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31권, 정조 14년 12월 27일 癸酉 3/7 기사 / 1790년 청 건륭(乾隆) 55년
좌의정 채제공이 죄인 신기현이 육지로 나온 일에 대해 감사의 논죄를 청하다
국역
차대(次對)가 있었다. 좌의정 채제공이 아뢰기를,
"어제 있었던 일로 말하면 승지를 교체하고 파면시킴으로써 분위기가 쓸쓸하여 걱정되고 개탄스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앞서 내린 전교는 정말 오늘의 신하들로서는 차마 들을 수도 없고 차마 읽을 수도 없는 하교였습니다. 지금 신기현(申驥顯)의 일에 대하여 온 조정의 신료들이 입을 가지고도 말이 없으니 비록 감히 번거롭게 진술할 수는 없으나, 구구한 의견이 있는 이상 어찌 감히 우러러 말씀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기현이 올라온 것은 뜻밖의 일입니다. 명령이 정원을 거치지 않았고 오가는 것이 조정과 관계하지 않았으니, 이 어찌 그지없이 해괴한 일이 아닙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마패를 이미 정원에서 내어주고도 도리어 감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니, 이것이 몹시 승지를 해괴하게 여긴 이유이다."
하자, 채제공이 아뢰기를,
"신기현이 나온 것을 신은 어제서야 처음 알았습니다. 대개 바다의 섬에 있던 죄인이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와 본도의 4, 5백 리를 거쳐 그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하였으니, 감사는 결코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였을 리가 없습니다. 실로 놀랍고 통분한 생각이 있었다면 어찌 화급히 치계하여 그 연유를 알아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끝내 한마디의 규명도 없어 조정 신료들로 하여금 막연히 이런 일이 있음을 알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어제 전교가 있은 후에야 비로소 서로 돌아보면서 놀라고 한탄하였습니다. 나라의 체면과 신하의 본분으로 비추어 볼때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런 것을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앞으로의 우려는 장차 어떤 지경에 이를지 모르겠습니다. 전라 감사 윤시동(尹蓍東)에 대해서는 관직 삭탈의 율문을 적용하고 지방관 역시 함께 논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지방관이 만약 혹시라도 감영에 보고하였는데도 감사가 못 들은 체하였다면 이는 지방관의 죄가 아닙니다. 그 보고의 여부는 새 감사가 부임한 후 그로 하여금 조사하게 한 다음에 다시 논죄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비록 경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하교하려 하였다. 이번 전라 감사의 일은 크게 잘못되었음을 면할 수 없다. 역말을 타고 올라오라는 유지가 신기현이 있는 곳으로 곧바로 내려갔으니 처음에 몰랐다는 것은 혹시 그럴 법하나, 바다를 건너온 뒤에는 필시 고을의 보고가 있고 진영의 통보가 있었을 것이다. 경이 아뢴 말 가운데 감사가 그 까닭을 물어본다는 것은 명령을 어기는 데 가까운 일로서 비록 감사로서 감히 할 일은 아니지만, 데려온 실태를 하나하나 들어 보고하지 않은 것은 나라의 체면으로나 뒷날의 폐단으로 보아 그 관계되는 것이 작지 않다. 지방관이 감영에 보고하였는가의 여부는 새 감사를 시켜 사실을 조사하게 할 필요가 없고, 해당 감사를 의금부로 하여금 잡아다 심문하여 죄를 주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31권 63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192면
원문
○次對。 左議政蔡濟恭曰: "昨日事, 承宣遞罷, 景色愁沮, 竊不勝憂慨之至。 向者傳敎, 卽爲今日臣子者不忍聞、不忍讀之敎。 今於驥顯一事, 滿廷臣僚, 有口無言, 雖不敢煩陳, 第有區區愚見, 敢不仰達乎? 驥顯上來之擧, 實非所料。 命令不由於政院, 去來不關於朝廷, 豈不萬萬驚駭乎?" 上曰: "馬牌出給, 旣自政院, 反歸罪於道臣, 此所以切駭於承宣者矣。" 濟恭曰: "驥顯之出來, 臣昨始知之。 蓋海島罪人乘船出陸, 經本道四五百里, 至還其家, 道臣決無不聞不知之理。 苟有驚憤之心, 豈不火急馳啓, 仰請其故, 而終無一字皂白,使在廷臣僚, 漠然不知有此事, 昨日傳敎之後, 始乃相顧駭歎, 揆以國體臣分, 萬萬寒心。 此而置之, 日後之慮, 將無所不至。 全羅監司尹蓍東, 施以削職之典。 地方官亦當一體論罪, 而但念地方官, 若或馳報營門, 道臣聽若不聞, 則此非地方官之罪, 其馳報與否, 待新伯赴任, 使之査問後, 更爲論勘。" 敎曰: "雖非卿言, 予欲下敎矣。 今番院伯事, 未免大做錯。 乘馹有旨, 直下於申驥顯所在處, 則當初不聞知, 容或似然, 而涉海出來之後, 必有邑報鎭牒, 則卿奏中仰請其故云云, 近於方命。 雖非藩臣所敢爲, 而至於領來形止之不爲枚擧登聞, 國體後弊, 所關非細。 地方官報營與否, 不必令新伯査實, 當該道臣, 仍令該府, 拿問勘罪。"
- 【태백산사고본】 31책 31권 63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192면
정조실록31권, 정조 14년 12월 27일 癸酉 3/7 기사 / 1790년 청 건륭(乾隆) 55년
좌의정 채제공이 죄인 신기현이 육지로 나온 일에 대해 감사의 논죄를 청하다
국역
차대(次對)가 있었다. 좌의정 채제공이 아뢰기를,
"어제 있었던 일로 말하면 승지를 교체하고 파면시킴으로써 분위기가 쓸쓸하여 걱정되고 개탄스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앞서 내린 전교는 정말 오늘의 신하들로서는 차마 들을 수도 없고 차마 읽을 수도 없는 하교였습니다. 지금 신기현(申驥顯)의 일에 대하여 온 조정의 신료들이 입을 가지고도 말이 없으니 비록 감히 번거롭게 진술할 수는 없으나, 구구한 의견이 있는 이상 어찌 감히 우러러 말씀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기현이 올라온 것은 뜻밖의 일입니다. 명령이 정원을 거치지 않았고 오가는 것이 조정과 관계하지 않았으니, 이 어찌 그지없이 해괴한 일이 아닙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마패를 이미 정원에서 내어주고도 도리어 감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니, 이것이 몹시 승지를 해괴하게 여긴 이유이다."
