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23권, 영조 5년 7월 25일 戊辰 3/3 기사 / 1729년 청 옹정(雍正) 7년
좌의정 이태좌·우의정 이집 등이 이척·윤득형을 국문한 것을 아뢰다
국역
국청(鞫廳)의 대신 이하가 청대(請對)하여 입시하였다. 좌의정 이태좌(李台佐)가 아뢰기를,
"이척(李滌)은 승복(承服)하였는데, 윤득형(尹得衡)은 형추(刑推)한 뒤에도 한결같이 허황한 말을 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척의 승복은 곡절이 없는 것이어서 수상(殊常)하다. 이척은 곧 이하(李河)의 아우이다. 그러나 함께 참여하지 않았는데, 단지 역적의 아우라 하여 죽인다면 뒷날의 폐단이 있을 것이다. 지난해 옥사를 다스릴 때에도 보건대, 그 중에는 또한 승관(承款)이 분명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이척을 애석하게 여겨서가 아니고, 한번 애매(曖昧)한 길을 열어 놓으면 뒷날에 폐단이 한정 없을 것이다. 윤득형(尹得衡)이 공초에서 유엄(柳儼)을 끌어대었다고 하나, 유엄은 김일경(金一鏡)을 친국(親鞫)할 때 문사 낭청(問事郞廳)534) 으로 있었는데, 가장 총명하고 민첩하여 어긋난 단서를 잘 집어냈었다."
하자, 이 태좌가 아뢰기를,
"유엄이 어긋난 단서를 잘 집어내어 허위(虛僞)가 용납될 수 없게 하였으므로, 윤득형이 형추(刑推)받았을 적에 유엄을 쳐다보며 말하기를, ‘유엄 또한 남태징(南泰徵)의 집에 함께 갔었다.’고 한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척을 더 형벌하는 것과 정법(正法)하는 것의 합당 여부를 물으니, 우의정 이집(李㙫)이 아뢰기를,
"정법 이외에는 딴 도리가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근래에 당론(黨論)이 심하므로, 의심하여 저해(沮害)하려는 경우가 없지 않다. 박필욱(朴弼彧)은 의망(擬望)받은 다음에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고, 또 국옥(鞫獄)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이는 오비이락(烏飛梨落)535) 과 같은 일이다. 경(卿)들의 마음은 내가 알고 있다. 이번의 옥사는 평반(平反)536) 하였으니 내가 아름답게 여긴다마는, 알지 못하는 자는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이전에도 친국(親鞫)한 까닭에 옥사가 또한 과람하지는 않았었다. 윤득형과 박필욱은 간사하여 용서할 수 없다. 한 번 친국은 하고 싶지만, 파리[蠅]에게 성을 내어 칼을 뽑는 격에 가깝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수습한 다음에야 바야흐로 뒷말이 없을 수 있다. 이척은 당초에 초관(哨官)으로서 출정(出征)을 자원한 까닭에 의심이 없을 수 없었고, 경자년537) 의 국휼(國恤) 때에 미리 백립(白笠)을 갖춘 일을 보더라도 무슨 짓인들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마침내 실정을 알아내지 못하면, 형장(刑杖) 아래에서 죽게 될 뿐이니, 마음에 의심스러운 일을 가지고 정법(正法)함은 타당하지 못하다."
하고, 윤득형과 이척에 대한 문목(問目)을 써 놓고 형장을 가(加)하여 신문하도록 명하고, 또한 유엄에게는 대명(待命)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 [註 534] 문사 낭청(問事郞廳) : 죄인의 취조서를 작성하여 읽어 주는 일을 맡아 보던 임시 벼슬.
- [註 535] 오비이락(烏飛梨落) : 까마귀가 날아가자 배 떨어진다는 말로서, 일이 공교롭게 같이 일어나 남의 의심을 받게 됨을 일컫는 말임.
- [註 536] 평반(平反) : 원죄(冤罪)를 다시 조사하여 무죄로 하거나 가볍게 처결하는 것을 말함.
- [註 537] 경자년 : 1720 숙종 46년.
원문
○鞫廳大臣以下請對入侍。 左議政李台佐曰: "李滌承服, 尹得衡刑推後, 虛謊一樣。" 上曰: "滌之承服, 無曲折殊常矣。 滌是河弟。 然非同參, 而只以逆賊之弟誅之, 則有後弊。 以昨年治獄時見之, 其中亦有承款不分明者矣。 滌非可惜, 而一開暗昧之路, 後弊無窮矣。 得衡招引柳儼云, 儼於一鏡親鞫時, 爲問郞, 最明敏善, 拈出違端矣。" 台佐曰: "儼善拈違端, 使不得容僞, 故得衡刑推時, 仰視儼, 而曰: ‘柳儼亦同往泰徵家。’ 云矣。" 上問滌加刑與正法當否, 右議政李㙫曰: "正法外無他道矣。" 上曰: "近來黨論甚, 故不無疑阻。 弼彧擬望後, 有言之者矣, 又入鞫獄, 此似烏飛梨落矣。 卿等之心, 予知之。 今番獄事平反, 故予嘉之, 而不知者豈知之? 向來觀鞫之故, 獄事亦不濫矣。 得衡、弼彧, 奸詐不可赦矣。 欲一親鞫, 而近於怒蠅拔劍。 然予自收殺, 然後方可無後談矣。 滌, 初以哨官, 自願出征, 以此不能無疑, 以庚子國恤時, 預具白乏事見之, 何事不做? 然終不得情, 則期於杖斃而已, 以疑心正法, 未妥矣。" 命書得衡、滌問目, 加刑訊問, 且命柳儼勿待命。
영조 5년 (1729) 7월 25일
영조실록23권, 영조 5년 7월 25일 戊辰 3/3 기사 / 1729년 청 옹정(雍正) 7년
좌의정 이태좌·우의정 이집 등이 이척·윤득형을 국문한 것을 아뢰다
국역
국청(鞫廳)의 대신 이하가 청대(請對)하여 입시하였다. 좌의정 이태좌(李台佐)가 아뢰기를,
"이척(李滌)은 승복(承服)하였는데, 윤득형(尹得衡)은 형추(刑推)한 뒤에도 한결같이 허황한 말을 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척의 승복은 곡절이 없는 것이어서 수상(殊常)하다. 이척은 곧 이하(李河)의 아우이다. 그러나 함께 참여하지 않았는데, 단지 역적의 아우라 하여 죽인다면 뒷날의 폐단이 있을 것이다. 지난해 옥사를 다스릴 때에도 보건대, 그 중에는 또한 승관(承款)이 분명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이척을 애석하게 여겨서가 아니고, 한번 애매(曖昧)한 길을 열어 놓으면 뒷날에 폐단이 한정 없을 것이다. 윤득형(尹得衡)이 공초에서 유엄(柳儼)을 끌어대었다고 하나, 유엄은 김일경(金一鏡)을 친국(親鞫)할 때 문사 낭청(問事郞廳)534) 으로 있었는데, 가장 총명하고 민첩하여 어긋난 단서를 잘 집어냈었다."
