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38권, 정조 17년 7월 26일 丁巳 1/3 기사 / 1793년 청 건륭(乾隆) 58년
장령 변경우가 제주도 백성의 고충과 환자의 폐단에 대해 아뢰다
국역
차대(次對)하였다. 상이 장령 변경우(邊景祐)에게 이르기를,
"여러 해 전부터 제주도 백성들이 계속되는 흉년으로 굶주린다고 하여, 나의 마음에 밤낮으로 잊지 못하고 있다. 이 섬 백성들의 고충과 폐단을 낱낱이 진술하도록 하라."
하니, 경우가 아뢰기를,
"섬에 사는 백성들은 조정에서 마치 다친 사람을 보살피듯 하는 지극한 은덕을 많이 입고 한 사람도 굶어 죽거나 여윈 사람 없이 모두들 편안히 살면서 생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 사람이 마침 연석(筵席)에 올라왔는데 어찌 한마디의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모쪼록 평소에 듣고 본 것을 진술하라."
하니, 경우가 아뢰기를,
"조정이, 제주도의 재해(災害)가 든 해에 육지로 옮아가는 폐단을 염려하여 본전을 임피현(臨陂縣)에 내어주고 나포창(羅鋪倉)을 설치하여 해마다 그 이자를 취해서 육지에서 쌀을 사가지고 가서 먹여주었습니다. 연전에 제주도의 무신(武臣) 김귀택(金貴澤)이, 쌀을 실은 배가 칠산(七山) 앞바다에서 파선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여 곧장 나주(羅州)의 제민창(濟民倉)으로 운반하여 들여줄 것을 요청했다가 특별 윤허를 받고부터는 배가 파선되는 폐단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 본전이 어디로 가버렸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만일 흉년을 당하면 전라 감영에서 각 고을에 푼 환자[還上]의 모조(耗條)를 떼어 주는데 거의가 쭉정이니, 애당초 본전을 주어 창고를 설치했던 뜻이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본도 감영에 분부하여 그 본전을 찾아내어 나주로 이송하고 또 제주목에서 감색(監色)을 뽑아 보내어 나주 관원과 함께 입회하여 돈을 나누어주고 이자를 받아 섬 백성들의 굶주림을 구제하는 밑천으로 삼도록 하소서."
하니, 상이 묘당(廟堂)에 명하여 일찍이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사람에게 물어보고 여쭈어서 처리하게 하였다. 또 경우에게 이르기를,
"대신(臺臣)으로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한 지 오래되었으니, 현재 행하는 정사의 잘잘못과 서울 백성들의 고통에 대하여 필시 보고 들은 것이 있을 것이다. 위로는 임금의 잘못으로부터 아래로는 백성들의 고통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숨김없이 진술하라. 전(殿)에 나와 앉은 지 오래되었지만 내 피곤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하였으나, 경우가 대답을 못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38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402면
원문
○丁巳/次對。 上謂掌令邊景祐曰: "年來島民荐飢, 予之憧憧一念, 夙宵靡已。 島中苦瘼, 一一陳達。" 景祐曰: "島民厚蒙朝家如傷若保之至仁盛德, 無一人捐瘠, 擧皆安居奠業。" 上曰: "遐土之人, 適登筵席, 何可無一言? 須以平日所聞見陳達。" 景祐曰: "朝家爲慮耽羅災年移轉之弊, 出給本錢於臨陂縣, 設羅鋪倉, 年年取殖, 貿米往哺矣。 年前濟州武臣金貴澤, 以臭載之患, 多在於七山洋, 仰請直爲運納於羅州 濟民倉, 特蒙允許, 自是無臭載之弊。 但其本錢, 則未知歸於何處。 若當凶年, 自全羅監營, 以各邑還上耗條移劃, 而擧皆皮糲之穀。 當初給本錢設倉之意, 果安在哉? 請分付本道監營, 推其本錢, 移送羅州, 又自濟州牧, 擇送監色, 與羅州官, 眼同俵錢取息, 以爲島民救荒之資。" 上命廟堂, 問于曾經道伯, 稟處。 又謂景祐曰: "臺臣之從宦京洛久矣, 時政得失、都民疾苦, 必有所見聞者。 上自袞闕, 下至民隱, 一一直陳。 臨殿雖久, 予不以爲勞矣。" 景祐不能對。
- 【태백산사고본】 38책 38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402면
정조 17년 (1793) 7월 26일
국역
차대(次對)하였다. 상이 장령 변경우(邊景祐)에게 이르기를,
"여러 해 전부터 제주도 백성들이 계속되는 흉년으로 굶주린다고 하여, 나의 마음에 밤낮으로 잊지 못하고 있다. 이 섬 백성들의 고충과 폐단을 낱낱이 진술하도록 하라."