하자, 채제공이 아뢰기를,
"신기현이 나온 것을 신은 어제서야 처음 알았습니다. 대개 바다의 섬에 있던 죄인이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와 본도의 4, 5백 리를 거쳐 그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하였으니, 감사는 결코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였을 리가 없습니다. 실로 놀랍고 통분한 생각이 있었다면 어찌 화급히 치계하여 그 연유를 알아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끝내 한마디의 규명도 없어 조정 신료들로 하여금 막연히 이런 일이 있음을 알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어제 전교가 있은 후에야 비로소 서로 돌아보면서 놀라고 한탄하였습니다. 나라의 체면과 신하의 본분으로 비추어 볼때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런 것을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앞으로의 우려는 장차 어떤 지경에 이를지 모르겠습니다. 전라 감사 윤시동(尹蓍東)에 대해서는 관직 삭탈의 율문을 적용하고 지방관 역시 함께 논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지방관이 만약 혹시라도 감영에 보고하였는데도 감사가 못 들은 체하였다면 이는 지방관의 죄가 아닙니다. 그 보고의 여부는 새 감사가 부임한 후 그로 하여금 조사하게 한 다음에 다시 논죄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비록 경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하교하려 하였다. 이번 전라 감사의 일은 크게 잘못되었음을 면할 수 없다. 역말을 타고 올라오라는 유지가 신기현이 있는 곳으로 곧바로 내려갔으니 처음에 몰랐다는 것은 혹시 그럴 법하나, 바다를 건너온 뒤에는 필시 고을의 보고가 있고 진영의 통보가 있었을 것이다. 경이 아뢴 말 가운데 감사가 그 까닭을 물어본다는 것은 명령을 어기는 데 가까운 일로서 비록 감사로서 감히 할 일은 아니지만, 데려온 실태를 하나하나 들어 보고하지 않은 것은 나라의 체면으로나 뒷날의 폐단으로 보아 그 관계되는 것이 작지 않다. 지방관이 감영에 보고하였는가의 여부는 새 감사를 시켜 사실을 조사하게 할 필요가 없고, 해당 감사를 의금부로 하여금 잡아다 심문하여 죄를 주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1책 31권 63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192면
원문
○次對。 左議政蔡濟恭曰: "昨日事, 承宣遞罷, 景色愁沮, 竊不勝憂慨之至。 向者傳敎, 卽爲今日臣子者不忍聞、不忍讀之敎。 今於驥顯一事, 滿廷臣僚, 有口無言, 雖不敢煩陳, 第有區區愚見, 敢不仰達乎? 驥顯上來之擧, 實非所料。 命令不由於政院, 去來不關於朝廷, 豈不萬萬驚駭乎?" 上曰: "馬牌出給, 旣自政院, 反歸罪於道臣, 此所以切駭於承宣者矣。" 濟恭曰: "驥顯之出來, 臣昨始知之。 蓋海島罪人乘船出陸, 經本道四五百里, 至還其家, 道臣決無不聞不知之理。 苟有驚憤之心, 豈不火急馳啓, 仰請其故, 而終無一字皂白,使在廷臣僚, 漠然不知有此事, 昨日傳敎之後, 始乃相顧駭歎, 揆以國體臣分, 萬萬寒心。 此而置之, 日後之慮, 將無所不至。 全羅監司尹蓍東, 施以削職之典。 地方官亦當一體論罪, 而但念地方官, 若或馳報營門, 道臣聽若不聞, 則此非地方官之罪, 其馳報與否, 待新伯赴任, 使之査問後, 更爲論勘。" 敎曰: "雖非卿言, 予欲下敎矣。 今番院伯事, 未免大做錯。 乘馹有旨, 直下於申驥顯所在處, 則當初不聞知, 容或似然, 而涉海出來之後, 必有邑報鎭牒, 則卿奏中仰請其故云云, 近於方命。 雖非藩臣所敢爲, 而至於領來形止之不爲枚擧登聞, 國體後弊, 所關非細。 地方官報營與否, 不必令新伯査實, 當該道臣, 仍令該府, 拿問勘罪。"
- 【태백산사고본】 31책 31권 63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19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