 시작하지 않고서 갑작스레 그 마침을 탐구하고 여기에는 궁구하지 않고서 홀연히 저기에 뜻을 두니, 이로써 비록 다시 하루 종일 부지런히 애쓴다 하더라도 휴식하지 못하여 마음 먹은 단서만 몹시 바쁘고, 항상 서두르고 바싹 뒤쫓아 가는 듯함이 있어도 조용하게 가라앉는 즐거움이 없을 것입니다. 이 또 어찌 능히 깊이 믿고 자득(自得)하여 항상 오래도록 싫어하지 않음이 저 태만하고 중단되어 성취하는 바가 없는 것과 다름이 있겠습니까?

공자(孔子)가 이른바 ‘급속히 하려 하면 도달하지 못한다.’하고, 맹자(孟子)가 이른바 ‘날래게 진출한 자는 급속히 물러간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을 이른 것입니다. 진실로 능히 이를 거울로 삼아서 돌이켜 생각함이 있다면 마음이 한결같은 데에 잠기어 오래도록 옮겨지지 않아서 읽은 글의 문의(文意)가 한데 이어지고 앞뒤의 연락이 잘 통하여 자연히 점점 스며들고 널리 화합하게 되어 마음과 이치가 하나로 합쳐져 선(善)을 권면하는 것이 깊어지고 악(惡)을 경계하는 것이 간절해질 것입니다. 이는 차례를 좇아 자세함에 이르는 것이 독서(讀書)의 법이 되는 것입니다. 대저 자세함에 이르는 근본은 마음에 있는데, 마음이란 지극히 텅 비고 신령하여 신묘(神妙)함을 헤아릴 수 없어서 항상 일신(一身)의 주체가 되어 만사(萬事)의 요점을 지녔으므로 잠깐이라도 간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마는, 한결같이 자각하지 못하고 내달리고 휘날려서 물욕(物慾)을 몸 바깥에서 따른다면 일신이 주체가 없고 만사가 요점이 없게 되어 비록 그 고개를 숙이고 쳐들며 뒤돌아보는 사이에도 대개 이미 그 몸의 있는 바를 자각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능히 성인(聖人)의 말씀을 반복하고 사물을 참고하여 의리가 지당한 데로 귀결되기를 구하는 것이겠습니까? 공자가 이른바 ‘군자(君子)가 자중(自重)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학문을 하면 고루하지 않는다.’고 한 것과 맹자가 이른바 ‘학문(學問)의 방도는 다른 것이 없다. 그 방심(放心)을 구하는 것뿐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를 이른 것입니다. 진실로 능히 삼가고 두렵게 생각하여 항상 이런 마음을 간직하여 하루 종일 엄연히 물욕에 침란(侵亂)받지 않는다면 글을 읽고 이치를 관찰함에 있어서 앞으로 언제나 통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고, 일에 응하고 물건을 접함에 있어서 앞으로 처하여 부당함이 없을 것이니, 이는 공경함에 마음을 두어 뜻을 가지는 것이 독서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두어 가지 말은 다 어리석은 신하가 평생 동안 학문을 하는 데 몹시 어렵게 고행하여 이미 시험했던 효과였습니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성현(聖賢)이 다시 나온다 해도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이 이와 같은 데에 지나지 않아서, 유독 벼슬이 없는 빈천한 선비만 마땅히 종사할 바가 아니니, 대개 비록 제왕(帝王)의 학문이라도 