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53권, 정조 24년 2월 27일 庚戌 1/4 기사 / 1800년 청 가경(嘉慶) 5년
차대하여 세자빈 간택에 대해 이르다
국역
차대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정월 한 달 간은 나 같은 심정에 처해 있는 사람으로서 경사스러운 예를 치르게 되어 감히 보통사람 같이 자처를 못하고 어떻게 넘겼는지 모르게 넘어갔고, 2월 이후로는 또 자궁의 병환으로 초조와 절박감 속에서 나날을 보냈기 때문에 모든 백성 일과 나랏일에 관하여 전혀 수응을 못했으며 차대 역시 새해 들어 아직까지 한 번도 못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즉위한 지도 벌써 20여 년이 흘렀는데 단 반푼인들 무슨 기록할 만한 선정이 있었을까마는 접견과 수응을 이렇게 오래 못하기는 또 20여 년 동안에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지금은 정력이 사실 스스로 버티기가 어려울 정도인데 오늘 이 자리는 부득이 연 것이다. 이제 근력도 날이 갈수록 더 쇠해가고 먹고 자는 것도 제대로 안 되며 시력도 자잘한 글자는 볼 수가 없고 정신 역시 왔다갔다하여 참으로 이른바 보는 것은 어둡고 생각은 막혔다고 한 말 그대로이다.
지금으로서는 대례도 잘 마쳤고 자궁의 병환도 회복되었으나 또 하나 마음에 늘 잊혀지지 않고 있는 것은 현륭원 참배는 세초에 올렸고 진전(眞殿)과 종묘와 경모궁도 이미 차례로 배알하였으나 원릉(元陵) 행차를 새달에 해야 하는데 지금의 내 근력으로는 오르내리는 일을 힘들어서 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선조와 선왕을 받드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감히 늙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조금도 게을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오직 그 일만은 밤낮으로 성의를 다하고 있으나 그 밖의 다른 일들에 대해서는 부득이 휴양(休養)을 위주로 해야 하겠다. 그 전에는 걷는 정도는 가장 무난했었는데 어제 봉심하면서 예를 행할 때는 나도 모르게 땀이 흘러내렸다."
하니, 영의정 이병모가 아뢰기를,
"신도 어제 그렇게 힘들어 해 하시는 것을 보고 너무 염려가 되었습니다."
하자, 우의정 이시수가 아뢰기를,
"성상께서 몸만 그렇게 힘들도록 움직이신게 아니라 경모궁 배알 때는 추모하는 마음까지도 너무 지나치셨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가 종묘를 배알했을 때는 선왕께서 내 나이가 어리다 하여 종묘 안 봉심을 하시면서 따라다니지 못하게 하고 절하는 자리에 그대로 서 있게만 하셨는데 이번에는 세자로 하여금 따라다니면서 봉심하게 했어도 오르내리고 추창하는 품이 법도에 맞게 의젓하고 그렇게 오래 걸어도 땀도 흘리지 않아 매우 기특해 보였었다."
하니, 병모가 아뢰기를,
"신들도 계속 지켜보았지만 그렇게 여러 차례 예를 행하면서도 다 법도에 딱딱 맞았습니다. 문왕(文王)이 세자 시절에 했던 일도 어떻게 그보다 더했겠습니까. 참으로 너무나 경사스럽고 기쁜 일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흥(興)·배(拜)를 할 때 나는 혹 크게 외치는 소리와 맞지 않을 때가 있었지만 세자는 조금도 틀림이 없이 하나하나 소리에 맞춰 행하였다."
