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74권, 영조 27년 10월 10일 癸卯 1/1 기사 / 1751년 청 건륭(乾隆) 16년
약방에서 입시하여 민백상·조명정 등의 일을 논의하니, 탕제를 들지 않다
국역
약방(藥房)에서 입시(入侍)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조금 전에 수교(手敎)를 빈청(賓廳)에 내렸다. 오늘날 여러 신하들이 민백상(閔百祥)·조명정(趙明鼎)에 대해서 앞을 바라보고 뒤를 돌아다 보면서 오히려 혹시나 손상을 입을까 두려워 하면서도, 그 임금에게 약(藥)을 올리려 하고 있으니, 되겠는가?"
하니, 도제조 김약로(金若魯)가 말하기를,
"민백상의 일로써 말하면 편벽된 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저 고담(高談)이나 준론(峻論)을 하게 되면 자기들끼리의 물망(物望)이 가일층(加一層)이 되기 때문에 이따금 이와 같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옥음(玉音)을 몹시 높혀 말하기를,
"일변(一邊)의 ‘군무 미설(君誣未雪)’이라고 말하는 자를 일변에서는 반드시 의심할 것이다."
하니, 김약로가 말하기를,
"민백상이 편벽된 논의를 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았던 것이며 어찌 성궁(聖躬)에게 참으로 무함함이 있으셨겠습니까?"
하였다. 이 때 임금의 마음이 격뇌(激惱)하여 탕제(湯劑)를 오랫동안 들지 아니하고 수서(手書)를 또 내리니, 대개 감히 들을 수 없는 하교였다.
- 【태백산사고본】 54책 74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417면
원문
영조 27년 (1751) 10월 10일
영조실록74권, 영조 27년 10월 10일 癸卯 1/1 기사 / 1751년 청 건륭(乾隆) 16년
약방에서 입시하여 민백상·조명정 등의 일을 논의하니, 탕제를 들지 않다
국역
약방(藥房)에서 입시(入侍)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조금 전에 수교(手敎)를 빈청(賓廳)에 내렸다. 오늘날 여러 신하들이 민백상(閔百祥)·조명정(趙明鼎)에 대해서 앞을 바라보고 뒤를 돌아다 보면서 오히려 혹시나 손상을 입을까 두려워 하면서도, 그 임금에게 약(藥)을 올리려 하고 있으니, 되겠는가?"
하니, 도제조 김약로(金若魯)가 말하기를,
"민백상의 일로써 말하면 편벽된 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저 고담(高談)이나 준론(峻論)을 하게 되면 자기들끼리의 물망(物望)이 가일층(加一層)이 되기 때문에 이따금 이와 같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옥음(玉音)을 몹시 높혀 말하기를,
"일변(一邊)의 ‘군무 미설(君誣未雪)’이라고 말하는 자를 일변에서는 반드시 의심할 것이다."
하니, 김약로가 말하기를,
"민백상이 편벽된 논의를 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았던 것이며 어찌 성궁(聖躬)에게 참으로 무함함이 있으셨겠습니까?"
하였다. 이 때 임금의 마음이 격뇌(激惱)하여 탕제(湯劑)를 오랫동안 들지 아니하고 수서(手書)를 또 내리니, 대개 감히 들을 수 없는 하교였다.
- 【태백산사고본】 54책 74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4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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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영조 27년 (1751) 10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