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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22권, 영조 5년 4월 30일 甲辰 3/3 기사 / 1729년 청 옹정(雍正) 7년

대신과 비당을 인견하다. 우의정 이태좌 등이 대언 때문에 찬배된 자의 처분 등에 대해 아뢰다

국역

대신(大臣)과 비당(備堂)을 인견하였다. 우의정 이태좌(李台佐)가 아뢰기를,

"의금부에서 이홍매(李弘邁)의 의언(議讞)할 일로써 대신에게 의논하기를 청하였으니, 체통은 잃는 것을 면치 못한 처사였습니다. 청컨대 금부 당상(禁府堂上)을 추고(推考)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판의금 김시환(金始煥)에게 하문하니, 김시환이 대답하기를,

"이홍매가 대동미(大同米)를 작전(作錢)하여 9백 20여 냥을 모두 사사로이 썼다는 것을 자복(自服)하였습니다. 율문(律文)에 의하면 장물(贓物)이 40관 이상이면 모두 극형(極刑)에 처하게 되어 있는데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대신(大臣)에게 의논하기를 청한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박치원(朴致遠)은 참형(斬刑)에 처하지 않고 유독 이홍매(李弘邁)만 참형에 처하는 것은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문안(文案)을 상세히 상고하여 품처(稟處)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이태좌가 진달하기를,

"변란이 있은 뒤에 영남(嶺南)에는 이종성(李宗城)을 보내어 효유(曉諭)하였습니다. 조현명(趙顯命)이 이제 실록(實錄)의 봉안(奉安)으로 인하여 호남(湖南)으로 내려가게 되었으니, 청컨대 지나는 길에 따라 효유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하고 이어 호서(湖西)도 똑같이 효유하도록 명하였다. 훈련 대장(訓鍊大將) 이삼(李森)이 청하기를,

"북경(北京)에서 상은(賞銀)으로 준 것은 출정(出征)한 장사(將士)들 이외에 호위(扈衛)한 군병들에게도 똑같이 나누어 주게 하소서."

하니, 윤허하였다. 이삼이 아뢰기를,

"삼군문(三軍門)392) 의 순라(巡邏)는 고례(古例)에 의거하여 날짜를 나누게 하여 주소서."

하니, 윤허하였다. 이태좌가 작년에 대언(臺言) 때문에 찬배(竄配)된 자에 대해 품달하였는데 이제겸(李濟兼)에 이르러 이태좌가 아뢰기를,

"변란이 일어났을 적에 자기 집으로 달려갔으니, 그 죄가 가볍지 않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그대로 두라."

하였다. 이지간(李之榦)·김옥(金沃)·이만춘(李萬春)에 이르러서는 임금이 이르기를,

"석방(釋放)시키라."

하였다. 한사억(韓師億)에 이르러서 이태좌가 아뢰기를,

"이 사람은 잡류(雜類)들을 체결하여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감등(減等)시키라."

하였다. 권서경(權敍經)에 이르러서도 임금이 이르기를,

"감등시키라."

하였다. 정사효(鄭思孝)에 이르러서는 조현명(趙顯命)이 아뢰기를,

"정사효의 죄는 남쪽 지방 사람들이 자자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박필현(朴弼顯)이 아무리 흉악하다고 하더라도 만약 감사(監司)와 서로 통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감히 군사를 몰고 곧 바로 영하(營下)에 이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고, 이조 판서 이집(李㙫)은 아뢰기를,

"끝내 박필현을 추포(追捕)하지 않은 점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하였으며, 예조 참판 송인명(宋寅明)은 아뢰기를,

"박필현이 믿는 데가 있었기 때문에 군사를 몰고 곧바로 이른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그대로 두라."

하였다. 박경순(朴景淳)·이경좌(李慶佐)·이정좌(李楨佐)·이명좌(李命佐)·이천록(李千祿)·강백(姜栢)에 이르러서도 임금이 이르기를,

"그대로 두라."

하였다. 이소(李炤)에 이르렀는데, 이소는 이항(李杭)393) 의 아들이다. 임금이 이르기를,

"선조(先朝) 때 좌죄(坐罪)를 면한 사람인데 지금 어떻게 절도(絶島)에 안치(安置)시킬 수 있겠는가?"

