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45권, 영조 13년 8월 17일 癸酉 2/2 기사 / 1737년 청 건륭(乾隆) 2년
좌상이 입대하지 않자 궁금해하다. 군신이 한 전당에서 문답하자 하다
국역
임금이 삼상(三相)의 입시를 명하였는데, 오직 영의정 이광좌(李光佐)와 우의정 송인명(宋寅明)만 입대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어제 좌상(左相)을 면유(勉諭)하면서 예의상 너무 각박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선 물러가 생각해 보도록 하였는데, 오늘 오지 않았으니 아픈 것은 아닌가? 여러 신하들이 혹 밖에 있다가 돌아가니, 그 역시 괴이하다. 경들이 만약 협조하지 않으면 나는 비록 다시 수라상(水剌床)을 물리치지는 않겠으나 합문을 반드시 열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하가 임금을 가린다, 다른 날을 기다리라'는 전교가 한두 번뿐만이 아니었는데, 전혀 못 들은 척하니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하니, 송인명이 말하기를,
"오늘날의 일은 실로 치란(治亂)과 안위(安危)에 관계되니, 오직 원하건대, 사리(事理)를 깊이 살피고 조용히 박절하지 않도록 하여 대동(大同)의 지역(地域)이 되도록 하소서."
하고, 임금이 말하기를,
"조태언(趙泰彦)은 호서배(狐鼠輩)이다. 내가 원보(元輔)의 정성에 감동하여 특별히 죽음을 용서하였지만, 만일 또 조태언 같은 자가 있으면 반드시 중률(重律)로 다스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조선(朝鮮)은 장차 어떤 나라가 되겠으며 나는 어떤 임금이 되겠는가?"
하였다. 송인명이 말하기를,
"이후에는 반드시 감히 충역의 말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이광좌가 말하기를,
"신하에게 죄가 있으면 조용히 죄를 줄 뿐이니, 어찌 성색(聲色)을 높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제 좌의정이 반은 승낙하고 물러갔는데, 이는 나를 속일 자가 아니고, 또 사진(仕進)하지 않고자 하는 자도 아니다. 지난번 김성탁(金聖鐸)의 일에 대해 법으로 다스리고자 하는 뜻이 없었으니, 그 마음이 진실로 공평했다. 세 정승이 만약 조화할 수만 있다면, 어찌 크게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송인명이 말하기를,
"병조 판서를 잡아들인 일은 전에 없던 바로서 아마도 예(禮)로써 부리는 도리에 어긋난 듯싶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명색이 대장이라고 하여 붙잡아 들이는 것이 무엇이 불가하겠는가? 낭청(郞廳)을 대신 곤장 친 것은 대개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내가 윤급(尹汲)·한익모(韓翼謨)에게도 형장(刑杖)을 쳐 신문하지는 않았으나, 윤급은 당파(黨派)의 착념(着念)이 심하다. 만약 편당을 일삼는 자가 있다면 경들은 모름지기 잡아 바치도록 하라."
하였다. 이광좌가 말하기를,
"이는 참으로 어려우나, 신들이 마땅히 사적으로 서로 책려(責勵)해 당을 일삼으려는 마음을 막겠습니다."
하고, 좌부승지(左副承旨) 이일제(李日躋)가 말하기를,
"신이 요즈음 연속 좌우에서 모셨는데, 삼가 장전(帳殿)에 계시던 날 저녁에 보건대, 마치 청천 벽력(靑天霹靂) 아래에서 만물이 꺾이고 상하는 듯했는데, 다시 어선을 드시던 밤에는 마치 봄비가 흡족히 내려 우레가 은은히 들리고 구름이 일어나는 듯했으며, 오늘은 상서로운 바람과 경사스런 구름이 감돌아 따뜻한 봄날처럼 화기가 가득했으니, 신이 바야흐로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상께서 아직도 불평하신 기색이 없지 않으시니, 신이 그윽이 걱정합니다. 최상(最上)은 덕교(德敎)요, 그 다음은 정형(政刑)이며, 성색(聲色)은 말단입니다. 더군다나 위노(威怒)를 겸하면 중도(中道)를 벗어나지 않음이 적습니다. 심지어 ‘조정에 가득한 신하가 모두 역적이니 그 무리들을 모두 참(斬)하라.’는 하교는 실로 왕언(王言)에 어긋납니다. 신은 본래 성상의 뜻이 반드시 모두가 진정 역적이어서 모조리 참해야 한다고 하신 것이 아니고 단지 시상(時象)을 잊게 하고자 하신 줄을 압니다. 그러나 신하들은 노복(奴僕)과는 달라서 위협하여 힘으로 제압해서는 안됩니다. 옛날 송(宋)나라 건도(乾道)253) 연간에 조서(詔書)에 대신을 종처럼 꾸짖고 여러 신하들을 돼지처럼 여기는 뜻이 있었으니, 주자(朱子)가 그 말을 듣고서 3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눈물을 줄줄 흘렸었습니다. 이번의 엄교(嚴敎)를 옛날 사람이 들었다면 반드시 저자에서 매를 맞은 것같이 벼슬을 버리고 떠난 자가 있을 것입니다. 원하건대, 분명하게 뉘우치는 뜻을 유시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아뢴 바가 옳다. 신하는 예(禮)로써 부려야 하고, 임금은 충(忠)으로써 섬겨야 한다고 성인(聖人) 공자(孔子)가 말씀하셨다. 내가 나를 다스리고자 하면서 어찌 호령으로 여러 아랫사람을 부리겠는가?"
