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41권, 영조 12년 1월 1일 丙申 2/3 기사 / 1736년 청 건륭(乾隆) 1년
김재로·송인명·서명균 등이 왕세자를 세우도록 청하니 3월에 책례하게 하다
국역
임금이 인정전(仁政殿)에 친림(親臨)하여 백관(百官)의 하례를 받았다. 좌의정(左議政) 김재로(金在魯), 우의정(右議政) 송인명(宋寅明), 판부사(判府事) 서명균(徐命均), 영돈녕(領敦寧) 어유귀(魚有龜) 등이 합사(合辭)하여 왕세자를 일찍 세우도록 청하자, 봉조하(奉朝賀) 민진원(閔鎭遠)이 아뢰기를,
"옛날 현종[顯廟] 때 숙종[肅廟]께서 탄생하셨는데 고(故) 상신(相臣) 허목(許穆)이 상소하여 국본(國本)001) 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을 하자, 대신(大臣) 정태화(鄭太和)가 말하기를, ‘원자가 탄생한 날은 바로 국본이 이미 정해진 날이니, 어떻게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였는데, 당시 그것을 격식(格式)이 될 만한 의논으로 여겼으며, 6, 7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책례(冊禮)를 행하였으니, 대체로 복(福)을 아끼는 의미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숙종께서는 50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태평(太平)한 정치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또 모든 예(禮)를 상고하여도 말을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하는 어린 때에 어떻게 책례를 행할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현종조의 고사에 의거하여 천천히 시행하도록 하소서."
하였으나, 임금의 중의(衆議)를 따라 전교하기를,
"원자를 세자로 삼아 3월에 날을 가려 책례를 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 [註 001] 국본(國本) : 왕세자.
영조실록41권, 영조 12년 1월 1일 丙申 2/3 기사 / 1736년 청 건륭(乾隆) 1년
김재로·송인명·서명균 등이 왕세자를 세우도록 청하니 3월에 책례하게 하다
국역
임금이 인정전(仁政殿)에 친림(親臨)하여 백관(百官)의 하례를 받았다. 좌의정(左議政) 김재로(金在魯), 우의정(右議政) 송인명(宋寅明), 판부사(判府事) 서명균(徐命均), 영돈녕(領敦寧) 어유귀(魚有龜) 등이 합사(合辭)하여 왕세자를 일찍 세우도록 청하자, 봉조하(奉朝賀) 민진원(閔鎭遠)이 아뢰기를,
"옛날 현종[顯廟] 때 숙종[肅廟]께서 탄생하셨는데 고(故) 상신(相臣) 허목(許穆)이 상소하여 국본(國本)001) 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을 하자, 대신(大臣) 정태화(鄭太和)가 말하기를, ‘원자가 탄생한 날은 바로 국본이 이미 정해진 날이니, 어떻게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였는데, 당시 그것을 격식(格式)이 될 만한 의논으로 여겼으며, 6, 7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책례(冊禮)를 행하였으니, 대체로 복(福)을 아끼는 의미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숙종께서는 50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태평(太平)한 정치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또 모든 예(禮)를 상고하여도 말을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하는 어린 때에 어떻게 책례를 행할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현종조의 고사에 의거하여 천천히 시행하도록 하소서."
하였으나, 임금의 중의(衆議)를 따라 전교하기를,
"원자를 세자로 삼아 3월에 날을 가려 책례를 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 [註 001] 국본(國本) : 왕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