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25권, 정조 12년 3월 10일 壬申 5/6 기사 / 1788년 청 건륭(乾隆) 53년
이노춘의 처분과 관련하여 영의정 김치인에게 《일성록》을 보이게 하다. 김종수와 이에 관해 상의하다
국역
《일성록(日省錄)》 중에 이노춘을 처분한 일을 영의정 김치인에게 보여주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치인이 알지 못했다고 하면서 입대하지 않으니, 각신(閣臣) 김종수(金鍾秀)를 불러 보고서 상이 이르기를,
"내가 오늘 경을 볼 낯이 없다. 속담에 호사 다마(好事多魔)라 하더니 오늘의 일이 어찌 이와 유사하지 않은가. 내가 경들을 대우하는 도리가 혹 미진해서 그런 것인가. 이는 성색(聲色)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경들이 근년 이래로 사의(邪議)를 강력히 배격한 말이 근거가 있었다. 오늘날 진신(縉紳) 중에 사람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음에 드는 자가 적은데, 경들의 일이 그래도 나라 편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내가 경들에게 위임하여 성공을 바란 이유가 일찍이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오늘 영상이 아뢴 바는 실로 천만 뜻밖이니 어찌된 일인가.
대개 우상이 대배(大拜)된 뒤로 외면으로 볼 것 같으면 윤득부의 일이 다른 사람의 일과 자못 같은 듯하지만 더욱 그렇지 않음이 있다. 윤득부는 당초의 행위가 우상을 아낀 데 불과하였고, 뒤에 비록 어떤 일이 있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족히 꾸짖을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노춘에 이르러서는 내가 지금까지 통탄하고 있다. 청천백일 원로방지(靑天白日圓顱方趾)079) 등의 문자가 어찌 좋지 않은 어구(語句)이겠는가마는 흉적의 입을 한 번 거친 뒤로는 기휘(忌諱)하는 말이 되어 선조(先朝)에 있어서는 장주(章奏) 사이에 감히 이 8자를 쓰지 못했다. 적(賊) 김하재(金夏材)의 소에 있는 시(時) 자의 뜻이 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시 자는 좋은 글자이다. 시군(時君)의 시도 있고 시중(時中)의 시도 있으니 시의 뜻이 크다. 그런데 시 자를 배척한다면 이는 시대와 배치되는 것이니, 시대와 배치되는 것이 역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노춘이 하적의 시의(時議)의 시자를 답습해 쓴 것이 불측(不測)하다고 이를 만하였으되, 어리석어서 그렇다고 여겨 깊이 꾸짖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섬으로 귀양보냈던 것이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율적(瑮賊)080) 이 또 나왔다. 그때 어찌 노춘에게 가율(加律)하여 일세(一世)를 징계하고 싶지 않았겠는가마는 노여움을 옮기는 데 가까운 듯하기 때문에 참고 견디었던 것인데, 또 오늘의 일을 보게 되었다.
대개 나의 일념이 오직 백성들을 화합시키고 면려하여 한 세상을 평화 태평의 경지로 끌어넣는 데 있기 때문에 비록 역도(逆徒) 쪽 사람이라 하더라도 반역의 행위가 드러나기 전에는 매양 보전시키고자 하여 참작한 바가 많았으니, 세도(世道)의 근심스러움과 말류(末流)의 폐단이 이에서 연유하지 않았다고 기필할 수 없다. 그러나 모두를 살리고자 하는 나의 생각은 언제 하루라도 잊은 적이 있었던가. 지금 만약 노춘을 역신(逆臣)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하적까지 아울러 죄가 없다는 것이니, 어찌 말이 되겠는가. 당초 노춘이 상소할 때 경이 비록 교야(郊野)에 있었으나 때때로 간혹 서울에 들어왔으니, 만약 그때 일찍이 조정(調停)하여 간악한 싹을 꺾었다면 어찌 이 일이 생겼겠는가.