하고, 쓰라고 명하여 말하기를,
"아! 지난 일을 내가 어찌 즐거이 그랬겠는가? 밤중에 써서 보여 대략 내 뜻을 유시(諭示)하였는데, 죽어서 선왕을 뵐 면목이 없고 마음속이 아프며, 아랫사람에게 임할 면목이 없으니, 도리어 백성을 잊은 듯하다. 관(冠)을 벗고 피가 어린 정성을 억지로 뿌리치기 어려워서 죽을 들어 마시지 않고 다시 억조 창생(億兆蒼生)에게 임하게 되니, 세 번 내린 유시(諭示)를 뒤좇아 생각건대 마음이 오히려 부끄럽다. 아! 여러 신하들이 만약 마음을 씻어버리지 않는다면 왕법(王法)으로 용서하기가 어렵다. 배[舟]는 임금에게 비유할 수 있고 물은 백성에게 비유할 수 있는데, 주즙(舟楫)이 정제되지 않고 사공이 흩어지면 물이 비록 고요하더라도 배가 운행하기 어렵고, 배가 비록 운행하려고 하더라도 물이 없으면 어찌 운행하겠는가? 아! 오늘이 바로 이와 같다. 정석(鼎席)254) 에서 공(公)을 먼저 하고 혐의를 뒤로 하며, 조정에서 당습을 버리고 인협(寅協)한다면 아! 그 나라가 어찌 잘 되지 않겠는가? 좌의정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이미 환히 알고 있지만, 이미 내려 준 밥을 받았고 전석(前席)에서 유시(諭示)를 들었으니, 집에 돌아가 조용히 생각해 보면 반드시 각오하였을 것이다. 아! 마음을 너그럽게 갖는 것은 조정뿐만이 아니다. 장차 능(陵)에 참배하려 하니, 그윽이 느낌이 많다. 아! 여러 신하들은 교목 세신(喬木世臣)255) 인데 사(私)로 인해 나를 괴롭힘은 또한 무슨 마음인가? 개탄함으로 인해 하교한 것 가운데 너무 중도에 지나친 것도 많았는데, 지난 일을 다시 말하지 말라. 비록 다시 유시하지 않더라도 억지로 수라를 들었으니, 이것이 어찌 수식(修飾)한 것이겠는가? 이미 다시 보고자 하였으니, 또 어찌 무심히 여기겠는가? 군신(君臣)이 한 전당(殿堂)에서 문답하고자 한다. 아! 여러 신하들은 중외(中外)를 논하지 말고 2품 이상과 옥서(玉署)256) ·대신(臺臣)은 거둥[幸行]이 지나기를 기다려 모두 경사(京師)로 나오고 오직 우리 삼공(三公)이 거느리고 기다렸다가 알현(謁見)한 후 일제히 모이게 함은 또한 뜻이 있는데가 있는데, 아! 창업(創業)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세대가 점차 멀어져 위 아래가 함께 홀만하게 여기니 비록 나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멀리서 능(陵)의 송백(松柏)을 바라보라. 정원(政院)에서 먼저 포고(布告)해 들어서 알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4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64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註 253] 건도(乾道) : 송나라 효종(孝宗)의 연호(年號).
- [註 254] 정석(鼎席) : 삼공(三公)의 자리.
- [註 255] 교목 세신(喬木世臣) : 집안 대대로 중요한 지위에 있어,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는 신하.
