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8권, 정조 3년 10월 30일 庚辰 2/4 기사 / 1779년 청 건륭(乾隆) 44년
장령 신치권이 이병모와 조준의 처벌을 거두도록 청했으나 불허하다
국역
장령 신치권(申致權)이 상소하기를,
"전하께서 재이(災異)를 당할 때마다 자신을 책망하고 직언을 구하지 않으신 적이 없는데도 천위(天威)가 거듭 진동하는 것이 오히려 다시 전과 같으니, 어찌 본원(本源)에 대한 공부가 순전하지 못한 것이 있고 겉치레를 하려는 뜻이 도리어 매우 더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처(鄭妻)·김귀주(金龜柱)가 아직도 왕법(王法)을 피하였으니, 어찌 나라에 법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외읍(外邑)에서 조적(糶糴)하는 법은 아전이 간사하여 곡물 장부에 농간을 부리고 국가에서 탕감하는 은혜는 이들의 요행스러운 것이 되기에 알맞으니, 어찌 마음 아프지 않겠습니까? 이병모(李秉模)가 사진(仕進)하였다가 곧 물러간 것은 마음이 갑자기 변한 것이기는 하나 그 일을 따져 보면 현직(顯職)을 사양한 것에 지나지 않고, 조준(趙㻐)이 끝내 명을 어긴 것은 사체(事體)가 교만하나 그 정상을 따져 보면 또한 문임(文任)을 사양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접때 처분하신 것은 지나치게 무거운 듯합니다. 신은 이병모를 귀양보내고 조준을 부처(付處)한 명을 특별히 도로 거두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맨 먼저 아뢴 일은 정수리에 일침(一針)을 놓은 것이라 할 만하니, 맹성(猛省)하려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아뢴 일은 그 윤허하고 윤허하지 않은 데에 다 헤아린 것이 있으니, 여러 말을 할 것 없다. 셋째 일은 간사한 버릇에 관계되므로 검사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으니, 묘당(廟堂)에 내려 품처(稟處)하게 하라. 조준의 일을 처분이 혹 지나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절개를 지키는 것을 중히 여기는 뜻에 보탬이 없고 군신(君臣)의 분의(分義)에 어그러질 뿐이므로 어쩔 수 없이 이런 거조(擧措)가 있었다. 그러나 중신(重臣)이 외방에 내쳐진 지 이미 여러 달이 지났고 늙은 어머니가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소석(疏釋)한들 무엇이 효(孝)로 다스리는 데에 해롭겠는가? 이병모의 일로 말하면 그대가 어찌 이토록 함부로 말하는가? 그대가 이미 그 마음가짐을 말하면 갑자기 변한 것이라 하고서 또 그 일을 따져 보면 현직을 사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으니, 또한 어찌 그리 모순된 것이 심한가? 나는 지금 인심을 바루고 조정을 안정시키려면 간사한 자가 사람들을 속이는 것을 미워하는 공부에 크게 힘쓰지 않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것이 옛사람이 가르친 것인데, 그대만이 두려워하지 않는가?"
하였다.
원문
○掌令申致權上疏曰:
殿下每當遇災之時, 未嘗不責躬求言, 而天威之荐震, 猶復如前。 豈本源之工, 有所未純, 文具之意, 反復太勝而然歟? 鄭妻、龜柱之尙逭王章, 其可謂國有法乎? 外邑糴糶之法, 吏(緣)〔掾〕 爲奸, 翻弄穀簿, 朝家蕩減之恩, 適足爲此輩之僥倖, 豈不痛哉? 李秉模之乍進旋退, 心迹之閃忽, 而擧其事, 則不過爲辭其顯職也;趙㻐之終始違傲, 事體慢蹇, 而原其情, 則亦不過爲辭其文任也。 向來處分, 恐爲過重之擧。 臣謂李秉模之投畀, 趙㻐之付處, 特爲還寢。
批曰: "首陳事, 足可謂頂門上一針, 思欲猛省;次陳事, 其允其靳。 皆有斟量, 不必多言也。 第三件事, 事係奸竇, 其所査檢之政, 在所不已。 下廟堂稟處。 趙㻐事, 非不知處分之或歸過當, 不如是, 則無益於重廉防之意, 而徒乖君臣之分義, 不得不有是擧也。 然重臣貶外, 已經屢朔, 曾聞有老母矣。 疏釋何妨於孝理之政也。 至若李秉模事, 爾胡妄言至此? 爾旣曰: ‘論其跡則閃忽’, 又曰: ‘擧其事則不過辭其顯職云云。 又何其矛盾之甚也? 予則以爲: 今欲正人心、靖朝著, 則不可不大着力於惡紫亂朱之工也。 噫! 近墨者黑, 古人攸訓。 爾獨不畏乎?