하니, 대사성(大司成) 조현명이 아뢰기를,

"이 사람은 행동거지가 흉악하여 그 머리털을 풀어내린 채 하늘의 해를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소(炤)에 대한 계사(啓辭)는 곧 이하원(李夏源)이 발론한 것인데, 창졸간에 환란을 우려하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 깊은 뜻은 없는 것이다. 본군(本郡)에 안치시키고 그곳의 관장(官長)으로 하여금 구속(拘束)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고, 이어 전대로 방귀 전리(放歸田里)394) 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배윤명(裵胤命)에 이르러 송인명이 아뢰기를,

"이 사람은 상당히 재주가 있지만 불길(不吉)한 자라고 합니다."

하고, 이집은 아뢰기를,

"들리는 바에 의하면 배윤명의 인품은 매우 간사하다고 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그대로 두라."

하였다. 김해명(金海鳴)·전근사(全近思)·김태수(金泰壽)·이문표(李文標)·이희령(李熙齡)에 이르러서는 임금이 이르기를,

"석방(釋放)시키라."

하였다. 이태원(李太元)에 이르러서는 이태좌가 아뢰기를,

"교문(敎文) 가운데 한 글자를 도와서 고치게 한 자입니다."

하고, 조현명은 아뢰기를,

"역적 김일경(金一鏡)이 이른바 붕우(朋友)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한 사람은 곧 이태원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정석삼(鄭錫三)이 전에 이태원이 글자 하나를 도와서 고치게 한 것이 무슨 중한 죄가 되겠느냐고 했었다. 특별히 감등(減等)시키라."

하였다. 송인명이 아뢰기를,

"임상극(林象極)에게 적용할 율문(律文)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만일 역률(逆律)을 적용한다면 어미는 계집종이 되어야 하고 아들은 교형(絞刑)에 처해야 하는 데, 그의 아들과 조카들은 모두 노예가 되어 절도(絶島)에 가 있고 그 어미는 집에 있으니, 율명(律名)을 낙찰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의 조카는 아들에 견주어 볼 때 차등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하니, 조현명은 아뢰기를,

"임상극(林象極)은 경종 대왕(景宗大王) 8년이라고 적진(賊陣)에 보내는 보장(報狀)에 썼으니, 정상(情狀)이 매우 흉악스럽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8년이라고 한 말은 매우 흉녕스럽다. 이 사람을 어떻게 논할 수 있겠는가?"

하고, 임금이 또 이르기를,

"민가(閔哥)와 윤가(尹哥)는 참으로 난형 난제(難兄難弟)인 자들이다. 윤가 일족(一族)을 한 섬에다 안치시킨 것은 또한 우려스러운 점이 많으니, 민가의 예(例)에 의거하여 14세 이하는 석방(釋放)시키라. 그 나머지는 모두 민가의 예에 의거하여 바다나 육지로 분배(分配)한다면 그들에 있어서는 양이(量移)395) 가 될 것이고 또 뒷날의 걱정도 없게 될 것이다. 민(閔)·윤(尹)의 족류(族類)들과 이인좌(李麟佐)의 족당(族黨)들을 정배(定配)한 곳의 관장(官長)에게 분부하여 그들을 착실하게 점고(點考)하도록 하라."

하였다. 형조 판서 채팽윤(蔡彭胤)과 참의 이승원(李承源)이 형조의 죄인을 초출(招出)한 책자(冊子)를 올렸다. 이여(李畬)에 이르러 임금이 이르기를,

"그대로 두라."

하였다. 김태윤(金泰潤)·김화윤(金華潤)에 이르러 채팽윤이 아뢰기를,

"김태윤은 김언량(金彦良)과 종형제(從兄弟) 사이인데도 경사(慶事)나 흉사(凶事)에 서로 내왕이 없다고 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석방시키라."

하였다. 유뇌(柳耒)·유매(柳楳)에 이르렀는데, 이들은 유내(柳徠)의 동생(同生)이다. 임금이 이르기를,

"그대로 두라."

하였다. 남하운(南夏運)에 이르러 이태좌가 아뢰기를,

"남하운은 곧 이의징(李義徵)의 여서(女壻)인데, 유내와 서로 친밀합니다."

하고, 윤동형(尹東衡)은 아뢰기를,

"경솔하게 의논해서는 안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석방시키라."

하였다. 이심(李審)·전익민(全益敏)에 이르러 임금이 이르기를,

"그대로 두라."

하였다. 심상관(沈尙觀)에 이르러 이태좌가 아뢰기를,

"한(韓)·유(柳)의 자리 위에 한 그루 소나무[韓柳席上一株松]’라고 한 등등의 말은 의심스럽습니다."

하고, 조현명은 아뢰기를,

"‘강녀(江女)와 중매로 결혼했다[江女媒婚]’는 말은 곧 수적(水賊)과 교통(交通)하여 선척(船隻)을 살 때의 은어(隱語)라고 합니다."

