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46권, 정조 21년 2월 25일 丙申 3/5 기사 / 1797년 청 가경(嘉慶) 2년
이병모가 상차하여, 화성부를 발전에 장애가 되는 6가지 절목을 아뢰다
국역
판중추부사 이병모(李秉模)가 차자를 올리기를,
"화성부는 첫째로는 원릉(園陵)을 옹호하고, 다음으로 경기의 요새지이고, 끝으로 배와 수레가 모여드는 곳입니다. 공사를 시작한 지 3, 4년 만에 대농(大農)의 경비를 쓰지 않고 어느덧 성곽이 완성되었으니, 신기(神機)와 묘운(妙運)이 마치 귀신이 도운 듯합니다. 이것은 정말 만세토록 끄떡없는 기반입니다. 지금 우선 할 일은 백성들이 많이 들어와 잘살게 하는 것이므로 묘당에 명하여 훌륭한 계책을 강구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신이 그 절목(節目)을 취하여 나라의 체통에 관계되고 원대한 계획에 지장이 있는 것을 뽑아 보니, 잘못된 것이 여섯 가지가 있었습니다.
서울은 사방의 근본이고 부호(富戶)는 빈민의 바탕입니다. 지난 역사를 상고하여 보면 무릉(茂陵)에 부호를 옮겼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삼대(三代)와 같은 시대를 만회하려는 전하의 포부로써 어찌 이런 방편적인 구차한 정치를 본받는단 말입니까. 그들 가운데 간혹 거기에 가 살기를 자원하는 가호(家戶)들이 있다면 굳이 법을 만들어 금할 필요는 없겠지만, 결단코 조정에서 모집하는 길을 열어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그 첫번째 불편한 것입니다.
전(傳)041) 에 말하기를 ‘땅이 있으면 거기에 재물이 나고, 재물이 나면 그것을 쓸 수 있다.’고 하였으니, 민호(民戶)를 모집하고 백성들을 풍족하게 하는 길은 땅을 널리 개간하고 재물을 유통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 북쪽에 새로 개간한 토지가 이미 그 요점을 얻었으니, 여기에 널리 무역할 수 있는 길을 열어서 서도·북도·호서·호남·영남·영동의 물산이 모여들게 해야만 비로소 부실(富實)의 효과를 책임지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모자와 삼 두 가지만으로 통화(通貨)의 근원을 삼고 있으니, 모자와 삼의 효과만으로는 한 부(府)의 생활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하다는 것은 식자가 아니더라도 판단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 두 번째 불편한 것입니다.
천하의 모든 일은 각각 주객(主客)이 있는데, 주객이 뒤바뀌고 성취된 일은 없습니다. 화성에 살고 있는 백성들은 주인이고 서울의 부호는 나그네입니다. 나그네가 도리어 주인이 되어 재산의 실권을 잡아 부내에 사는 백성들을 부린다면 그 백성들이 뒷전에서 구경만 하고 서로 헤매며 떠들기를 ‘우리가 원침(園寢)을 옹호하고 경기의 방어를 해 온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데 지금 수십 호의 부호에게 점거당하여 주인이 나그네의 말을 듣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삼켜버렸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서로 전파하며 모두들 흩어져버리고 말 것이 필연적인 사세입니다. 이것이 그 세 번째 불편한 것입니다.
전부터 삼을 판매하는 유는 본래 그 철에 사두는 것도 아니고 수시로 사고 파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가 사기 전에 돈을 풀었다가 때가 되면 삼을 거두어들이고 있는데, 올 가을에 쓸 것은 벌써 지난해 가을에 마련하여 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20호를 위해 이익을 독점하게 한다면 시기 전에 돈을 풀어놓은 저들은 제때에 삼을 거두어들이는 이득을 그냥 앉아서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비록 이득을 잃어버린 자도 우리 백성이고 그 이익을 독점하는 자도 우리 백성이라 다같은 백성으로서 득실이 맞먹는다 하더라도 선후와 다소에 따른 효과와 지장이 판이할 것입니다. 이것이 그 네 번째 불편한 것입니다.
돌아보건대, 지금 부호들이 앞다투어 입주를 원하면서 행여나 뒤질세라 걱정하는 것은 예외로 뽑아서 등용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러나 변장 실직(邊將實職) 등의 벼슬은 본래 의관(醫官)이나 역관들이 통상적으로 갖는 직책이므로 그들에게는 반드시 영광스러운 것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보다 과하게 하려고 한다면 사치와 범람한 습속이 되어 더구나 키울 수 없으므로 마침내는 은혜가 다함에 실망하여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 다섯 번째 불편한 일입니다.
