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29권, 정조 14년 3월 22일 壬寅 3/3 기사 / 1790년 청 건륭(乾隆) 55년
유학 이악겸이 문정공 김인후의 문묘 종사를 청하니 비답하다
국역
방외(方外) 유생(儒生)인 유학(幼學) 이악겸(李岳謙) 등이 상소하기를,
"선정신(先正臣) 문정공(文靖公) 김인후(金麟厚)는 그 도덕(道德)이 실로 문묘(文廟)에 함께 제향해야 할 사람입니다. 선정신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의 인물 가운데 도덕과 절의와 문장을 모두 지니고 치우침이 없는 사람은 얼마 안 된다. 하늘이 우리 나라를 도와 하서(河西) 김선생(金先生)을 태어나게 하였으니, 그는 거의 이에 가까운 분이다.’고 하였으며, 선정신 문성공(文成公) 이이(李珥)도 말하기를 ‘맑은 물에 핀 연꽃같고 비 갠 뒤 맑은 바람 속의 밝은 달과 같다. 출처(出處)가 올바르기로는 우리 나라에서 그와 견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문묘에 종향(從享)된 대현(大賢)으로서 이렇게까지 그를 존경하고 찬미하였으니, 그를 종향하는 의논에 대해 누가 감히 이러쿵 저러쿵 하겠습니까. 삼가 선정신 문정공을 문묘에 종사(從祀)하는 전례(典禮)를 어서 거행함으로써, 우리 유도(儒道)를 존중하고 세교(世敎)를 빛내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문정공의 도학(道學)·문장(文章)과 출처(出處)의 대절(大節)에 대해서 존숭하고 추모하는 것이 어찌 너희들만 못하겠는가. 그러나 성묘(聖廟)에 올려 배향(配享)하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전례(典禮)인가. 이에 앞서 여러 선비들을 문묘에 종사(從祀)할 적에도 또한 상소를 올린 즉시 윤허를 한 적은 없었다. 우리 나라의 방전(邦典)이 그러한 것이다. 이것은 사문(斯文)을 높이고 성묘(聖廟)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내가 정중하게 여기면서 선뜻 허락하지 못하는 것도 역시 이러한 뜻에서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29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110면
원문
○方外儒生幼學李岳謙等上疏曰:
先正臣文靖公 金麟厚道德, 實合於從享。 先正臣文正公 宋時烈有曰: "國朝人物, 道德節義, 文章兼有而不偏者無幾矣。 天佑我東, 鍾出河西 金先生, 殆庶幾矣。" 先正臣文成公 李珥亦曰: "淸水芙蓉, 光風霽月。 出處之正, 海東無與倫比。" 夫以從享之大賢, 其所景仰而讃美, 至於如此, 則其於從享之議, 孰敢間然? 伏乞亟擧先正臣文靖公從祀文廟之典, 以重吾道, 以光世敎。
批曰: "文靖之道學文章、出處大節, 尊尙而感慕之者, 豈不若爾等? 躋配聖廟, 是何等重典? 前此諸儒之從祀也, 亦未始有疏卽允, 我朝邦典則然。 所以尊斯文也, 尊聖廟也。 予所鄭重而難愼者, 亦此意。"
- 【태백산사고본】 29책 29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110면
정조 14년 (1790) 3월 22일
국역
방외(方外) 유생(儒生)인 유학(幼學) 이악겸(李岳謙) 등이 상소하기를,
"선정신(先正臣) 문정공(文靖公) 김인후(金麟厚)는 그 도덕(道德)이 실로 문묘(文廟)에 함께 제향해야 할 사람입니다. 선정신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의 인물 가운데 도덕과 절의와 문장을 모두 지니고 치우침이 없는 사람은 얼마 안 된다. 하늘이 우리 나라를 도와 하서(河西) 김선생(金先生)을 태어나게 하였으니, 그는 거의 이에 가까운 분이다.’고 하였으며, 선정신 문성공(文成公) 이이(李珥)도 말하기를 ‘맑은 물에 핀 연꽃같고 비 갠 뒤 맑은 바람 속의 밝은 달과 같다. 출처(出處)가 올바르기로는 우리 나라에서 그와 견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문묘에 종향(從享)된 대현(大賢)으로서 이렇게까지 그를 존경하고 찬미하였으니, 그를 종향하는 의논에 대해 누가 감히 이러쿵 저러쿵 하겠습니까. 삼가 선정신 문정공을 문묘에 종사(從祀)하는 전례(典禮)를 어서 거행함으로써, 우리 유도(儒道)를 존중하고 세교(世敎)를 빛내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문정공의 도학(道學)·문장(文章)과 출처(出處)의 대절(大節)에 대해서 존숭하고 추모하는 것이 어찌 너희들만 못하겠는가. 그러나 성묘(聖廟)에 올려 배향(配享)하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전례(典禮)인가. 이에 앞서 여러 선비들을 문묘에 종사(從祀)할 적에도 또한 상소를 올린 즉시 윤허를 한 적은 없었다. 우리 나라의 방전(邦典)이 그러한 것이다. 이것은 사문(斯文)을 높이고 성묘(聖廟)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내가 정중하게 여기면서 선뜻 허락하지 못하는 것도 역시 이러한 뜻에서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29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110면
원문
○方外儒生幼學李岳謙等上疏曰:
先正臣文靖公 金麟厚道德, 實合於從享。 先正臣文正公 宋時烈有曰: "國朝人物, 道德節義, 文章兼有而不偏者無幾矣。 天佑我東, 鍾出河西 金先生, 殆庶幾矣。" 先正臣文成公 李珥亦曰: "淸水芙蓉, 光風霽月。 出處之正, 海東無與倫比。" 夫以從享之大賢, 其所景仰而讃美, 至於如此, 則其於從享之議, 孰敢間然? 伏乞亟擧先正臣文靖公從祀文廟之典, 以重吾道, 以光世敎。
批曰: "文靖之道學文章、出處大節, 尊尙而感慕之者, 豈不若爾等? 躋配聖廟, 是何等重典? 前此諸儒之從祀也, 亦未始有疏卽允, 我朝邦典則然。 所以尊斯文也, 尊聖廟也。 予所鄭重而難愼者, 亦此意。"
- 【태백산사고본】 29책 29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110면
원본
정조 14년 (1790) 3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