- [註 256] 옥서(玉署) : 홍문관.
원문
○上命三相入侍, 惟領議政李光佐、右議政宋寅明入對。 上曰: "昨日勉諭左揆也, 禮不宜太迫, 故姑令退思。 今日不來, 無乃病乎? 諸臣或有自外還去, 其亦怪矣。 卿等若不調協, 予雖不復却膳, 閤門必難開矣。 臣擇君, 待他日之敎, 不啻屢矣, 恬若不聞, 豈不難乎?" 寅明曰: "今日之事, 實關治亂安危。 惟願深察事理, 從容不迫, 俾臻於大同之域焉。" 上曰: "趙泰彦狐鼠輩耳, 予感元輔之誠, 特貸其誅。 如又有泰彦, 則必繩重律。 不然, 朝鮮將爲何如國, 而予爲何如主耶?" 寅明曰: "此後則必不敢爲忠逆之說矣。" 光佐曰: "臣下有罪, 則從容罪之而已, 何必動聲色乎?" 上曰: "昨日左揆有半諾而退, 此非欺予者, 且非不欲仕之人。 向於金聖鐸事, 無置法之意, 其心誠公平矣。 三相若能調和, 則庸詎非大幸乎?" 寅明曰: "兵判拿入, 乃前所未有, 恐違禮使之道矣。" 上曰: "名以大將, 拿入有何不可, 而代棍郞廳, 蓋欲立頹綱矣。 予於尹汲、韓翼謩亦不杖訊, 而汲則甚於黨矣。 若有爲黨者, 卿等須執而獻之。" 光佐曰: "是則誠難, 而臣等當私相責勵, 遏其黨心矣。" 左副承旨李日躋曰: "臣近日連侍左右竊伏見, 帳殿之夕若靑天霹靂之下, 萬物摧傷; 復膳之夜, 如春雨旣洽, 而雷殷雲蔚。 今日則如祥風景雲, 春和日暖者, 臣方感歎, 而自上猶不無不平底色辭, 臣竊憂之。 太上德敎, 其次政刑, 聲色末也。 況兼之以威怒, 鮮不過中, 至如滿廷皆逆, 若屬皆斬之敎, 實乖王言。 臣固知聖意, 未必謂皆眞逆可盡斬, 而只欲其忘時象也。 然人臣異於奴僕, 不可以威脅力制也。 昔宋 乾道年間, 詔書有奴詬大臣, 豕視庶位之意, 朱子聞之, 三夜不寐, 涕泗汍瀾。 今者嚴敎使古人當之, 必有視若撻市, 棄官而去者矣, 願明諭悔悟之意。" 上曰: "所達是矣。 使臣以禮, 事君以忠, 孔聖有言。 予欲爲國, 則豈可以號令, 使群下耶?" 命書曰:
噫嘻! 往事予豈樂爲? 半夜書示, 略諭予意, 歸拜無顔, 痛深于中, 臨下無面, 反若忘民。 免冠血忱, 難以强拂, 擧粥不飮, 復臨億兆, 追惟三諭, 心猶赧然。 噫嘻! 諸臣若不洗濯, 難貸王法。 舟譬於君, 水譬於民, 舟楫不齊, 梢工渙散, 水雖靜矣, 舟不可行, 舟雖欲行, 水何能運? 吁嗟! 今日正若此矣。 鼎席之上, 先公後嫌, 朝廷之上, 祛黨寅協。 嗚呼! 其國豈不庶幾? 左揆爲國, 業已洞知, 旣受賜飯, 前席聽諭, 歸家靜思, 必也覺悟。 噫嘻! 寬心非惟朝廷, 將欲拜陵, 心竊感焉。 吁嗟! 諸臣喬木世臣, 因私困我, 抑何心乎? 因慨下敎, 其多過中。 往事勿說, 雖不復諭, 强抑復膳, 豈是飾過? 旣欲復見, 亦豈恝然? 君臣一殿, 其有欲問。 吁嗟! 諸臣勿論中外, 二品以上、玉署、臺臣待過幸行, 咸造京師, 惟我三公蕫率以待, 謁後齊會, 意亦有在。 嗚呼! 創業豈不艱難? 世代寖遠, 上下俱忽, 雖不顧予, 遙望松栢, 其自政院, 先布聞知。
- 【태백산사고본】 34책 4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64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영조 13년 (1737) 8월 17일
영조실록45권, 영조 13년 8월 17일 癸酉 2/2 기사 / 1737년 청 건륭(乾隆) 2년
좌상이 입대하지 않자 궁금해하다. 군신이 한 전당에서 문답하자 하다
국역
임금이 삼상(三相)의 입시를 명하였는데, 오직 영의정 이광좌(李光佐)와 우의정 송인명(宋寅明)만 입대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어제 좌상(左相)을 면유(勉諭)하면서 예의상 너무 각박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선 물러가 생각해 보도록 하였는데, 오늘 오지 않았으니 아픈 것은 아닌가? 여러 신하들이 혹 밖에 있다가 돌아가니, 그 역시 괴이하다. 경들이 만약 협조하지 않으면 나는 비록 다시 수라상(水剌床)을 물리치지는 않겠으나 합문을 반드시 열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하가 임금을 가린다, 다른 날을 기다리라'는 전교가 한두 번뿐만이 아니었는데, 전혀 못 들은 척하니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하니, 송인명이 말하기를,
"오늘날의 일은 실로 치란(治亂)과 안위(安危)에 관계되니, 오직 원하건대, 사리(事理)를 깊이 살피고 조용히 박절하지 않도록 하여 대동(大同)의 지역(地域)이 되도록 하소서."
