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48권, 정조 22년 4월 5일 己亥 2/4 기사 / 1798년 청 가경(嘉慶) 3년
희정당에 나가 행 호군 이성보를 입시토록 하여 강학하다
국역
희정당(熙政堂)에 나가 조강(朝講) 겸 차대를 행하였다. 명하여 행 호군 이성보를 입시하도록 하였다. 상이 이성보에게 이르기를,
"경의 경연관 직함을 비록 이미 해면하도록 윤허했었으나, 이제 이미 연석에 올랐으니, 모름지기 문의(文義)를 개진하라."
하니, 성보가 말하기를,
"선유(先儒)가 이 장(章)을 한 부의 작은 《중용(中庸)》이라 하였는데, 그 가운데 가장 절요한 뜻은 오로지 신독(愼獨) 두 글자에 있습니다.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無聲無臭]는 것은 곧 드러나지 않는 공경[不顯篤恭]의 신묘함을 형용한 말이고, 드러나지 않는 공경이란 곧 천도(天道)의 극치를 형용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일[上天之載]이란 말로 결론을 지었는데, 그 근본을 궁구해보면 실로 신독으로부터 나온 것으로서, 호홀(毫忽)의 사이에 쌓고 또 쌓고, 기미(幾微)의 사이에 스스로 성찰하여 한 생각도 조금이나마 소홀함이 없는 다음에야 비로소 천도에 부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자 상이 이르기를,
"이 장의 뜻은 지극하다고 이를 만하다. 맨 처음에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는다[衣錦尙褧]는 것을 말하여 처음에는 드러나지 않았다가 날로 빛난다[闇然日章]는 뜻을 밝히고, 담담하여 싫지 않다[淡而不厭]는 것으로부터 이하 세 구절로 이었으며, 또 옥루에 부끄럽지 않다[不愧屋漏]는 말로 이어서 신독의 뜻을 밝히었다. 그리고 감응(感應)의 지정 지묘(至精至妙)함을 말하자면 조고(祖考)의 신명이 강림(降臨)하는 것보다 더할 것이 없기 때문에 말없이 신명께 나아가 성경을 다한다[奏假無言]는 말로 이었다. 이미 위로 조고의 신명을 감응시키면 스스로 능히 아래로 인민(人民)에게 미쁨을 줄 수가 있어, 이를 미루어서 공경을 두터이함으로써 천하가 평해진다[篤恭而天下平]는 데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한 대문, 한 대문이 갈수록 의미가 깊어져서 끝내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는 말에 이르러 극치를 이룬 것이다. 이 장에서 신독의 의의를 발명한 것이 실로 《대학(大學)》과 서로 표리(表裏)가 된다. 대체로 《대학》의 신독(愼獨)과 《중용》의 계신 공구(戒愼恐懼)는 똑같은 주경(主敬) 공부로서 모두가 신(愼) 자를 썼는데 과연 서로 말할 만한 차이가 없겠는가?"
하니, 이성보가 말하기를,
"계신 공구는 동정(動靜)을 통관(通貫)해서 말한 것이고, 신독은 그 가운데서 한 생각이 처음 일어나는 곳만을 집어내서 말한 것이니, 이것으로 본다면 분계(分界)가 없지 않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계신 공구가 동정을 통관한다는 말은 곧 우리 동방 선정(先正)이, 전인(前人)이 발명하지 못한 것을 발명한 논설인데, 경의 말이 실로 여기에 근원하였으니, 잘 보았다 이를 만하다. 주 부자(朱夫子)의 장구(章句) 가운데 항상 경외를 마음에 둔다[常存敬畏]는 네 글자 속에 이미 동정을 통관하는 뜻이 있다. 그러나 그 은미한 뜻의 소재를 벽파(壁破)할 사람이 없었는데, 아조의 선정 문원공(文元公) 김장생(金長生)에 이르러 비로소 그 뜻을 발명하였다. 그러나 그 후로는 경연에 출입하는 신하들도 사람마다 이를 발휘하지 못하였고, 다만 고 강관(講官) 김창협(金昌協)이 비로소 《통동정설(通動靜說)》을 저술하였으나, 이 일단(一段)은 보고 이해하기가 극히 어렵다. 대체로 뜻이 발(發)하기 전에는 공부를 할 수가 없으나, 계신하고자 하고 공구하고자 하는 뜻이 있기만 하면, 이것이 비록 평범하게 일어난 것, 또는 약간 존재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이미 한 생각이 발하는 데에 속하니, 이것이 또 신독의 자취는 비록 동(動)하지 않았으나 기미는 이미 드러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데 비록 《어류(語類)》와 《혹문(或問)》의 설로 보더라도 혹은 계신 공구를 치우치게 정(靜) 쪽에 소속시켰으니, 이는 혹 주 부자 초년의 미정론(未定論)에 연유되었을 수도 있겠거니와, 만일 이 네 글자를 뜻이 발하기 이전의 경계에 전적으로 귀속시키고서 문득 적연부동(寂然不動)의 본체가 본디 절로 이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혹 마음으로 마음을 보는 데에 가깝지 않겠는가.
대체로 계신 공구도 비록 뜻이 발하기 이전에다 전연 귀속시킬 수는 없으나, 능히 계신 공구할 수 있는 것은 곧 항상 경외를 마음에 두는 데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방심하지 않고서 계신 공구하는 뜻이 항상 보지 않고 듣지 않는 즈음에도 끊임없이 존재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항상 경외를 마음에 둔다[常存敬畏]는 네 글자가 주자의 장구 가운데 제일의 긴요처가 된 까닭이다. 경은 여기에 대해서 과연 어떻게 보는가?"
