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34권, 정조 16년 2월 17일 丙辰 4/5 기사 / 1792년 청 건륭(乾隆) 57년
사직 정창순이 홍낙안과 무관함을 상소하다
국역
사직(司直) 정창순(鄭昌順)이 상소하기를,
"신이 병으로 누워 있는 중에 삼가 연교(筵敎)가 내린 것을 보았는데, 홍낙안(洪樂安)의 문계(問啓) 중에 신의 이름을 끌어댄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이 그 말의 천심(淺深)을 상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도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임금에게 고하는 말에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이처럼 극심하게 하였으니,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으며 무슨 말인들 지어내지 못하겠습니까. 신의 자식이 과거장의 일로 낙안과 서로 알게 되었으므로 신도 또한 그 얼굴을 알게 되었습니다. 금번 장서(長書) 사건이 생긴 뒤에도 신은 소문을 듣지 못하였다가 대간의 계사가 나오고서야 낙안이 정승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말을 비로소 들어 알았으며 이른바 장서(長書)라는 것은 그때까지도 보지 못했습니다. 한참 뒤에 신의 자식이 와서 말하기를 ‘아까 홍낙안이 찾아왔는데 그 장서를 소매에 넣어 가지고 자뭇 과시하는 뜻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후 늦게서야 등초본을 빌려 보았으니, 이는 모두 대계(臺啓)에서 등초하여 전한 뒤였습니다.
며칠 후에 낙안이 와서 말하기를 ‘정원(政院)에서 오는데 지나는 길에 잠시 들렸다.’고 하기에, 신이 무슨 일로 정원에 들어갔었느냐고 물어보니, 그가 말하기를 ‘서양 서적 간행에 어느 사람이 주간했는지 지적하여 고하라 하기에 내가 현재 탐문하는 중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동배들은 어쩌면 서양학을 하는 무리들이 그리도 많은가. 그대가 참으로 상세히 알면 지적하여 말해보겠는가?’ 하니, 그가 이에 낱낱이 들어가며 대답하였습니다. 신이 또 말하기를 ‘그대가 정승들과는 반드시 자주 만날텐데 진실로 할 말이 있으면 어찌하여 대면해서 말하지 않고 편지로 하였는가?’ 하니, 그는 ‘내가 수차 집으로 찾아갔으나 모두 만나보지 못했으므로 편지로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그와 말을 주고받은 것이 이와 같을 뿐이고, 이 또한 장서(長書)가 이미 알려지고 조사 명령이 이미 내려진 뒤였습니다. 장서의 일이 있기 전에는 당초부터 그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고 신은 장서의 일이 있은 지 한참 뒤에야 비로소 얻어 보았는데, 지금 신과 상의했다고 말하는 것이 어찌 이치에 닿는 말이겠습니까. 그가 이미 남모르게 사주를 받아 기밀을 감추고 이단을 물리친다는 명분을 가탁하여 남몰래 모함하려는 작태를 행한 정상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 밝게 내려다보는데, 지금 청문(淸問)하는 아래에서 또 간교한 꾀를 내어 참으로 사주를 받은 곳은 비밀로 숨긴 채 말하지 않고 우연히 만난 사람을 끌어대어 대답하여 저쪽에서는 자취를 없애고 이쪽으로 화를 옮겨놓으려고 하니, 간사한 정상은 마치 마음속을 들여다 보는 듯합니다. 벼슬을 지내는 자의 반열에 이처럼 간사한 무리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 세도(世道)를 생각함에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그 편지는 이미 사학(邪學)을 배척한다 칭탁하였고 그 말은 또 사도(斯道)를 호위하는 듯하였으니 조정에서 처리함이 이와 같은 것은 참으로 당연하지만 그의 판단이 아니고 반드시 시킨 자가 있을 것이니, 가증스러운 것은 정상과 작태입니다. 지난번 궁연(宮筵)에서 대략 이런 뜻을 진달하였으니, 삼가 성상께서도 아마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신이 참으로 참여하여 알았다면 어찌 차마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신이 임금을 섬기는 하나의 절개는 오직 ‘속이지 않는다. [不欺]’는 두 글자입니다. 지난 뇌사(雷肆)015) 에 있을 때부터 지금 거의 3기(三紀)가 되었으나 일찍이 자취가 기밀에 관계되거나 이름이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었는데, 백발이 되어 죽어가는 말년에 불행하게도 이 간사한 무리와 우연히 한 번 만난 것 때문에 암암리에 농락을 당하여 스스로 임금을 속인 죄에 빠지게 되었으니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봄에 차라리 죽고 싶습니다. 지금 만약 낙안(樂安)에게, 그의 장서(長書)를 신과 상의했다고 했는데 편지로 의논하였는지 직접 대면하여 의논하였는지 어느 때에 했는지 한번 물어보기만 하면 한 마디 말로 분변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낙안이 대답한 말은 바로 홍인호(洪仁浩)가 사적으로 물어 앙달한 것입니다. 낙안과 인호는 평소 좋게 지내 몸은 다르나 마음은 같으니, 그들이 얽어매는 바가 어느 곳인들 이르지 않겠습니까마는, 하늘이 위에 있는데 감히 이런 말을 한단 말입니까.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신의 상소를 내려보내 다시 낙안에게 물어보아 만약 신의 말이 털끝 만치라도 서로 틀린다면 부질(鈇鑕)의 형벌을 내리소서."
