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18권, 정조 8년 11월 27일 戊寅 3/3 기사 / 1784년 청 건륭(乾隆) 49년
제주의 기근을 진휼하도록 8천 석의 정조 모곡을 내리다
국역
제주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목사 엄사만(嚴思晩)이 장계를 올려, 내년 정월부터 보릿가을까지 한하여 진휼곡을 나누어 주는데, 임피(臨陂) 나리포(羅里舖)의 창고 곡식 8천 석(石)을 기준하여 제때에 들여보내 줄 것을 청하였다.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호남 지방의 바닷가 고을들은 이제 막 큰 진휼을 거쳤으므로 8천 석의 곡식은 형세로 보아 마련해 내기 어려우니, 청컨대, 원순(元巡) 때에 부족했던 6천 4백 석을 바닷가 고을 소재의 아무 아문(衙門)의 곡식 중에서 먼저 미루어 옮겨서 취급하소서."
하니, 하교하기를,
"나리포에 창고를 설치한 지가 지금 65년이나 오래 되었는데, 남아 있는 저축이 얼마 안되는 것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한결같이 경인년346) 에 규정을 만든 이후로 곧 유명 무실한 데로 귀결되고 있다. 창고 안의 정곡(正穀)이 모자란다고 하니, 형세로 보아 장차 바닷가의 고을에서 마련해 내야 할 텐데, 거듭 기근이 든 후이고 또 전수(轉輸)한다는 것은 어찌 어렵고 신중히 처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제주도 백성들이 먹여줄 것을 바라는 심정도 또한 진념(軫念)하지 않을 수 없으니, 8천 석의 수량에 준하여 본 창고의 정조(正租) 모곡(牟穀)으로서 특별히 시행할 것을 허락하도록 하라."
하고, 이어서 엄사만을 보릿가을까지 한하여 그대로 유임시키도록 명하였다.
- [註 346] 경인년 : 1770 영조 46년.
원문
정조 8년 (1784) 11월 27일
국역
제주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목사 엄사만(嚴思晩)이 장계를 올려, 내년 정월부터 보릿가을까지 한하여 진휼곡을 나누어 주는데, 임피(臨陂) 나리포(羅里舖)의 창고 곡식 8천 석(石)을 기준하여 제때에 들여보내 줄 것을 청하였다.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호남 지방의 바닷가 고을들은 이제 막 큰 진휼을 거쳤으므로 8천 석의 곡식은 형세로 보아 마련해 내기 어려우니, 청컨대, 원순(元巡) 때에 부족했던 6천 4백 석을 바닷가 고을 소재의 아무 아문(衙門)의 곡식 중에서 먼저 미루어 옮겨서 취급하소서."
하니, 하교하기를,
"나리포에 창고를 설치한 지가 지금 65년이나 오래 되었는데, 남아 있는 저축이 얼마 안되는 것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한결같이 경인년346) 에 규정을 만든 이후로 곧 유명 무실한 데로 귀결되고 있다. 창고 안의 정곡(正穀)이 모자란다고 하니, 형세로 보아 장차 바닷가의 고을에서 마련해 내야 할 텐데, 거듭 기근이 든 후이고 또 전수(轉輸)한다는 것은 어찌 어렵고 신중히 처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제주도 백성들이 먹여줄 것을 바라는 심정도 또한 진념(軫念)하지 않을 수 없으니, 8천 석의 수량에 준하여 본 창고의 정조(正租) 모곡(牟穀)으로서 특별히 시행할 것을 허락하도록 하라."
하고, 이어서 엄사만을 보릿가을까지 한하여 그대로 유임시키도록 명하였다.
- [註 346] 경인년 : 1770 영조 46년.
원문
원본
정조 8년 (1784) 1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