그런데 오늘 연석(筵席)에서 물러간 뒤에 《일성록》을 보내어 보이게 하였더니, 영상은 애당초 그 전말을 몰랐다고 비로소 말하였다. 그러나 이는 진실이 아닌 듯하다. 《일성록》에 기록된 것은 조지(朝紙)에 나온 것에 불과하고, 조지에 나온 것이라면 영상이 비록 휴직하고 있을 때라 하더라도 어찌 보지 못했을 리가 있겠는가. 보고도 만약 분명히 보아 마음에 새겨 두지 않았다면 이것이 어찌 명장(明張)의 뜻이겠는가. 만약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말했다면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반드시 연석에서 아뢰고 싶었다면 유악주(兪岳柱) 한 사람의 일만을 거론했더라도 거의 참작해 헤아리는 방도가 있었을 것이고, 가령 이노춘의 일까지 아울러 거론하고 싶었다면 경이 근일에 매양 조용히 등연(登筵)한 때가 많았으니, 만약 그때 그 꼬투리를 조금 드러냈다면 가부간에 어찌 교시(敎示)하는 도리가 없었겠는가.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이 앉아있는 빈대(賓對)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이 말을 하여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나도 어찌할 수 없다. 이는 대개 경들이 나를 잘 대우하지 않은 소치이다. 내가 경에게 무엇을 저버린 것이 있는가. 만약 노춘의 일이 윤득부에게서 연유한 것일 뿐이라고 한다면 이는 하적까지 아울러 망각(忘却)의 경지로 돌리는 것이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니, 종수가 아뢰기를,
"신의 당숙이 정신이 혼미해서 이런 망언(妄言)을 하였으니 황공하기 그지없어 다시 진달할 말이 없습니다. 특별히 시종 보여주신 은택을 생각하시어 지금 곧 해명하게 허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시루는 이미 깨졌다. 앞으로 뒷수습을 잘하는 것은 오직 경들에게 달렸다. 나는 경들이 죽음의 구덩이로 들어가는 꼴을 차마 볼 수 없어 이 전교를 내리는 것이니, 모름지기 뒷수습이라도 잘해서 끝까지 잘 보전하기 바란다. 지금 만약 인혐하고 물러났다가 다시 들어온다면 사기(事機)가 더욱 난처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일에 대해 옆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대수롭지 않은 일로 보게 하려면 경들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끝까지 잘 보전하는 방책이 오직 이 한 가지 일이 있을 뿐이다."
하니, 종수가 아뢰기를,
"성상께서 이렇게 분부하시니 감격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이것이 모두 혼매한 소치로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영상은 비록 혼매할 수도 있지만 경은 혼매한 데 이르지 않았으니 영상이 하는 바를 경이 어찌 몰랐겠는가. 사단이 지금은 비록 일어나지 않았지만 한 번 풍파가 일어나면 어찌 그치게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수많은 총뿌리가 은밀히 기회를 노리며 겨누고 있는 때에 일이 이에 이르렀으니 아마도 수습할 방책이 없을 듯하다. 내가 다른 적에 대해서는 간혹 참작해 헤아리는 도리가 있었으나, 하적의 죄에 관계된 자에 대해서 나도 미봉(彌縫)할 수 없다. 경들은 반드시 깊은 요량(料量)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니 오직 잘 대처하기를 생각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696면
원문
○命以《日省錄》中李魯春處分事, 示領議政金致仁。 致仁以不知與未對, 召見閣臣金鍾秀。 上曰: "予於今日, 無見卿之顔矣。 諺所云好事多魔, 今日事, 豈不類是? 予於卿等相待之道, 或有未盡而然耶? 此非聲色而言之者。 大抵卿等, 伊來力排邪議, 言有所據。 今日簪紳, 非曰無人, 惟其入意者少, 而卿等之事, 猶近於國邊。 故予所以委任, 而責成者, 未嘗不在於此矣。 今日領相所奏, 實是千萬意外, 是何事也? 蓋右相, 大拜以後, 以外面觀之, 尹得孚殆同餘事, 而又有不然者。 得孚則當初所爲, 不過顧藉右相, 後雖有如何之事, 此則何足深誅? 至於魯春, 則予之尙今痛惋者也。 夫靑天白日, 圓臚方趾等文字, 此豈不好句語? 而一經凶賊之口, 便作忌諱之語, 在先朝章奏之間, 不敢用此八字。 賊夏疏時字之義, 何以異是? 時字則自是好箇字。 有時君之時, 有時中之時, 時之義大矣。 若斥時字, 則是與時背馳者也。 與時背馳, 非逆而何? 魯春之襲用時議之時字, 可謂叵測, 而諉以愚騃, 不欲深誅, 故姑且薄竄海島矣。 此事無幾, 而瑮賊又出矣。 伊時豈不欲加律於魯春, 以懲一世? 而猶或近於移怒, 故未免含忍, 又見今日之事。 