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12권, 정조 5년 11월 20일 戊午 2/4 기사 / 1781년 청 건륭(乾隆) 46년
홍문관에서 시호를 의논하다
국역
홍문관에서 시호(諡號)를 의논하였다. 하교하기를,
"역명(易名)568) 하는 은전(恩典)은 사체가 지극히 엄하고도 중한 것이어서 문임(文任)이 그 일을 찬차(撰次)하고 종백(宗伯)569) 이 그 시장(諡狀)을 대조하여 본 다음 비로소 옥서(玉署)570) 로 하여금 시호를 정하게 하고 다시 태상(太常)에서 박의(駁議)하게 하며 양사(兩司)의 서경(署經)을 거쳐 정부(政府)에서 감당(勘當)하게 한다. 그렇게 한 연후에 또 이조에서 비의(備擬)하여 낙점(落點)을 받게 하였으니, 설시(設施)한 본의(本意)가 돌아보건대 치밀하지 않은가? 시법(諡法)이 죄다 없어진 것이 비록 이제 와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시망(諡望)이 많은 것은 가히 전무 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본관(本館)의 등록(謄錄)을 가져다 상고하여 보니 기왕의 전례도 십수(十數)의 망단(望單)을 넘지 않고 있는데, 지금은 21망(望)에다 인물의 원근(遠近)과 일의 현미(顯微)는 논하지도 않고 일시에 아울러 비의(備擬)하였다. 이는 크게 뒤 폐단에 관계될 뿐만이 아니라 또한 명기(名器)를 설만케 하는 것이 있으니, 참석하여 회좌(會坐)한 관관(館官)은 아울러 파직시키라. 그 가운데 2본(本)의 시장(諡狀)은 대단히 흠경(欠敬)된 부분이 있고 또 잘못 쓴 것이 있다. 막중한 것을 대조하는 법제와 서경하는 법식은 지금부터 폐기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일을 주관하는 신하는 어떻게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책임을 면할 수 있겠는가? 예조 당상(禮曹堂上)과 봉상시 정(奉常寺正)도 또한 모두 파직시키라."
하였다.
원문
○弘文館議諡。 敎曰: "易名之典, 事體至嚴且重。 文任撰次其事, 宗伯照訖其狀, 始令玉署定諡, 更許太常駁議, 署經於兩司, 勘當於政府。 然後又自吏曹, 備擬受點, 設施之本意, 顧不縝密乎? 諡法之蕩然, 縱曰非今斯今; 諡望之夥然, 可謂前無後無。 取考本館謄錄, 則已例無踰十數望單。 唯今二十一望之勿論人之遠近、事之顯微, 一時竝擬者, 不但大係後弊, 抑亦有屑名器, 參坐館官, 幷罷職。 就中二本諡狀, 有大叚欠敬處, 又有誤書。 莫重處照訖之制、署經之式, 自今廢亦無妨。 主事之臣, 烏可免溺職之責? 禮曹堂上、奉常寺正, 亦竝罷職。"
정조 5년 (1781) 11월 20일
국역
홍문관에서 시호(諡號)를 의논하였다. 하교하기를,
"역명(易名)568) 하는 은전(恩典)은 사체가 지극히 엄하고도 중한 것이어서 문임(文任)이 그 일을 찬차(撰次)하고 종백(宗伯)569) 이 그 시장(諡狀)을 대조하여 본 다음 비로소 옥서(玉署)570) 로 하여금 시호를 정하게 하고 다시 태상(太常)에서 박의(駁議)하게 하며 양사(兩司)의 서경(署經)을 거쳐 정부(政府)에서 감당(勘當)하게 한다. 그렇게 한 연후에 또 이조에서 비의(備擬)하여 낙점(落點)을 받게 하였으니, 설시(設施)한 본의(本意)가 돌아보건대 치밀하지 않은가? 시법(諡法)이 죄다 없어진 것이 비록 이제 와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시망(諡望)이 많은 것은 가히 전무 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본관(本館)의 등록(謄錄)을 가져다 상고하여 보니 기왕의 전례도 십수(十數)의 망단(望單)을 넘지 않고 있는데, 지금은 21망(望)에다 인물의 원근(遠近)과 일의 현미(顯微)는 논하지도 않고 일시에 아울러 비의(備擬)하였다. 이는 크게 뒤 폐단에 관계될 뿐만이 아니라 또한 명기(名器)를 설만케 하는 것이 있으니, 참석하여 회좌(會坐)한 관관(館官)은 아울러 파직시키라. 그 가운데 2본(本)의 시장(諡狀)은 대단히 흠경(欠敬)된 부분이 있고 또 잘못 쓴 것이 있다. 막중한 것을 대조하는 법제와 서경하는 법식은 지금부터 폐기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일을 주관하는 신하는 어떻게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책임을 면할 수 있겠는가? 예조 당상(禮曹堂上)과 봉상시 정(奉常寺正)도 또한 모두 파직시키라."
하였다.
원문
○弘文館議諡。 敎曰: "易名之典, 事體至嚴且重。 文任撰次其事, 宗伯照訖其狀, 始令玉署定諡, 更許太常駁議, 署經於兩司, 勘當於政府。 然後又自吏曹, 備擬受點, 設施之本意, 顧不縝密乎? 諡法之蕩然, 縱曰非今斯今; 諡望之夥然, 可謂前無後無。 取考本館謄錄, 則已例無踰十數望單。 唯今二十一望之勿論人之遠近、事之顯微, 一時竝擬者, 不但大係後弊, 抑亦有屑名器, 參坐館官, 幷罷職。 就中二本諡狀, 有大叚欠敬處, 又有誤書。 莫重處照訖之制、署經之式, 自今廢亦無妨。 主事之臣, 烏可免溺職之責? 禮曹堂上、奉常寺正, 亦竝罷職。"
원본
정조 5년 (1781)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