자못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근년 이래로 풍속이 경박하고 누추하여 사대부(士大夫)들 사이에 이런 말을 듣고는 으레 모두 도학(道學)이라고 지칭하면서 물리쳐 버린 뒤에야 그만두니 이러한 까닭에 초야(草野)에 묻힌 학덕(學德) 높은 선비[食芹]는 자통(自通)할 길이 없어서 늘 남아 있는 경서(經書)를 안고 한갓 개탄하는 것만 간절하였는데, 오늘날 이에 황제 폐하(皇帝陛下)께서 처음으로 청명(淸明)하게 하실 생각을 가지시어 다른 것을 기호(嗜好)하심이 없으시고 유독 문학(問學)에만 부지런히 하시어 게을리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이 이러한 시기를 당하여 특별히 인대(引對)를 힘입었으므로 감히 고루함을 잊고 문득 말씀을 드리니, 삼가 생각건대 성명(聖明)께서는 깊이 살펴보시어 시험삼아 그 말을 몸에 징험하여 일찍 잠이 깨어 새벽에 일어나서 오늘의 뜻을 잊지 말고 스스로 힘써 쉬지 말아서 덕화(德化)가 환히 빛나게 함으로써, 다른 때에 방국(邦國)을 잘 다스리어 편안하게 하기를 상(商)나라 고종(高宗)과 같이 하시고 쇠약함을 흥기시켜 난리를 평정하기를 주(周)나라 선왕(宣王)과 같게 하셔서 인주(人主)가 학문을 강론하는 효과를 밝히시고 우뚝하게 만세토록 제왕(帝王)의 표준이 되신다면, 신이 비록 전야(田野)에 물러나 숨어서 세상과 영원히 사절한다 하더라도 더불어 영광이 있겠습니다. 문정공 송시열이 효종 대왕(孝宗大王)께 고하기를, ‘전소(前疏)에 이른바 학문에 힘써서 마음을 바르게 하라는 것은, 옛부터 인군(人君)이 누가 마음을 바르게 하여 출치(出治)하고자 하지 않겠습니까마는, 그러나 한갓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만 말하고 학문에 근본을 두지 않는다면 끝내 착수할 곳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대개 마음이란 것은 환히 통하고 허령(虛靈)하여서 천리(天理)가 온전히 갖추어졌으나, 또 형체(形體)의 가운데에 얽매었으니 인욕(人慾)의 사사로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번갈아 사라졌다 자랐다 하여 일신의 시비(是非)·득실(得失)과 국가의 치란(治亂)·안위(安危)가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천리란 것은 대단히 정밀하여 본래 성취(聲臭)로 접할 수 없는데, 이른바 인욕이란 것은 각각 그 기능을 좇아 뒤섞여 함께 나아가서 기쁘게 할 수 있는 것 아님이 없으니, 어느 곳으로부터 온 바를 추구해 본다면 실로 천리에서 시작하여 천리를 해침이 구더기가 젓에서 나와 도리어 젓을 해치는 것과 같습니다. 인욕이 날로 치성하고 천리가 날로 망한다면 이 마음의 가운데에 축적되는 바는 티끌만 지저분할 뿐일 것이니, 어떻게 그 바름을 얻어 근본을 삼아서 수신(修身)·제가(齊家)하여 나라에까지 미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물욕의 가리움을 제거한 다음에야 저절로 부정(不正)함이 없게 되어 그 본체(本體)가 넓고 크며 밝고 환한 것이 일용(日用)의 사이에 탁연(卓然)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학문의 공이 아니면 어떻게 이와 같이 되겠습니까?

