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67권, 영조 24년 2월 26일 庚辰 3/3 기사 / 1748년 청 건륭(乾隆) 13년
어제시 2수를 써서 도제조 조현명과 제조 이기진에게 내리다
국역
내국(內局)에서 입시하였다. 임금이 어제시(御製詩) 두 수(首)를 써서 도제조 조현명(趙顯命)과 제조 이기진(李箕鎭)에게 내렸다. 하교하기를,
"아랫 구절은 중신(重臣)에 대해 깊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곧 정문 일침(頂門一針)인 것이다. 당심(黨心)을 씻어 버려야 한다는 ‘당(黨)’ 자는 중신들이 반드시 듣기 싫어 할 것이기 때문에 ‘구(舊)’ 자로 고쳤다. 어제 처음에는 시임·원임 대신(大臣)과 2품 이상들을 모두 모이게 하여 함께 즐기려고 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장대(張大)하게 해서는 안되겠기에 단지 도감의 여러 신하들과 대신만을 불러서 향응한 것이다. 천리와 인정이 그 가운데 함께 행해져서 한 전내에서 같이 즐겼으니, 곧 옛사람이 이른바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뜻이다. 여러 신하들이 한 당(堂)에서 주선한 것은 매우 성대한 거조였다."
하니, 조현명이 말하기를,
"수십 년 전에는 조정의 기상이 반드시 어제의 연회 때 같지는 않았을 터인데, 근래에는 점차 전보다 나아지고 있습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은 이러하지만 말초의 인심과 세도(世道)를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하였다. 조현명이 말하기를,
"우윤(右尹) 이광덕(李匡德)이 하례하는 반열에 참여하기 위해 올라왔습니다만, 실로 병이 바야흐로 중한 상태이어서 사송(辭訟)을 다루는 중한 자리를 오래 비워 둘 수는 없습니다."
하니, 체직을 허락하라고 명하였다. 판부사 민응수(閔應洙), 봉조하 이병상(李秉常)은 함께 병 때문에 반열에 참여하지 못하였는데, 상소하여 견책을 내릴 것을 청하니, 우악한 비답을 내렸다. 임금이 말하기를,
"일진이 길하여 큰 일이 순조롭게 완성되었는데, 단지 우려스러운 것은 뒷날의 임금들이 이를 계승하여 그림을 그리는 일이 계속 있게 될까 하는 그것이다. 어제(御製)에서 운운한 것이 있었으나 경 등은 이미 노쇠했다. 연소한 신하가 여기에서 이 하교를 들었으면 뒷날 이 일을 계승하려 하는 경우에는 극력 간해야 한다."
하니, 조현명이 말하기를,
"성교(聖敎)가 여기에까지 언급되었으니 참으로 깊고도 원대하신 생각이십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0책 67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282면
원문
○內局入侍。 上書下御製二首於都提調趙顯命及提調李箕鎭。 敎曰: "下句有深意於重臣, 卽頂門一針。 黨心滌之黨字, 重臣必惡聞, 故改以舊字矣。 昨日初欲齊會時、原任大臣及二品以上與之同歡矣。 更思之, 不可張大, 故只召都監諸臣、大臣饗之。 天理、人情同行其中, 同樂於一殿之內, 卽古人所謂 ‘與民同樂’ 之意也。 諸臣之周旋於一堂, 甚盛擧也。" 顯命曰: "數十年前則朝廷氣象, 必不如昨宴時, 而近來則漸勝於前矣。" 上曰: "今雖如此, 而末稍人心世道, 將何以爲之耶?" 顯命曰: "右尹李匡德爲參賀班上來, 而實病方重, 辭訟重地, 不可久曠矣。" 命許遞。 判府事閔應洙、奉朝賀李秉常, 俱病未參班, 上疏請譴, 賜優批。 上曰: "日吉辰良, 大事順成, 而但慮後辟之繼此而有繪事也。 御製中有所云云, 而卿等已老矣。 年少之臣, 在此聞此敎, 日後如有繼此而爲之, 則力諫也。" 顯命曰: "聖敎至及於此, 誠深遠之慮也。"
- 【태백산사고본】 50책 67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282면
영조 24년 (1748) 2월 26일