蓋予一念, 在於保合陶甄, 囿一世於和泰之域, 故雖逆邊之人, 逆節未露之前, 每欲全保, 多有參酌, 世道之憂, 末流之弊, 未必不由於是矣。 然予欲幷生哉之意, 何嘗一日忘哉? 今若以魯春爲非逆, 則是幷與夏賊, 而謂之無罪矣, 此則豈成說乎? 當初魯春投疏之時, 卿雖在郊, 時或入京, 若於此時, 早爲調劑, 亟折奸萠, 則豈有此事乎? 今日筵退後, 送示《日省錄》, 則領相始以初不知顚末爲言, 此則似欠誠實矣。 《日省錄》所記者, 卽不過朝紙所出也。 朝紙所出, 領相雖在休致之時, 豈有不見之理乎? 見之而若不能明着眼目, 箚着心胸, 則是豈明張之義乎? 若知而言之, 又當如何? 必欲筵奏, 則單擧兪岳柱一事, 庶或有參量之道。 如欲幷擧李魯春事, 卿於近日, 每多從容登筵之時, 若於此時, 微發其端, 則曰可曰否之間, 豈無敎示之道, 而今於賓筵衆坐之中, 猝發此言, 到此地頭, 予亦無奈何矣。 此蓋卿等不善待予之致。 予於卿, 有何所負耶? 若以魯春事, 只緣尹得孚云爾, 則是幷與夏賊, 而歸之相忘之域, 寧有如許事也?" 鍾秀曰: "臣之堂叔, 精神昏耗, 妄出此言。 惶蹙之極, 更無仰達, 而特軫終始之澤, 趁今許解好矣。" 上曰: "甑已破矣。 此後善後之策, 惟在卿等。 予不忍見匍匐入井之狀, 有此下敎, 幸須收之桑楡, 以保終始也。 今若引出, 而仍入, 則事機似尤難處。 今於此事, 使在傍者, 看作泛然底事, 卿等則進進不已爲可。 終始保全之策, 惟在此一擧矣。" 鍾秀曰: "聖敎至此, 不勝感泣, 而此莫非昏昧所致, 全未覺得矣。" 上曰: "領相, 雖或昏昧, 卿則不至昏昧, 領相所爲, 卿可謂不知于事端, 今雖不發, 一番風波, 烏可已也? 見今萬弩潛伺之餘, 事已至此, 則恐無善後之道矣。 且予於他賊, 雖或有參量之道, 而至於干犯夏賊者, 予亦莫可彌綸矣。 卿等想必有深量, 惟意善處也。"
-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696면
정조실록25권, 정조 12년 3월 10일 壬申 5/6 기사 / 1788년 청 건륭(乾隆) 53년
이노춘의 처분과 관련하여 영의정 김치인에게 《일성록》을 보이게 하다. 김종수와 이에 관해 상의하다
국역
《일성록(日省錄)》 중에 이노춘을 처분한 일을 영의정 김치인에게 보여주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치인이 알지 못했다고 하면서 입대하지 않으니, 각신(閣臣) 김종수(金鍾秀)를 불러 보고서 상이 이르기를,
"내가 오늘 경을 볼 낯이 없다. 속담에 호사 다마(好事多魔)라 하더니 오늘의 일이 어찌 이와 유사하지 않은가. 내가 경들을 대우하는 도리가 혹 미진해서 그런 것인가. 이는 성색(聲色)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경들이 근년 이래로 사의(邪議)를 강력히 배격한 말이 근거가 있었다. 오늘날 진신(縉紳) 중에 사람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음에 드는 자가 적은데, 경들의 일이 그래도 나라 편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내가 경들에게 위임하여 성공을 바란 이유가 일찍이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오늘 영상이 아뢴 바는 실로 천만 뜻밖이니 어찌된 일인가.
대개 우상이 대배(大拜)된 뒤로 외면으로 볼 것 같으면 윤득부의 일이 다른 사람의 일과 자못 같은 듯하지만 더욱 그렇지 않음이 있다. 윤득부는 당초의 행위가 우상을 아낀 데 불과하였고, 뒤에 비록 어떤 일이 있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족히 꾸짖을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노춘에 이르러서는 내가 지금까지 통탄하고 있다. 청천백일 원로방지(靑天白日圓顱方趾)079) 등의 문자가 어찌 좋지 않은 어구(語句)이겠는가마는 흉적의 입을 한 번 거친 뒤로는 기휘(忌諱)하는 말이 되어 선조(先朝)에 있어서는 장주(章奏) 사이에 감히 이 8자를 쓰지 못했다. 적(賊) 김하재(金夏材)의 소에 있는 시(時) 자의 뜻이 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시 자는 좋은 글자이다. 시군(時君)의 시도 있고 시중(時中)의 시도 있으니 시의 뜻이 크다. 그런데 시 자를 배척한다면 이는 시대와 배치되는 것이니, 시대와 배치되는 것이 역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노춘이 하적의 시의(時議)의 시자를 답습해 쓴 것이 불측(不測)하다고 이를 만하였으되, 어리석어서 그렇다고 여겨 깊이 꾸짖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섬으로 귀양보냈던 것이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율적(瑮賊)080) 이 또 나왔다. 그때 어찌 노춘에게 가율(加律)하여 일세(一世)를 징계하고 싶지 않았겠는가마는 노여움을 옮기는 데 가까운 듯하기 때문에 참고 견디었던 것인데, 또 오늘의 일을 보게 되었다.
