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69권, 영조 25년 5월 19일 丙寅 2/3 기사 / 1749년 청 건륭(乾隆) 14년
《여사제강》에 공양왕 이하의 판본을 태백산 사고에 보관하도록 명하다
국역
임금이 소대를 행하고, 《여사제강(麗史提綱)》을 강하다가 공양왕(恭讓王) 조(朝)에 이르러서 강을 중지하고, 《여사제강》에 공양왕 이하의 판본(板本)을 태백산(太白山) 사고(史庫)에 보관하라고 명하고, 하교하기를,
"무릇 사초(史草)는 비록 제왕(帝王)의 높음으로도 감히 취해 보지 못하게 하여 그 한계를 지극히 엄하게 한 것은, 대체로 당시에 당연히 휘(諱)해야 할 바로써 후세의 사필(史筆)을 엄하게 하려는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강목(綱目)》은 종훈(宗訓)097) 이 즉위(卽位)하는 데에 그쳤고, 온공(溫公)의 《자치통감(資治通鑑)》도 또한 공제(恭帝)에서 그쳤으며, 한통(韓通)098) 의 일은 후사(後史)로 부쳤으니, 선유(先儒)와 대현(大賢)의 그 뜻은 모두 일반이었다. 《여사제강》은 곧 유계(兪棨)가 지은 것인데, 정몽주(鄭夢周)를 죽였다고 운운한 것은 송사(宋史)의 뜻과 다름이 있다. 고치고자 하면 아마도 춘추 필법(春秋筆法)이 아닌 듯하고, 그냥 두고자 하면 후대(後代)의 왕이 된 자가 마음이 편하겠는가?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回軍)한 것은 대의(大義)가 옛날에 드러났고, 정창(定昌)099) 을 서립(書立)한 것은 윤리(倫理)가 전조(前朝)에서 바루어졌으니, 비록 유계가 다시 태어나서라도 나의 말은 바꾸지 못할 것이다. 앞서 간행한 책은 지워 버릴 수 없고, 사고(史庫)에 간직해 둔 이미 인쇄된 것은 거두어 모아 세초(洗草)하면 이는 사체(史體)를 바루는 것에 불과하니 꼭 숨길 일도 아니며 꼭 금지할 것도 아니다. 사실(私室)에 있는 것을 다시 인쇄하도록 허락하여 그 전함을 넓히도록 하라."
하였고, 또 명하여 《여사제강》 서문(序文) 중에 ‘이적 금수(夷狄禽獸)’ 4글자를 고쳐 ‘윤강 부정(倫綱不正)’으로 하도록 하였는데, 그것은 모두 승조(勝朝)100) 를 말한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69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342면
- [註 097] 종훈(宗訓) : 후주(後周) 공제(恭帝)의 이름.
- [註 098] 한통(韓通) : 후주(後周) 때의 무신(武臣).
- [註 099] 정창(定昌) : 공양왕의 봉호. 정창군.
- [註 100] 승조(勝朝) : 고려조.
