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45권, 정조 20년 7월 8일 辛亥 4/5 기사 / 1796년 청 가경(嘉慶) 1년
임제원의 장계에 의거, 괴산에 사는 열녀 문씨 여인에게 정표하게 하다
국역
충청도 관찰사 임제원(林濟遠)이 장계를 올려 아뢰기를,
"괴산에 사는 문씨(文氏) 성을 가진 여인은 상인의 부인으로서, 그 남편이 한번 외출해서는 몇 년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에 몹시 빈한하였으나 마음을 다하여 시어미를 공양하고 힘을 다하여 자식을 길렀는데, 그 효열(孝烈)이 사람들을 감동시켜 한 동네 사람들이 음식을 장만하여 우대해 주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의 이파금(李巴金)이란 자가 꼭 욕보이고자 하여 평소 틈을 엿보며 겁탈하려는 흉계를 품고 있었습니다. 이에 여인은 스스로 더욱 굳게 맹세를 하고 평소 생활할 때에 단도를 품어 스스로 방어할 뜻을 더욱 드러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내가 끝내 그 음모를 그치지 않자 집을 팔아 소를 빌어 시어미를 데리고 함께 떠날 계획을 세웠으니 진실로 슬픈 일이었습니다. 이사를 앞둔 전날 밤 화가 갑자기 닥쳐 오두막집 깊은 밤에 괴한들이 들이닥쳐 등불이 갑자기 꺼지고 칼도 빼앗겼으나 늙은 시어미와 약한 오라비는 구해 줄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독하게 구타를 하고 사납게 발길질을 하였으므로 멋대로 유린하도록 놓아둘 수 밖에 없었고 마침내 목숨을 잃게 되는 참변을 겪게 되었습니다. 옥으로 불러들이는 날 이러한 흉악한 자는 그 즉시 만번 죽였더라도 오히려 그 철천의 원한을 위로하기에 부족했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형조가 복계(覆啓)하니, 판하하기를,
"우뚝한 정조가 옥과 같이 순수하고 이슬과 같이 맑도다. 하호(下戶)의 마을에 이러한 열행(烈行)이 있을 줄 어찌 헤아렸겠는가. 마땅히 그 훌륭함을 드러내는 거조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흉악한 자의 공초 가운데 ‘이전부터 더럽혀진 몸이었다.’고 운운한 것은 실로 죽음을 모면하기 위하여 횡설 수설한 것임을 안다. 만약 그 정녀(貞女)로 하여금 알게 한다면 또한 지하에서 통한을 머금게 될 것이다. 도백이 고복(考覆)하여 친히 심문할 때에 이 한 조항에 대해 횡설 수설한 것이었다는 자복을 받아 낸 후에 장문(狀聞)하라."
하였다. 해도에서 이파금의 자복한 공초를 가지고 장문하니, 대신에게 의논하도록 명하였다. 예조가 대신에게 물어 의논한 후에 아뢰기를,
"문씨 성을 가진 여인은 그 남편이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마음을 다잡아 먹고 수절하였으며, 시어미가 늙어 달리 의탁할 곳이 없자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끝내 또 포악한 자를 만나 여러 가지 위험과 욕을 겪자 단도를 가슴에 품고서 스스로 맹세하여 목숨을 다하도록 후회하지 않았으니, 그 절열(節烈)이 더욱 드러났습니다. 곤궁한 하호의 지극히 미천한 한 여인으로서 성조의 가상히 여기는 분부를 거듭 입었고 보면 고무시켜 권장하는 방도에 있어 정표(旌表)하는 법을 시행해야 마땅합니다."
하였는데, 윤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4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660면
원문
○忠淸道觀察使林濟遠狀啓曰:
槐山 文女, 商人之婦。 其夫一出不還, 年久貧寠, 乃能勤心養姥, 竭力育子, 其孝烈之感人, 至有一洞設饌優待之擧。 洞中人李巴金, 必欲玷汚, 鎭日睽睽, 恒懷劫掠之兇計。 自矢彌堅, 寡家寄宿, 短刃藏懷, 益著自防之意, 而終不戢其陰謀, 則賣舍借牛, 挈姑同去之計, 良亦慼矣。 搬移隔宵, 禍機猝迫, 斗屋深夜, 衆暴臨門, 燈忽滅矣, 刀見奪矣, 老姑孱娚, 無力救解, 毒敺猛踢, 任他蹂躪, 畢竟致命之慘。 在於速獄之日, 似此凶身, 雖卽地萬戮, 猶不足以慰其徹泉之冤。
刑曹覆啓, 判曰: "卓卓貞操, 粹如玉潔如霜, 豈料下戶委巷, 有此烈行乎? 所當直施褒美之擧, 而兇身招中, 從前汚穢云云, 固知死中圖生之亂說, 而若使貞女有知, 又將茹痛於泉下。 道伯於考覆親問之時, 此一條, 先捧亂說自服然後狀聞。" 該道以巴金服招, 聞, 命議大臣。 禮曹問議大臣後啓言: "文姓女之夫征不復, 而矢心守節, 姑老無依, 而殫誠善養, 而終又遭値强暴, 備經危辱, 懷刃自誓, 畢命不悔, 而節烈愈彰。 乃以窮閻下戶, 至微至賤之一女人, 而荐蒙聖朝褒嘉之敎, 則其在聳勸之道, 合施(棹)〔綽〕 楔之典。" 允之。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4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660면