하였으며, 송인명은 아뢰기를,

"심성연(沈成衍)은 무고(誣告)한 것 때문에 복법(伏法)되었는데 옥사(獄事)의 정상이 음비(陰祕)스러우니, 경솔히 석방해서는 안됩니다."

하고, 조현명은 아뢰기를,

"신이 도순무(都巡撫)의 진중(陣中)에서 올라올 적에 양지(陽智)의 좌찬진(佐贊陣)에 이르러 들은 바에 의하면, 죽산(竹山)의 미륵촌(彌勒村)에 사는 송가(宋哥)의 일문(一門)이 모두 역적을 따르고 있는데 바야흐로 술을 빚고 곡식을 쌓아놓고서 역적을 영접할 계책을 세우고 있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심성연이 심상관(沈尙觀) 등을 발고(發告)하기에 이르렀고 그 뒤에 송가(宋哥)들이 옥사(獄事)에 많이 개입되었으니, 신이 좌찬진에서 들은 것과 서로 들어맞았습니다. 심상관의 옥사는 매우 수상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그대로 두라."

하였다. 유경유(柳慶裕)에 이르러 임금이 이르기를,

"이 사람은 임인옥(壬寅獄)에 들어 있는 자이다. 이 또한 의심스러운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그는 외로운 쥐요 썩은 병아리와 같은데 따질 것이 뭐 있겠는가?"

하니, 조현명이 아뢰기를,

"유경유의 임인옥(壬寅獄)은 매우 수상했는데도 김일경(金一鏡)이 두루 가로막아 감싸주었기 때문에 오서종(吳瑞鍾)은 지레 죽었고 따라서 유경유는 또한 철저히 신문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김일경이 오서종과 유경유를 철저히 신문하지 않은 것은 그의 소행이 반드시 발로(發露)될 것을 염려한 때문인 것이다."

하고, 이어 석방시키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신정모(申正模)는 어떠한가?"

하니, 조현명이 아뢰기를,

"신정모가 거창 현감(居昌縣監)으로 있을 때 적병이 갑자기 들이닥치자 신정모가 도주했기 때문에 감사(監司)가 곤장을 때렸습니다. 박당(朴鏜)은 청주 목사(淸州牧使)로서 도주했었는데 비국(備局)에 보고한 일이 있다고 하므로 다시 목사에 제배(除拜)했습니다. 그런데 신정모는 아직도 적적(謫籍)에 들어 있으니, 신은 그것이 균일한 조처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자, 임금이 이르기를,

"석방시키라."

하였다. 조현명이 아뢰기를,

"한일운(韓日運)의 일도 신정모의 경우와 같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그도 석방시키라."

하였다. 김시환(金始煥)이 이경열(李景說)을 금고(禁錮)시키라는 명을 환수(還收)할 것을 청하였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교하기를,

"듣건대, 유정(柳綎)은 치적(治績)이 도내(道內)에서 제일이라고 하고 이경열은 매우 탐오스러웠다고 한다."

하였다. 송인명이 아뢰기를,

"전 청주 목사(淸州牧使) 조언신(趙彦臣)은 변란을 당하여서도 임소(任所)로 달려가기를 우후(虞詡)396) 가 조가(朝歌)로 달려간 것과 다름없이 하여 남은 역적들을 쓸어 없애고 민인(民人)을 안집(安集)시켰습니다. 그리고 어사(御史) 김시형(金始炯)의 장계에 의거하여 살펴본즉 치적이 도내에서 으뜸이라고 했고 또 적괴(賊魁)의 아내인 자정(紫貞)이 고한 것을 올려보냈는데, 거기에 역적들의 정절(情節)이 낭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정법(正法)에 처하기도 하고 형장(刑杖)을 맞다가 죽기도 하였는데, 이번 원종(原從)397) 에서 누락되었으니, 의당 추가로 넣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숙마(熟馬)를 사급(賜給)하라."