하니, 이성보가 말하기를,
"계구 근독(戒懼謹獨)은 곧 수많은 성인들이 서로 전해온 요결(要訣)인데, 뜻이 발하기 이전의 경계는 과연 형용하기가 어렵고, 겨우 공부를 착수하려 한 때는 문득 뜻이 이미 발한 데에 귀속됩니다. 그런데 삼가 고 유신(儒臣) 김창흡(金昌翕)이 고 찬선(贊善) 어유봉(魚有鳳)에게 답한 편지에서 그 한계를 분석해놓은 것이 가장 정밀하고 확실하였습니다. 거기에 이른바 밝게 모든 것이 갖추어 있다[昭昭具在]느니, 깨달음이 이 속에 있다[惺惺在這裏]느니, 항상 조관을 가지고 있다[常着照管]는 등의 말은 좋은 형용이라 이를 만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고 유신 김창흡의 한 말이 과연 좋구려. 이것을 《통동정설》에 비유해보니 또한 공부의 천심의 차이를 알 듯하다. 나도 평소에 일찍이 이 말에 의미를 두었었는데, 경이 그 많은 서책 가운데서 유독 이 말만을 집어내었으니, 경의 공부를 여기에서 또한 알 만하다. 지금 연석에서 두 번 묻고 두 번 답한 말이 모두 서로 계합할 수 있었으니, 내가 경에게서 얻은 것이 많았도다."
하였다. 이성보가 말하기를,
"이 문의(文義)로 인하여 삼가 구구한 소회가 있어 아룁니다. 선정신 이이(李珥)의 말에 ‘도통(道統)이 위에 있으면 도는 한 시대에 행해지고 은택은 후세에까지 미치는 법이라, 신은 도통의 전(傳)을 전하께 매우 바라는 바입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도 비록 불초하기는 하나 충성과 의리를 다하려는 정성에 대해서는 스스로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여기옵고, 수많은 성인들이 서로 전해온 도통에 대해서 또한 전하께 바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의 말이 진실로 좋기는 하나, 《대학》 서문에 이르지 않았던가. ‘총명 예지(聰明睿智)가 능히 그 성(性)을 다할 수 있는 자가 있으면 하늘이 반드시 그를 명하여 억조 인민의 군사(君師)로 삼는다.’ 하였으니, 진실로 천하 사해의 일인자(一人者)가 아니면 본디 위에 있는 도통을 논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천하(天下)를 자기 집안의 소유로 삼은 이후로는 진실로 복희(伏羲)·신농(神農)·요(堯)·순(舜)의 하늘을 이어 법을 세우던 때와는 달라졌다. 경이 전석(前席)에서 선정(先正)이 임금께 고한 말을 외워 아뢰니, 내가 진실로 감탄이 된다. 그러나 나같이 부덕한 사람을 어찌 감히 선묘(宣廟)의 융성한 시대에 비유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성(性)을 좇는 것을 도(道)라 하고 도를 닦는 것은 교(敎)라 하는데, 좇는다는 솔(率) 자는 비록 인력(人力)에 해당하지 않으나, 도는 성에 비하면 이미 사물(事物)에 나아가서 한 말이다. 그리고 예악 형정(禮樂刑政)의 교(敎)를 또한 도에 비하면 또 분계(分界)가 없지 않다. 그런데 지금은 예악 형정도 하나도 볼만한 것이 없거늘, 더구나 도를 논할 수 있겠는가. 상주지 않아도 권면이 되고 성내지 않아도 위엄이 있던 그 시대 그 인품은 오랜 옛적의 일이라 논할 것도 없거니와, 세도(世道)와 조정의 체모도 수습하지 못하는 내가 비록 도통을 자처하고자 한들 되겠는가. 인(仁)을 당해서는 남에게 사양하지 않는 법이니, 내가 진실로 의당 더 힘써야겠으나, 지금 경의 말을 듣고 나니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겠구나."
하였다. 이성보가 말하기를,
"신이 삼가 온 나라 신민들의 말을 들어보니, 모두가 이제 삼왕(二帝三王)의 일로 전하께 우러러 기대하였습니다. 더구나 밝으신 공부가 이미 고명 광대(高明光大)한 경지에 이르셨으니, 어찌 수많은 성왕들이 서로 전해온 도통을 성상께 바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정치와 교화가 하나도 뜻대로 되지 않으니, 진실로 이렇게 된 까닭을 찾는다면, 안으로 은미한 즈음이나 밖으로 일 조처하는 사이에 반드시 병통을 받은 근원이 있을 것이다. 이미 그 병통을 알았으면 거기에 맞는 약을 들려주기 바란다. 경의(經義)를 토론하는 것도 활용하는 방법이 귀중하거니와, 제왕의 학문은 또 포의(布衣)의 학문과 다른 점이 있다. 그런데 만일 심성 이기(心性理氣)의 명목 사이의 낡은 담론에만 얽매인다면 이것이 어찌 실제를 먼저 힘쓰고 꾸밈을 뒤로 미루는 뜻이겠는가. 다만 실천을 하려면 반드시 사리를 분명하게 알아야 하니, 문의상(文義上)의 강구(講究)가 비록 여사(餘事)같기는 하나, 이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로지 몸소 행하기를 힘쓰는 것은 진실하다 이를 만하나, 사마온공(司馬溫公) 같이 독실한 군자로서도 오히려 치지(致知) 공부에 흠결이 있음으로 인하여 앎이 이르지 못한 곳이 있음을 면치 못하였고, 오로지 대본(大本)만을 궁구하는 것이 고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총령(蔥嶺) 일파(一派)는 도문학(道問學) 한쪽을 빠뜨림으로써 끝내 이단(異端)이 되고 말았으니,076) 문의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일을 또한 어찌 쓸데없는 것이라 하여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한갓 종이 위의 공언(空言)만 강론한다면 혹 ‘창생은 묻지 않고 귀신의 일을 물었다.[不問蒼生問鬼神]’는 혐의077) 가 있지 않겠는가. 한(漢) 문제(文帝)가 선실(宣室)에서 물은 것은 대체로 제사지낸 귀신에게서 느낌이 있어서 그런 것인데, 제사지낸 귀신 가운데서도 또 그 치우친 것을 지적하여 물었기 때문에 후세의 비난을 면치 못한 것이다. 그러나 《중용》에 이른바 ‘귀신의 덕[鬼神之爲德]’의 경우는 음양 소장(陰陽消長)과 굴신 왕래(屈伸往來)가 모두 귀신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시상(時象)으로 본다면 군자의 도와 소인의 도가 어느 쪽이 펴지고 어느 쪽이 굴하며, 어느 쪽이 사라지고 어느 쪽이 자라나는가? 경은 이제 막 시골에서 올라왔으니, 시험삼아 듣고 본 것을 말해보아라."