지금 이 절목이 유리한 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결론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부호가 이익을 독점하게 만들어 준 행위입니다. 이는 왕도정치에서 통렬히 금하여야 할 일인데 이처럼 방편적으로 허락하면서 이익을 독점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 이것이 어찌 처음에 계획을 잘 짜서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기본 방침을 소중히 하는 도리라고 하겠습니까. 이것이 그 여섯 번째 불편한 점입니다.
신은 원래 재능이 없고 세상의 모든 일에 까마득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지만, 말은 쉽고 실행은 어렵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예로부터 폐단을 말하는 자가 반드시 그 폐단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역시 조정에서 그 말이 타당한지의 여부를 살피고 나서 담당관에게 명하여 잘 생각해서 조처하게 하는 데에 달려 있다고 여깁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이런 점에 대해 가부를 논하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경이 이미 그 불편한 여섯 가지 단서를 말하였으니, 어찌 억지로 시행할 수 있겠는가. 좌상이 이 일에 참여하였으니, 그와 함께 다시 좋은 방법을 강구하여 조처하여야 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46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11면
- 【분류】과학-지학(地學) / 역사-전사(前史) / 역사-고사(故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 [註 041] 전(傳) : 《대학(大學)》 전(傳) 제10장에 나옴.
원문
○判中樞府事李秉模上箚曰: "華城一府, 上爲園陵之拱衛, 中爲畿輔之保障, 下爲舟車之都會。 經始三四年, 不煩大農之經費, 居然百雉之告完, 神機妙運, 若有神助。 是誠萬世不拔之基也。 在今先務, 惟在於庶而富之, 爰命廟堂講其長策。 臣謹就節目, 撮其關國體妨遠圖者, 其失有六。 京師, 四方之根本, 富戶, 貧民之綱紀。 考之前史, 雖有茂陵徙豪富之文, 以殿下挽回三代之志, 何必倣此權宜苟且之政乎? 渠輩小或有自願就居之戶, 雖不必設法禁之, 決不可自朝廷而開其募入之路。 此其不便一也。 傳曰: ‘有士此有財, 有財此有用。’ 募戶足民之道, 不過曰廣其墾通其財而已。 城北新墾之土, 旣得其要, 是宜廣開貿遷, 西北湖嶺之産, 繈輸輻輳, 然後始可責富實之效。 而今乃以帽蔘二條, 爲通貨之源, 帽蔘之爲效, 不足以厚一府之生, 不待知者而不難決矣。 此其不便二也。 天下萬事, 有主有客, 主客倒置, 未有能集其事者。 華城之民, 主也, 京城之富戶, 客也。 客反爲主, 執其財權, 反使府內之民, 局外傍觀, 將倀倀然相告曰: ‘吾屬控護園寢, 保障畿輔, 爲何如也? 而今爲數十富戶占據, 以主聽客, 以富呑貧。’ 互相傳說, 人皆解體, 必至之勢也。 此其不便三也。 自前以蔘料販之類, 本非當節, 而貿置又非隨賣而隨貿也。 莫不先期而散緡, 及時而收蔘, 今秋所用, 已是昨年之經紀。 今爲二十戶專利之地, 使彼先期散緡之類, 坐失及時收蔘之利。 雖曰失其利者吾民, 專其利者吾民, 均之爲民, 得矢相當, 先後多少, 效害判異。 此其不便四也。 顧今富戶之爭先願入, 惟恐或後者, 蓋在於拔例奬用。 而邊將實職等官, 自是醫譯輩所常有之職, 未必在渠爲榮。 如欲過此, 則侈濫之習, 又不可長, 畢竟失望恩渴而怨。 此其不便五也。 今此節目, 雖不曰利, 要其歸則一言蔽之曰富戶榷利也。 王政之所當痛禁, 而姑此許之, 謂非權利云爾, 則是豈爲所重謀始經遠之宏謨遠猷也哉? 此其不便六也。 臣素無才具, 一切世務, 茫不知其所措, 極知說之則易, 措之甚難。 第伏念從古說弊者, 未必捄其弊, 亦在朝家察其言之當否, 申命有司之臣, 發慮措處之爲如何耳。" 批曰: "此等處曰可曰否, 甚是美事。 卿旣陳六條不便之端, 豈可强令行之? 左相與聞是事, 須與之更究好道理措處也。"
- 【태백산사고본】 46책 46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11면
- 【분류】과학-지학(地學) / 역사-전사(前史) / 역사-고사(故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국역
판중추부사 이병모(李秉模)가 차자를 올리기를,
"화성부는 첫째로는 원릉(園陵)을 옹호하고, 다음으로 경기의 요새지이고, 끝으로 배와 수레가 모여드는 곳입니다. 공사를 시작한 지 3, 4년 만에 대농(大農)의 경비를 쓰지 않고 어느덧 성곽이 완성되었으니, 신기(神機)와 묘운(妙運)이 마치 귀신이 도운 듯합니다. 이것은 정말 만세토록 끄떡없는 기반입니다. 지금 우선 할 일은 백성들이 많이 들어와 잘살게 하는 것이므로 묘당에 명하여 훌륭한 계책을 강구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신이 그 절목(節目)을 취하여 나라의 체통에 관계되고 원대한 계획에 지장이 있는 것을 뽑아 보니, 잘못된 것이 여섯 가지가 있었습니다.