하였다. 송인명이 아뢰기를,

"변란이 일어났을 적에 경상 감사(慶尙監司) 황선(黃璿)의 공이 가장 많았으니 의당 녹훈(錄勳)되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일이 지났습니다. 군관(軍官) 김진옥(金振玉)은 대구(大丘)의 영장(營將)이 병이 있다는 것으로 가영장(假營將)에 차임했었는데, 군사를 이끌고 합천(陜川)에 이르러 많은 군공(軍功)을 세웠습니다만, 원종(原從)에서 누락되었습니다. 고령 현감(高靈縣監) 유언철(兪彦哲)은 처음 이보혁(李普赫)의 중군(中軍)으로서 군사를 나누어 가지고 가서 적로(賊路)를 지켰고 합천의 역적들이 평정된 뒤에는 우두령(牛頭嶺) 아래로 나아가 주둔하고서 정희량(鄭希亮)의 진루(陣壘)를 핍박하였습니다. 초계 군수(草溪郡守) 정양빈(鄭暘賓)은 이보혁을 따라가서 합천을 평정하였고, 또 정희량이 체포되던 날에는 함께 거창으로 진군했는데도 상(賞)이 승서(陞敍)에 그쳤고 원종(原從)에는 들지 못하였으므로 개연(慨然)해 하고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황선은 직분상 해야 할 일을 한 것에 불과하다."

하였다. 이태좌가 아뢰기를,

"김진옥이 황선의 전령(傳令)이라고 빙자하면서 이정필(李廷弼)을 5리(里) 밖에서 잡아들여 순영(巡營)으로 결박지워 압송했으므로 이종성(李宗城)이 어사(御史)로 있을 적에 말하기를, ‘이정필은 승지(承旨)를 지낸 사람인데 가영장(假營將)이 어떻게 감히 잡아들일 수 있느냐?’고 하면서 김진옥을 잡아들여 곤장(棍杖) 다섯 대를 쳤다고 합니다."

하였다. 송인명이 아뢰기를,

"서원(書院) 가운데 조정에 새로 건립한다고 품하지 않은 것과 겹쳐 설치된 것을 훼철(毁撤)하는 것을 어느 해로부터 결단을 내려야 합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기해년398) 의 성명(成命)을 기준으로 결단하도록 하라."

하고, 전 상신(相臣) 정호(鄭澔)와 정미년399) 에 진주(陳奏)했던 사신(使臣)은 사유(赦宥)하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이태좌에게 하문하기를,

"정호는 경(卿)이 지난번에 그 단서를 은미하게 말로 했었는데, 정호의 소위는 통분스럽고 놀랍다. 그러나 이미 나이가 늙어 쇠하였으므로 옛날의 정호가 아니다. 석방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니, 이태좌가 아뢰기를,

"다 같이 죄를 진 사람인데 한 사람은 석방하고 한 사람은 그대로 두는 것이 되기 때문에 신이 진달한 바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자, 임금이 이르기를,

"종전에 그를 보았더니 노쇠하고 혼모(昏耗)했었다. 범한 것이 비록 중하였지만, 이는 노쇠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적소(謫所)에서 죽는다면 조정에서 죽인 것과 어찌 다름이 있겠는가? 지난해에 원찬(遠竄)시킨 것만으로도 벌이 이미 시행된 것이다. 특별히 석방시키라."

하였다. 이태좌(李台佐)가 아뢰기를,

"심수현(沈壽賢)이 작년의 봉사(奉使) 때 그곳에서 망극한 모욕을 받았으니 남의 신하가 된 몸으로 당연히 목숨을 걸고 다투었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그의 죄가 아닐 수 있습니까? 그러나 마침 옹정(雍正)400) 이 사납고 괴팍하여 제멋대로 할 때를 만나 인력(人力)으로 어찌할 수 없어 모욕을 받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때의 대신(臺臣)들이 한때의 분통스런 마음에서 발고(發告)했기 때문에 조사(措辭)를 가리지 않았습니다만, 심수현의 정세(情勢)는 매우 억울하고 원통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진주(陳奏)한 세 사신(使臣)에 대해 대신(臺臣)이 벌을 주기를 청하였으나, 그 일은 이미 통촉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사(上使)의 계(啓)에 대해서는 해가 바뀌도록 윤허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끝에 가서 참작하여 부처(付處)401) 하라고 한 것은 또한 뜻 둔 데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벌이 이미 행하여졌다. 부사(副使)는 다른 죄 때문에 정배(定配)되었다. 상사(上使)와 서장관(書狀官)은 아울러 석방시키라."

