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15권, 정조 7년 2월 19일 庚辰 10/11 기사 / 1783년 청 건륭(乾隆) 48년
우의정 김익의 사직소
국역
우의정 김익이 차자를 올리기를,
"아! 오늘날 국사는 날마다 글러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람을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의리뿐인데 의리가 밝지 못하면 윤리가 점점 폐지되며, 나라가 나라 구실을 하는 것은 기강뿐인데 기강이 진작되지 않으면 제방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형정(刑政)이 타당성을 잃으면 역적이 어떻게 두려워하겠으며, 법도가 해이해지면 백성의 뜻이 어떻게 안정되겠습니까? 조정에는 명절(名節)이 땅을 쓴듯이 없어져 바른 말을 들을 수 없고 초야에는 유술(儒術)이 일어나지 않아 사기가 매우 떨어져 있습니다. 이 두어 가지에서 세도가 융성하고 쇠하며 음양이 사그라지고 커지는 기미가 이미 판가름이 나는 것이니, 서리를 밟는 두려움뿐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조정의 기상은 흩어지려는 조짐이 있어서 온갖 법도가 무너지고 있으며, 백성은 마치 거꾸로 매달려 있는 듯이 다급하여 팔도가 시달리고 있습니다. 돌아보건대, 지금 위태로운 형세와 실낱 같은 위태로움을 비유하자면 사람에게 뼈속 깊이 병이 들어서 안으로는 가슴과 배, 밖으로는 사지에 이르기까지 터럭 하나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어서 증세에 따라 교착되고 겉과 안이 모두 급해져서 위태롭고 망가지는 조짐이 날과 달로 심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비록 진월인(秦越人)042) 이 물을 알맞게 붓고 화타(華佗)가 침을 주더라도 구제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더구나 신처럼 못난 것이 걸맞지 않은 자리에 앉아 한 해가 넘도록 하는 일없이 녹만 먹은 채 하나도 도움된 바가 없음으로 해서 시사(時事)가 이 지경에 이르고 지존(至尊)만 수고하게 하였으니, 옛말에 이른바 ‘저런 정승을 쓸 것이 뭐가 있겠는가?’라는 말이 사실 신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아! 흉도들과 체결하여 동궁을 해치려고 도모했던 요망한 역적과 왕위를 농락하며 국가의 명맥을 딴 데로 옮기려는 흉악한 역적은 사실 온 나라 사람들이 다같이 원수로 여기고 있는 바이며 국법으로 보아 반드시 죽여야 할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귀양을 보냈다가 곧바로 용서해주어 집에서 태연히 살게 하고 자리에 누워 스스로 죽어도 여전히 해당의 법을 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데도 의리가 어찌 더욱 어두워지지 않을 수 있겠으며 기강이 어찌 더욱 실추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점점 가다가 인심이 함닉되고 변괴가 거듭 생김으로써 처음에는 역적을 징계하고 토벌하자는 의논이 제기되었다가 결국에는 다시 가라앉아버리고, 흉악한 것들의 기세가 잠시 동안 움츠러들었다가 또다시 치성하여 앞으로 사람이 사람 구실을 못하고 나라가 나라 구실을 못하는 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신이 전후로 이에 대해 아뢴 것이 한두 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심혈을 짜내어 죄다 말씀드려 성상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였고 또 마음을 가다듬고 정성을 쌓아 얻지 못하면 시행하지도 못하였으니,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죄가 이에 이르러 더욱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지금 만약 은총에 연연하여 물러나지 않은 채 쭈그리고 앉아 있을 경우 필시 부딪치는 곳마다 혹이 생기고 일마다 죄만 더 지을 것입니다. 아! 정위(精衛)가 동해를 메우려는 마음043) 처럼 간절하지만, 우공(愚公)이 북산(北山)을 옮길 때044) 처럼 힘이 모자랍니다. 