하니, 경우가 아뢰기를,
"섬에 사는 백성들은 조정에서 마치 다친 사람을 보살피듯 하는 지극한 은덕을 많이 입고 한 사람도 굶어 죽거나 여윈 사람 없이 모두들 편안히 살면서 생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 사람이 마침 연석(筵席)에 올라왔는데 어찌 한마디의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모쪼록 평소에 듣고 본 것을 진술하라."
하니, 경우가 아뢰기를,
"조정이, 제주도의 재해(災害)가 든 해에 육지로 옮아가는 폐단을 염려하여 본전을 임피현(臨陂縣)에 내어주고 나포창(羅鋪倉)을 설치하여 해마다 그 이자를 취해서 육지에서 쌀을 사가지고 가서 먹여주었습니다. 연전에 제주도의 무신(武臣) 김귀택(金貴澤)이, 쌀을 실은 배가 칠산(七山) 앞바다에서 파선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여 곧장 나주(羅州)의 제민창(濟民倉)으로 운반하여 들여줄 것을 요청했다가 특별 윤허를 받고부터는 배가 파선되는 폐단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 본전이 어디로 가버렸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만일 흉년을 당하면 전라 감영에서 각 고을에 푼 환자[還上]의 모조(耗條)를 떼어 주는데 거의가 쭉정이니, 애당초 본전을 주어 창고를 설치했던 뜻이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본도 감영에 분부하여 그 본전을 찾아내어 나주로 이송하고 또 제주목에서 감색(監色)을 뽑아 보내어 나주 관원과 함께 입회하여 돈을 나누어주고 이자를 받아 섬 백성들의 굶주림을 구제하는 밑천으로 삼도록 하소서."
하니, 상이 묘당(廟堂)에 명하여 일찍이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사람에게 물어보고 여쭈어서 처리하게 하였다. 또 경우에게 이르기를,
"대신(臺臣)으로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한 지 오래되었으니, 현재 행하는 정사의 잘잘못과 서울 백성들의 고통에 대하여 필시 보고 들은 것이 있을 것이다. 위로는 임금의 잘못으로부터 아래로는 백성들의 고통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숨김없이 진술하라. 전(殿)에 나와 앉은 지 오래되었지만 내 피곤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하였으나, 경우가 대답을 못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38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402면
원문
○丁巳/次對。 上謂掌令邊景祐曰: "年來島民荐飢, 予之憧憧一念, 夙宵靡已。 島中苦瘼, 一一陳達。" 景祐曰: "島民厚蒙朝家如傷若保之至仁盛德, 無一人捐瘠, 擧皆安居奠業。" 上曰: "遐土之人, 適登筵席, 何可無一言? 須以平日所聞見陳達。" 景祐曰: "朝家爲慮耽羅災年移轉之弊, 出給本錢於臨陂縣, 設羅鋪倉, 年年取殖, 貿米往哺矣。 年前濟州武臣金貴澤, 以臭載之患, 多在於七山洋, 仰請直爲運納於羅州 濟民倉, 特蒙允許, 自是無臭載之弊。 但其本錢, 則未知歸於何處。 若當凶年, 自全羅監營, 以各邑還上耗條移劃, 而擧皆皮糲之穀。 當初給本錢設倉之意, 果安在哉? 請分付本道監營, 推其本錢, 移送羅州, 又自濟州牧, 擇送監色, 與羅州官, 眼同俵錢取息, 以爲島民救荒之資。" 上命廟堂, 問于曾經道伯, 稟處。 又謂景祐曰: "臺臣之從宦京洛久矣, 時政得失、都民疾苦, 必有所見聞者。 上自袞闕, 下至民隱, 一一直陳。 臨殿雖久, 予不以爲勞矣。" 景祐不能對。
- 【태백산사고본】 38책 38권 4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402면
원본
정조 17년 (1793) 7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