하였다. 사간(司諫) 윤동형(尹東衡)이 전에 아뢴 것을 전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지평(持平) 이성효(李性孝)가 전에 아뢴 것을 전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이소(李炤)는 역적 이항(李杭)402) 의 아들인데, 처신(處身)과 행사(行事)가 세상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았으므로 선조(先祖) 때부터 대계(臺啓)가 해가 바뀌도록 고집하여 논쟁했는데, 이는 이미 깊고 통렬하게 증오하는 뜻에서 나온 조치였으며, 작년에 도배(島配)한 것은 또 국가의 장래를 우려한 데에서 나온 조처였습니다. 그런데 막바로 먼저 특별히 석방시키는 것은 크게 물정(物情)에 어긋나는 조처이니, 방귀 전리(放歸田里)하게 하라는 명을 환수(還收)하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 [註 392] 삼군문(三軍門) : 훈련 도감·금위영·어영청.
  • [註 393] 이항(李杭) : 동평군(東平君).
  • [註 394] 방귀 전리(放歸田里) : 형벌의 한 가지. 벼슬을 삭탈하고 제 시골로 내리쫓음. 유배(流配)보다 한 등 가벼운 형(刑)임. 방축 향리(放逐鄕里). 방축(放逐).
  • [註 395] 양이(量移) : 섬이나 변방 지역으로 멀리 귀양가 있는 죄인을 감형하여 내지(內地)나 서울 가까운 곳으로 적소(謫所)를 옮기던 일.
  • [註 396] 우후(虞詡) : 후한(後漢) 무평(武平) 사람. 한 안제(漢安帝) 때 강(羌)이란 만족(蠻族)이 변경(邊境)을 침범하여 살상(殺傷)·약탈(掠奪)을 자행하였는데, 우후가 조가(朝哥)의 장(長)에 임명되어 그 지방의 장사(壯士)를 모집해서 적중(賊中)에 들여보내 위협하고 노략질하게 하고 복병(伏兵)으로 적 수백 명을 죽여 강호(羌胡)를 소탕시킨 고사(故事)가 있음.
  • [註 397] 원종(原從) : 원종 공신.
  • [註 398] 기해년 : 1719 숙종 45년.
  • [註 399] 정미년 : 1727 영조 3년.
  • [註 400] 옹정(雍正) : 청 세종(淸世宗)의 연호로, 세종을 가리킴.
  • [註 401] 부처(付處) : 유배(流配)에 처한 죄인에게 그 정상을 너그럽게 참작하여 배소(配所)로 가는 도중에 한 곳을 정하여 지내게 함.
  • [註 402] 이항(李杭) : 동평군(東平君).