하였다. 그러자 이성보가 말하기를,
"신은 본디 병이 들어 가만히 틀어박혀 있던 몸이라, 전혀 들은 말은 없습니다. 다만 삼가 생각하건대, 임금의 한 생각 사이에는 실로 천지를 회전시키는 기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성학(聖學)은 고명하시어 천고에 으뜸이신데다, 한 생각도 반드시 요·순을 법으로 삼으셔서 혹시 추호라도 요·순에 미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다시 십분 성찰(省察)을 하고 계시니, 공부가 이른 곳에 도통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일(精一)의 공력이 이미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으면 이 밖의 정령(政令)과 시조(施措)에 대해서는 다시 힘쓰기를 기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의 말이 과연 좋다. 사람마다 요·순이 되지 못하는 것은 또한 한 생각의 아주 미세한 차이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천도(天道)가 끊임없이 심원(深遠)함과 문왕(文王)이 또한 끊임없이 순일한 것은 모두 성(誠)하기 때문이니, 조금만 간단이 있으면 성인의 도가 문득 이미 중지된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그릇에 가득 물을 담아서 소거(繅車)078) 위에 올려놓고, 잠시도 멈춤이 없이 계속 돌게 한 다음에야 그릇 안의 물이 조금도 새나가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만일 잠시나마 멈추었다가는 물이 땅에 엎질러져서 다시 담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더구나 지금 나는 평상시에 때로 자신을 점검해보면, 그 마음이 혹은 1년에 한 번씩 이르기도 하고 혹은 1개월에 한 번씩 이르기도 하여, 1개월에 한 번씩 들고 나고 하는 조수(潮水)보다도 사이가 더 뜨는 지경이다. 공렬(功烈)이 저토록 낮고 규모(規模)가 저토록 협착한 것이 오로지 여기에서 말미암은 것이니, 이것을 바로잡을 방도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하자, 이성보가 아뢰기를,
"삼가 자상하신 하교를 들으니, 강구(講究)와 성찰(省察)이 정밀하시어 신은 진실로 우러러 칭송하였습니다. 그런데 임금은 곧 하나의 하늘이므로, 일호라도 하늘과 서로 같지 않다면 이것이 바로 공부가 이르지 못한 곳입니다. 하늘이 되기를 희망하는 도리는 오로지 순일하면서도 끊임없이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니, 삼가 바라건대, 더욱더 성익성(聖益聖)의 경지에 종사하소서."
하였다.
- [註 076] 총령(蔥嶺) 일파(一派)는 도문학(道問學) 한쪽을 빠뜨림으로써 끝내 이단(異端)이 되고 말았으니, : 총령은 인도(印度)의 산명(山名)으로 석가(釋迦)가 이 산에서 수행을 하였으므로, 전하여 불교를 말함. 도문학(道問學)은 《중용》 제27장의 "군자는 덕성을 높이고 학문으로 말미암는다.[君子尊德性而道問學]" 한 데서 온 말로, 즉 학문을 통해서 점차로 고명한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하는데, 선학(禪學)의 경우는 존덕성(尊德性)에만 해당하는 마음 수양 하나만으로 하루아침에 갑자기 도체(道體)를 통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유가(儒家)로부터 이단시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 [註 077] ‘창생은 묻지 않고 귀신의 일을 물었다.[不問蒼生問鬼神]’는 혐의 : 한 문제(漢文帝)가 일찍이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로 내보냈던 가의(賈誼)를 보고 싶어하여 그를 선실(宣室)로 불러 접견한 자리에서, 마침 제사를 막 지내고 귀신에 대한 느낌이 있던 터라, 가의에게 귀신의 근본을 묻고는 가의에게로 자꾸 다가앉으면서 가의의 말을 즐겁게 경청한 일이 있었는데, 임금이 백성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귀신의 일부터 알려고 했다는 뜻에서, 당(唐)나라 때의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가생시(賈生詩)에 "애처롭다. 한밤중에 전석을 비워놓고서 창생은 묻지 않고 귀신만 물었네그려.[可憐夜半虛前席不問蒼生問鬼神]" 한 데서 온 말이다. 《한서(漢書)》 권48 이의산 시집(李義山詩集).
- [註 078] 소거(繅車) : 고치실을 켜는 물레.