그러므로 나아갔다가 결국 죄를 짓느니보다는 물러나서 분수를 온전히 지키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아! 과부가 주(周)나라의 기움을 걱정하는 것과 기(杞)나라 사람이 하늘이 기울어질까 근심하는 것도 타고난 이성에서 나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아니되는 것입니다. 신이 비록 보잘것없지마는, 일찍이 대부들의 뒤를 따라다녔는데, 특별히 알아줌만 입었을 뿐 조그만 보답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면직을 청하고 물러나면서도 현재의 근심이 마음에 걸려 있고 임금의 은혜는 보답하지 못하니, 구구하게 연민에 맺힌 충심이 어찌 마음속에 왔다갔다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하찮은 재질이 쇠잔한 병까지 겹쳤으므로 조정을 하직하고 한산한 곳에 있으면서 장차 성덕(聖德)을 노래하며 보답하지 않는 보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석씨(釋氏)가 이른바 ‘내 몸과 마음을 가지고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는 말이 실로 신의 심사를 그려낸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슬기롭고 자비스러운 성상께서는 다시 살펴주시고 빨리 신의 중한 책임을 체차해 주심으로써 편안히 요양하게 해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경은 어찌하여 이처럼 사양하는가? 차자의 말이 천여 마디뿐만이 아니었는데, 말이 은미하고 뜻이 깊었으므로 내가 정말 좌우를 돌아보아도 까마득하여 어떻게 비답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아! 현재의 일이 어려워 나 혼자만 이 수고를 한다는 것을 경이 이미 알았고 또 말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바로잡을 방법은 생각지 않은 채 날로 무너지는 세도로 하여금 더욱더 무너지도록 한단 말인가? 내가 듣건대, 대신의 거취(去就)에 따라 정치와 교화의 성쇠가 판가름난다고 하였는데, 경이 지금 떠나면 나는 누구와 같이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더구나 엊그제 경연에서 대략 나의 구구한 쌓인 회포를 말하였는데, 이때에 책려하고 권면하는 것이 더욱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은 어찌 차마 물러나려 한단 말인가? 경은 어찌 차마 물러나려 한단 말인가? 경은 빨리 사직소를 그만 올리고 국사를 구제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였다.
- [註 042] 진월인(秦越人) : 편작(扁鵲)의 이름.
- [註 043] 정위(精衛)가 동해를 메우려는 마음 : 옛날 염제(炎帝)의 딸 여와(女娃)가 동해에서 놀다가 빠져 죽어 정위(精衛)라는 새로 변하였는데, 항상 서산(西山)의 목석(木石)을 물어다가 동해를 메웠다는 고사(故事).
- [註 044] 우공(愚公)이 북산(北山)을 옮길 때 : 옛날 북산의 우공이 나이 90 가까이 되었는데, 집 앞에 태행(太行)·왕옥(王屋) 두 큰 산이 가로막아서 출입하기에 곤란하자, 산을 헐어서 평평하게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지수(智叟)가 어리석다고 비웃자, 우공이 말하기를, "내가 죽으면 아들이 있고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있고 손자가 또 아들을 낳지만 산은 불어나지 않을 터인데 왜 평평해지지 않겠는가?" 하고, 날마다 쉬지 않고 산을 헐어내자, 상제(上帝)가 감동하여 과아씨(夸娥氏)의 두 아들을 파견하여 산을 옆으로 옮겼다는 고사.
원문
○右議政金熤上箚曰:
噫! 今日國事, 可謂日將非矣。 人之所以爲人, 義理而已, 義理不明, 倫彝漸斁, 國之所以爲國, 綱紀而已, 綱紀不振, 隄防蕩然。 刑政失當, 亂賊何所懲畏, 法度凌夷, 民志何所底定? 位著之上, 名節掃地, 而讜言莫聞, 草野之間, 儒術不興, 而士氣甚餒。 凡此數者, 世敎之汙隆, 陰陽之消長, 其幾已判, 不特爲履霜之懼而已。 以至於朝象, 則有泮渙之漸, 而百度廢壞, 民生則有倒懸之急, 而八域困瘁。 顧今(扤捏)〔杌隉〕 之勢, 綴旒之危, 譬如人疾入膏肓, 內而心腹, 外而四體, 一毛一髮, 無不受病, 因症交錯, 標本俱急, 危証敗兆, 日深月加。 雖使越人秤水, 華佗下石, 猶懼其不濟, 況如臣湔劣, 濫叨匪據, 經歲伴食, 無一裨補, 致使時事至此, 至尊獨勞。 古所謂: ‘安用彼相爲者?’ 實臣之謂也。 噫! 締聯凶徒, 圖危貳極之妖逆; 竊弄神器, 謀移國脈之凶賊, 實是國人之所同讎, 王章之所必誅, 而薄竄旋宥, 自在家居, 臥席自斃, 尙靳當律。 如是而義理安得不益晦, 綱紀安得不益墜? 駸駸然人心胥溺, 變怪層生, 以致懲討之論, 始倡而還息; 凶孽之氣, 乍戢而復熾, 將至於人不得以爲人, 國不得以爲國。 臣之前後執奏, 亦非一再。 而旣不能披肝盡言, 孚格天聽, 又不能齋心積誠, 弗得弗措, 不職之罪, 到此益著。 今若低徊恩寵, 蹲冒不退, 必將觸境生疣, 隨事添罪。 噫! 精衛之塡東溟, 寸心雖切; 而愚公之移北山, 綿力莫逮。 與其進而終底乎罪戾, 曷若退而獲全其分守乎? 噫! 娶婦宗周之恤, 杞人天傾之憂, 亦出於秉彝之天, 不容自已者。 臣雖無狀, 嘗從大夫之後, 徒荷特達之知, 未效涓埃之報, 而今當乞免而退, 時憂係心, 主恩莫酬, 區區戀結之忱, 安得不耿耿於方寸之內哉? 不幸綿薄之材, 重以孱疾, 不得不乞謝朝著, 寄在散地, 將以歌詠聖德, 不報爲報。 釋氏所謂: ‘願將身心報佛恩者’, 實是說出臣心事也。 伏乞聖慈, 更垂鑑憐, 亟許遞臣重負, 俾得安意調治。
批曰: "卿胡爲而有此巽避之擧也? 箚辭不啻屢千百言, 言微而旨邃, 予誠左右顧, 而懜然不知何以爲批也。 噫! 時事艱虞, 一人之獨勞, 卿旣知之矣, 又言之矣。 奈之何不念矯救之方, 使日壞之世道, 以至於愈壞也耶? 予聞大臣去就, 係治敎之汚隆, 卿今決去, 予將疇與共理? 況於日前筵席, 略布區區之蘊, 此時所以策勵而期勉之者, 爲尤懇。 卿何忍巽避? 卿何忍巽避? 切冀卿之亟斷來章, 康濟國事。"
국역
우의정 김익이 차자를 올리기를,
"아! 오늘날 국사는 날마다 글러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람을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의리뿐인데 의리가 밝지 못하면 윤리가 점점 폐지되며, 나라가 나라 구실을 하는 것은 기강뿐인데 기강이 진작되지 않으면 제방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형정(刑政)이 타당성을 잃으면 역적이 어떻게 두려워하겠으며, 법도가 해이해지면 백성의 뜻이 어떻게 안정되겠습니까? 조정에는 명절(名節)이 땅을 쓴듯이 없어져 바른 말을 들을 수 없고 초야에는 유술(儒術)이 일어나지 않아 사기가 매우 떨어져 있습니다. 이 두어 가지에서 세도가 융성하고 쇠하며 음양이 사그라지고 커지는 기미가 이미 판가름이 나는 것이니, 서리를 밟는 두려움뿐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조정의 기상은 흩어지려는 조짐이 있어서 온갖 법도가 무너지고 있으며, 백성은 마치 거꾸로 매달려 있는 듯이 다급하여 팔도가 시달리고 있습니다. 돌아보건대, 지금 위태로운 형세와 실낱 같은 위태로움을 비유하자면 사람에게 뼈속 깊이 병이 들어서 안으로는 가슴과 배, 밖으로는 사지에 이르기까지 터럭 하나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어서 증세에 따라 교착되고 겉과 안이 모두 급해져서 위태롭고 망가지는 조짐이 날과 달로 심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비록 진월인(秦越人)042) 이 물을 알맞게 붓고 화타(華佗)가 침을 주더라도 구제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더구나 신처럼 못난 것이 걸맞지 않은 자리에 앉아 한 해가 넘도록 하는 일없이 녹만 먹은 채 하나도 도움된 바가 없음으로 해서 시사(時事)가 이 지경에 이르고 지존(至尊)만 수고하게 하였으니, 옛말에 이른바 ‘저런 정승을 쓸 것이 뭐가 있겠는가?’라는 말이 사실 신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아! 흉도들과 체결하여 동궁을 해치려고 도모했던 요망한 역적과 왕위를 농락하며 국가의 명맥을 딴 데로 옮기려는 흉악한 역적은 사실 온 나라 사람들이 다같이 원수로 여기고 있는 바이며 국법으로 보아 반드시 죽여야 할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귀양을 보냈다가 곧바로 용서해주어 집에서 태연히 살게 하고 자리에 누워 스스로 죽어도 여전히 해당의 법을 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데도 의리가 어찌 더욱 어두워지지 않을 수 있겠으며 기강이 어찌 더욱 실추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점점 