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11권, 정조 5년 3월 21일 甲午 2/3 기사 / 1781년 청 건륭(乾隆) 46년
승지들에게 각방의 고사를 전교와 비지·판부만으로 만들게 하다
국역
하교하기를,
"전교(傳敎)와 비지(批旨) 등의 문자를 등서(謄書)하여 들이는 예는 처음으로 선조(先朝)에서 특별히 하교하여 법식으로 정한 것인데, 중간에 폐기하였었다. 그러다가 또 중신(重臣) 황경원(黃景源)이 도승지로 있을 때에 연석에서 건의한 것으로 인하여 그 뒤로 분신(分申)214) 전후에 써서 들이면 계하(啓下)하였었는데, 이도 곧 폐지하고 말았다. 지난번 내가 청정(聽政)할 때에 재신(宰臣) 서호수(徐浩修)가 승지로 있으면서 또한 고사를 인용하여 다시 써서 들이는 예를 정하여 지금까지 준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입직하는 하위(下位)의 사람이 전적으로 담당하여 맡아서 관리하게 되어 있다. 더구나 임금의 말은 사체가 중하여 한 글자 한 귀절이라도 감히 소홀함이 없어야 하는데, 오늘 등서하여 아뢴 계본(啓本)이 과연 말이 조리에 맞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육방(六房)의 고사를 만들라는 성명(成命)을 내린 지가 이제 이미 5∼6년이나 되었는데도, 조각이 난 문서와 찢어진 책편에다가 머리도 없고 끝도 잘려나가서 옛것을 상고할 가망이 없는 실정이다. 일에 따라 경칙(警飭)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가르침을 실로 그대들을 위하여 다시 면려하고 싶지 않다. 각방(各房)의 고사는 《일기(日記)》의 수정(修正)을 기다리지 말고 전교(傳敎)와 비지(批旨)·판부(判付)만을 가지고 오늘부터 각방의 승지들이 직접 일을 맡아서 만들어 내고, 일을 모두 끝마친 뒤에는 고사책(故事冊)을 수정하겠다는 내용으로 미품(微稟)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228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註 214] 분신(分申) : 관원의 출근과 퇴근은 사시(巳時)에 나오고 신시(申時)에 물러갔는데, 이 퇴근 시간의 전후를 가리키는 말임.
원문
○敎曰: "傳敎及批旨等文字謄入之例, 昉於先朝特敎定式, 而中間廢閣矣。 又因重臣黃景源爲都承旨時, 筵中建白, 伊後分申前後書入啓下矣, 旋又廢閣。 向予聽政時, 宰臣徐浩修爲承旨也, 又引故事, 更定書入之例, 至于今遵用, 而此則坐直下位, 專當照管。 況王言體重, 一字一句, 無敢踈漏, 而今日謄啓之本, 果成說乎? 六房故事, 成出成命, 已今五六載, 而斷簡殘編, 去頭截尾, 無稽中之望。 非不欲隨事示警, 不屑之敎誨, 實不欲爲爾等, 更欲淬勵乎各房故事, 不待日記之修正, 但取傳敎及批旨判付, 自今日各房承旨, 親執成出, 畢役後以故事冊修下之意, 微稟。"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228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정조 5년 (1781) 3월 21일
국역
하교하기를,
"전교(傳敎)와 비지(批旨) 등의 문자를 등서(謄書)하여 들이는 예는 처음으로 선조(先朝)에서 특별히 하교하여 법식으로 정한 것인데, 중간에 폐기하였었다. 그러다가 또 중신(重臣) 황경원(黃景源)이 도승지로 있을 때에 연석에서 건의한 것으로 인하여 그 뒤로 분신(分申)214) 전후에 써서 들이면 계하(啓下)하였었는데, 이도 곧 폐지하고 말았다. 지난번 내가 청정(聽政)할 때에 재신(宰臣) 서호수(徐浩修)가 승지로 있으면서 또한 고사를 인용하여 다시 써서 들이는 예를 정하여 지금까지 준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입직하는 하위(下位)의 사람이 전적으로 담당하여 맡아서 관리하게 되어 있다. 더구나 임금의 말은 사체가 중하여 한 글자 한 귀절이라도 감히 소홀함이 없어야 하는데, 오늘 등서하여 아뢴 계본(啓本)이 과연 말이 조리에 맞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육방(六房)의 고사를 만들라는 성명(成命)을 내린 지가 이제 이미 5∼6년이나 되었는데도, 조각이 난 문서와 찢어진 책편에다가 머리도 없고 끝도 잘려나가서 옛것을 상고할 가망이 없는 실정이다. 일에 따라 경칙(警飭)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가르침을 실로 그대들을 위하여 다시 면려하고 싶지 않다. 각방(各房)의 고사는 《일기(日記)》의 수정(修正)을 기다리지 말고 전교(傳敎)와 비지(批旨)·판부(判付)만을 가지고 오늘부터 각방의 승지들이 직접 일을 맡아서 만들어 내고, 일을 모두 끝마친 뒤에는 고사책(故事冊)을 수정하겠다는 내용으로 미품(微稟)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228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註 214] 분신(分申) : 관원의 출근과 퇴근은 사시(巳時)에 나오고 신시(申時)에 물러갔는데, 이 퇴근 시간의 전후를 가리키는 말임.
원문
○敎曰: "傳敎及批旨等文字謄入之例, 昉於先朝特敎定式, 而中間廢閣矣。 又因重臣黃景源爲都承旨時, 筵中建白, 伊後分申前後書入啓下矣, 旋又廢閣。 向予聽政時, 宰臣徐浩修爲承旨也, 又引故事, 更定書入之例, 至于今遵用, 而此則坐直下位, 專當照管。 況王言體重, 一字一句, 無敢踈漏, 而今日謄啓之本, 果成說乎? 六房故事, 成出成命, 已今五六載, 而斷簡殘編, 去頭截尾, 無稽中之望。 非不欲隨事示警, 不屑之敎誨, 實不欲爲爾等, 更欲淬勵乎各房故事, 不待日記之修正, 但取傳敎及批旨判付, 自今日各房承旨, 親執成出, 畢役後以故事冊修下之意, 微稟。"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53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228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원본
정조 5년 (1781) 3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