원문
○銜熙政堂, 朝講兼行次對。 命行護軍李城輔入侍。 上謂城輔曰: "卿之經筵官銜, 雖己許解, 而今旣登筵, 須陳文義。" 城輔曰: "先儒以此章, 爲一部小《中庸》, 而其中切要之旨, 專在於愼獨二字。 無聲無臭, 所以形容不顯篤(工)〔恭〕 之妙, 不顯篤恭, 所以形容天道之極致。 故以上天之載結語, 而究其根本, 實自愼獨上出來, 積累於毫忽之間, 省察, 於幾微之際, 一念之發, 無或少忽, 然後始可以合於天道矣。" 上曰: "此章之旨, 可謂至矣。 首言衣錦尙褧, 以明闇然日章之義, 繼之以淡而不厭, 三句又繼之以不愧屋漏, 以明愼獨之義。 欲言感應之至精至妙, 則莫若驗於祖考之來格, 故繼之以秦假無言。 旣能上格于祖考, 自能下孚于人民, 推而至於篤恭而天下平。 一節深於一節, 以至無聲無臭而極矣。 此章之發明愼獨, 與《大學》實相表裏。 蓋《大學》之愼獨, 與《中庸》之戒愼恐懼, 同一主敬之工, 而皆以愼字下得, 則果無同異之可言耶?" 城輔曰: "戒愼恐懼, 通貫動靜, 而愼獨則就其中拈出一念始發處而言也, 以此觀之, 不無分界矣。" 上曰: "戒懼之通動靜, 乃是我東先正發前未發之論, 而卿言實原於此, 可謂善看矣。 朱夫子章句中, 常存敬畏四字, 己有通動靜之意。 然微旨所在, 無人劈破, 及我朝先正文元公 金長生始發明之。 伊後出入經筵之臣, 亦不能人人發揮, 而故講官金昌協, 始著通動靜說, 然此一段, 看鮮極難。 蓋未發之中, 著不得工夫, 纔有欲戒愼, 欲恐懼之意, 則雖曰平平提撕, 略略存在, 而便己屬一念發處, 又何異於愼獨之跡雖未動, 而幾則己著者耶? 雖以《語類》、《或問》觀之, 亦或以戒愼恐懼, 偏屬靜邊, 此或緣初年本定之論, 而若以此四字, 全然歸之未發境界, 而便謂寂然不動之體, 本自如此, 則無或近於以心觀心耶? 蓋戒愼恐懼, 雖不可全屬未發, 而所以能戒愼恐懼者, 由其常存敬畏也。 故不言之中, 自不放過, 而戒愼恐懼底意, 常無間斷於不睹不聞之際, 此所以常存敬畏四字之爲章句中, 第一肯綮也。 卿於此, 果如何看解?" 城輔曰: "戒懼謹獨, 乃是千聖相傳之要訣, 而未發境界, 果難形容, 才欲着工, 便歸己發。 而伏見故儒臣金昌翕答故贊善魚有鳳書, 分析界限, 最爲精的。 其所謂昭昭具在, 惺惺在這裏, 常着照管等語, 可謂形容得好矣。" 上曰: "故儒臣一書, 果好。 比之通動靜說, 亦似有識, 解深淺之分。 予於平日, 亦嘗有味乎斯言, 而卿於溢字充棟之中, 獨能拈出此語, 卿之所存, 此亦可知。 今筵之兩問兩答, 皆能(沕)〔脗〕 然相契子之所得於卿者多矣。" 城輔曰: "因此文義, 竊有區區所懷。 先正臣李珥之言有曰: "道統在上, 則道行於一時, 澤流於後世, 臣以道統之傳, 深有望於殿下。’ 臣雖萬萬無似, 而畢義願忠之誠, 自謂不後於人, 千聖相傳之統, 亦不能無望於殿下焉。" 上曰: "卿言固好, 然《大學》序不云乎? ‘一有聰明睿智, 能盡其性者, 天必命之以爲億兆之郡師。’ 苟非天下四海一有之人, 固不可與議於在上之道統。 自夫家天下以後, 固有異於羲、農、堯、舜, 繼天立極之時矣。 卿於前席, 誦秦先正告君之語, 予固感歎。 而顧予否德, 尙安敢比方於宣廟盛時乎?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率字雖不容人力, 而道比性則巳就事物上說。 至於禮樂刑政之敎, 比諸道, 又〔不〕 無分界。 今也則禮樂刑政, 無一可觀, 況可論於道乎? 不賞而勸, 不怒而威, 尙矣無論, 世道朝象, 莫可收拾, 予雖欲自居以道統得乎? 當仁不讓, 予固當加勉, 而今聞卿言, 不覺自顧歉然。" 城輔曰: "臣竊聽於一國臣民之言, 無不以二帝三王之事, 仰期於殿下。 矧惟緝熙之工, 己臻於高明光大之域, 安得不以千聖相傳之統, 有望於聖上耶?" 上曰: "治不徯志, 化不從欲, 苟求其所以致此, 內而隱微之際, 外而注措之間, 必有受病之源。 旣知其病, 願聞其藥。 經義之討論, 亦貴活法, 帝王之學, 又與韋布有異。 若但纆繞於心性理氣名目間陳談, 則是豈先實後文之意也? 但欲實踐, 必須眞知文義上講究, 雖若餘事, 亦不可忽。 專務躬行, 可謂實矣, 而如司馬溫公之篤實君子, 猶以致知工夫之有所欠缺, 未免有識解之不到處, 專窮大本, 非不高矣, 而蔥嶺一泒, 遺却道問學一邊, 終爲異端之歸, 文義之剖析精微, 亦豈可以其無用而忽之耶? 徒講紙上之空言, 無或有 ‘不問蒼生問鬼神’ 之嫌? 而漢 文宣室之問, 蓋有感於祭祀之鬼神, 而祭祀鬼神之中, 又指其偏者, 故不免後世之譏。 至若《中庸》所謂鬼神之爲德, 別陰陽消長屈伸往來, 無非鬼神也。 以今時象觀之, 則君子小人之道, 孰伸孰屈, 孰消孰長? 卿方新從下土來, 試言其所聞見也。" 城輔曰: "臣本以病蟄之蹤, 全無所聞。 而第伏念人君一念之間, 實有旋乾轉坤之機。 況今聖學高明, 卓冠千古, 一念之發, 必以堯ㆍ舜爲準, 苟或有一毫之不及於堯、舜, 則更須十分省察, 工夫到處, 道統在是。 精一之功, 旣極其至, 則此外政令施措, 不待更着力矣。" 上曰: "卿言果好。 人所以不能爲堯、舜, 亦由於一念毫忽之差矣。 天道於穆不已, 文王純亦不已, 所以誠也, 少有間斷, 聖人之道, 便己息矣。 譬如盛水滿器, 置之繅車之上, 輪轉無一息之停, 然後器中之水, 無少滲漏。 若有霎時之留滯, 則覆水於地, 己不容復收矣。 矧今燕濩之中, 時自點檢, 或歲一至焉, 或月一至焉, 不啻如肴信之進退於一月之間。 功烈之如彼其卑, 規模之如彼其窄, 亶由於是, 所險矯救之方, 其果安在?" 城輔曰: "伏承縷縷下敎, 講究之精, 省察之密, 臣固欽頌。 而人君卽一天也, 一毫與天不相似, 則便是工夫未到處。 希天之道, 亶在於純亦不已, 伏望益加從事於聖益聖之地焉。"
국역
희정당(熙政堂)에 나가 조강(朝講) 겸 차대를 행하였다. 명하여 행 호군 이성보를 입시하도록 하였다. 상이 이성보에게 이르기를,
"경의 경연관 직함을 비록 이미 해면하도록 윤허했었으나, 이제 이미 연석에 올랐으니, 모름지기 문의(文義)를 개진하라."