하니, 지금은 이 일에 대해 알고 있다고 비답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277면
- [註 015] 뇌사(雷肆) : 왕세자가 글을 강론하는 곳.
원문
○司直鄭昌順上疏曰:
臣於病伏中, 伏奉筵敎下者, 以洪樂安問啓中, 語有攙擧臣名。 臣未詳其遣辭淺深, 而渠亦人耳。 告君之辭, 白地打謊, 至於此極, 則何事不可爲, 何言不可做乎? 臣之子, 以場屋間事, 興樂安相知, 故臣亦知其面矣。 今番長書事後, 臣則未聞, 及夫臺啓之出, 樂安抵書揆地之說, 始得聞知, 而所謂長書, 猶未得見。 久之, 臣子來言: "俄者, 洪樂安來訪, 袖其長書, 頗有誇示之意。" 云。 其後謄本晩始借見, 此皆臺啓謄傳之後也。 居數日, 樂安來言: "自政院來, 歷路暫入。" 云, 臣問入院何事, 則渠云: "西書刊行, 何人主之, 使之指告, 故渠方探問。" 臣笑曰: "君之儕類, 何多西學之徒也? 君果詳知, 有此指陳否?" 渠乃歷數以對。 臣又曰: "君於揆地, 相見必頻, 苟有可言, 何不以面而以書耶?" 渠之數次及門, 俁未逢見, 故以書抵之云。 臣之與渠酬酢, 止於如此, 此又長書己徹, 査命已下之後也。 渠於長書之前, 初不見面, 臣於長書之後, 久始得覽, 今乃曰與臣相議者, 是豈近理之言乎? 渠旣陰受指囑, 暗蕆機括, 假托闢曄之義, 潛售傾軋之態, 情狀莫逃。 天日赫臨, 今於淸問之下, 又生奸狡之謀, 眞箇受嗾之處, 秘諱不言, 邂逅相逢之人, 柂引以對, 欲爲拔跡於彼, 移疾於此, 奸情慝態, 如見肺肝。 不意衿紳之列, 有此回邪之輩, 言念世道, 良亦寒心。 其書旣托斥邪, 其言亦似衛道, 朝家處分, 固宜如是, 而非渠自辦, 必有指使, 可惡者情態耳。 向於宮筵, 略陳此意, 伏想宸聰, 亦或記有。 臣苟與知, 忍爲此言? 臣之事君一節, 惟是不欺二字。 粤自雷肆, 今幾三紀, 未嘗跡涉機關, 名騰口語, 乃於白首垂死之年, 不幸與此奸細之徒, 偶一識面, 暗地賣弄, 自陷於欺君之科, 俯仰天地, 寧欲無吪。 今若一問樂安, 以渠之長書, 與臣相議云, 書議面議, 果在何時, 一言之下, 可以卞正。 今此樂安所對之語, 卽是洪仁浩之私問仰達者。 樂安、仁浩, 平日情好, 異身同腸, 其所綢繆, 何所不至, 而神天在上, 敢爲是言耶? 惟願下臣疏辭, 更問樂安, 如使臣言, 一毫相左, 乞伏鈇鑕。
批以今則本事知之。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277면
국역
사직(司直) 정창순(鄭昌順)이 상소하기를,
"신이 병으로 누워 있는 중에 삼가 연교(筵敎)가 내린 것을 보았는데, 홍낙안(洪樂安)의 문계(問啓) 중에 신의 이름을 끌어댄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이 그 말의 천심(淺深)을 상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도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임금에게 고하는 말에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이처럼 극심하게 하였으니,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으며 무슨 말인들 지어내지 못하겠습니까. 신의 자식이 과거장의 일로 낙안과 서로 알게 되었으므로 신도 또한 그 얼굴을 알게 되었습니다. 금번 장서(長書) 사건이 생긴 뒤에도 신은 소문을 듣지 못하였다가 대간의 계사가 나오고서야 낙안이 정승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말을 비로소 들어 알았으며 이른바 장서(長書)라는 것은 그때까지도 보지 못했습니다. 한참 뒤에 신의 자식이 와서 말하기를 ‘아까 홍낙안이 찾아왔는데 그 장서를 소매에 넣어 가지고 자뭇 과시하는 뜻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후 늦게서야 등초본을 빌려 보았으니, 이는 모두 대계(臺啓)에서 등초하여 전한 뒤였습니다.