가다가 인심이 함닉되고 변괴가 거듭 생김으로써 처음에는 역적을 징계하고 토벌하자는 의논이 제기되었다가 결국에는 다시 가라앉아버리고, 흉악한 것들의 기세가 잠시 동안 움츠러들었다가 또다시 치성하여 앞으로 사람이 사람 구실을 못하고 나라가 나라 구실을 못하는 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신이 전후로 이에 대해 아뢴 것이 한두 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심혈을 짜내어 죄다 말씀드려 성상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였고 또 마음을 가다듬고 정성을 쌓아 얻지 못하면 시행하지도 못하였으니,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죄가 이에 이르러 더욱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지금 만약 은총에 연연하여 물러나지 않은 채 쭈그리고 앉아 있을 경우 필시 부딪치는 곳마다 혹이 생기고 일마다 죄만 더 지을 것입니다. 아! 정위(精衛)가 동해를 메우려는 마음043) 처럼 간절하지만, 우공(愚公)이 북산(北山)을 옮길 때044) 처럼 힘이 모자랍니다. 그러므로 나아갔다가 결국 죄를 짓느니보다는 물러나서 분수를 온전히 지키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아! 과부가 주(周)나라의 기움을 걱정하는 것과 기(杞)나라 사람이 하늘이 기울어질까 근심하는 것도 타고난 이성에서 나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아니되는 것입니다. 신이 비록 보잘것없지마는, 일찍이 대부들의 뒤를 따라다녔는데, 특별히 알아줌만 입었을 뿐 조그만 보답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면직을 청하고 물러나면서도 현재의 근심이 마음에 걸려 있고 임금의 은혜는 보답하지 못하니, 구구하게 연민에 맺힌 충심이 어찌 마음속에 왔다갔다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하찮은 재질이 쇠잔한 병까지 겹쳤으므로 조정을 하직하고 한산한 곳에 있으면서 장차 성덕(聖德)을 노래하며 보답하지 않는 보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석씨(釋氏)가 이른바 ‘내 몸과 마음을 가지고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는 말이 실로 신의 심사를 그려낸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슬기롭고 자비스러운 성상께서는 다시 살펴주시고 빨리 신의 중한 책임을 체차해 주심으로써 편안히 요양하게 해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경은 어찌하여 이처럼 사양하는가? 차자의 말이 천여 마디뿐만이 아니었는데, 말이 은미하고 뜻이 깊었으므로 내가 정말 좌우를 돌아보아도 까마득하여 어떻게 비답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아! 현재의 일이 어려워 나 혼자만 이 수고를 한다는 것을 경이 이미 알았고 또 말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바로잡을 방법은 생각지 않은 채 날로 무너지는 세도로 하여금 더욱더 무너지도록 한단 말인가? 내가 듣건대, 대신의 거취(去就)에 따라 정치와 교화의 성쇠가 판가름난다고 하였는데, 경이 지금 떠나면 나는 누구와 같이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더구나 엊그제 경연에서 대략 나의 구구한 쌓인 회포를 말하였는데, 이때에 책려하고 권면하는 것이 더욱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은 어찌 차마 물러나려 한단 말인가? 경은 어찌 차마 물러나려 한단 말인가? 경은 빨리 사직소를 그만 올리고 국사를 구제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였다.
- [註 042] 진월인(秦越人) : 편작(扁鵲)의 이름.
- [註 043] 정위(精衛)가 동해를 메우려는 마음 : 옛날 염제(炎帝)의 딸 여와(女娃)가 동해에서 놀다가 빠져 죽어 정위(精衛)라는 새로 변하였는데, 항상 서산(西山)의 목석(木石)을 물어다가 동해를 메웠다는 고사(故事).