하니, 병모가 아뢰기를,
"과연 너무 흠탄할 정도로 절차가 엄숙했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첫번째 간택이 아주 잘되었다. 하늘이 정해준 짝이 있기 마련인데 내가 어떻게 감히 털끝만큼인들 그 일을 내 뜻대로 할 것인가. 관례·책봉례도 내가 감히 내 뜻대로 못하고 정월 초하룻날 아침 배알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결정을 했던 것은 어리석은 나로서 무슨 일이든지 하려고 하면 언제나 분명하게 지도를 하거나 경계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인의 말씀에, 형체 없는 데서 보고 소리 없는 데서 듣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또 위하여 재계했던 그를 틀림없이 본다고 하지 않았는가. 성인의 말은 원만하고 모가 없어 비록 명백하게 ‘이것이 그것이다.’라고는 않으셨지만 그러한 이치는 틀림없이 있는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이번 간택에 있어 내가 그 쪽에 뜻을 둔 것도 외인들이 보기에는 마치 그 집 문벌(門閥)이나 취한 것 같고 또 어쩌면 왕실과 가까운 사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내용을 자세히 말하자고 들면 혹 허탄한 소리 같기도 하지만 임금과 재상 사이는 한 몸이나 다름없는데 내가 경들에게까지 그 사실을 털어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륭원을 배알하던 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는둥 마는둥 하고 있는데 무엇인가 아주 간곡하신 말씀이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더구나 그 가문으로 말하면 아주 훌륭한 덕문(德門)이요 명족(名族)으로서 청음(淸陰)·문곡(文谷)·몽와(夢窩)·죽취(竹醉)라면 그들 호(號)를 부녀자와 어린애들까지도 다 아는 처지 아닌가.
그리고 어제 간택 장소에 그 집 처자가 들어왔을 때 얼굴단장 몸단장 등 각종 범절을 수수하게 꾸몄는데도 얼굴에 복이 가득해 보이고 여러 사람 속에서 매우 뛰어나 그야말로 닭 무리 속에 서있는 한 마리의 학(鶴)이었다. 궁중 사람들도 그가 처음 왔을 때 그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면서도 너도나도 관심을 기울였고 자전과 자궁께서도 보시고는 첫눈에 좋아하셨다. 그리고 또 옛 예를 그냥 폐지하고 말 수가 없어서 국복(國卜)을 불러 물었더니, 모두가 대길하다고 하였다. 이는 참으로 황천과 조종이 주신 것으로 종묘 사직을 위해 막대한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하니, 병모 등이 일제히 아뢰기를,
"하늘이 주시고 조종이 주셨으니 그야말로 억만 년 두고두고 끝이 없을 경사이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번에 관례와 책봉례를 동시에 거행하고 또 중춘(仲春)에 책봉례를 거행한 것은 모두 현종조의 전례를 따른 것이었는데, 처자의 생일까지 또 성후(聖后) 탄신과 같은 달이어서 가례(嘉禮) 역시 신묘년에 했던 대로 거행해야겠다. 그리고 또 모든 의식 절차는 되도록 간편하게 하고, 진행은 두고두고 천천히 하고 싶다. 가례 날짜를 12월로 잡은 것 역시 천천히 하려고 하는 뜻과 합치되는 것이다."
하니, 병모가 아뢰기를,
"신들로서는 너무 늦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야 성상의 마음대로 하실 일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3책 53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247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원문