며칠 후에 낙안이 와서 말하기를 ‘정원(政院)에서 오는데 지나는 길에 잠시 들렸다.’고 하기에, 신이 무슨 일로 정원에 들어갔었느냐고 물어보니, 그가 말하기를 ‘서양 서적 간행에 어느 사람이 주간했는지 지적하여 고하라 하기에 내가 현재 탐문하는 중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동배들은 어쩌면 서양학을 하는 무리들이 그리도 많은가. 그대가 참으로 상세히 알면 지적하여 말해보겠는가?’ 하니, 그가 이에 낱낱이 들어가며 대답하였습니다. 신이 또 말하기를 ‘그대가 정승들과는 반드시 자주 만날텐데 진실로 할 말이 있으면 어찌하여 대면해서 말하지 않고 편지로 하였는가?’ 하니, 그는 ‘내가 수차 집으로 찾아갔으나 모두 만나보지 못했으므로 편지로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그와 말을 주고받은 것이 이와 같을 뿐이고, 이 또한 장서(長書)가 이미 알려지고 조사 명령이 이미 내려진 뒤였습니다. 장서의 일이 있기 전에는 당초부터 그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고 신은 장서의 일이 있은 지 한참 뒤에야 비로소 얻어 보았는데, 지금 신과 상의했다고 말하는 것이 어찌 이치에 닿는 말이겠습니까. 그가 이미 남모르게 사주를 받아 기밀을 감추고 이단을 물리친다는 명분을 가탁하여 남몰래 모함하려는 작태를 행한 정상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 밝게 내려다보는데, 지금 청문(淸問)하는 아래에서 또 간교한 꾀를 내어 참으로 사주를 받은 곳은 비밀로 숨긴 채 말하지 않고 우연히 만난 사람을 끌어대어 대답하여 저쪽에서는 자취를 없애고 이쪽으로 화를 옮겨놓으려고 하니, 간사한 정상은 마치 마음속을 들여다 보는 듯합니다. 벼슬을 지내는 자의 반열에 이처럼 간사한 무리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 세도(世道)를 생각함에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그 편지는 이미 사학(邪學)을 배척한다 칭탁하였고 그 말은 또 사도(斯道)를 호위하는 듯하였으니 조정에서 처리함이 이와 같은 것은 참으로 당연하지만 그의 판단이 아니고 반드시 시킨 자가 있을 것이니, 가증스러운 것은 정상과 작태입니다. 지난번 궁연(宮筵)에서 대략 이런 뜻을 진달하였으니, 삼가 성상께서도 아마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신이 참으로 참여하여 알았다면 어찌 차마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신이 임금을 섬기는 하나의 절개는 오직 ‘속이지 않는다. [不欺]’는 두 글자입니다. 지난 뇌사(雷肆)015) 에 있을 때부터 지금 거의 3기(三紀)가 되었으나 일찍이 자취가 기밀에 관계되거나 이름이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었는데, 백발이 되어 죽어가는 말년에 불행하게도 이 간사한 무리와 우연히 한 번 만난 것 때문에 암암리에 농락을 당하여 스스로 임금을 속인 죄에 빠지게 되었으니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봄에 차라리 죽고 싶습니다. 지금 만약 낙안(樂安)에게, 그의 장서(長書)를 신과 상의했다고 했는데 편지로 의논하였는지 직접 대면하여 의논하였는지 어느 때에 했는지 한번 물어보기만 하면 한 마디 말로 분변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낙안이 대답한 말은 바로 홍인호(洪仁浩)가 사적으로 물어 앙달한 것입니다. 낙안과 인호는 평소 좋게 지내 몸은 다르나 마음은 같으니, 그들이 얽어매는 바가 어느 곳인들 이르지 않겠습니까마는, 하늘이 위에 있는데 감히 이런 말을 한단 말입니까. 원하건대 성상께서는 신의 상소를 내려보내 다시 낙안에게 물어보아 만약 신의 말이 털끝 만치라도 서로 틀린다면 부질(鈇鑕)의 형벌을 내리소서."