영조실록67권, 영조 24년 2월 26일 庚辰 3/3 기사 / 1748년 청 건륭(乾隆) 13년
어제시 2수를 써서 도제조 조현명과 제조 이기진에게 내리다
국역
내국(內局)에서 입시하였다. 임금이 어제시(御製詩) 두 수(首)를 써서 도제조 조현명(趙顯命)과 제조 이기진(李箕鎭)에게 내렸다. 하교하기를,
"아랫 구절은 중신(重臣)에 대해 깊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곧 정문 일침(頂門一針)인 것이다. 당심(黨心)을 씻어 버려야 한다는 ‘당(黨)’ 자는 중신들이 반드시 듣기 싫어 할 것이기 때문에 ‘구(舊)’ 자로 고쳤다. 어제 처음에는 시임·원임 대신(大臣)과 2품 이상들을 모두 모이게 하여 함께 즐기려고 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장대(張大)하게 해서는 안되겠기에 단지 도감의 여러 신하들과 대신만을 불러서 향응한 것이다. 천리와 인정이 그 가운데 함께 행해져서 한 전내에서 같이 즐겼으니, 곧 옛사람이 이른바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뜻이다. 여러 신하들이 한 당(堂)에서 주선한 것은 매우 성대한 거조였다."
하니, 조현명이 말하기를,
"수십 년 전에는 조정의 기상이 반드시 어제의 연회 때 같지는 않았을 터인데, 근래에는 점차 전보다 나아지고 있습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은 이러하지만 말초의 인심과 세도(世道)를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하였다. 조현명이 말하기를,
"우윤(右尹) 이광덕(李匡德)이 하례하는 반열에 참여하기 위해 올라왔습니다만, 실로 병이 바야흐로 중한 상태이어서 사송(辭訟)을 다루는 중한 자리를 오래 비워 둘 수는 없습니다."
하니, 체직을 허락하라고 명하였다. 판부사 민응수(閔應洙), 봉조하 이병상(李秉常)은 함께 병 때문에 반열에 참여하지 못하였는데, 상소하여 견책을 내릴 것을 청하니, 우악한 비답을 내렸다. 임금이 말하기를,
"일진이 길하여 큰 일이 순조롭게 완성되었는데, 단지 우려스러운 것은 뒷날의 임금들이 이를 계승하여 그림을 그리는 일이 계속 있게 될까 하는 그것이다. 어제(御製)에서 운운한 것이 있었으나 경 등은 이미 노쇠했다. 연소한 신하가 여기에서 이 하교를 들었으면 뒷날 이 일을 계승하려 하는 경우에는 극력 간해야 한다."
하니, 조현명이 말하기를,
"성교(聖敎)가 여기에까지 언급되었으니 참으로 깊고도 원대하신 생각이십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0책 67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282면
원문
○內局入侍。 上書下御製二首於都提調趙顯命及提調李箕鎭。 敎曰: "下句有深意於重臣, 卽頂門一針。 黨心滌之黨字, 重臣必惡聞, 故改以舊字矣。 昨日初欲齊會時、原任大臣及二品以上與之同歡矣。 更思之, 不可張大, 故只召都監諸臣、大臣饗之。 天理、人情同行其中, 同樂於一殿之內, 卽古人所謂 ‘與民同樂’ 之意也。 諸臣之周旋於一堂, 甚盛擧也。" 顯命曰: "數十年前則朝廷氣象, 必不如昨宴時, 而近來則漸勝於前矣。" 上曰: "今雖如此, 而末稍人心世道, 將何以爲之耶?" 顯命曰: "右尹李匡德爲參賀班上來, 而實病方重, 辭訟重地, 不可久曠矣。" 命許遞。 判府事閔應洙、奉朝賀李秉常, 俱病未參班, 上疏請譴, 賜優批。 上曰: "日吉辰良, 大事順成, 而但慮後辟之繼此而有繪事也。 御製中有所云云, 而卿等已老矣。 年少之臣, 在此聞此敎, 日後如有繼此而爲之, 則力諫也。" 顯命曰: "聖敎至及於此, 誠深遠之慮也。"
- 【태백산사고본】 50책 67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282면
원본
영조 24년 (1748) 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