하니, 성보가 말하기를,
"선유(先儒)가 이 장(章)을 한 부의 작은 《중용(中庸)》이라 하였는데, 그 가운데 가장 절요한 뜻은 오로지 신독(愼獨) 두 글자에 있습니다.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無聲無臭]는 것은 곧 드러나지 않는 공경[不顯篤恭]의 신묘함을 형용한 말이고, 드러나지 않는 공경이란 곧 천도(天道)의 극치를 형용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일[上天之載]이란 말로 결론을 지었는데, 그 근본을 궁구해보면 실로 신독으로부터 나온 것으로서, 호홀(毫忽)의 사이에 쌓고 또 쌓고, 기미(幾微)의 사이에 스스로 성찰하여 한 생각도 조금이나마 소홀함이 없는 다음에야 비로소 천도에 부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자 상이 이르기를,
"이 장의 뜻은 지극하다고 이를 만하다. 맨 처음에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는다[衣錦尙褧]는 것을 말하여 처음에는 드러나지 않았다가 날로 빛난다[闇然日章]는 뜻을 밝히고, 담담하여 싫지 않다[淡而不厭]는 것으로부터 이하 세 구절로 이었으며, 또 옥루에 부끄럽지 않다[不愧屋漏]는 말로 이어서 신독의 뜻을 밝히었다. 그리고 감응(感應)의 지정 지묘(至精至妙)함을 말하자면 조고(祖考)의 신명이 강림(降臨)하는 것보다 더할 것이 없기 때문에 말없이 신명께 나아가 성경을 다한다[奏假無言]는 말로 이었다. 이미 위로 조고의 신명을 감응시키면 스스로 능히 아래로 인민(人民)에게 미쁨을 줄 수가 있어, 이를 미루어서 공경을 두터이함으로써 천하가 평해진다[篤恭而天下平]는 데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한 대문, 한 대문이 갈수록 의미가 깊어져서 끝내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는 말에 이르러 극치를 이룬 것이다. 이 장에서 신독의 의의를 발명한 것이 실로 《대학(大學)》과 서로 표리(表裏)가 된다. 대체로 《대학》의 신독(愼獨)과 《중용》의 계신 공구(戒愼恐懼)는 똑같은 주경(主敬) 공부로서 모두가 신(愼) 자를 썼는데 과연 서로 말할 만한 차이가 없겠는가?"
하니, 이성보가 말하기를,
"계신 공구는 동정(動靜)을 통관(通貫)해서 말한 것이고, 신독은 그 가운데서 한 생각이 처음 일어나는 곳만을 집어내서 말한 것이니, 이것으로 본다면 분계(分界)가 없지 않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계신 공구가 동정을 통관한다는 말은 곧 우리 동방 선정(先正)이, 전인(前人)이 발명하지 못한 것을 발명한 논설인데, 경의 말이 실로 여기에 근원하였으니, 잘 보았다 이를 만하다. 주 부자(朱夫子)의 장구(章句) 가운데 항상 경외를 마음에 둔다[常存敬畏]는 네 글자 속에 이미 동정을 통관하는 뜻이 있다. 그러나 그 은미한 뜻의 소재를 벽파(壁破)할 사람이 없었는데, 아조의 선정 문원공(文元公) 김장생(金長生)에 이르러 비로소 그 뜻을 발명하였다. 그러나 그 후로는 경연에 출입하는 신하들도 사람마다 이를 발휘하지 못하였고, 다만 고 강관(講官) 김창협(金昌協)이 비로소 《통동정설(通動靜說)》을 저술하였으나, 이 일단(一段)은 보고 이해하기가 극히 어렵다. 대체로 뜻이 발(發)하기 전에는 공부를 할 수가 없으나, 계신하고자 하고 공구하고자 하는 뜻이 있기만 하면, 이것이 비록 평범하게 일어난 것, 또는 약간 존재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이미 한 생각이 발하는 데에 속하니, 이것이 또 신독의 자취는 비록 동(動)하지 않았으나 기미는 이미 드러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데 비록 《어류(語類)》와 《혹문(或問)》의 설로 보더라도 혹은 계신 공구를 치우치게 정(靜) 쪽에 소속시켰으니, 이는 혹 주 부자 초년의 미정론(未定論)에 연유되었을 수도 있겠거니와, 만일 이 네 글자를 뜻이 발하기 이전의 경계에 전적으로 귀속시키고서 문득 적연부동(寂然不動)의 본체가 본디 절로 이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혹 마음으로 마음을 보는 데에 가깝지 않겠는가.
대체로 계신 공구도 비록 뜻이 발하기 이전에다 전연 귀속시킬 수는 없으나, 능히 계신 공구할 수 있는 것은 곧 항상 경외를 마음에 두는 데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방심하지 않고서 계신 공구하는 뜻이 항상 보지 않고 듣지 않는 즈음에도 끊임없이 존재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항상 경외를 마음에 둔다[常存敬畏]는 네 글자가 주자의 장구 가운데 제일의 긴요처가 된 까닭이다. 경은 여기에 대해서 과연 어떻게 보는가?"