○庚戌/次對。 上曰: "正月一朔, 則以予情事, 値玆慶禮, 不敢以常人自居, 殆不知何以經過, 二月以後, 又以慈宮患候, 焦迫度日, 凡係民國之務, 全不酬應, 歲後次對, 尙未一行。 顧予踐阼以後, 二十餘年, 豈有半分可紀之善, 而至於晉接酬應之如是久曠, 卽又二十餘年所未嘗爲之事也。 見今精力, 實難自强, 而今日賓筵, 不得不進定。 今則筋力之衰憊, 日以益甚, 寢食之節, 亦不能善爲, 眼視亦不能辨細字, 神思亦未多周, 眞所謂視曰昏思曰塞矣。 顧今大禮已順成, 慈候亦平復, 而又有所一念憧憧者, 歲初旣拜園寢, 眞殿廟宮, 亦已次第展謁, 而元陵行幸在來月, 以予筋力, 上下登陟之際, 固難强力。 而凡屬奉先之節, 不敢以衰憊之故, 或有一念之懈, 夙夜慥慥, 惟在於此, 而外此諸事, 則不得不以休養爲上策矣。 在前行步之節, 最所無難, 而昨於奉審行禮之際, 不覺流汗矣。" 領議政李秉模曰: "臣於昨日, 亦仰瞻勞動之狀, 而不勝仰慮矣。" 右議政李時秀曰: "不但聖體之勞動, 宮謁時聖心之興慕, 亦太過矣。" 上曰: "予之廟謁時, 先朝以予沖年之故, 廟內奉審之時, 不令隨詣, 仍立拜位矣, 今番則使之隨詣奉審, 而升降趨蹌, 儼然中矩, 許久行步, 亦不流汗, 甚爲奇幸矣。" 秉模曰: "臣等亦連爲仰瞻, 而屢次行禮, 悉中規度。 雖文王之爲世子, 何以加此? 實不勝萬萬慶忭矣。" 上曰: "興拜之時, 予則或不與唱聲相應, 而世子則一一應聲, 少無差錯矣。" 秉模曰: "節次之嚴肅, 果不勝欽歎矣。" 上曰: "初揀亦順成。 而天作之合, 自有其人, 予何敢容一毫私意於其間乎? 冠冊大禮, 予不敢自專, 元朝祗拜之後, 始有所取必者, 以予愚迷, 凡於事爲之際, 每若有待乎指導告戒之丁寧。 聖人之言, 不曰視於無形, 聽於無聲? 又不曰必見其所爲齋者乎? 聖人之言, 渾然無跡, 雖不明白說破, 而予則謂必有是理矣。 今番揀擇之所屬意者, 自外人觀之, 則有若以門閥取之, 又若以其近密之故, 而實則不然。 詳言其故, 或涉於誕, 而君相一體, 何可不敷諭於卿等乎? 拜園之夜, 不能着睡, 而方在假寢之際, 分明有告戒之諄諄者。 況其德門名族閥閱甚盛, 如淸陰、文谷、夢窩、竹醉之號, 婦孺皆知。 而昨日揀擇時, 其家處子之入來也, 粧开凡節, 皆從省約, 而福氣滿面, 超出衆中, 眞所謂鶴立鷄群。 宮中之人, 於其始至, 不知爲誰某, 而無不聳瞻, 慈殿、慈宮, 亦皆一見而嘉悅。 又以古禮之不可廢, 招問國卜, 咸曰大吉。 此實皇天祖宗之攸賜, 宗社莫大之慶也。" 秉模等齊聲奏曰: "天與之, 祖宗與之, 此實億萬年無疆之慶也。" 上曰: "今番冠冊之同時幷擧, 與冊禮之行於仲春, 皆遵顯廟廟已例, 而處子生日, 亦與聖后誕辰同月, 嘉禮亦當用辛卯故事。 且儀節則欲其省約, 擧措則貴於遲久。 嘉禮涓吉之以十二月爲定, 亦有合於遲久之意矣。" 秉模曰: "臣等之心, 固以爲遲遲, 而此則惟在聖心矣。"
- 【태백산사고본】 53책 53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247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국역
차대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정월 한 달 간은 나 같은 심정에 처해 있는 사람으로서 경사스러운 예를 치르게 되어 감히 보통사람 같이 자처를 못하고 어떻게 넘겼는지 모르게 넘어갔고, 2월 이후로는 또 자궁의 병환으로 초조와 절박감 속에서 나날을 보냈기 때문에 모든 백성 일과 나랏일에 관하여 전혀 수응을 못했으며 차대 역시 새해 들어 아직까지 한 번도 못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즉위한 지도 벌써 20여 년이 흘렀는데 단 반푼인들 무슨 기록할 만한 선정이 있었을까마는 접견과 수응을 이렇게 오래 못하기는 또 20여 년 동안에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지금은 정력이 사실 스스로 버티기가 어려울 정도인데 오늘 이 자리는 부득이 연 것이다. 이제 근력도 날이 갈수록 더 쇠해가고 먹고 자는 것도 제대로 안 되며 시력도 자잘한 글자는 볼 수가 없고 정신 역시 왔다갔다하여 참으로 이른바 보는 것은 어둡고 생각은 막혔다고 한 말 그대로이다.
지금으로서는 대례도 잘 마쳤고 자궁의 병환도 회복되었으나 또 하나 마음에 늘 잊혀지지 않고 있는 것은 현륭원 참배는 세초에 올렸고 진전(眞殿)과 종묘와 경모궁도 이미 차례로 배알하였으나 원릉(元陵) 행차를 새달에 해야 하는데 지금의 내 근력으로는 오르내리는 일을 힘들어서 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선조와 선왕을 받드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감히 늙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조금도 게을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오직 그 일만은 밤낮으로 성의를 다하고 있으나 그 밖의 다른 일들에 대해서는 부득이 휴양(休養)을 위주로 해야 하겠다. 그 전에는 걷는 정도는 가장 무난했었는데 어제 봉심하면서 예를 행할 때는 나도 모르게 땀이 흘러내렸다."
하니, 영의정 이병모가 아뢰기를,
"신도 어제 그렇게 힘들어 해 하시는 것을 보고 너무 염려가 되었습니다."