- [註 044] 우공(愚公)이 북산(北山)을 옮길 때 : 옛날 북산의 우공이 나이 90 가까이 되었는데, 집 앞에 태행(太行)·왕옥(王屋) 두 큰 산이 가로막아서 출입하기에 곤란하자, 산을 헐어서 평평하게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지수(智叟)가 어리석다고 비웃자, 우공이 말하기를, "내가 죽으면 아들이 있고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있고 손자가 또 아들을 낳지만 산은 불어나지 않을 터인데 왜 평평해지지 않겠는가?" 하고, 날마다 쉬지 않고 산을 헐어내자, 상제(上帝)가 감동하여 과아씨(夸娥氏)의 두 아들을 파견하여 산을 옆으로 옮겼다는 고사.
원문
○右議政金熤上箚曰:
噫! 今日國事, 可謂日將非矣。 人之所以爲人, 義理而已, 義理不明, 倫彝漸斁, 國之所以爲國, 綱紀而已, 綱紀不振, 隄防蕩然。 刑政失當, 亂賊何所懲畏, 法度凌夷, 民志何所底定? 位著之上, 名節掃地, 而讜言莫聞, 草野之間, 儒術不興, 而士氣甚餒。 凡此數者, 世敎之汙隆, 陰陽之消長, 其幾已判, 不特爲履霜之懼而已。 以至於朝象, 則有泮渙之漸, 而百度廢壞, 民生則有倒懸之急, 而八域困瘁。 顧今(扤捏)〔杌隉〕 之勢, 綴旒之危, 譬如人疾入膏肓, 內而心腹, 外而四體, 一毛一髮, 無不受病, 因症交錯, 標本俱急, 危証敗兆, 日深月加。 雖使越人秤水, 華佗下石, 猶懼其不濟, 況如臣湔劣, 濫叨匪據, 經歲伴食, 無一裨補, 致使時事至此, 至尊獨勞。 古所謂: ‘安用彼相爲者?’ 實臣之謂也。 噫! 締聯凶徒, 圖危貳極之妖逆; 竊弄神器, 謀移國脈之凶賊, 實是國人之所同讎, 王章之所必誅, 而薄竄旋宥, 自在家居, 臥席自斃, 尙靳當律。 如是而義理安得不益晦, 綱紀安得不益墜? 駸駸然人心胥溺, 變怪層生, 以致懲討之論, 始倡而還息; 凶孽之氣, 乍戢而復熾, 將至於人不得以爲人, 國不得以爲國。 臣之前後執奏, 亦非一再。 而旣不能披肝盡言, 孚格天聽, 又不能齋心積誠, 弗得弗措, 不職之罪, 到此益著。 今若低徊恩寵, 蹲冒不退, 必將觸境生疣, 隨事添罪。 噫! 精衛之塡東溟, 寸心雖切; 而愚公之移北山, 綿力莫逮。 與其進而終底乎罪戾, 曷若退而獲全其分守乎? 噫! 娶婦宗周之恤, 杞人天傾之憂, 亦出於秉彝之天, 不容自已者。 臣雖無狀, 嘗從大夫之後, 徒荷特達之知, 未效涓埃之報, 而今當乞免而退, 時憂係心, 主恩莫酬, 區區戀結之忱, 安得不耿耿於方寸之內哉? 不幸綿薄之材, 重以孱疾, 不得不乞謝朝著, 寄在散地, 將以歌詠聖德, 不報爲報。 釋氏所謂: ‘願將身心報佛恩者’, 實是說出臣心事也。 伏乞聖慈, 更垂鑑憐, 亟許遞臣重負, 俾得安意調治。
批曰: "卿胡爲而有此巽避之擧也? 箚辭不啻屢千百言, 言微而旨邃, 予誠左右顧, 而懜然不知何以爲批也。 噫! 時事艱虞, 一人之獨勞, 卿旣知之矣, 又言之矣。 奈之何不念矯救之方, 使日壞之世道, 以至於愈壞也耶? 予聞大臣去就, 係治敎之汚隆, 卿今決去, 予將疇與共理? 況於日前筵席, 略布區區之蘊, 此時所以策勵而期勉之者, 爲尤懇。 卿何忍巽避? 卿何忍巽避? 切冀卿之亟斷來章, 康濟國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