하니, 이성보가 말하기를,
"계구 근독(戒懼謹獨)은 곧 수많은 성인들이 서로 전해온 요결(要訣)인데, 뜻이 발하기 이전의 경계는 과연 형용하기가 어렵고, 겨우 공부를 착수하려 한 때는 문득 뜻이 이미 발한 데에 귀속됩니다. 그런데 삼가 고 유신(儒臣) 김창흡(金昌翕)이 고 찬선(贊善) 어유봉(魚有鳳)에게 답한 편지에서 그 한계를 분석해놓은 것이 가장 정밀하고 확실하였습니다. 거기에 이른바 밝게 모든 것이 갖추어 있다[昭昭具在]느니, 깨달음이 이 속에 있다[惺惺在這裏]느니, 항상 조관을 가지고 있다[常着照管]는 등의 말은 좋은 형용이라 이를 만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고 유신 김창흡의 한 말이 과연 좋구려. 이것을 《통동정설》에 비유해보니 또한 공부의 천심의 차이를 알 듯하다. 나도 평소에 일찍이 이 말에 의미를 두었었는데, 경이 그 많은 서책 가운데서 유독 이 말만을 집어내었으니, 경의 공부를 여기에서 또한 알 만하다. 지금 연석에서 두 번 묻고 두 번 답한 말이 모두 서로 계합할 수 있었으니, 내가 경에게서 얻은 것이 많았도다."
하였다. 이성보가 말하기를,
"이 문의(文義)로 인하여 삼가 구구한 소회가 있어 아룁니다. 선정신 이이(李珥)의 말에 ‘도통(道統)이 위에 있으면 도는 한 시대에 행해지고 은택은 후세에까지 미치는 법이라, 신은 도통의 전(傳)을 전하께 매우 바라는 바입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도 비록 불초하기는 하나 충성과 의리를 다하려는 정성에 대해서는 스스로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여기옵고, 수많은 성인들이 서로 전해온 도통에 대해서 또한 전하께 바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의 말이 진실로 좋기는 하나, 《대학》 서문에 이르지 않았던가. ‘총명 예지(聰明睿智)가 능히 그 성(性)을 다할 수 있는 자가 있으면 하늘이 반드시 그를 명하여 억조 인민의 군사(君師)로 삼는다.’ 하였으니, 진실로 천하 사해의 일인자(一人者)가 아니면 본디 위에 있는 도통을 논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천하(天下)를 자기 집안의 소유로 삼은 이후로는 진실로 복희(伏羲)·신농(神農)·요(堯)·순(舜)의 하늘을 이어 법을 세우던 때와는 달라졌다. 경이 전석(前席)에서 선정(先正)이 임금께 고한 말을 외워 아뢰니, 내가 진실로 감탄이 된다. 그러나 나같이 부덕한 사람을 어찌 감히 선묘(宣廟)의 융성한 시대에 비유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성(性)을 좇는 것을 도(道)라 하고 도를 닦는 것은 교(敎)라 하는데, 좇는다는 솔(率) 자는 비록 인력(人力)에 해당하지 않으나, 도는 성에 비하면 이미 사물(事物)에 나아가서 한 말이다. 그리고 예악 형정(禮樂刑政)의 교(敎)를 또한 도에 비하면 또 분계(分界)가 없지 않다. 그런데 지금은 예악 형정도 하나도 볼만한 것이 없거늘, 더구나 도를 논할 수 있겠는가. 상주지 않아도 권면이 되고 성내지 않아도 위엄이 있던 그 시대 그 인품은 오랜 옛적의 일이라 논할 것도 없거니와, 세도(世道)와 조정의 체모도 수습하지 못하는 내가 비록 도통을 자처하고자 한들 되겠는가. 인(仁)을 당해서는 남에게 사양하지 않는 법이니, 내가 진실로 의당 더 힘써야겠으나, 지금 경의 말을 듣고 나니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겠구나."
하였다. 이성보가 말하기를,
"신이 삼가 온 나라 신민들의 말을 들어보니, 모두가 이제 삼왕(二帝三王)의 일로 전하께 우러러 기대하였습니다. 더구나 밝으신 공부가 이미 고명 광대(高明光大)한 경지에 이르셨으니, 어찌 수많은 성왕들이 서로 전해온 도통을 성상께 바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정치와 교화가 하나도 뜻대로 되지 않으니, 진실로 이렇게 된 까닭을 찾는다면, 안으로 은미한 즈음이나 밖으로 일 조처하는 사이에 반드시 병통을 받은 근원이 있을 것이다. 이미 그 병통을 알았으면 거기에 맞는 약을 들려주기 바란다. 경의(經義)를 토론하는 것도 활용하는 방법이 귀중하거니와, 제왕의 학문은 또 포의(布衣)의 학문과 다른 점이 있다. 그런데 만일 심성 이기(心性理氣)의 명목 사이의 낡은 담론에만 얽매인다면 이것이 어찌 실제를 먼저 힘쓰고 꾸밈을 뒤로 미루는 뜻이겠는가. 다만 실천을 하려면 반드시 사리를 분명하게 알아야 하니, 문의상(文義上)의 강구(講究)가 비록 여사(餘事)같기는 하나, 이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로지 몸소 행하기를 힘쓰는 것은 진실하다 이를 만하나, 사마온공(司馬溫公) 같이 독실한 군자로서도 오히려 치지(致知) 공부에 흠결이 있음으로 인하여 앎이 이르지 못한 곳이 있음을 면치 못하였고, 오로지 대본(大本)만을 궁구하는 것이 고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총령(蔥嶺) 일파(一派)는 도문학(道問學) 한쪽을 빠뜨림으로써 끝내 이단(異端)이 되고 말았으니,076) 문의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일을 또한 어찌 쓸데없는 것이라 하여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한갓 종이 위의 공언(空言)만 강론한다면 혹 ‘창생은 묻지 않고 귀신의 일을 물었다.[不問蒼生問鬼神]’는 혐의077) 가 있지 않겠는가. 한(漢) 문제(文帝)가 선실(宣室)에서 물은 것은 대체로 제사지낸 귀신에게서 느낌이 있어서 그런 것인데, 제사지낸 귀신 가운데서도 또 그 치우친 것을 지적하여 물었기 때문에 후세의 비난을 면치 못한 것이다. 그러나 《중용》에 이른바 ‘귀신의 덕[鬼神之爲德]’의 경우는 음양 소장(陰陽消長)과 굴신 왕래(屈伸往來)가 모두 귀신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시상(時象)으로 본다면 군자의 도와 소인의 도가 어느 쪽이 펴지고 어느 쪽이 굴하며, 어느 쪽이 사라지고 어느 쪽이 자라나는가? 경은 이제 막 시골에서 올라왔으니, 시험삼아 듣고 본 것을 말해보아라."