대개 나의 일념이 오직 백성들을 화합시키고 면려하여 한 세상을 평화 태평의 경지로 끌어넣는 데 있기 때문에 비록 역도(逆徒) 쪽 사람이라 하더라도 반역의 행위가 드러나기 전에는 매양 보전시키고자 하여 참작한 바가 많았으니, 세도(世道)의 근심스러움과 말류(末流)의 폐단이 이에서 연유하지 않았다고 기필할 수 없다. 그러나 모두를 살리고자 하는 나의 생각은 언제 하루라도 잊은 적이 있었던가. 지금 만약 노춘을 역신(逆臣)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하적까지 아울러 죄가 없다는 것이니, 어찌 말이 되겠는가. 당초 노춘이 상소할 때 경이 비록 교야(郊野)에 있었으나 때때로 간혹 서울에 들어왔으니, 만약 그때 일찍이 조정(調停)하여 간악한 싹을 꺾었다면 어찌 이 일이 생겼겠는가.
그런데 오늘 연석(筵席)에서 물러간 뒤에 《일성록》을 보내어 보이게 하였더니, 영상은 애당초 그 전말을 몰랐다고 비로소 말하였다. 그러나 이는 진실이 아닌 듯하다. 《일성록》에 기록된 것은 조지(朝紙)에 나온 것에 불과하고, 조지에 나온 것이라면 영상이 비록 휴직하고 있을 때라 하더라도 어찌 보지 못했을 리가 있겠는가. 보고도 만약 분명히 보아 마음에 새겨 두지 않았다면 이것이 어찌 명장(明張)의 뜻이겠는가. 만약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말했다면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반드시 연석에서 아뢰고 싶었다면 유악주(兪岳柱) 한 사람의 일만을 거론했더라도 거의 참작해 헤아리는 방도가 있었을 것이고, 가령 이노춘의 일까지 아울러 거론하고 싶었다면 경이 근일에 매양 조용히 등연(登筵)한 때가 많았으니, 만약 그때 그 꼬투리를 조금 드러냈다면 가부간에 어찌 교시(敎示)하는 도리가 없었겠는가.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이 앉아있는 빈대(賓對)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이 말을 하여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나도 어찌할 수 없다. 이는 대개 경들이 나를 잘 대우하지 않은 소치이다. 내가 경에게 무엇을 저버린 것이 있는가. 만약 노춘의 일이 윤득부에게서 연유한 것일 뿐이라고 한다면 이는 하적까지 아울러 망각(忘却)의 경지로 돌리는 것이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니, 종수가 아뢰기를,
"신의 당숙이 정신이 혼미해서 이런 망언(妄言)을 하였으니 황공하기 그지없어 다시 진달할 말이 없습니다. 특별히 시종 보여주신 은택을 생각하시어 지금 곧 해명하게 허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시루는 이미 깨졌다. 앞으로 뒷수습을 잘하는 것은 오직 경들에게 달렸다. 나는 경들이 죽음의 구덩이로 들어가는 꼴을 차마 볼 수 없어 이 전교를 내리는 것이니, 모름지기 뒷수습이라도 잘해서 끝까지 잘 보전하기 바란다. 지금 만약 인혐하고 물러났다가 다시 들어온다면 사기(事機)가 더욱 난처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일에 대해 옆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대수롭지 않은 일로 보게 하려면 경들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끝까지 잘 보전하는 방책이 오직 이 한 가지 일이 있을 뿐이다."