원문

○引見大臣、備堂。 右議政李台佐奏: "義禁府以李弘邁議讞事, 請議, 大臣未免失體矣。 請禁堂推考。" 上問判義禁金始煥, 始煥對曰: "弘邁以大同米作錢九百二十餘兩, 皆私用, 自服。 律文贓四十貫以上, 皆極律, 而人命至重, 故以議大臣爲請矣。" 上曰: "不斬朴致遠, 而獨斬弘邁, 則不亦謬乎?" 命詳考文案稟處。 台佐陳: "亂後, 嶺南則送李宗城曉諭。 趙顯命, 今因實錄奉安, 下往湖南, 請歷路曉諭。" 允之, 仍命湖西, 一體曉諭。 訓鍊大將李森請北京賞銀, 出征將士外, 扈衛軍兵, 一體分給, 允之。 森奏三軍門巡邏, 請依古例, 分日, 允之。 台佐稟昨年因臺言竄配者, 至李濟兼, 台佐曰: "變亂之際, 走還其家, 罪不輕矣。" 上曰: "仍。" 至李之榦ㆍ金沃ㆍ李萬春, 上曰: "放送。" 至韓師億, 台佐曰: "此人締結雜類至此矣。" 上曰: "減等。" 至權叙經, 上曰: "減等。" 至鄭思孝, 趙顯命曰: "思孝之罪, 南中人藉藉言之。 弼顯雖極凶, 若不與監司相通, 則必不敢驅兵直扺營下矣。" 吏曹判書李㙫曰: "終不追捕弼顯者, 極可疑矣。" 禮曹參判宋寅明曰: "弼顯有所恃, 故驅兵直到矣。" 上曰: "仍。" 至朴景淳ㆍ李慶佐ㆍ楨佐ㆍ命佐ㆍ李千祿ㆍ姜栢, 上曰: "仍。" 至炤, 炤, 杭之子也。 上曰: "先朝時免坐之人, 今何可置之絶島乎?" 大司成趙顯命曰: "此人行止凶惡, 垂其頭髮, 不見天日云矣。" 上曰: "炤之啓, 卽李夏源所發, 而出於倉卒間, 慮患之意, 無深意矣。 安置本郡, 使其官長, 拘束好矣。" 仍命依前放歸田里。 至裵胤命, 寅明曰: "其人頗有才, 而不吉云矣。" 㙫曰: "聞胤命爲人, 極其奸詐矣。" 上曰: "仍。" 至金海嗚ㆍ全近思ㆍ金泰壽ㆍ李文標ㆍ李熙齡, 上曰: "放送。" 至李太元, 台佐曰: "敎文中一字贊改者也。" 顯命曰: "逆鏡所謂不負朋友, 卽指太元云矣。" 上曰: "鄭錫三, 前言太元之助一字, 何重罪耶云矣。 特爲減等。" 寅明曰: "象極之用律斑駁。 若以逆律用之, 母當爲婢子, 當處絞, 而子與姪, 皆爲奴絶島, 其母則在家, 律名無着落。 其姪比其子, 似有差等矣。" 顯命曰: "象極, 以景宗大王八年, 書於賊陣報狀中, 情狀極凶矣。" 上曰: "八年之說, 極凶獰。 此何可論也?" 上曰: "閔哥、尹哥, 眞難兄難弟者也。 尹哥一族, 置之一島, 亦多可憂, 依閔哥例, 十四歲以下放送。 其餘幷與閔哥, 分配水陸, 則在渠爲量移, 又無後慮矣。 閔、尹族類及麟佐族黨, 分付配所官, 着實點考可也。" 刑曹參判蔡彭胤、參議李承源進刑曹罪人抄出冊子。 至李畬, 上曰: "仍。" 至金泰潤ㆍ華潤, 彭胤曰: "泰潤與彦良, 爲從兄弟, 而不爲慶弔云矣。" 上曰: "放送。" 至柳耒ㆍ柳楳, 徠之同生也。 上曰: "仍。" 至南夏運, 台佐曰: "夏運, 卽義徵女壻, 而與徠相親矣。" 尹東衡曰: "不可輕議矣。" 上曰: "放送。" 至李審ㆍ全益敏, 上曰: "仍。" 至沈尙觀, 台佐曰: "韓、柳席上一株松等語, 可疑矣。" 顯命曰: "江女媒婚, 卽與水賊交通, 買船時隱語云矣。" 寅明曰: "成衍以誣告伏法, 而獄情陰秘, 不可經放矣。" 顯命曰: "臣自都巡撫陣中上來時, 到陽智佐贊陣, 聞竹山 彌勒村 宋哥一門, 盡爲從賊, 方釀酒積粟, 爲迎賊計云。 及成衍發告尙觀等, 後其宋哥, 多入於獄事, 與臣佐贊陣所聞相符。 尙觀之獄, 極殊常矣。" 上曰: "仍。" 至柳慶裕, 上曰: "此人入於壬寅獄者也。 此亦出於疑慮, 而孤鼠腐雛, 何足數哉?" 顯命曰: "慶裕壬寅獄事, 極殊常, 而一鏡周遮, 故吳瑞鍾經斃, 慶裕亦不得究問矣。" 上曰: "一鏡之不爲究問瑞鍾、慶裕者, 以渠之所爲, 必發露故也。" 仍命放送。 上曰: "申正模何如?" 顯命曰: "正模爲居昌縣監時, 賊兵猝至, 正模逃走, 故監司決棍。 朴鏜則以淸州牧使逃走, 而謂有報備局之事, 而除拜牧使。 正模則尙在謫籍, 臣未知其均一矣。" 上曰: "放送。" 顯命曰: "韓日運事, 亦與正模同矣。" 上曰: "亦放送。" 始煥請還收李景說禁錮, 上不許。 且敎曰: "聞柳綎則治績爲一道最, 而景說則極貪汚矣。" 寅明曰: "前淸州牧使趙彦臣, 當亂赴任, 無異虞詡之赴朝歌, 掃除餘賊安集。 民人以御史金始炯狀啓見之, 治爲一道之最, 且上送賊魁妻紫貞所告, 諸賊逆節狼藉。 或正法或杖斃, 而見漏於原從, 宜追入矣。" 上曰: "熟馬賜給。" 寅明曰: "變亂時, 慶尙監司黃璿之功最多, 宜錄勳, 而今則事過矣。 軍官金振玉, 以大丘營將之有病, 差假營將, 領軍至陜川, 多有軍功, 而見漏原從。 高靈縣監兪彦哲, 則初以李普赫中軍, 分兵往守賊路, 陜川賊平後, 進次牛頭嶺下, 以逼希亮之壘。 草溪郡守鄭暘賓, 則從李普赫平陜川, 又於希亮被擒日, 同爲進軍居昌, 而賞止陞敍, 不入原從, 慨然矣。" 上曰: "黃璿不過職分內事矣。" 台佐曰: "振玉憑藉黃璿傳令, 拿入李廷弼於五里之外, 縛送巡營, 故李宗城爲御史時, 以爲: ‘廷弼旣經承旨, 假營將何敢拿入?’云, 而捉入振玉, 決棍五度云矣。" 寅明稟, 書院不稟朝家新建者, 及疊設者毁撤, 當自何年爲斷? 上曰: "以己亥成命後爲斷可也。" 命宥前相臣鄭澔及丁未陳奏使臣。 上問台佐曰: "鄭澔, 卿於頃者, 微發其端, 澔所爲雖痛駭。 蓋其年老衰敗, 非昔日鄭澔也。 放釋何如?" 台佐曰: "同罪之人, 一放一仍, 臣以是有所達矣。" 上曰: "向來見之, 則衰敗無知。 所犯雖重, 此非衰耗之人所可辦也。 死於謫所, 則何異於朝家殺之耶? 經年遠竄, 罰已行矣。 特爲放送。" 台佐曰: "沈壽賢, 昨年奉使時, 受罔極之辱, 爲人臣子, 所當以死爭之, 而不能爲之。 此豈非其罪乎? 然適會雍正之狠愎自用, 不能容人力, 而至於受辱之境。 伊時臺臣, 只以一時憤惋之意發告, 而不擇措辭, 壽賢情勢, 則極冤枉矣。" 上曰: "陳奏三使臣, 臺臣請罰, 而本事已洞燭, 故上使之啓, 經歲靳允。 末梢參酌付處者, 意亦有在故也, 今則罰已行矣。 副使以他罪被配。 上使、書狀, 竝放送。" 司諫尹東衡傳前啓, 不允。 持平李性孝傳前啓, 不允。 又啓: "炤以賊杭子, 處身行事, 爲世指疑, 自先朝臺啓之經年爭執, 旣出深惡痛嫉之意, 昨年島配, 又出爲國長慮。 徑先特放, 大咈物情, 請還收放歸田里之命。" 不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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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22권, 영조 5년 4월 30일 甲辰 3/3 기사 / 1729년 청 옹정(雍正) 7년