하고, 임금이 말하기를,
"조태언(趙泰彦)은 호서배(狐鼠輩)이다. 내가 원보(元輔)의 정성에 감동하여 특별히 죽음을 용서하였지만, 만일 또 조태언 같은 자가 있으면 반드시 중률(重律)로 다스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조선(朝鮮)은 장차 어떤 나라가 되겠으며 나는 어떤 임금이 되겠는가?"
하였다. 송인명이 말하기를,
"이후에는 반드시 감히 충역의 말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이광좌가 말하기를,
"신하에게 죄가 있으면 조용히 죄를 줄 뿐이니, 어찌 성색(聲色)을 높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제 좌의정이 반은 승낙하고 물러갔는데, 이는 나를 속일 자가 아니고, 또 사진(仕進)하지 않고자 하는 자도 아니다. 지난번 김성탁(金聖鐸)의 일에 대해 법으로 다스리고자 하는 뜻이 없었으니, 그 마음이 진실로 공평했다. 세 정승이 만약 조화할 수만 있다면, 어찌 크게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송인명이 말하기를,
"병조 판서를 잡아들인 일은 전에 없던 바로서 아마도 예(禮)로써 부리는 도리에 어긋난 듯싶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명색이 대장이라고 하여 붙잡아 들이는 것이 무엇이 불가하겠는가? 낭청(郞廳)을 대신 곤장 친 것은 대개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내가 윤급(尹汲)·한익모(韓翼謨)에게도 형장(刑杖)을 쳐 신문하지는 않았으나, 윤급은 당파(黨派)의 착념(着念)이 심하다. 만약 편당을 일삼는 자가 있다면 경들은 모름지기 잡아 바치도록 하라."
하였다. 이광좌가 말하기를,
"이는 참으로 어려우나, 신들이 마땅히 사적으로 서로 책려(責勵)해 당을 일삼으려는 마음을 막겠습니다."
하고, 좌부승지(左副承旨) 이일제(李日躋)가 말하기를,
"신이 요즈음 연속 좌우에서 모셨는데, 삼가 장전(帳殿)에 계시던 날 저녁에 보건대, 마치 청천 벽력(靑天霹靂) 아래에서 만물이 꺾이고 상하는 듯했는데, 다시 어선을 드시던 밤에는 마치 봄비가 흡족히 내려 우레가 은은히 들리고 구름이 일어나는 듯했으며, 오늘은 상서로운 바람과 경사스런 구름이 감돌아 따뜻한 봄날처럼 화기가 가득했으니, 신이 바야흐로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상께서 아직도 불평하신 기색이 없지 않으시니, 신이 그윽이 걱정합니다. 최상(最上)은 덕교(德敎)요, 그 다음은 정형(政刑)이며, 성색(聲色)은 말단입니다. 더군다나 위노(威怒)를 겸하면 중도(中道)를 벗어나지 않음이 적습니다. 심지어 ‘조정에 가득한 신하가 모두 역적이니 그 무리들을 모두 참(斬)하라.’는 하교는 실로 왕언(王言)에 어긋납니다. 신은 본래 성상의 뜻이 반드시 모두가 진정 역적이어서 모조리 참해야 한다고 하신 것이 아니고 단지 시상(時象)을 잊게 하고자 하신 줄을 압니다. 그러나 신하들은 노복(奴僕)과는 달라서 위협하여 힘으로 제압해서는 안됩니다. 옛날 송(宋)나라 건도(乾道)253) 연간에 조서(詔書)에 대신을 종처럼 꾸짖고 여러 신하들을 돼지처럼 여기는 뜻이 있었으니, 주자(朱子)가 그 말을 듣고서 3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눈물을 줄줄 흘렸었습니다. 이번의 엄교(嚴敎)를 옛날 사람이 들었다면 반드시 저자에서 매를 맞은 것같이 벼슬을 버리고 떠난 자가 있을 것입니다. 원하건대, 분명하게 뉘우치는 뜻을 유시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아뢴 바가 옳다. 신하는 예(禮)로써 부려야 하고, 임금은 충(忠)으로써 섬겨야 한다고 성인(聖人) 공자(孔子)가 말씀하셨다. 내가 나를 다스리고자 하면서 어찌 호령으로 여러 아랫사람을 부리겠는가?"