국역
충청도 관찰사 임제원(林濟遠)이 장계를 올려 아뢰기를,
"괴산에 사는 문씨(文氏) 성을 가진 여인은 상인의 부인으로서, 그 남편이 한번 외출해서는 몇 년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에 몹시 빈한하였으나 마음을 다하여 시어미를 공양하고 힘을 다하여 자식을 길렀는데, 그 효열(孝烈)이 사람들을 감동시켜 한 동네 사람들이 음식을 장만하여 우대해 주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의 이파금(李巴金)이란 자가 꼭 욕보이고자 하여 평소 틈을 엿보며 겁탈하려는 흉계를 품고 있었습니다. 이에 여인은 스스로 더욱 굳게 맹세를 하고 평소 생활할 때에 단도를 품어 스스로 방어할 뜻을 더욱 드러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내가 끝내 그 음모를 그치지 않자 집을 팔아 소를 빌어 시어미를 데리고 함께 떠날 계획을 세웠으니 진실로 슬픈 일이었습니다. 이사를 앞둔 전날 밤 화가 갑자기 닥쳐 오두막집 깊은 밤에 괴한들이 들이닥쳐 등불이 갑자기 꺼지고 칼도 빼앗겼으나 늙은 시어미와 약한 오라비는 구해 줄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독하게 구타를 하고 사납게 발길질을 하였으므로 멋대로 유린하도록 놓아둘 수 밖에 없었고 마침내 목숨을 잃게 되는 참변을 겪게 되었습니다. 옥으로 불러들이는 날 이러한 흉악한 자는 그 즉시 만번 죽였더라도 오히려 그 철천의 원한을 위로하기에 부족했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형조가 복계(覆啓)하니, 판하하기를,
"우뚝한 정조가 옥과 같이 순수하고 이슬과 같이 맑도다. 하호(下戶)의 마을에 이러한 열행(烈行)이 있을 줄 어찌 헤아렸겠는가. 마땅히 그 훌륭함을 드러내는 거조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흉악한 자의 공초 가운데 ‘이전부터 더럽혀진 몸이었다.’고 운운한 것은 실로 죽음을 모면하기 위하여 횡설 수설한 것임을 안다. 만약 그 정녀(貞女)로 하여금 알게 한다면 또한 지하에서 통한을 머금게 될 것이다. 도백이 고복(考覆)하여 친히 심문할 때에 이 한 조항에 대해 횡설 수설한 것이었다는 자복을 받아 낸 후에 장문(狀聞)하라."
하였다. 해도에서 이파금의 자복한 공초를 가지고 장문하니, 대신에게 의논하도록 명하였다. 예조가 대신에게 물어 의논한 후에 아뢰기를,
"문씨 성을 가진 여인은 그 남편이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마음을 다잡아 먹고 수절하였으며, 시어미가 늙어 달리 의탁할 곳이 없자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끝내 또 포악한 자를 만나 여러 가지 위험과 욕을 겪자 단도를 가슴에 품고서 스스로 맹세하여 목숨을 다하도록 후회하지 않았으니, 그 절열(節烈)이 더욱 드러났습니다. 곤궁한 하호의 지극히 미천한 한 여인으로서 성조의 가상히 여기는 분부를 거듭 입었고 보면 고무시켜 권장하는 방도에 있어 정표(旌表)하는 법을 시행해야 마땅합니다."
하였는데, 윤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4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660면
원문
○忠淸道觀察使林濟遠狀啓曰:
槐山 文女, 商人之婦。 其夫一出不還, 年久貧寠, 乃能勤心養姥, 竭力育子, 其孝烈之感人, 至有一洞設饌優待之擧。 洞中人李巴金, 必欲玷汚, 鎭日睽睽, 恒懷劫掠之兇計。 自矢彌堅, 寡家寄宿, 短刃藏懷, 益著自防之意, 而終不戢其陰謀, 則賣舍借牛, 挈姑同去之計, 良亦慼矣。 搬移隔宵, 禍機猝迫, 斗屋深夜, 衆暴臨門, 燈忽滅矣, 刀見奪矣, 老姑孱娚, 無力救解, 毒敺猛踢, 任他蹂躪, 畢竟致命之慘。 在於速獄之日, 似此凶身, 雖卽地萬戮, 猶不足以慰其徹泉之冤。
刑曹覆啓, 判曰: "卓卓貞操, 粹如玉潔如霜, 豈料下戶委巷, 有此烈行乎? 所當直施褒美之擧, 而兇身招中, 從前汚穢云云, 固知死中圖生之亂說, 而若使貞女有知, 又將茹痛於泉下。 道伯於考覆親問之時, 此一條, 先捧亂說自服然後狀聞。" 該道以巴金服招, 聞, 命議大臣。 禮曹問議大臣後啓言: "文姓女之夫征不復, 而矢心守節, 姑老無依, 而殫誠善養, 而終又遭値强暴, 備經危辱, 懷刃自誓, 畢命不悔, 而節烈愈彰。 乃以窮閻下戶, 至微至賤之一女人, 而荐蒙聖朝褒嘉之敎, 則其在聳勸之道, 合施(棹)〔綽〕 楔之典。" 允之。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4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66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