이른바 학문이란 것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공경함을 주체로 삼아 마음에 두고 학문을 강론하여 밝히며 잡념이 없이 공허하고 전일(專一)한 가운데에 조용히 잠기고 학문하여 밝게 분변하는 즈음에 기미(幾微)를 해결한다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이전에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더욱더 엄숙하게 되어 조금이라도 치우친 것이 없는 데에 이를 것이니, 이는 공경함을 주체로 삼은 공효(功效)로써 천리(天理)를 간직하는 근본이 될 것이며, 수작(酬酌)이 여러 가지로 변화하는 곳에서 그 선(善)과 악(惡)을 삼가하는 것이 더욱더 정밀하게 되어 조금의 어긋남이 없는 데에 이를 것이니, 이는 학문을 강론한 공효로써 인욕(人慾)을 막는 일이 될 것입니다. 수많은 성인(聖人)들의 전수(傳授)한 심법(心法)이 이 두 가지 단서에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순(舜)임금이 우(禹)임금에게, ‘사심(私心)을 물리치고 마음을 전일하게 가져라.[惟精惟一]’ 한 것과 공자가 안자(顔子)에게, ‘사욕을 누르고 예절(禮節)을 좇으라.[克己復禮]’ 한 것도 다 이를 밝혔을 뿐이었으니, 그렇다면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자가 이 일을 버려 두고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제왕(帝王)은 평상시에 깊숙하고 은밀한 속에서 거처하며, 아랫사람을 대할 때 침착하고 묵중한 체면을 즐겨하니, 그 마음을 바르게 하였는지 못하였는지의 실상을 엿볼 수 없을 것 같으나, 그 부험(符驗)이 외부에 나타나는 것은 마침내 가릴 수 없는 바가 있어서 여러 사람이 보는 바이고 여러 사람이 손가락질하는 바일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두렵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순임금과 우임금, 공자와 안자는 ‘정일(精一)’과 ‘극복(克復)’의 전수가 있었는데, 또 이어서 ‘상고할 수 없는 말은 듣지 말고 여러 사람에게 묻지 않는 계략은 쓰지 말 것이며, 처해 있는 왕위(王位)에서 마땅히 삼가하여 그 선(善)을 하려고 원하는 마음을 공경히 닦도록 하라. 만일 사해(四海)의 백성이 곤궁한 지경에 이르게 되면 임금의 천록(天祿)이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라고 말하였고, ‘정성(鄭聲)419) 을 물리치고 영인(佞人)을 멀리하라. 정성은 음탕하고 영인은 위태롭다.’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그 본말(本末)이 일치되고 표리(表裏)가 서로 인연하여 깨끗하고 순수하게 조금의 하자나 가리어짐이 없어서 백왕(百王) 때까지 바꿀 수 없는 큰 법도가 되는 것입니다. 어찌 이단(異端)과 속학(俗學)이 안팎을 분리하고 마음과 종적을 판별하여 이 마음으로써 텅 비고 아무것도 없는 한 법을 삼아서 정사(政事)에 시행했다는 것이 바로 관상(管商)420) 의 말을 쓰는 것과 같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높고 멀다 하지 말 것이며 진부(陳腐)하다고 하지 말아서 겸허한 심지(心志)로 처음부터 끝까지 학문에 종사하여 급속한 효과를 바라지 말고 중도에서 폐지함이 없이 여러 성인들의 마음을 한 마음에 모아서 한 마음으로 수많은 일들의 근본을 삼는다면, 이른바 천지(天地)의 위치를 편안하게 하고 만물의 생육을 이루는 데에 참여해 도와서 고상한 미묘(微妙)가 이에서 더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혹시 성의(聖意)를 유념하시어 소홀함이 없게 하신다면 대단히 다행스럽겠습니다.

신이 삼가 주자가 앞뒤로 임금에게 고한 것을 상고하건대, 무릇 일과 학문을 논술한 것이 일찍이 알맞고 적절하며 정밀하고 상세하지 않음이 없어 반드시 독서·궁리·강학·정심하는 것으로 먼저 하여야 할 일을 삼았으니, 어찌 그 출치(出治)의 근본이 실제로 여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옛날의 착한 임금은 겸손한 뜻으로 학문에 종사하지 아니함이 없었으나, 후세의 습속(習俗)이 옮겨져 더욱 비루해지고 도학(道學)과 정사(政事)가 나뉘어져서 두 갈래가 되었으니, 이는 바로 주자가 일생 동안 일찍이 개탄하게 여겼던 바입니다. 문정공이 논한 성학(聖學)이란 것도 또한 주자의 말씀에 벗어나지 않았는데, ‘학문을 논함에는 물건을 유실하지 않고 정치를 논함에는 반드시 학문에 근본을 둔다.’라고 말하였으니, 물건을 유실하지 않았으므로 학문이 유용하게 되고 반드시 학문에 근본을 두었으므로 정치가 그 도(道)를 얻은 것입니다. 아! 제왕의 학문이 궁리·정심에 조금이라도 소홀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정돈하여 올린 바는 말이 상세하고 뜻이 갖추어져서 더욱 독서·강학이 궁리·정심의 요체가 되고, 궁리·정심은 수기(修己)·입정(立政)의 근본이 됨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깊이 예념(睿念)에 유의하소서."

