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68권, 영조 24년 윤7월 19일 辛未 4/4 기사 / 1748년 청 건륭(乾隆) 13년
이천보를 외직에 보임시키라는 명을 중지시키고 이조 참판에 제수하다
국역
이천보(李天輔)를 외직에 보임시키라는 명을 도로 중지시키고 발탁하여 이조 참판에 제수하였다. 좌의정 조현명(趙顯命)이 차자를 올리기를,
"지금 소보(小報)를 접견해 보니, 이조 참의 이천보는 당인(黨人)을 먼저 기용했다고 하여 특별히 외직에 보임시키라는 명이 있습니다. 아! 지금 사람 치고서 당인이 아닌 사람이 누구입니까? 전관(銓官)이 당인을 기용하지 않는다면 어느 곳에서 사람을 구해 오겠습니까? 만일 이천보가 현광우(玄光宇)를 의망(擬望)한 것이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조진세(趙鎭世)·이영조(李永祚)는 유독 이천보가 의망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가 먹은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로써 죄를 삼으니, 또한 지나친 것이 아닙니까? 이천보가 행한 몇 차례의 정사(政事)는 자못 널리 탕평(蕩平)하게 하여 근래의 면목(面目)과는 상당히 같지 않은 점이 있어 신은 그윽이 훌륭하게 여겼었습니다. 이런 때에 이같은 전관을 잃는 것이 어찌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하고, 영의정 김재로(金在魯)도 또한 아뢰기를,
"이천보가 해서(海西)에서 조정으로 돌아와 세도(世道)를 매우 걱정하면서 이를 바로잡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고 있었으니, 지금 이 이조 참의의 자리는 적격자를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광우·조진세가 모두 그의 손에 의해 기용되었으므로 이 때문에 비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지금 외직에 보임시키는 것은 또한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예조 판서 이주진(李周鎭)은 말하기를,
"이천보의 정사는 신도 또한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갑자기 말하기를,
"이는 내가 미처 몰랐던 일이다."
하였다. 이때 이천보가 아직 한강(漢江)을 건너지 않고 막 도성(都城) 밖으로 나갔는데, 달려가서 부르자 이천보가 달려 들어왔다. 임금이 인견하고 갖추 위유(慰諭)하고 나서 이조 참판으로 발탁하였다. 이에 앞서 이천보는 문망(文望)이 있고 제우(儕友)가 매우 번성하였으므로 임금이 이를 구실로 조상(朝象)을 진정시키려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기를 꺾었다가 곧이어 발탁하여 승진시킨 것이다. 이천보가 원경하(元景夏)와 사이가 좋지 않았었는데, 이날 이천보가 전에 없던 총명(寵命)을 받고서 받들어 응하려 하였으나 제우들이 비난할까 우려하여 머뭇거리면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원경하가 이러하다는 말을 듣고 손바닥을 치며 크게 웃고 나서 인하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를 대신해서 이천보에게 말하여 주라. 그가 어떻게 조정을 탕평시킬 수 있겠는가? 탕평하게 하려면 반드시 나에게 와서 배워야 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1책 68권 7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302면
원문
○還寢李天輔外補之命, 擢拜吏曹參判。 左議政趙顯命上箚言:
卽接小報, 吏曹參議李天輔, 以先用黨人, 有特補之命。 嗚呼! 今之人孰非黨人也? 銓官不用黨人, 何處覓來? 若曰天輔之擬光宇爲有意也, 趙鎭世, 李永祚獨非天輔之所擬乎? 其無情可推而知也。 以此爲罪, 不亦過乎? 天輔數次爲政, 頗能恢蕩, 殊不似近來面目, 臣竊多之。 此時失如此銓官, 豈不可惜也?