대신과 비당을 인견하다. 우의정 이태좌 등이 대언 때문에 찬배된 자의 처분 등에 대해 아뢰다

국역

대신(大臣)과 비당(備堂)을 인견하였다. 우의정 이태좌(李台佐)가 아뢰기를,

"의금부에서 이홍매(李弘邁)의 의언(議讞)할 일로써 대신에게 의논하기를 청하였으니, 체통은 잃는 것을 면치 못한 처사였습니다. 청컨대 금부 당상(禁府堂上)을 추고(推考)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판의금 김시환(金始煥)에게 하문하니, 김시환이 대답하기를,

"이홍매가 대동미(大同米)를 작전(作錢)하여 9백 20여 냥을 모두 사사로이 썼다는 것을 자복(自服)하였습니다. 율문(律文)에 의하면 장물(贓物)이 40관 이상이면 모두 극형(極刑)에 처하게 되어 있는데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대신(大臣)에게 의논하기를 청한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박치원(朴致遠)은 참형(斬刑)에 처하지 않고 유독 이홍매(李弘邁)만 참형에 처하는 것은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문안(文案)을 상세히 상고하여 품처(稟處)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이태좌가 진달하기를,

"변란이 있은 뒤에 영남(嶺南)에는 이종성(李宗城)을 보내어 효유(曉諭)하였습니다. 조현명(趙顯命)이 이제 실록(實錄)의 봉안(奉安)으로 인하여 호남(湖南)으로 내려가게 되었으니, 청컨대 지나는 길에 따라 효유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하고 이어 호서(湖西)도 똑같이 효유하도록 명하였다. 훈련 대장(訓鍊大將) 이삼(李森)이 청하기를,

"북경(北京)에서 상은(賞銀)으로 준 것은 출정(出征)한 장사(將士)들 이외에 호위(扈衛)한 군병들에게도 똑같이 나누어 주게 하소서."

하니, 윤허하였다. 이삼이 아뢰기를,

"삼군문(三軍門)392) 의 순라(巡邏)는 고례(古例)에 의거하여 날짜를 나누게 하여 주소서."

하니, 윤허하였다. 이태좌가 작년에 대언(臺言) 때문에 찬배(竄配)된 자에 대해 품달하였는데 이제겸(李濟兼)에 이르러 이태좌가 아뢰기를,

"변란이 일어났을 적에 자기 집으로 달려갔으니, 그 죄가 가볍지 않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그대로 두라."