하니, 비답을 내리고 가납(嘉納)하였다.

  • [註 418] 탕반(湯盤) : 《대학》 탕지반명(湯之盤銘)의 약칭.
  • [註 419] 정성(鄭聲) : 춘추 시대(春秋時代) 정(鄭)나라의 음탕한 음악.
  • [註 420] 관상(管商) : 춘추 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 제(齊)나라의 관중(管仲)과 진(秦)나라의 상앙(商鞅)으로, 모두 부국 강병(富國强兵)의 정책을 주장한 법가(法家)임.

원문

○右贊成宋煥箕陳疏。 略曰:

嗚呼! 君臣大倫實天經地義, 萬世不可泯之彝常也。 臣雖至愚, 亦有一端秉彝, 豈不知其重且大哉? 臣旣非抱道自重者, 又非避世高蹈者, 則前後恩命之下, 屢冒萬死, 懇辭不已者, 誠以涯分病情, 俱不能堪也。 玆者聖諭, 乃以臣之先祖文正公臣時烈之事我孝廟者, 責勉於臣, 至以 ‘明理正心, 闡學闢邪’ 爲敎, 是何等世道之責, 而如臣無似所敢擔夯乎? 臣實至庸極陋, 無往而非忝先者, 聞命慙惶, 益無所容措也。 噫! 天理之晦塞, 人心之陷溺久矣, 正學之寖衰, 邪說之肆行極矣。 我聖考所惓惓於明正扶闢之義者, 不啻尋常, 實承我孝廟志事也。 今殿下沖年御極, 維新厥德, 其膺艱大之業, 而盡繼述之道, 亦豈外於斯義? 以是始初淸明之治, 克體東朝擁佑之政, 凡所處置, 極嚴且正, 誕有以昭闡大義, 崇衛正學矣。 比者凶逆之變, 實是亘古所未有, 而幸而天佑宗祊, 元惡就戮, 懲討快行, 從此人心之正、邪說之熄, 誠有可幾, 而若其明理闡學之道, 尤不宜少忽, 竊恐是在於懋聖學、修聖德矣。 近伏聞, 聖學益進, 聖德益新, 治化之隆, 將日躋於休熙矣, 於不休哉? 耿耿孤衷, 冞切顒祝, 自不能已, 今欲隨事陳瀆, 以不孤聖敎鄭重之義, 則不惟昏眊精力, 有所不逮, 實非懜陋見識, 所敢妄論矣。 竊念格、致、誠、正之說, 尤切於帝王之學, 自昔被徵之士, 初登筵多以此敷陳, 而臣於曏時, 未有所獻, 亦安得無愧恨也? 臣之先祖文正公, 當孝廟臨御之初, 繳進朱子疏數段曰: ‘伏想此說, 已經睿覽, 而筵臣亦已講聞。 然此等切至之訓, 當比湯盤, 不厭常存, 則亦何嫌於瀆進哉?’ 今臣敢據此例, 取其疏一段, 且就先臣封事中, 擧其一條而繳進如左。 假使臣無死而得至前席, 其所備問, 亦無以加此, 伏惟澄省焉。 臣所叨職名, 許久虛帶於垂死之中, 日夜悶戚, 伏乞亟賜遞免, 俾得安意就盡。 朱子告其君曰, ‘爲學之道, 莫先於窮理, 窮理之要, 必在於讀書, 讀書之法, 莫貴於循序而致精; 而致精之本, 則又在於居敬而持志, 此不易之理也。 夫天下之事, 莫不有理, 爲君臣者有君臣之理, 爲父子者有父子之理, 爲夫婦、爲兄弟、爲朋友, 以至於出入、起居、應事、接物之際, 亦莫不各有理焉。 有以窮之, 則自君臣之大, 以至事物之微, 莫不知其所以然, 與其所當然, 而無纖芥之疑, 善則從之, 惡則去之, 而無毫髮之累, 此爲學所以莫先於窮理也。 