하고, 쓰라고 명하여 말하기를,
"아! 지난 일을 내가 어찌 즐거이 그랬겠는가? 밤중에 써서 보여 대략 내 뜻을 유시(諭示)하였는데, 죽어서 선왕을 뵐 면목이 없고 마음속이 아프며, 아랫사람에게 임할 면목이 없으니, 도리어 백성을 잊은 듯하다. 관(冠)을 벗고 피가 어린 정성을 억지로 뿌리치기 어려워서 죽을 들어 마시지 않고 다시 억조 창생(億兆蒼生)에게 임하게 되니, 세 번 내린 유시(諭示)를 뒤좇아 생각건대 마음이 오히려 부끄럽다. 아! 여러 신하들이 만약 마음을 씻어버리지 않는다면 왕법(王法)으로 용서하기가 어렵다. 배[舟]는 임금에게 비유할 수 있고 물은 백성에게 비유할 수 있는데, 주즙(舟楫)이 정제되지 않고 사공이 흩어지면 물이 비록 고요하더라도 배가 운행하기 어렵고, 배가 비록 운행하려고 하더라도 물이 없으면 어찌 운행하겠는가? 아! 오늘이 바로 이와 같다. 정석(鼎席)254) 에서 공(公)을 먼저 하고 혐의를 뒤로 하며, 조정에서 당습을 버리고 인협(寅協)한다면 아! 그 나라가 어찌 잘 되지 않겠는가? 좌의정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이미 환히 알고 있지만, 이미 내려 준 밥을 받았고 전석(前席)에서 유시(諭示)를 들었으니, 집에 돌아가 조용히 생각해 보면 반드시 각오하였을 것이다. 아! 마음을 너그럽게 갖는 것은 조정뿐만이 아니다. 장차 능(陵)에 참배하려 하니, 그윽이 느낌이 많다. 아! 여러 신하들은 교목 세신(喬木世臣)255) 인데 사(私)로 인해 나를 괴롭힘은 또한 무슨 마음인가? 개탄함으로 인해 하교한 것 가운데 너무 중도에 지나친 것도 많았는데, 지난 일을 다시 말하지 말라. 비록 다시 유시하지 않더라도 억지로 수라를 들었으니, 이것이 어찌 수식(修飾)한 것이겠는가? 이미 다시 보고자 하였으니, 또 어찌 무심히 여기겠는가? 군신(君臣)이 한 전당(殿堂)에서 문답하고자 한다. 아! 여러 신하들은 중외(中外)를 논하지 말고 2품 이상과 옥서(玉署)256) ·대신(臺臣)은 거둥[幸行]이 지나기를 기다려 모두 경사(京師)로 나오고 오직 우리 삼공(三公)이 거느리고 기다렸다가 알현(謁見)한 후 일제히 모이게 함은 또한 뜻이 있는데가 있는데, 아! 창업(創業)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세대가 점차 멀어져 위 아래가 함께 홀만하게 여기니 비록 나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멀리서 능(陵)의 송백(松柏)을 바라보라. 정원(政院)에서 먼저 포고(布告)해 들어서 알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4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64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 [註 253] 건도(乾道) : 송나라 효종(孝宗)의 연호(年號).
- [註 254] 정석(鼎席) : 삼공(三公)의 자리.
- [註 255] 교목 세신(喬木世臣) : 집안 대대로 중요한 지위에 있어,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는 신하.