하니, 지금은 이 일에 대해 알고 있다고 비답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277면
- [註 015] 뇌사(雷肆) : 왕세자가 글을 강론하는 곳.
원문
○司直鄭昌順上疏曰:
臣於病伏中, 伏奉筵敎下者, 以洪樂安問啓中, 語有攙擧臣名。 臣未詳其遣辭淺深, 而渠亦人耳。 告君之辭, 白地打謊, 至於此極, 則何事不可爲, 何言不可做乎? 臣之子, 以場屋間事, 興樂安相知, 故臣亦知其面矣。 今番長書事後, 臣則未聞, 及夫臺啓之出, 樂安抵書揆地之說, 始得聞知, 而所謂長書, 猶未得見。 久之, 臣子來言: "俄者, 洪樂安來訪, 袖其長書, 頗有誇示之意。" 云。 其後謄本晩始借見, 此皆臺啓謄傳之後也。 居數日, 樂安來言: "自政院來, 歷路暫入。" 云, 臣問入院何事, 則渠云: "西書刊行, 何人主之, 使之指告, 故渠方探問。" 臣笑曰: "君之儕類, 何多西學之徒也? 君果詳知, 有此指陳否?" 渠乃歷數以對。 臣又曰: "君於揆地, 相見必頻, 苟有可言, 何不以面而以書耶?" 渠之數次及門, 俁未逢見, 故以書抵之云。 臣之與渠酬酢, 止於如此, 此又長書己徹, 査命已下之後也。 渠於長書之前, 初不見面, 臣於長書之後, 久始得覽, 今乃曰與臣相議者, 是豈近理之言乎? 渠旣陰受指囑, 暗蕆機括, 假托闢曄之義, 潛售傾軋之態, 情狀莫逃。 天日赫臨, 今於淸問之下, 又生奸狡之謀, 眞箇受嗾之處, 秘諱不言, 邂逅相逢之人, 柂引以對, 欲爲拔跡於彼, 移疾於此, 奸情慝態, 如見肺肝。 不意衿紳之列, 有此回邪之輩, 言念世道, 良亦寒心。 其書旣托斥邪, 其言亦似衛道, 朝家處分, 固宜如是, 而非渠自辦, 必有指使, 可惡者情態耳。 向於宮筵, 略陳此意, 伏想宸聰, 亦或記有。 臣苟與知, 忍爲此言? 臣之事君一節, 惟是不欺二字。 粤自雷肆, 今幾三紀, 未嘗跡涉機關, 名騰口語, 乃於白首垂死之年, 不幸與此奸細之徒, 偶一識面, 暗地賣弄, 自陷於欺君之科, 俯仰天地, 寧欲無吪。 今若一問樂安, 以渠之長書, 與臣相議云, 書議面議, 果在何時, 一言之下, 可以卞正。 今此樂安所對之語, 卽是洪仁浩之私問仰達者。 樂安、仁浩, 平日情好, 異身同腸, 其所綢繆, 何所不至, 而神天在上, 敢爲是言耶? 惟願下臣疏辭, 更問樂安, 如使臣言, 一毫相左, 乞伏鈇鑕。
批以今則本事知之。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27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