領議政金在魯亦奏曰: "天輔自海西還朝, 深以世道爲憂, 以爲己任, 今此吏議, 可謂得人。 光宇、鎭世皆出其手, 以此謗之者多, 今玆外補, 不亦冤乎?" 禮曹判書李周鎭曰: "天輔之爲政, 臣亦以爲難能也。" 上遽曰: "此予所未及知也。" 時天輔未及渡江, 纔出城外, 趣召之, 天輔馳入。 上引見慰諭備至, 擢爲吏曹參判。 先是, 天輔有文望, 儕友甚盛, 上欲藉此以鎭朝象, 故初示摧折, 旋卽陞擢。 天輔與元景夏不相能, 是日天輔承曠絶之寵命, 欲爲承膺, 而猶恐儕友之譏罵, 徊徨不知所出。 景夏聞之, 拊掌大笑, 因語人曰: "爲我語天輔。 渠安能爲蕩平? 若欲蕩平, 須來學於吾云。"
- 【태백산사고본】 51책 68권 7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302면
영조실록68권, 영조 24년 윤7월 19일 辛未 4/4 기사 / 1748년 청 건륭(乾隆) 13년
이천보를 외직에 보임시키라는 명을 중지시키고 이조 참판에 제수하다
국역
이천보(李天輔)를 외직에 보임시키라는 명을 도로 중지시키고 발탁하여 이조 참판에 제수하였다. 좌의정 조현명(趙顯命)이 차자를 올리기를,
"지금 소보(小報)를 접견해 보니, 이조 참의 이천보는 당인(黨人)을 먼저 기용했다고 하여 특별히 외직에 보임시키라는 명이 있습니다. 아! 지금 사람 치고서 당인이 아닌 사람이 누구입니까? 전관(銓官)이 당인을 기용하지 않는다면 어느 곳에서 사람을 구해 오겠습니까? 만일 이천보가 현광우(玄光宇)를 의망(擬望)한 것이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조진세(趙鎭世)·이영조(李永祚)는 유독 이천보가 의망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가 먹은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로써 죄를 삼으니, 또한 지나친 것이 아닙니까? 이천보가 행한 몇 차례의 정사(政事)는 자못 널리 탕평(蕩平)하게 하여 근래의 면목(面目)과는 상당히 같지 않은 점이 있어 신은 그윽이 훌륭하게 여겼었습니다. 이런 때에 이같은 전관을 잃는 것이 어찌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하고, 영의정 김재로(金在魯)도 또한 아뢰기를,
"이천보가 해서(海西)에서 조정으로 돌아와 세도(世道)를 매우 걱정하면서 이를 바로잡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고 있었으니, 지금 이 이조 참의의 자리는 적격자를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광우·조진세가 모두 그의 손에 의해 기용되었으므로 이 때문에 비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지금 외직에 보임시키는 것은 또한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예조 판서 이주진(李周鎭)은 말하기를,
"이천보의 정사는 신도 또한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갑자기 말하기를,
"이는 내가 미처 몰랐던 일이다."
하였다. 이때 이천보가 아직 한강(漢江)을 건너지 않고 막 도성(都城) 밖으로 나갔는데, 달려가서 부르자 이천보가 달려 들어왔다. 임금이 인견하고 갖추 위유(慰諭)하고 나서 이조 참판으로 발탁하였다. 이에 앞서 이천보는 문망(文望)이 있고 제우(儕友)가 매우 번성하였으므로 임금이 이를 구실로 조상(朝象)을 진정시키려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기를 꺾었다가 곧이어 발탁하여 승진시킨 것이다. 이천보가 원경하(元景夏)와 사이가 좋지 않았었는데, 이날 이천보가 전에 없던 총명(寵命)을 받고서 받들어 응하려 하였으나 제우들이 비난할까 우려하여 머뭇거리면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원경하가 이러하다는 말을 듣고 손바닥을 치며 크게 웃고 나서 인하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를 대신해서 이천보에게 말하여 주라. 그가 어떻게 조정을 탕평시킬 수 있겠는가? 탕평하게 하려면 반드시 나에게 와서 배워야 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1책 68권 7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302면
원문
○還寢李天輔外補之命, 擢拜吏曹參判。 左議政趙顯命上箚言:
卽接小報, 吏曹參議李天輔, 以先用黨人, 有特補之命。 嗚呼! 今之人孰非黨人也? 銓官不用黨人, 何處覓來? 若曰天輔之擬光宇爲有意也, 趙鎭世, 李永祚獨非天輔之所擬乎? 其無情可推而知也。 以此爲罪, 不亦過乎? 天輔數次爲政, 頗能恢蕩, 殊不似近來面目, 臣竊多之。 此時失如此銓官, 豈不可惜也?
領議政金在魯亦奏曰: "天輔自海西還朝, 深以世道爲憂, 以爲己任, 今此吏議, 可謂得人。 光宇、鎭世皆出其手, 以此謗之者多, 今玆外補, 不亦冤乎?" 禮曹判書李周鎭曰: "天輔之爲政, 臣亦以爲難能也。" 上遽曰: "此予所未及知也。" 時天輔未及渡江, 纔出城外, 趣召之, 天輔馳入。 上引見慰諭備至, 擢爲吏曹參判。 先是, 天輔有文望, 儕友甚盛, 上欲藉此以鎭朝象, 故初示摧折, 旋卽陞擢。 天輔與元景夏不相能, 是日天輔承曠絶之寵命, 欲爲承膺, 而猶恐儕友之譏罵, 徊徨不知所出。 景夏聞之, 拊掌大笑, 因語人曰: "爲我語天輔。 渠安能爲蕩平? 若欲蕩平, 須來學於吾云。"
- 【태백산사고본】 51책 68권 7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30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