서울은 사방의 근본이고 부호(富戶)는 빈민의 바탕입니다. 지난 역사를 상고하여 보면 무릉(茂陵)에 부호를 옮겼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삼대(三代)와 같은 시대를 만회하려는 전하의 포부로써 어찌 이런 방편적인 구차한 정치를 본받는단 말입니까. 그들 가운데 간혹 거기에 가 살기를 자원하는 가호(家戶)들이 있다면 굳이 법을 만들어 금할 필요는 없겠지만, 결단코 조정에서 모집하는 길을 열어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그 첫번째 불편한 것입니다.
전(傳)041) 에 말하기를 ‘땅이 있으면 거기에 재물이 나고, 재물이 나면 그것을 쓸 수 있다.’고 하였으니, 민호(民戶)를 모집하고 백성들을 풍족하게 하는 길은 땅을 널리 개간하고 재물을 유통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 북쪽에 새로 개간한 토지가 이미 그 요점을 얻었으니, 여기에 널리 무역할 수 있는 길을 열어서 서도·북도·호서·호남·영남·영동의 물산이 모여들게 해야만 비로소 부실(富實)의 효과를 책임지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모자와 삼 두 가지만으로 통화(通貨)의 근원을 삼고 있으니, 모자와 삼의 효과만으로는 한 부(府)의 생활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하다는 것은 식자가 아니더라도 판단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 두 번째 불편한 것입니다.
천하의 모든 일은 각각 주객(主客)이 있는데, 주객이 뒤바뀌고 성취된 일은 없습니다. 화성에 살고 있는 백성들은 주인이고 서울의 부호는 나그네입니다. 나그네가 도리어 주인이 되어 재산의 실권을 잡아 부내에 사는 백성들을 부린다면 그 백성들이 뒷전에서 구경만 하고 서로 헤매며 떠들기를 ‘우리가 원침(園寢)을 옹호하고 경기의 방어를 해 온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데 지금 수십 호의 부호에게 점거당하여 주인이 나그네의 말을 듣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삼켜버렸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서로 전파하며 모두들 흩어져버리고 말 것이 필연적인 사세입니다. 이것이 그 세 번째 불편한 것입니다.
전부터 삼을 판매하는 유는 본래 그 철에 사두는 것도 아니고 수시로 사고 파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가 사기 전에 돈을 풀었다가 때가 되면 삼을 거두어들이고 있는데, 올 가을에 쓸 것은 벌써 지난해 가을에 마련하여 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20호를 위해 이익을 독점하게 한다면 시기 전에 돈을 풀어놓은 저들은 제때에 삼을 거두어들이는 이득을 그냥 앉아서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비록 이득을 잃어버린 자도 우리 백성이고 그 이익을 독점하는 자도 우리 백성이라 다같은 백성으로서 득실이 맞먹는다 하더라도 선후와 다소에 따른 효과와 지장이 판이할 것입니다. 이것이 그 네 번째 불편한 것입니다.
돌아보건대, 지금 부호들이 앞다투어 입주를 원하면서 행여나 뒤질세라 걱정하는 것은 예외로 뽑아서 등용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러나 변장 실직(邊將實職) 등의 벼슬은 본래 의관(醫官)이나 역관들이 통상적으로 갖는 직책이므로 그들에게는 반드시 영광스러운 것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보다 과하게 하려고 한다면 사치와 범람한 습속이 되어 더구나 키울 수 없으므로 마침내는 은혜가 다함에 실망하여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 다섯 번째 불편한 일입니다.