하자, 이 태좌가 아뢰기를,
"유엄이 어긋난 단서를 잘 집어내어 허위(虛僞)가 용납될 수 없게 하였으므로, 윤득형이 형추(刑推)받았을 적에 유엄을 쳐다보며 말하기를, ‘유엄 또한 남태징(南泰徵)의 집에 함께 갔었다.’고 한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척을 더 형벌하는 것과 정법(正法)하는 것의 합당 여부를 물으니, 우의정 이집(李㙫)이 아뢰기를,
"정법 이외에는 딴 도리가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근래에 당론(黨論)이 심하므로, 의심하여 저해(沮害)하려는 경우가 없지 않다. 박필욱(朴弼彧)은 의망(擬望)받은 다음에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고, 또 국옥(鞫獄)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이는 오비이락(烏飛梨落)535) 과 같은 일이다. 경(卿)들의 마음은 내가 알고 있다. 이번의 옥사는 평반(平反)536) 하였으니 내가 아름답게 여긴다마는, 알지 못하는 자는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이전에도 친국(親鞫)한 까닭에 옥사가 또한 과람하지는 않았었다. 윤득형과 박필욱은 간사하여 용서할 수 없다. 한 번 친국은 하고 싶지만, 파리[蠅]에게 성을 내어 칼을 뽑는 격에 가깝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수습한 다음에야 바야흐로 뒷말이 없을 수 있다. 이척은 당초에 초관(哨官)으로서 출정(出征)을 자원한 까닭에 의심이 없을 수 없었고, 경자년537) 의 국휼(國恤) 때에 미리 백립(白笠)을 갖춘 일을 보더라도 무슨 짓인들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마침내 실정을 알아내지 못하면, 형장(刑杖) 아래에서 죽게 될 뿐이니, 마음에 의심스러운 일을 가지고 정법(正法)함은 타당하지 못하다."
하고, 윤득형과 이척에 대한 문목(問目)을 써 놓고 형장을 가(加)하여 신문하도록 명하고, 또한 유엄에게는 대명(待命)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 [註 534] 문사 낭청(問事郞廳) : 죄인의 취조서를 작성하여 읽어 주는 일을 맡아 보던 임시 벼슬.
- [註 535] 오비이락(烏飛梨落) : 까마귀가 날아가자 배 떨어진다는 말로서, 일이 공교롭게 같이 일어나 남의 의심을 받게 됨을 일컫는 말임.
- [註 536] 평반(平反) : 원죄(冤罪)를 다시 조사하여 무죄로 하거나 가볍게 처결하는 것을 말함.
- [註 537] 경자년 : 1720 숙종 46년.
원문
○鞫廳大臣以下請對入侍。 左議政李台佐曰: "李滌承服, 尹得衡刑推後, 虛謊一樣。" 上曰: "滌之承服, 無曲折殊常矣。 滌是河弟。 然非同參, 而只以逆賊之弟誅之, 則有後弊。 以昨年治獄時見之, 其中亦有承款不分明者矣。 滌非可惜, 而一開暗昧之路, 後弊無窮矣。 得衡招引柳儼云, 儼於一鏡親鞫時, 爲問郞, 最明敏善, 拈出違端矣。" 台佐曰: "儼善拈違端, 使不得容僞, 故得衡刑推時, 仰視儼, 而曰: ‘柳儼亦同往泰徵家。’ 云矣。" 上問滌加刑與正法當否, 右議政李㙫曰: "正法外無他道矣。" 上曰: "近來黨論甚, 故不無疑阻。 弼彧擬望後, 有言之者矣, 又入鞫獄, 此似烏飛梨落矣。 卿等之心, 予知之。 今番獄事平反, 故予嘉之, 而不知者豈知之? 向來觀鞫之故, 獄事亦不濫矣。 得衡、弼彧, 奸詐不可赦矣。 欲一親鞫, 而近於怒蠅拔劍。 然予自收殺, 然後方可無後談矣。 滌, 初以哨官, 自願出征, 以此不能無疑, 以庚子國恤時, 預具白乏事見之, 何事不做? 然終不得情, 則期於杖斃而已, 以疑心正法, 未妥矣。" 命書得衡、滌問目, 加刑訊問, 且命柳儼勿待命。
원본
영조 5년 (1729) 7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