하자, 우의정 이시수가 아뢰기를,
"성상께서 몸만 그렇게 힘들도록 움직이신게 아니라 경모궁 배알 때는 추모하는 마음까지도 너무 지나치셨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가 종묘를 배알했을 때는 선왕께서 내 나이가 어리다 하여 종묘 안 봉심을 하시면서 따라다니지 못하게 하고 절하는 자리에 그대로 서 있게만 하셨는데 이번에는 세자로 하여금 따라다니면서 봉심하게 했어도 오르내리고 추창하는 품이 법도에 맞게 의젓하고 그렇게 오래 걸어도 땀도 흘리지 않아 매우 기특해 보였었다."
하니, 병모가 아뢰기를,
"신들도 계속 지켜보았지만 그렇게 여러 차례 예를 행하면서도 다 법도에 딱딱 맞았습니다. 문왕(文王)이 세자 시절에 했던 일도 어떻게 그보다 더했겠습니까. 참으로 너무나 경사스럽고 기쁜 일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흥(興)·배(拜)를 할 때 나는 혹 크게 외치는 소리와 맞지 않을 때가 있었지만 세자는 조금도 틀림이 없이 하나하나 소리에 맞춰 행하였다."
하니, 병모가 아뢰기를,
"과연 너무 흠탄할 정도로 절차가 엄숙했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첫번째 간택이 아주 잘되었다. 하늘이 정해준 짝이 있기 마련인데 내가 어떻게 감히 털끝만큼인들 그 일을 내 뜻대로 할 것인가. 관례·책봉례도 내가 감히 내 뜻대로 못하고 정월 초하룻날 아침 배알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결정을 했던 것은 어리석은 나로서 무슨 일이든지 하려고 하면 언제나 분명하게 지도를 하거나 경계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인의 말씀에, 형체 없는 데서 보고 소리 없는 데서 듣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또 위하여 재계했던 그를 틀림없이 본다고 하지 않았는가. 성인의 말은 원만하고 모가 없어 비록 명백하게 ‘이것이 그것이다.’라고는 않으셨지만 그러한 이치는 틀림없이 있는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이번 간택에 있어 내가 그 쪽에 뜻을 둔 것도 외인들이 보기에는 마치 그 집 문벌(門閥)이나 취한 것 같고 또 어쩌면 왕실과 가까운 사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내용을 자세히 말하자고 들면 혹 허탄한 소리 같기도 하지만 임금과 재상 사이는 한 몸이나 다름없는데 내가 경들에게까지 그 사실을 털어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륭원을 배알하던 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는둥 마는둥 하고 있는데 무엇인가 아주 간곡하신 말씀이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더구나 그 가문으로 말하면 아주 훌륭한 덕문(德門)이요 명족(名族)으로서 청음(淸陰)·문곡(文谷)·몽와(夢窩)·죽취(竹醉)라면 그들 호(號)를 부녀자와 어린애들까지도 다 아는 처지 아닌가.
그리고 어제 간택 장소에 그 집 처자가 들어왔을 때 얼굴단장 몸단장 등 각종 범절을 수수하게 꾸몄는데도 얼굴에 복이 가득해 보이고 여러 사람 속에서 매우 뛰어나 그야말로 닭 무리 속에 서있는 한 마리의 학(鶴)이었다. 궁중 사람들도 그가 처음 왔을 때 그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면서도 너도나도 관심을 기울였고 자전과 자궁께서도 보시고는 첫눈에 좋아하셨다. 그리고 또 옛 예를 그냥 폐지하고 말 수가 없어서 국복(國卜)을 불러 물었더니, 모두가 대길하다고 하였다. 이는 참으로 황천과 조종이 주신 것으로 종묘 사직을 위해 막대한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하니, 병모 등이 일제히 아뢰기를,
"하늘이 주시고 조종이 주셨으니 그야말로 억만 년 두고두고 끝이 없을 경사이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번에 관례와 책봉례를 동시에 거행하고 또 중춘(仲春)에 책봉례를 거행한 것은 모두 현종조의 전례를 따른 것이었는데, 처자의 생일까지 또 성후(聖后) 탄신과 같은 달이어서 가례(嘉禮) 역시 신묘년에 했던 대로 거행해야겠다. 그리고 또 모든 의식 절차는 되도록 간편하게 하고, 진행은 두고두고 천천히 하고 싶다. 가례 날짜를 12월로 잡은 것 역시 천천히 하려고 하는 뜻과 합치되는 것이다."
