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40권, 정조 18년 7월 17일 壬寅 3/4 기사 / 1794년 청 건륭(乾隆) 59년
고성 삼일포의 소나무 벌목자 처벌에 관해 영중추부사 채제공이 아뢰다
국역
영중추부사 채제공이 아뢰기를,
"고성(高城)의 삼일포(三日浦)는 관동의 제일가는 명승지로서 선배들은 모두 신선이 산다는 십주(十洲)와 삼도(三島)에 비교하였으니 그 곳을 등한히 볼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듣건대 어떤 무뢰배가 중앙 관청의 공문을 얻어가지고 삼일포를 개간한 다음 논을 만들려고 이미 공사를 시작하여 먼저 바닷가 명사(鳴沙)의 낙낙 장송을 베어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비록 비변사에서 공문을 보내 엄하게 금지시켜 그 공사는 중지되었으나 이미 벤 소나무는 전대로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당초에 무뢰배들이 설혹 이같이 전혀 헤아릴 수 없는 계획을 세웠더라도 지방관이 엄금하였다면 저들이 어떻게 방자하게 이런 짓을 하였겠습니까. 더구나 삼일포는 고을에서 10리도 되지 않습니다. 사세로 말하자면 본관이 그 공사를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무뢰배의 죄가 될 뿐만 아니라 실상은 본관의 죄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실리만을 탐하고 다른 것은 보지 못한다고 하지만 조금이라도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어찌 감히 이런 짓을 하였겠습니까. 이 일은 비록 미세한 듯하지만 관계되는 바가 막중하니 마땅히 묘당으로 하여금 해도의 무뢰배 중에서 계책을 꾸며 앞장서 일한 자를 엄히 조사하여 각별히 법에 비추어 다스리게 하소서. 또 중앙에서 만일 진짜 공문을 내준 자가 있으면 해당 관원은 품계의 높고 낮음을 따질 것 없이 엄하게 꾸짖고 해당 지방관도 찾아내어 귀양 보내는 법조문을 적용하고 그를 금고시켜 다시는 수령이 되지 못하게 한 연후에야 조금이라도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징계시키는 방도가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삼일포는 관동 명승지 중에서도 제일가는 명승지이다. 이런 꾀를 내고 이런 계획을 꾸며 소나무 숲을 베어내고 그 토지를 개간하려고 한 사람일지라도 나라에 조금이라도 법과 질서가 있었다면 어떻게 감히 중앙의 공문을 얻어내기를 도모하여 마음먹은 대로 공사를 하여 토지 신고를 하려는 간사한 계책을 실현할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여러 해 전부터 엄하게 규정을 세워 안으로 궁방으로부터 밖으로 각 영이나 관청의 토지 신고에서 4분의 1을 차지하는 법을 폐지하였으니 결재를 받아 통지한 것이 아니면 어떻게 마음대로 개간할 수 있겠는가. 먼저 본사로부터 공문을 내준 곡절을 상세히 조사해서 초기(草記)를 올리도록 하고 지방관은 의금부로 하여금 엄하게 문초하여 신문을 받고 경이 아뢴 대로 조사하여 처리하게 하라. 금지시키지 않아서 금지령을 범한 관찰사는 엄중히 문책하고 간교한 짓을 꾸민 사람들은 해조와 해도로 하여금 엄한 형벌을 가하여 공초를 받은 다음 보고하여 오면 본사로부터 등급을 나누어 초기를 올리고 엄하게 다스리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40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485면
원문
○領中樞府事蔡濟恭啓曰: "高城之三日浦, 關東之第一勝區, 先輩皆比之於十洲三島, 其地之不可等閑視之也, 明矣。 聞何許無賴輩, 圖得京司關文, 欲毁決三日浦, 仍作水田, 旣始其役, 先伐浦邊鳴沙之落落長松, 無一餘存云。 雖因備局之發關嚴禁, 其役雖寢, 而已伐之松, 不可以復其舊矣。 當初無賴輩, 設或有如此萬萬叵測之計, 而爲地方官者, 若或嚴禁, 則渠安敢肆然爲此乎? 況浦之去邑居, 不滿十里, 以事勢言之, 本官無不與聞其事, 則此非特爲無賴輩之罪, 實本官之罪也。 渠雖惟利是耽, 不見他餘, 而苟有一分嚴畏之心, 安敢乃爾? 此事雖似微細, 關係則重。 宜令廟堂, 嚴査該道無賴中造謀首倡者, 各別照法嚴繩; 京司如有眞出關押者, 當該官員, 無論品秩高下, 亦爲嚴加譴責; 當該地方官考出, 施以竄配之律, 錮其身, 俾不得更爲守令, 然後庶可爲一分癉惡之道矣。" 上曰: "三日浦, 卽關東名勝之第一勝區, 則出此謀, 爲此計, 斫伐松林, 欲墾其土者, 國有一分紀綱, 焉敢圖出京關, 任其行胸臆, 以售其陳告之奸竇? 況年來嚴立科條, 內自宮房, 外而各營各司, 土地陳告, 永革四一之法, 除非啓下行會, 豈可擅墾乎? 先自本司, 詳査發關之委折草記; 地方官, 令三府嚴問口招, 依卿所奏勘處; 不禁而犯禁之道伯, 重勘; 作奸各人等, 令該曹該道, 嚴刑取招報來, 自本司, 分等草記痛繩。"
