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71권, 영조 26년 7월 9일 己酉 1/4 기사 / 1750년 청 건륭(乾隆) 15년
양역의 절반을 감하라고 명하다
국역
양역(良役)의 절반을 감하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명정전(明政殿)에 나아가 시임·원임 대신과 비국 당상 및 육조 당상, 양사 제신을 불러 두루 양역의 변통에 대한 대책을 물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구전(口錢)은 한 집안에서 거두는 것이니 주인과 노비의 명분이 문란하며, 결포(結布)는 이미 정해진 세율이 있으니 결코 더 부과하기가 어렵고, 호포(戶布)가 조금 나을 것 같아 1필을 감하고 호전(戶錢)을 걷기로 하였으나 마음은 매우 불쾌하다. 영상은 비록 경하게 걷는 것이 옳다고 하나 절목(節目)을 보면 이 역시 호구를 수괄(搜括)하는 것이다. 백성의 뜻을 알고 싶어서 재차 궐문에 임하였더니, 몇 사람의 유생이 ‘전하께서는 백성을 해친 일이 없는데 지금 이 일을 하는 것을 신은 실로 마음아프게 여깁니다.’라고 말하고, 방민(坊民)들은 입술을 삐쭉거리면서 불평하고 있다고 말하니, 비록 강구(康衢)155) 에 노닌들 어찌 이보다 더하겠는가? 군포(軍布)는 나라의 반쪽이 원망하고 호포는 일국이 원망할 것이다. 그러나 민심은 진정을 시켜야지 선동을 해서는 안된다. 지금 내가 어탑에 앉지 않는 것은 마음에 겸연(歉然)한 바가 있어서 그러한 것이다. 경 등은 알겠는가? 호포나 결포나 모두 구애되는 사단은 있기 마련이다. 이제는 1필은 감하는 정사로 온전히 돌아가야 할 것이니, 1필을 감한 대체를 경 등은 잘 강구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3책 71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75면
- [註 155] 강구(康衢) : 강은 오방(五方)으로 통하는 길이고, 구는 사방(四方)으로 통하는 길. 번화한 거리를 말함. 요(堯)임금이 말년에 미복(微服) 차림으로 강구에 나가 노니는데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童謠)에 임금이 없어도 태평 성대를 누릴 수 있다는 대목이 있었음.
원문
○己酉/命減良役之半。 上御明政殿, 召時原任大臣、備堂及六曹堂上、兩司諸臣, 歷詢良役變通之策。 上曰: "口錢則徵於一家, 主奴名分紊矣, 結布則已有定稅, 決難加賦, 戶布雖似差勝, 減一疋而收諸戶, 心甚不快。 領相雖以輕歛爲是, 而且觀節目, 便是括戶也。 欲知民情, 再次臨門, 數三儒生曰, ‘殿下無傷民之事, 而今爲此事, 臣實痛心’, 云, 而坊民曰鼓吻稱冤, 雖遊於康衢, 豈加於此乎? 軍布半國之怨, 戶布一國之怨。 民心宜定而不宜動也。 今予之不坐御榻者, 心有所歉然而然。 卿等知之乎? 戶布、結布皆有掣肘之端。 今則全歸於減一疋之政, 其減疋之代, 卿等善爲講究也。"
- 【태백산사고본】 53책 71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75면
영조실록71권, 영조 26년 7월 9일 己酉 1/4 기사 / 1750년 청 건륭(乾隆) 15년
양역의 절반을 감하라고 명하다
국역
양역(良役)의 절반을 감하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명정전(明政殿)에 나아가 시임·원임 대신과 비국 당상 및 육조 당상, 양사 제신을 불러 두루 양역의 변통에 대한 대책을 물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구전(口錢)은 한 집안에서 거두는 것이니 주인과 노비의 명분이 문란하며, 결포(結布)는 이미 정해진 세율이 있으니 결코 더 부과하기가 어렵고, 호포(戶布)가 조금 나을 것 같아 1필을 감하고 호전(戶錢)을 걷기로 하였으나 마음은 매우 불쾌하다. 영상은 비록 경하게 걷는 것이 옳다고 하나 절목(節目)을 보면 이 역시 호구를 수괄(搜括)하는 것이다. 백성의 뜻을 알고 싶어서 재차 궐문에 임하였더니, 몇 사람의 유생이 ‘전하께서는 백성을 해친 일이 없는데 지금 이 일을 하는 것을 신은 실로 마음아프게 여깁니다.’라고 말하고, 방민(坊民)들은 입술을 삐쭉거리면서 불평하고 있다고 말하니, 비록 강구(康衢)155) 에 노닌들 어찌 이보다 더하겠는가? 군포(軍布)는 나라의 반쪽이 원망하고 호포는 일국이 원망할 것이다. 그러나 민심은 진정을 시켜야지 선동을 해서는 안된다. 지금 내가 어탑에 앉지 않는 것은 마음에 겸연(歉然)한 바가 있어서 그러한 것이다. 경 등은 알겠는가? 호포나 결포나 모두 구애되는 사단은 있기 마련이다. 이제는 1필은 감하는 정사로 온전히 돌아가야 할 것이니, 1필을 감한 대체를 경 등은 잘 강구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3책 71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75면
- [註 155] 강구(康衢) : 강은 오방(五方)으로 통하는 길이고, 구는 사방(四方)으로 통하는 길. 번화한 거리를 말함. 요(堯)임금이 말년에 미복(微服) 차림으로 강구에 나가 노니는데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童謠)에 임금이 없어도 태평 성대를 누릴 수 있다는 대목이 있었음.
원문
○己酉/命減良役之半。 上御明政殿, 召時原任大臣、備堂及六曹堂上、兩司諸臣, 歷詢良役變通之策。 上曰: "口錢則徵於一家, 主奴名分紊矣, 結布則已有定稅, 決難加賦, 戶布雖似差勝, 減一疋而收諸戶, 心甚不快。 領相雖以輕歛爲是, 而且觀節目, 便是括戶也。 欲知民情, 再次臨門, 數三儒生曰, ‘殿下無傷民之事, 而今爲此事, 臣實痛心’, 云, 而坊民曰鼓吻稱冤, 雖遊於康衢, 豈加於此乎? 軍布半國之怨, 戶布一國之怨。 民心宜定而不宜動也。 今予之不坐御榻者, 心有所歉然而然。 卿等知之乎? 戶布、結布皆有掣肘之端。 今則全歸於減一疋之政, 其減疋之代, 卿等善爲講究也。"
- 【태백산사고본】 53책 71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37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