하였다. 그러자 이성보가 말하기를,
"신은 본디 병이 들어 가만히 틀어박혀 있던 몸이라, 전혀 들은 말은 없습니다. 다만 삼가 생각하건대, 임금의 한 생각 사이에는 실로 천지를 회전시키는 기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성학(聖學)은 고명하시어 천고에 으뜸이신데다, 한 생각도 반드시 요·순을 법으로 삼으셔서 혹시 추호라도 요·순에 미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다시 십분 성찰(省察)을 하고 계시니, 공부가 이른 곳에 도통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일(精一)의 공력이 이미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으면 이 밖의 정령(政令)과 시조(施措)에 대해서는 다시 힘쓰기를 기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의 말이 과연 좋다. 사람마다 요·순이 되지 못하는 것은 또한 한 생각의 아주 미세한 차이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천도(天道)가 끊임없이 심원(深遠)함과 문왕(文王)이 또한 끊임없이 순일한 것은 모두 성(誠)하기 때문이니, 조금만 간단이 있으면 성인의 도가 문득 이미 중지된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그릇에 가득 물을 담아서 소거(繅車)078) 위에 올려놓고, 잠시도 멈춤이 없이 계속 돌게 한 다음에야 그릇 안의 물이 조금도 새나가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만일 잠시나마 멈추었다가는 물이 땅에 엎질러져서 다시 담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더구나 지금 나는 평상시에 때로 자신을 점검해보면, 그 마음이 혹은 1년에 한 번씩 이르기도 하고 혹은 1개월에 한 번씩 이르기도 하여, 1개월에 한 번씩 들고 나고 하는 조수(潮水)보다도 사이가 더 뜨는 지경이다. 공렬(功烈)이 저토록 낮고 규모(規模)가 저토록 협착한 것이 오로지 여기에서 말미암은 것이니, 이것을 바로잡을 방도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하자, 이성보가 아뢰기를,
"삼가 자상하신 하교를 들으니, 강구(講究)와 성찰(省察)이 정밀하시어 신은 진실로 우러러 칭송하였습니다. 그런데 임금은 곧 하나의 하늘이므로, 일호라도 하늘과 서로 같지 않다면 이것이 바로 공부가 이르지 못한 곳입니다. 하늘이 되기를 희망하는 도리는 오로지 순일하면서도 끊임없이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니, 삼가 바라건대, 더욱더 성익성(聖益聖)의 경지에 종사하소서."
하였다.
- [註 076] 총령(蔥嶺) 일파(一派)는 도문학(道問學) 한쪽을 빠뜨림으로써 끝내 이단(異端)이 되고 말았으니, : 총령은 인도(印度)의 산명(山名)으로 석가(釋迦)가 이 산에서 수행을 하였으므로, 전하여 불교를 말함. 도문학(道問學)은 《중용》 제27장의 "군자는 덕성을 높이고 학문으로 말미암는다.[君子尊德性而道問學]" 한 데서 온 말로, 즉 학문을 통해서 점차로 고명한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하는데, 선학(禪學)의 경우는 존덕성(尊德性)에만 해당하는 마음 수양 하나만으로 하루아침에 갑자기 도체(道體)를 통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유가(儒家)로부터 이단시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 [註 077] ‘창생은 묻지 않고 귀신의 일을 물었다.[不問蒼生問鬼神]’는 혐의 : 한 문제(漢文帝)가 일찍이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로 내보냈던 가의(賈誼)를 보고 싶어하여 그를 선실(宣室)로 불러 접견한 자리에서, 마침 제사를 막 지내고 귀신에 대한 느낌이 있던 터라, 가의에게 귀신의 근본을 묻고는 가의에게로 자꾸 다가앉으면서 가의의 말을 즐겁게 경청한 일이 있었는데, 임금이 백성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귀신의 일부터 알려고 했다는 뜻에서, 당(唐)나라 때의 시인 이상은(李商隱)의 가생시(賈生詩)에 "애처롭다. 한밤중에 전석을 비워놓고서 창생은 묻지 않고 귀신만 물었네그려.[可憐夜半虛前席不問蒼生問鬼神]" 한 데서 온 말이다. 《한서(漢書)》 권48 이의산 시집(李義山詩集).
- [註 078] 소거(繅車) : 고치실을 켜는 물레.