- 【태백산사고본】 40책 40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485면
국역
영중추부사 채제공이 아뢰기를,
"고성(高城)의 삼일포(三日浦)는 관동의 제일가는 명승지로서 선배들은 모두 신선이 산다는 십주(十洲)와 삼도(三島)에 비교하였으니 그 곳을 등한히 볼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듣건대 어떤 무뢰배가 중앙 관청의 공문을 얻어가지고 삼일포를 개간한 다음 논을 만들려고 이미 공사를 시작하여 먼저 바닷가 명사(鳴沙)의 낙낙 장송을 베어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비록 비변사에서 공문을 보내 엄하게 금지시켜 그 공사는 중지되었으나 이미 벤 소나무는 전대로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당초에 무뢰배들이 설혹 이같이 전혀 헤아릴 수 없는 계획을 세웠더라도 지방관이 엄금하였다면 저들이 어떻게 방자하게 이런 짓을 하였겠습니까. 더구나 삼일포는 고을에서 10리도 되지 않습니다. 사세로 말하자면 본관이 그 공사를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무뢰배의 죄가 될 뿐만 아니라 실상은 본관의 죄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실리만을 탐하고 다른 것은 보지 못한다고 하지만 조금이라도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어찌 감히 이런 짓을 하였겠습니까. 이 일은 비록 미세한 듯하지만 관계되는 바가 막중하니 마땅히 묘당으로 하여금 해도의 무뢰배 중에서 계책을 꾸며 앞장서 일한 자를 엄히 조사하여 각별히 법에 비추어 다스리게 하소서. 또 중앙에서 만일 진짜 공문을 내준 자가 있으면 해당 관원은 품계의 높고 낮음을 따질 것 없이 엄하게 꾸짖고 해당 지방관도 찾아내어 귀양 보내는 법조문을 적용하고 그를 금고시켜 다시는 수령이 되지 못하게 한 연후에야 조금이라도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징계시키는 방도가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삼일포는 관동 명승지 중에서도 제일가는 명승지이다. 이런 꾀를 내고 이런 계획을 꾸며 소나무 숲을 베어내고 그 토지를 개간하려고 한 사람일지라도 나라에 조금이라도 법과 질서가 있었다면 어떻게 감히 중앙의 공문을 얻어내기를 도모하여 마음먹은 대로 공사를 하여 토지 신고를 하려는 간사한 계책을 실현할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여러 해 전부터 엄하게 규정을 세워 안으로 궁방으로부터 밖으로 각 영이나 관청의 토지 신고에서 4분의 1을 차지하는 법을 폐지하였으니 결재를 받아 통지한 것이 아니면 어떻게 마음대로 개간할 수 있겠는가. 먼저 본사로부터 공문을 내준 곡절을 상세히 조사해서 초기(草記)를 올리도록 하고 지방관은 의금부로 하여금 엄하게 문초하여 신문을 받고 경이 아뢴 대로 조사하여 처리하게 하라. 금지시키지 않아서 금지령을 범한 관찰사는 엄중히 문책하고 간교한 짓을 꾸민 사람들은 해조와 해도로 하여금 엄한 형벌을 가하여 공초를 받은 다음 보고하여 오면 본사로부터 등급을 나누어 초기를 올리고 엄하게 다스리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40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485면
원문
○領中樞府事蔡濟恭啓曰: "高城之三日浦, 關東之第一勝區, 先輩皆比之於十洲三島, 其地之不可等閑視之也, 明矣。 聞何許無賴輩, 圖得京司關文, 欲毁決三日浦, 仍作水田, 旣始其役, 先伐浦邊鳴沙之落落長松, 無一餘存云。 雖因備局之發關嚴禁, 其役雖寢, 而已伐之松, 不可以復其舊矣。 當初無賴輩, 設或有如此萬萬叵測之計, 而爲地方官者, 若或嚴禁, 則渠安敢肆然爲此乎? 況浦之去邑居, 不滿十里, 以事勢言之, 本官無不與聞其事, 則此非特爲無賴輩之罪, 實本官之罪也。 渠雖惟利是耽, 不見他餘, 而苟有一分嚴畏之心, 安敢乃爾? 此事雖似微細, 關係則重。 宜令廟堂, 嚴査該道無賴中造謀首倡者, 各別照法嚴繩; 京司如有眞出關押者, 當該官員, 無論品秩高下, 亦爲嚴加譴責; 當該地方官考出, 施以竄配之律, 錮其身, 俾不得更爲守令, 然後庶可爲一分癉惡之道矣。" 上曰: "三日浦, 卽關東名勝之第一勝區, 則出此謀, 爲此計, 斫伐松林, 欲墾其土者, 國有一分紀綱, 焉敢圖出京關, 任其行胸臆, 以售其陳告之奸竇? 況年來嚴立科條, 內自宮房, 外而各營各司, 土地陳告, 永革四一之法, 除非啓下行會, 豈可擅墾乎? 先自本司, 詳査發關之委折草記; 地方官, 令三府嚴問口招, 依卿所奏勘處; 不禁而犯禁之道伯, 重勘; 作奸各人等, 令該曹該道, 嚴刑取招報來, 自本司, 分等草記痛繩。"
- 【태백산사고본】 40책 40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48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