하니, 종수가 아뢰기를,
"성상께서 이렇게 분부하시니 감격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이것이 모두 혼매한 소치로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영상은 비록 혼매할 수도 있지만 경은 혼매한 데 이르지 않았으니 영상이 하는 바를 경이 어찌 몰랐겠는가. 사단이 지금은 비록 일어나지 않았지만 한 번 풍파가 일어나면 어찌 그치게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수많은 총뿌리가 은밀히 기회를 노리며 겨누고 있는 때에 일이 이에 이르렀으니 아마도 수습할 방책이 없을 듯하다. 내가 다른 적에 대해서는 간혹 참작해 헤아리는 도리가 있었으나, 하적의 죄에 관계된 자에 대해서 나도 미봉(彌縫)할 수 없다. 경들은 반드시 깊은 요량(料量)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니 오직 잘 대처하기를 생각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696면
원문
○命以《日省錄》中李魯春處分事, 示領議政金致仁。 致仁以不知與未對, 召見閣臣金鍾秀。 上曰: "予於今日, 無見卿之顔矣。 諺所云好事多魔, 今日事, 豈不類是? 予於卿等相待之道, 或有未盡而然耶? 此非聲色而言之者。 大抵卿等, 伊來力排邪議, 言有所據。 今日簪紳, 非曰無人, 惟其入意者少, 而卿等之事, 猶近於國邊。 故予所以委任, 而責成者, 未嘗不在於此矣。 今日領相所奏, 實是千萬意外, 是何事也? 蓋右相, 大拜以後, 以外面觀之, 尹得孚殆同餘事, 而又有不然者。 得孚則當初所爲, 不過顧藉右相, 後雖有如何之事, 此則何足深誅? 至於魯春, 則予之尙今痛惋者也。 夫靑天白日, 圓臚方趾等文字, 此豈不好句語? 而一經凶賊之口, 便作忌諱之語, 在先朝章奏之間, 不敢用此八字。 賊夏疏時字之義, 何以異是? 時字則自是好箇字。 有時君之時, 有時中之時, 時之義大矣。 若斥時字, 則是與時背馳者也。 與時背馳, 非逆而何? 魯春之襲用時議之時字, 可謂叵測, 而諉以愚騃, 不欲深誅, 故姑且薄竄海島矣。 此事無幾, 而瑮賊又出矣。 伊時豈不欲加律於魯春, 以懲一世? 而猶或近於移怒, 故未免含忍, 又見今日之事。 蓋予一念, 在於保合陶甄, 囿一世於和泰之域, 故雖逆邊之人, 逆節未露之前, 每欲全保, 多有參酌, 世道之憂, 末流之弊, 未必不由於是矣。 然予欲幷生哉之意, 何嘗一日忘哉? 今若以魯春爲非逆, 則是幷與夏賊, 而謂之無罪矣, 此則豈成說乎? 當初魯春投疏之時, 卿雖在郊, 時或入京, 若於此時, 早爲調劑, 亟折奸萠, 則豈有此事乎? 今日筵退後, 送示《日省錄》, 則領相始以初不知顚末爲言, 此則似欠誠實矣。 《日省錄》所記者, 卽不過朝紙所出也。 朝紙所出, 領相雖在休致之時, 豈有不見之理乎? 見之而若不能明着眼目, 箚着心胸, 則是豈明張之義乎? 若知而言之, 又當如何? 必欲筵奏, 則單擧兪岳柱一事, 庶或有參量之道。 如欲幷擧李魯春事, 卿於近日, 每多從容登筵之時, 若於此時, 微發其端, 則曰可曰否之間, 豈無敎示之道, 而今於賓筵衆坐之中, 猝發此言, 到此地頭, 予亦無奈何矣。 此蓋卿等不善待予之致。 予於卿, 有何所負耶? 若以魯春事, 只緣尹得孚云爾, 則是幷與夏賊, 而歸之相忘之域, 寧有如許事也?" 鍾秀曰: "臣之堂叔, 精神昏耗, 妄出此言。 惶蹙之極, 更無仰達, 而特軫終始之澤, 趁今許解好矣。" 上曰: "甑已破矣。 此後善後之策, 惟在卿等。 予不忍見匍匐入井之狀, 有此下敎, 幸須收之桑楡, 以保終始也。 今若引出, 而仍入, 則事機似尤難處。 今於此事, 使在傍者, 看作泛然底事, 卿等則進進不已爲可。 終始保全之策, 惟在此一擧矣。" 鍾秀曰: "聖敎至此, 不勝感泣, 而此莫非昏昧所致, 全未覺得矣。" 上曰: "領相, 雖或昏昧, 卿則不至昏昧, 領相所爲, 卿可謂不知于事端, 今雖不發, 一番風波, 烏可已也? 見今萬弩潛伺之餘, 事已至此, 則恐無善後之道矣。 且予於他賊, 雖或有參量之道, 而至於干犯夏賊者, 予亦莫可彌綸矣。 卿等想必有深量, 惟意善處也。"
-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69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