- [註 256] 옥서(玉署) : 홍문관.
원문
○上命三相入侍, 惟領議政李光佐、右議政宋寅明入對。 上曰: "昨日勉諭左揆也, 禮不宜太迫, 故姑令退思。 今日不來, 無乃病乎? 諸臣或有自外還去, 其亦怪矣。 卿等若不調協, 予雖不復却膳, 閤門必難開矣。 臣擇君, 待他日之敎, 不啻屢矣, 恬若不聞, 豈不難乎?" 寅明曰: "今日之事, 實關治亂安危。 惟願深察事理, 從容不迫, 俾臻於大同之域焉。" 上曰: "趙泰彦狐鼠輩耳, 予感元輔之誠, 特貸其誅。 如又有泰彦, 則必繩重律。 不然, 朝鮮將爲何如國, 而予爲何如主耶?" 寅明曰: "此後則必不敢爲忠逆之說矣。" 光佐曰: "臣下有罪, 則從容罪之而已, 何必動聲色乎?" 上曰: "昨日左揆有半諾而退, 此非欺予者, 且非不欲仕之人。 向於金聖鐸事, 無置法之意, 其心誠公平矣。 三相若能調和, 則庸詎非大幸乎?" 寅明曰: "兵判拿入, 乃前所未有, 恐違禮使之道矣。" 上曰: "名以大將, 拿入有何不可, 而代棍郞廳, 蓋欲立頹綱矣。 予於尹汲、韓翼謩亦不杖訊, 而汲則甚於黨矣。 若有爲黨者, 卿等須執而獻之。" 光佐曰: "是則誠難, 而臣等當私相責勵, 遏其黨心矣。" 左副承旨李日躋曰: "臣近日連侍左右竊伏見, 帳殿之夕若靑天霹靂之下, 萬物摧傷; 復膳之夜, 如春雨旣洽, 而雷殷雲蔚。 今日則如祥風景雲, 春和日暖者, 臣方感歎, 而自上猶不無不平底色辭, 臣竊憂之。 太上德敎, 其次政刑, 聲色末也。 況兼之以威怒, 鮮不過中, 至如滿廷皆逆, 若屬皆斬之敎, 實乖王言。 臣固知聖意, 未必謂皆眞逆可盡斬, 而只欲其忘時象也。 然人臣異於奴僕, 不可以威脅力制也。 昔宋 乾道年間, 詔書有奴詬大臣, 豕視庶位之意, 朱子聞之, 三夜不寐, 涕泗汍瀾。 今者嚴敎使古人當之, 必有視若撻市, 棄官而去者矣, 願明諭悔悟之意。" 上曰: "所達是矣。 使臣以禮, 事君以忠, 孔聖有言。 予欲爲國, 則豈可以號令, 使群下耶?" 命書曰:
噫嘻! 往事予豈樂爲? 半夜書示, 略諭予意, 歸拜無顔, 痛深于中, 臨下無面, 反若忘民。 免冠血忱, 難以强拂, 擧粥不飮, 復臨億兆, 追惟三諭, 心猶赧然。 噫嘻! 諸臣若不洗濯, 難貸王法。 舟譬於君, 水譬於民, 舟楫不齊, 梢工渙散, 水雖靜矣, 舟不可行, 舟雖欲行, 水何能運? 吁嗟! 今日正若此矣。 鼎席之上, 先公後嫌, 朝廷之上, 祛黨寅協。 嗚呼! 其國豈不庶幾? 左揆爲國, 業已洞知, 旣受賜飯, 前席聽諭, 歸家靜思, 必也覺悟。 噫嘻! 寬心非惟朝廷, 將欲拜陵, 心竊感焉。 吁嗟! 諸臣喬木世臣, 因私困我, 抑何心乎? 因慨下敎, 其多過中。 往事勿說, 雖不復諭, 强抑復膳, 豈是飾過? 旣欲復見, 亦豈恝然? 君臣一殿, 其有欲問。 吁嗟! 諸臣勿論中外, 二品以上、玉署、臺臣待過幸行, 咸造京師, 惟我三公蕫率以待, 謁後齊會, 意亦有在。 嗚呼! 創業豈不艱難? 世代寖遠, 上下俱忽, 雖不顧予, 遙望松栢, 其自政院, 先布聞知。
- 【태백산사고본】 34책 4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64면
- 【분류】역사-고사(故事)
원본
영조 13년 (1737) 8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