至諭天下之理, 則要妙精微, 各有攸當, 亘古今不可移易, 惟古之聖人, 爲能盡之, 而其所行所言, 無不可爲天下後世不易之大法。 其餘則順之者爲君子而吉, 背之者爲小人而凶。 吉之大者, 則能保四海, 而可以爲法, 凶之甚者, 則不能保其身, 而可以爲戒。 是其燦然之跡, 必然之效, 蓋莫不具於經訓、史冊之中。 欲窮天下之理, 而不卽是以窮之, 則是正墻而立爾, 此窮理所以必在乎讀書也。 若夫讀書, 則其不好之者, 固怠忽間斷, 而無所成矣, 其好之者, 又不免乎貪多而務廣, 往往未啓其端, 而遞已欲探其終, 未究乎此, 而忽已志在乎彼, 是以雖復終日勤勞, 不得休息, 而意緖忽忽, 常若有所奔趨迫逐, 而無從容涵泳之樂。 是又安能深信自得, 常久不厭, 以異於彼之怠忽間斷, 而無所成者哉? 孔子所謂, ‘欲速則不達,’ 《孟子》所謂, ‘進銳者退速,’ 正謂此也。 誠能鑑此, 而有以反之, 則心潛於一, 久而不移, 而所讀之書, 文意接連, 血脈貫通, 自然漸漬浹洽, 心與理會, 而善之爲勸者深, 惡之爲戒者切矣。 此循序致精, 所以爲讀書之法矣。 若夫致精之本, 則在於心, 而心之爲至虛至靈, 神妙不測, 常爲一身之主, 以提萬事之綱, 而不可有頃刻之不存者也。 一不自覺, 而馳騖飛揚, 以徇物慾於軀殼之外, 則一身無主, 萬事無綱, 雖其俯仰顧眄之間, 蓋已不自覺其身之所在, 而況能反覆聖言, 參考事物, 以求義理至當之歸乎? 孔子所謂, ‘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 孟子所謂, ‘學問之道, 無他。 求其放心而已矣’ 者, 正謂此也。 誠能嚴恭寅畏, 常存此心, 使其終日儼然, 不爲物慾之所侵亂, 則以之讀書, 以之觀理, 將無往而不通, 以之應事, 以之接物, 將無處而不當矣, 此居敬持志, 所以爲讀書之本也。 此數語者, 皆愚臣平生爲學艱難辛苦已試之效。 竊意, 聖賢復生, 所以敎人, 不過如此, 不獨布衣韋帶之士所當從事, 蓋雖帝王之學, 殆亦無以易之。 特以近年以來, 風俗薄陋, 士大夫間, 聞此等語, 例皆指爲道學, 必排去之而後已, 是以食芹之美, 無路自通, 每抱遺經, 徒切慨歎。 今者乃遇皇帝陛下, 始初淸明, 無他嗜好, 獨於問學, 孜孜不倦。 而臣當此之時, 特蒙引對, 故敢忘其固陋, 而輒以爲獻, 伏惟聖明, 深賜省覽, 試以其說, 驗之於身, 早寤晨興, 無忘今日之志, 而自强不息, 以緝熙于光明, 使異時嘉靖邦國, 如商高宗, 興衰撥亂, 如周宣王, 以著明人主講學之效, 卓然爲萬世帝王之標準, 則臣雖退伏田野, 與世長辭, 與有榮矣。 文正公 時烈告于孝宗大王曰, "前疏所謂勉學以正心者, 自古人君, 孰不欲正心以出治哉? 然徒言正心, 而不本於學, 則終無下手處矣。’ 蓋心之爲物, 洞徹虛靈, 天理全具, 而又囿於形體之中, 則不能無人慾之私矣。 