하니, 병모가 아뢰기를,
"신들로서는 너무 늦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야 성상의 마음대로 하실 일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3책 53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247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원문
○庚戌/次對。 上曰: "正月一朔, 則以予情事, 値玆慶禮, 不敢以常人自居, 殆不知何以經過, 二月以後, 又以慈宮患候, 焦迫度日, 凡係民國之務, 全不酬應, 歲後次對, 尙未一行。 顧予踐阼以後, 二十餘年, 豈有半分可紀之善, 而至於晉接酬應之如是久曠, 卽又二十餘年所未嘗爲之事也。 見今精力, 實難自强, 而今日賓筵, 不得不進定。 今則筋力之衰憊, 日以益甚, 寢食之節, 亦不能善爲, 眼視亦不能辨細字, 神思亦未多周, 眞所謂視曰昏思曰塞矣。 顧今大禮已順成, 慈候亦平復, 而又有所一念憧憧者, 歲初旣拜園寢, 眞殿廟宮, 亦已次第展謁, 而元陵行幸在來月, 以予筋力, 上下登陟之際, 固難强力。 而凡屬奉先之節, 不敢以衰憊之故, 或有一念之懈, 夙夜慥慥, 惟在於此, 而外此諸事, 則不得不以休養爲上策矣。 在前行步之節, 最所無難, 而昨於奉審行禮之際, 不覺流汗矣。" 領議政李秉模曰: "臣於昨日, 亦仰瞻勞動之狀, 而不勝仰慮矣。" 右議政李時秀曰: "不但聖體之勞動, 宮謁時聖心之興慕, 亦太過矣。" 上曰: "予之廟謁時, 先朝以予沖年之故, 廟內奉審之時, 不令隨詣, 仍立拜位矣, 今番則使之隨詣奉審, 而升降趨蹌, 儼然中矩, 許久行步, 亦不流汗, 甚爲奇幸矣。" 秉模曰: "臣等亦連爲仰瞻, 而屢次行禮, 悉中規度。 雖文王之爲世子, 何以加此? 實不勝萬萬慶忭矣。" 上曰: "興拜之時, 予則或不與唱聲相應, 而世子則一一應聲, 少無差錯矣。" 秉模曰: "節次之嚴肅, 果不勝欽歎矣。" 上曰: "初揀亦順成。 而天作之合, 自有其人, 予何敢容一毫私意於其間乎? 冠冊大禮, 予不敢自專, 元朝祗拜之後, 始有所取必者, 以予愚迷, 凡於事爲之際, 每若有待乎指導告戒之丁寧。 聖人之言, 不曰視於無形, 聽於無聲? 又不曰必見其所爲齋者乎? 聖人之言, 渾然無跡, 雖不明白說破, 而予則謂必有是理矣。 今番揀擇之所屬意者, 自外人觀之, 則有若以門閥取之, 又若以其近密之故, 而實則不然。 詳言其故, 或涉於誕, 而君相一體, 何可不敷諭於卿等乎? 拜園之夜, 不能着睡, 而方在假寢之際, 分明有告戒之諄諄者。 況其德門名族閥閱甚盛, 如淸陰、文谷、夢窩、竹醉之號, 婦孺皆知。 而昨日揀擇時, 其家處子之入來也, 粧开凡節, 皆從省約, 而福氣滿面, 超出衆中, 眞所謂鶴立鷄群。 宮中之人, 於其始至, 不知爲誰某, 而無不聳瞻, 慈殿、慈宮, 亦皆一見而嘉悅。 又以古禮之不可廢, 招問國卜, 咸曰大吉。 此實皇天祖宗之攸賜, 宗社莫大之慶也。" 秉模等齊聲奏曰: "天與之, 祖宗與之, 此實億萬年無疆之慶也。" 上曰: "今番冠冊之同時幷擧, 與冊禮之行於仲春, 皆遵顯廟廟已例, 而處子生日, 亦與聖后誕辰同月, 嘉禮亦當用辛卯故事。 且儀節則欲其省約, 擧措則貴於遲久。 嘉禮涓吉之以十二月爲定, 亦有合於遲久之意矣。" 秉模曰: "臣等之心, 固以爲遲遲, 而此則惟在聖心矣。"
- 【태백산사고본】 53책 53권 41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247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