원문
○上行召對, 講《麗史》, 至恭讓而止講, 命藏《麗史提綱》 恭讓王以下板本於太白山史庫, 敎曰: "凡史草雖以帝王之尊, 不敢取看, 界限至嚴, 蓋以當時所當諱, 後世嚴史筆故也。 故《綱目》止宗訓, 立溫公 《通鑑》, 亦止於恭帝, 以韓通事, 付之後史, 先儒大賢, 其意一也。 《提綱》卽兪棨所撰, 而殺鄭夢周云者, 有異宋史之義。 欲改則恐非《春秋》筆法, 欲置則爲後王者於心便乎? 威化回軍, 大義彰於昔年, 書立定昌, 倫理正於前朝, 雖棨復生不易予言矣。 前刊之本, 不可刮去, 其藏史庫已印者, 收聚洗草, 此不過正史體, 不必諱也, 不必禁也。 私室所在, 許令更印, 以廣其傳。" 又命改《麗史》序文中, 夷狄禽獸四字曰倫綱不正, 以其言勝朝也。
- 【태백산사고본】 52책 69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342면
영조실록69권, 영조 25년 5월 19일 丙寅 2/3 기사 / 1749년 청 건륭(乾隆) 14년
《여사제강》에 공양왕 이하의 판본을 태백산 사고에 보관하도록 명하다
국역
임금이 소대를 행하고, 《여사제강(麗史提綱)》을 강하다가 공양왕(恭讓王) 조(朝)에 이르러서 강을 중지하고, 《여사제강》에 공양왕 이하의 판본(板本)을 태백산(太白山) 사고(史庫)에 보관하라고 명하고, 하교하기를,
"무릇 사초(史草)는 비록 제왕(帝王)의 높음으로도 감히 취해 보지 못하게 하여 그 한계를 지극히 엄하게 한 것은, 대체로 당시에 당연히 휘(諱)해야 할 바로써 후세의 사필(史筆)을 엄하게 하려는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강목(綱目)》은 종훈(宗訓)097) 이 즉위(卽位)하는 데에 그쳤고, 온공(溫公)의 《자치통감(資治通鑑)》도 또한 공제(恭帝)에서 그쳤으며, 한통(韓通)098) 의 일은 후사(後史)로 부쳤으니, 선유(先儒)와 대현(大賢)의 그 뜻은 모두 일반이었다. 《여사제강》은 곧 유계(兪棨)가 지은 것인데, 정몽주(鄭夢周)를 죽였다고 운운한 것은 송사(宋史)의 뜻과 다름이 있다. 고치고자 하면 아마도 춘추 필법(春秋筆法)이 아닌 듯하고, 그냥 두고자 하면 후대(後代)의 왕이 된 자가 마음이 편하겠는가?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回軍)한 것은 대의(大義)가 옛날에 드러났고, 정창(定昌)099) 을 서립(書立)한 것은 윤리(倫理)가 전조(前朝)에서 바루어졌으니, 비록 유계가 다시 태어나서라도 나의 말은 바꾸지 못할 것이다. 앞서 간행한 책은 지워 버릴 수 없고, 사고(史庫)에 간직해 둔 이미 인쇄된 것은 거두어 모아 세초(洗草)하면 이는 사체(史體)를 바루는 것에 불과하니 꼭 숨길 일도 아니며 꼭 금지할 것도 아니다. 사실(私室)에 있는 것을 다시 인쇄하도록 허락하여 그 전함을 넓히도록 하라."
하였고, 또 명하여 《여사제강》 서문(序文) 중에 ‘이적 금수(夷狄禽獸)’ 4글자를 고쳐 ‘윤강 부정(倫綱不正)’으로 하도록 하였는데, 그것은 모두 승조(勝朝)100) 를 말한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69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342면
- [註 097] 종훈(宗訓) : 후주(後周) 공제(恭帝)의 이름.
- [註 098] 한통(韓通) : 후주(後周) 때의 무신(武臣).
- [註 099] 정창(定昌) : 공양왕의 봉호. 정창군.
- [註 100] 승조(勝朝) : 고려조.
원문
○上行召對, 講《麗史》, 至恭讓而止講, 命藏《麗史提綱》 恭讓王以下板本於太白山史庫, 敎曰: "凡史草雖以帝王之尊, 不敢取看, 界限至嚴, 蓋以當時所當諱, 後世嚴史筆故也。 故《綱目》止宗訓, 立溫公 《通鑑》, 亦止於恭帝, 以韓通事, 付之後史, 先儒大賢, 其意一也。 《提綱》卽兪棨所撰, 而殺鄭夢周云者, 有異宋史之義。 欲改則恐非《春秋》筆法, 欲置則爲後王者於心便乎? 威化回軍, 大義彰於昔年, 書立定昌, 倫理正於前朝, 雖棨復生不易予言矣。 前刊之本, 不可刮去, 其藏史庫已印者, 收聚洗草, 此不過正史體, 不必諱也, 不必禁也。 私室所在, 許令更印, 以廣其傳。" 又命改《麗史》序文中, 夷狄禽獸四字曰倫綱不正, 以其言勝朝也。
- 【태백산사고본】 52책 69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34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