국역
장령 신치권(申致權)이 상소하기를,
"전하께서 재이(災異)를 당할 때마다 자신을 책망하고 직언을 구하지 않으신 적이 없는데도 천위(天威)가 거듭 진동하는 것이 오히려 다시 전과 같으니, 어찌 본원(本源)에 대한 공부가 순전하지 못한 것이 있고 겉치레를 하려는 뜻이 도리어 매우 더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처(鄭妻)·김귀주(金龜柱)가 아직도 왕법(王法)을 피하였으니, 어찌 나라에 법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외읍(外邑)에서 조적(糶糴)하는 법은 아전이 간사하여 곡물 장부에 농간을 부리고 국가에서 탕감하는 은혜는 이들의 요행스러운 것이 되기에 알맞으니, 어찌 마음 아프지 않겠습니까? 이병모(李秉模)가 사진(仕進)하였다가 곧 물러간 것은 마음이 갑자기 변한 것이기는 하나 그 일을 따져 보면 현직(顯職)을 사양한 것에 지나지 않고, 조준(趙㻐)이 끝내 명을 어긴 것은 사체(事體)가 교만하나 그 정상을 따져 보면 또한 문임(文任)을 사양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접때 처분하신 것은 지나치게 무거운 듯합니다. 신은 이병모를 귀양보내고 조준을 부처(付處)한 명을 특별히 도로 거두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맨 먼저 아뢴 일은 정수리에 일침(一針)을 놓은 것이라 할 만하니, 맹성(猛省)하려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아뢴 일은 그 윤허하고 윤허하지 않은 데에 다 헤아린 것이 있으니, 여러 말을 할 것 없다. 셋째 일은 간사한 버릇에 관계되므로 검사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으니, 묘당(廟堂)에 내려 품처(稟處)하게 하라. 조준의 일을 처분이 혹 지나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절개를 지키는 것을 중히 여기는 뜻에 보탬이 없고 군신(君臣)의 분의(分義)에 어그러질 뿐이므로 어쩔 수 없이 이런 거조(擧措)가 있었다. 그러나 중신(重臣)이 외방에 내쳐진 지 이미 여러 달이 지났고 늙은 어머니가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소석(疏釋)한들 무엇이 효(孝)로 다스리는 데에 해롭겠는가? 이병모의 일로 말하면 그대가 어찌 이토록 함부로 말하는가? 그대가 이미 그 마음가짐을 말하면 갑자기 변한 것이라 하고서 또 그 일을 따져 보면 현직을 사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으니, 또한 어찌 그리 모순된 것이 심한가? 나는 지금 인심을 바루고 조정을 안정시키려면 간사한 자가 사람들을 속이는 것을 미워하는 공부에 크게 힘쓰지 않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것이 옛사람이 가르친 것인데, 그대만이 두려워하지 않는가?"
하였다.
원문
○掌令申致權上疏曰:
殿下每當遇災之時, 未嘗不責躬求言, 而天威之荐震, 猶復如前。 豈本源之工, 有所未純, 文具之意, 反復太勝而然歟? 鄭妻、龜柱之尙逭王章, 其可謂國有法乎? 外邑糴糶之法, 吏(緣)〔掾〕 爲奸, 翻弄穀簿, 朝家蕩減之恩, 適足爲此輩之僥倖, 豈不痛哉? 李秉模之乍進旋退, 心迹之閃忽, 而擧其事, 則不過爲辭其顯職也;趙㻐之終始違傲, 事體慢蹇, 而原其情, 則亦不過爲辭其文任也。 向來處分, 恐爲過重之擧。 臣謂李秉模之投畀, 趙㻐之付處, 特爲還寢。
批曰: "首陳事, 足可謂頂門上一針, 思欲猛省;次陳事, 其允其靳。 皆有斟量, 不必多言也。 第三件事, 事係奸竇, 其所査檢之政, 在所不已。 下廟堂稟處。 趙㻐事, 非不知處分之或歸過當, 不如是, 則無益於重廉防之意, 而徒乖君臣之分義, 不得不有是擧也。 然重臣貶外, 已經屢朔, 曾聞有老母矣。 疏釋何妨於孝理之政也。 至若李秉模事, 爾胡妄言至此? 爾旣曰: ‘論其跡則閃忽’, 又曰: ‘擧其事則不過辭其顯職云云。 又何其矛盾之甚也? 予則以爲: 今欲正人心、靖朝著, 則不可不大着力於惡紫亂朱之工也。 噫! 近墨者黑, 古人攸訓。 爾獨不畏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