지금 이 절목이 유리한 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결론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부호가 이익을 독점하게 만들어 준 행위입니다. 이는 왕도정치에서 통렬히 금하여야 할 일인데 이처럼 방편적으로 허락하면서 이익을 독점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 이것이 어찌 처음에 계획을 잘 짜서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기본 방침을 소중히 하는 도리라고 하겠습니까. 이것이 그 여섯 번째 불편한 점입니다.
신은 원래 재능이 없고 세상의 모든 일에 까마득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지만, 말은 쉽고 실행은 어렵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예로부터 폐단을 말하는 자가 반드시 그 폐단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역시 조정에서 그 말이 타당한지의 여부를 살피고 나서 담당관에게 명하여 잘 생각해서 조처하게 하는 데에 달려 있다고 여깁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이런 점에 대해 가부를 논하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경이 이미 그 불편한 여섯 가지 단서를 말하였으니, 어찌 억지로 시행할 수 있겠는가. 좌상이 이 일에 참여하였으니, 그와 함께 다시 좋은 방법을 강구하여 조처하여야 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46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11면
- 【분류】과학-지학(地學) / 역사-전사(前史) / 역사-고사(故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 [註 041] 전(傳) : 《대학(大學)》 전(傳) 제10장에 나옴.
원문
○判中樞府事李秉模上箚曰: "華城一府, 上爲園陵之拱衛, 中爲畿輔之保障, 下爲舟車之都會。 經始三四年, 不煩大農之經費, 居然百雉之告完, 神機妙運, 若有神助。 是誠萬世不拔之基也。 在今先務, 惟在於庶而富之, 爰命廟堂講其長策。 臣謹就節目, 撮其關國體妨遠圖者, 其失有六。 京師, 四方之根本, 富戶, 貧民之綱紀。 考之前史, 雖有茂陵徙豪富之文, 以殿下挽回三代之志, 何必倣此權宜苟且之政乎? 渠輩小或有自願就居之戶, 雖不必設法禁之, 決不可自朝廷而開其募入之路。 此其不便一也。 傳曰: ‘有士此有財, 有財此有用。’ 募戶足民之道, 不過曰廣其墾通其財而已。 城北新墾之土, 旣得其要, 是宜廣開貿遷, 西北湖嶺之産, 繈輸輻輳, 然後始可責富實之效。 而今乃以帽蔘二條, 爲通貨之源, 帽蔘之爲效, 不足以厚一府之生, 不待知者而不難決矣。 此其不便二也。 天下萬事, 有主有客, 主客倒置, 未有能集其事者。 華城之民, 主也, 京城之富戶, 客也。 客反爲主, 執其財權, 反使府內之民, 局外傍觀, 將倀倀然相告曰: ‘吾屬控護園寢, 保障畿輔, 爲何如也? 而今爲數十富戶占據, 以主聽客, 以富呑貧。’ 互相傳說, 人皆解體, 必至之勢也。 此其不便三也。 自前以蔘料販之類, 本非當節, 而貿置又非隨賣而隨貿也。 莫不先期而散緡, 及時而收蔘, 今秋所用, 已是昨年之經紀。 今爲二十戶專利之地, 使彼先期散緡之類, 坐失及時收蔘之利。 雖曰失其利者吾民, 專其利者吾民, 均之爲民, 得矢相當, 先後多少, 效害判異。 此其不便四也。 顧今富戶之爭先願入, 惟恐或後者, 蓋在於拔例奬用。 而邊將實職等官, 自是醫譯輩所常有之職, 未必在渠爲榮。 如欲過此, 則侈濫之習, 又不可長, 畢竟失望恩渴而怨。 此其不便五也。 今此節目, 雖不曰利, 要其歸則一言蔽之曰富戶榷利也。 王政之所當痛禁, 而姑此許之, 謂非權利云爾, 則是豈爲所重謀始經遠之宏謨遠猷也哉? 此其不便六也。 臣素無才具, 一切世務, 茫不知其所措, 極知說之則易, 措之甚難。 第伏念從古說弊者, 未必捄其弊, 亦在朝家察其言之當否, 申命有司之臣, 發慮措處之爲如何耳。" 批曰: "此等處曰可曰否, 甚是美事。 卿旣陳六條不便之端, 豈可强令行之? 左相與聞是事, 須與之更究好道理措處也。"
- 【태백산사고본】 46책 46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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