二者迭爲消長, 而一身之是非得失、國家之治亂安危, 無不由之矣。 然所謂天理者, 極其精微, 本無聲臭之可接。 而所謂人慾者, 則各從其官, 雜然竝進, 無非可悅之心者, 推原所自, 則實本於天理, 而害天理如蟲蛆之生於醢而反害醢也。 人慾日熾, 天理日亡, 則此心之中, 所積者塵垢汚穢而已, 何以得其正以爲本, 而可以修身齊家, 以及於國哉? 故欲正其心者, 必去物慾之蔽然後, 自無不正, 而其本體之廣大光明者, 卓然呈露於日用之間矣。 然非學問之功, 何以與此? 而所謂學問者無他。 主敬以存之, 講學以明之, 從容涵泳於虛閑靜一之中, 剖析幾微於學聚問辨之際, 則不覩不聞之前, 而戒愼恐懼者, 愈嚴愈肅, 以至於無一毫之偏倚者, 此主敬之效, 而所以存天理之本也, 酬酢萬變之處, 而謹其善惡者, 愈精愈密, 以至於無一毫之差謬者, 此講學之效, 而所以遏人慾之事也。 千聖相傳之心法, 不出此兩端, 故舜 禹之精一, 孔、顔之克復, 皆所以明此而已, 然則欲正其心者, 捨是事何以哉? 然帝王居常處遽密之中, 接下喜淵默之體, 其所以正心與不能之實, 若不可得而窺者, 而其符驗之著於外者, 則終有所不得而掩, 不啻若十目所視, 十手所指, 可不懼哉? 是以舜、禹、孔、顔有精一克復之傳, 而又必繼之曰, ‘無稽之言勿聽, 不詢之謀勿用, 謹乃有位, 敬修其可願。 四海困窮, 天祿永終。’ 曰: ‘放鄭聲, 遠佞人。 鄭聲淫, 侫人殆。’ 此其本末一致, 表裏相因, 精白純粹, 無少瑕翳, 而爲百王不易之大法。 豈若異端俗學, 離內外判心跡, 以此心爲空無一法, 而所以施於政事者, 直用管、商之說哉? 伏願殿下, 勿以爲高遠, 勿以爲陳腐, 虛心遜志, 終始典學, 毋冀速效, 毋廢半途, 會千聖之心於一心, 而以一心爲萬事之本, 則所謂, ‘位天地, 育萬物,’ 參贊峻極之妙, 不外乎此矣。 倘留聖意, 毋忽則幸甚。 臣謹按朱子之前後告君, 凡所以論事論學, 未嘗不剴切精詳, 必以讀書窮理講學正心爲先務, 豈非以其出治之本, 實在斯歟? 古之哲辟, 莫不遜志典學, 而後世習俗, 轉益卑陋, 道學政事, 分爲二途, 此正朱子一生所嘗致慨者也。 文正公之所論聖學者, 亦不外乎朱子說, 而以爲 ‘論學, 不遺乎物, 論治, 必本於學。’ 不遺乎物, 故學爲有用, 必本於學, 故治得其道。 噫! 帝王之學, 其可少忽於窮理正心乎? 今所繳進者, 語詳意備, 益可見其讀書講學, 爲窮理正心之要, 而窮理正心, 爲修己立政之本也。 伏乞深留睿念。

賜批嘉納。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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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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