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33권, 영조 9년 3월 6일 丁亥 2/2 기사 / 1733년 청 옹정(雍正) 11년
박문수와 조현명이 상소하여 영남 사람들이 연명으로 상소하여 원통함을 호소한 것을 변명하다
국역
영성군(靈城君) 박문수(朴文秀)와 풍원군(豐原君) 조현명(趙顯命)이 상소하였다. 영남(嶺南) 사람들이 연명으로 상소하여 원통함을 호소한 것을 변명한 내용이었다. 그 대략에 이르기를,
"이른바 조처하기 어렵다는 것과 알기 어렵다고 한 것에 대해서 할말이 있습니다. 한번 당폐(黨弊)가 고질이 됨으로부터 이쪽에서는 맞아들이고 저쪽에서는 물리치게 되어 진퇴(進退)가 날마다 여기에 국한되었고 그에 따라 환득환실(患得患失)하는 무리들이 떼 지어 일어나 역적질을 하게 된 것이니, 이것이 어찌 한 지방 한 고을에서 발생한 것이겠습니까? 동인(東人)·서인(西人)·남인(南人)·북인(北人)이 거의 까마귀의 암컷과 수컷을 분별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이니, 이것이 성교(聖敎)에서 이른바 삼당(三黨)에서 모두 난역(亂逆)이 나왔다고 한 이유인 것입니다. 이제 만약 한결같이 전의 투식만을 따른 채 바로잡을 방법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국가를 원망하여 변란을 일으킬 것을 생각하는 이인좌(李麟佐)·이웅좌(李熊佐)·정희량(鄭希亮)·한세홍(韓世弘)·박필현(朴弼縣)·박필몽(朴弼夢) 같은 무리들이 반드시 뒷날에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또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신 등이 이른바 조처하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의례적인 비답을 내렸다. 전번에 두 신하가 영남 사람의 일 때문에 연석(筵席)에서 주달한 뒤에 영남 사람들이 일제히 분노하여 일어나 변핵(辨覈)할 것을 청하고 나섰다. 사단(事端)이 우려스럽게 되자 두 신하가 이 소장으로 미봉(彌縫)하여 조절(調節)했던 것이다.
영조실록33권, 영조 9년 3월 6일 丁亥 2/2 기사 / 1733년 청 옹정(雍正) 11년
박문수와 조현명이 상소하여 영남 사람들이 연명으로 상소하여 원통함을 호소한 것을 변명하다
국역
영성군(靈城君) 박문수(朴文秀)와 풍원군(豐原君) 조현명(趙顯命)이 상소하였다. 영남(嶺南) 사람들이 연명으로 상소하여 원통함을 호소한 것을 변명한 내용이었다. 그 대략에 이르기를,
"이른바 조처하기 어렵다는 것과 알기 어렵다고 한 것에 대해서 할말이 있습니다. 한번 당폐(黨弊)가 고질이 됨으로부터 이쪽에서는 맞아들이고 저쪽에서는 물리치게 되어 진퇴(進退)가 날마다 여기에 국한되었고 그에 따라 환득환실(患得患失)하는 무리들이 떼 지어 일어나 역적질을 하게 된 것이니, 이것이 어찌 한 지방 한 고을에서 발생한 것이겠습니까? 동인(東人)·서인(西人)·남인(南人)·북인(北人)이 거의 까마귀의 암컷과 수컷을 분별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이니, 이것이 성교(聖敎)에서 이른바 삼당(三黨)에서 모두 난역(亂逆)이 나왔다고 한 이유인 것입니다. 이제 만약 한결같이 전의 투식만을 따른 채 바로잡을 방법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국가를 원망하여 변란을 일으킬 것을 생각하는 이인좌(李麟佐)·이웅좌(李熊佐)·정희량(鄭希亮)·한세홍(韓世弘)·박필현(朴弼縣)·박필몽(朴弼夢) 같은 무리들이 반드시 뒷날에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또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신 등이 이른바 조처하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의례적인 비답을 내렸다. 전번에 두 신하가 영남 사람의 일 때문에 연석(筵席)에서 주달한 뒤에 영남 사람들이 일제히 분노하여 일어나 변핵(辨覈)할 것을 청하고 나섰다. 사단(事端)이 우려스럽게 되자 두 신하가 이 소장으로 미봉(彌縫)하여 조절(調節)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