원문
○銜熙政堂, 朝講兼行次對。 命行護軍李城輔入侍。 上謂城輔曰: "卿之經筵官銜, 雖己許解, 而今旣登筵, 須陳文義。" 城輔曰: "先儒以此章, 爲一部小《中庸》, 而其中切要之旨, 專在於愼獨二字。 無聲無臭, 所以形容不顯篤(工)〔恭〕 之妙, 不顯篤恭, 所以形容天道之極致。 故以上天之載結語, 而究其根本, 實自愼獨上出來, 積累於毫忽之間, 省察, 於幾微之際, 一念之發, 無或少忽, 然後始可以合於天道矣。" 上曰: "此章之旨, 可謂至矣。 首言衣錦尙褧, 以明闇然日章之義, 繼之以淡而不厭, 三句又繼之以不愧屋漏, 以明愼獨之義。 欲言感應之至精至妙, 則莫若驗於祖考之來格, 故繼之以秦假無言。 旣能上格于祖考, 自能下孚于人民, 推而至於篤恭而天下平。 一節深於一節, 以至無聲無臭而極矣。 此章之發明愼獨, 與《大學》實相表裏。 蓋《大學》之愼獨, 與《中庸》之戒愼恐懼, 同一主敬之工, 而皆以愼字下得, 則果無同異之可言耶?" 城輔曰: "戒愼恐懼, 通貫動靜, 而愼獨則就其中拈出一念始發處而言也, 以此觀之, 不無分界矣。" 上曰: "戒懼之通動靜, 乃是我東先正發前未發之論, 而卿言實原於此, 可謂善看矣。 朱夫子章句中, 常存敬畏四字, 己有通動靜之意。 然微旨所在, 無人劈破, 及我朝先正文元公 金長生始發明之。 伊後出入經筵之臣, 亦不能人人發揮, 而故講官金昌協, 始著通動靜說, 然此一段, 看鮮極難。 蓋未發之中, 著不得工夫, 纔有欲戒愼, 欲恐懼之意, 則雖曰平平提撕, 略略存在, 而便己屬一念發處, 又何異於愼獨之跡雖未動, 而幾則己著者耶? 雖以《語類》、《或問》觀之, 亦或以戒愼恐懼, 偏屬靜邊, 此或緣初年本定之論, 而若以此四字, 全然歸之未發境界, 而便謂寂然不動之體, 本自如此, 則無或近於以心觀心耶? 蓋戒愼恐懼, 雖不可全屬未發, 而所以能戒愼恐懼者, 由其常存敬畏也。 故不言之中, 自不放過, 而戒愼恐懼底意, 常無間斷於不睹不聞之際, 此所以常存敬畏四字之爲章句中, 第一肯綮也。 卿於此, 果如何看解?" 城輔曰: "戒懼謹獨, 乃是千聖相傳之要訣, 而未發境界, 果難形容, 才欲着工, 便歸己發。 而伏見故儒臣金昌翕答故贊善魚有鳳書, 分析界限, 最爲精的。 其所謂昭昭具在, 惺惺在這裏, 常着照管等語, 可謂形容得好矣。" 上曰: "故儒臣一書, 果好。 比之通動靜說, 亦似有識, 解深淺之分。 予於平日, 亦嘗有味乎斯言, 而卿於溢字充棟之中, 獨能拈出此語, 卿之所存, 此亦可知。 今筵之兩問兩答, 皆能(沕)〔脗〕 然相契子之所得於卿者多矣。" 城輔曰: "因此文義, 竊有區區所懷。 先正臣李珥之言有曰: "道統在上, 則道行於一時, 澤流於後世, 臣以道統之傳, 深有望於殿下。’ 臣雖萬萬無似, 而畢義願忠之誠, 自謂不後於人, 千聖相傳之統, 亦不能無望於殿下焉。" 上曰: "卿言固好, 然《大學》序不云乎? ‘一有聰明睿智, 能盡其性者, 天必命之以爲億兆之郡師。’ 苟非天下四海一有之人, 固不可與議於在上之道統。 自夫家天下以後, 固有異於羲、農、堯、舜, 繼天立極之時矣。 卿於前席, 誦秦先正告君之語, 予固感歎。 而顧予否德, 尙安敢比方於宣廟盛時乎?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率字雖不容人力, 而道比性則巳就事物上說。 至於禮樂刑政之敎, 比諸道, 又〔不〕 無分界。 今也則禮樂刑政, 無一可觀, 況可論於道乎? 不賞而勸, 不怒而威, 尙矣無論, 世道朝象, 莫可收拾, 予雖欲自居以道統得乎? 當仁不讓, 予固當加勉, 而今聞卿言, 不覺自顧歉然。" 城輔曰: "臣竊聽於一國臣民之言, 無不以二帝三王之事, 仰期於殿下。 矧惟緝熙之工, 己臻於高明光大之域, 安得不以千聖相傳之統, 有望於聖上耶?" 上曰: "治不徯志, 化不從欲, 苟求其所以致此, 內而隱微之際, 外而注措之間, 必有受病之源。 旣知其病, 願聞其藥。 經義之討論, 亦貴活法, 帝王之學, 又與韋布有異。 若但纆繞於心性理氣名目間陳談, 則是豈先實後文之意也? 但欲實踐, 必須眞知文義上講究, 雖若餘事, 亦不可忽。 專務躬行, 可謂實矣, 而如司馬溫公之篤實君子, 猶以致知工夫之有所欠缺, 未免有識解之不到處, 專窮大本, 非不高矣, 而蔥嶺一泒, 遺却道問學一邊, 終爲異端之歸, 文義之剖析精微, 亦豈可以其無用而忽之耶? 徒講紙上之空言, 無或有 ‘不問蒼生問鬼神’ 之嫌? 而漢 文宣室之問, 蓋有感於祭祀之鬼神, 而祭祀鬼神之中, 又指其偏者, 故不免後世之譏。 至若《中庸》所謂鬼神之爲德, 別陰陽消長屈伸往來, 無非鬼神也。 以今時象觀之, 則君子小人之道, 孰伸孰屈, 孰消孰長? 卿方新從下土來, 試言其所聞見也。" 城輔曰: "臣本以病蟄之蹤, 全無所聞。 而第伏念人君一念之間, 實有旋乾轉坤之機。 況今聖學高明, 卓冠千古, 一念之發, 必以堯ㆍ舜爲準, 苟或有一毫之不及於堯、舜, 則更須十分省察, 工夫到處, 道統在是。 精一之功, 旣極其至, 則此外政令施措, 不待更着力矣。" 上曰: "卿言果好。 人所以不能爲堯、舜, 亦由於一念毫忽之差矣。 天道於穆不已, 文王純亦不已, 所以誠也, 少有間斷, 聖人之道, 便己息矣。 譬如盛水滿器, 置之繅車之上, 輪轉無一息之停, 然後器中之水, 無少滲漏。 若有霎時之留滯, 則覆水於地, 己不容復收矣。 矧今燕濩之中, 時自點檢, 或歲一至焉, 或月一至焉, 不啻如肴信之進退於一月之間。 功烈之如彼其卑, 規模之如彼其窄, 亶由於是, 所險矯救之方, 其果安在?" 城輔曰: "伏承縷縷下敎, 講究之精, 省察之密, 臣固欽頌。 而人君卽一天也, 一毫與天不相似, 則便是工夫未到處。 希天之道, 亶在於純亦不已, 伏望益加從事於聖益聖之地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