하였다. 이지간(李之榦)·김옥(金沃)·이만춘(李萬春)에 이르러서는 임금이 이르기를,

"석방(釋放)시키라."

하였다. 한사억(韓師億)에 이르러서 이태좌가 아뢰기를,

"이 사람은 잡류(雜類)들을 체결하여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감등(減等)시키라."

하였다. 권서경(權敍經)에 이르러서도 임금이 이르기를,

"감등시키라."

하였다. 정사효(鄭思孝)에 이르러서는 조현명(趙顯命)이 아뢰기를,

"정사효의 죄는 남쪽 지방 사람들이 자자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박필현(朴弼顯)이 아무리 흉악하다고 하더라도 만약 감사(監司)와 서로 통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감히 군사를 몰고 곧 바로 영하(營下)에 이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고, 이조 판서 이집(李㙫)은 아뢰기를,

"끝내 박필현을 추포(追捕)하지 않은 점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하였으며, 예조 참판 송인명(宋寅明)은 아뢰기를,

"박필현이 믿는 데가 있었기 때문에 군사를 몰고 곧바로 이른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그대로 두라."

하였다. 박경순(朴景淳)·이경좌(李慶佐)·이정좌(李楨佐)·이명좌(李命佐)·이천록(李千祿)·강백(姜栢)에 이르러서도 임금이 이르기를,

"그대로 두라."

하였다. 이소(李炤)에 이르렀는데, 이소는 이항(李杭)393) 의 아들이다. 임금이 이르기를,

"선조(先朝) 때 좌죄(坐罪)를 면한 사람인데 지금 어떻게 절도(絶島)에 안치(安置)시킬 수 있겠는가?"

하니, 대사성(大司成) 조현명이 아뢰기를,

"이 사람은 행동거지가 흉악하여 그 머리털을 풀어내린 채 하늘의 해를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소(炤)에 대한 계사(啓辭)는 곧 이하원(李夏源)이 발론한 것인데, 창졸간에 환란을 우려하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 깊은 뜻은 없는 것이다. 본군(本郡)에 안치시키고 그곳의 관장(官長)으로 하여금 구속(拘束)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고, 이어 전대로 방귀 전리(放歸田里)394) 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배윤명(裵胤命)에 이르러 송인명이 아뢰기를,

"이 사람은 상당히 재주가 있지만 불길(不吉)한 자라고 합니다."

하고, 이집은 아뢰기를,

"들리는 바에 의하면 배윤명의 인품은 매우 간사하다고 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그대로 두라."

하였다. 김해명(金海鳴)·전근사(全近思)·김태수(金泰壽)·이문표(李文標)·이희령(李熙齡)에 이르러서는 임금이 이르기를,

"석방(釋放)시키라."

하였다. 이태원(李太元)에 이르러서는 이태좌가 아뢰기를,

"교문(敎文) 가운데 한 글자를 도와서 고치게 한 자입니다."

하고, 조현명은 아뢰기를,

"역적 김일경(金一鏡)이 이른바 붕우(朋友)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한 사람은 곧 이태원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정석삼(鄭錫三)이 전에 이태원이 글자 하나를 도와서 고치게 한 것이 무슨 중한 죄가 되겠느냐고 했었다. 특별히 감등(減等)시키라."

하였다. 송인명이 아뢰기를,

"임상극(林象極)에게 적용할 율문(律文)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만일 역률(逆律)을 적용한다면 어미는 계집종이 되어야 하고 아들은 교형(絞刑)에 처해야 하는 데, 그의 아들과 조카들은 모두 노예가 되어 절도(絶島)에 가 있고 그 어미는 집에 있으니, 율명(律名)을 낙찰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의 조카는 아들에 견주어 볼 때 차등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하니, 조현명은 아뢰기를,

"임상극(林象極)은 경종 대왕(景宗大王) 8년이라고 적진(賊陣)에 보내는 보장(報狀)에 썼으니, 정상(情狀)이 매우 흉악스럽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8년이라고 한 말은 매우 흉녕스럽다. 이 사람을 어떻게 논할 수 있겠는가?"

하고, 임금이 또 이르기를,

"민가(閔哥)와 윤가(尹哥)는 참으로 난형 난제(難兄難弟)인 자들이다. 윤가 일족(一族)을 한 섬에다 안치시킨 것은 또한 우려스러운 점이 많으니, 민가의 예(例)에 의거하여 14세 이하는 석방(釋放)시키라. 그 나머지는 모두 민가의 예에 의거하여 바다나 육지로 분배(分配)한다면 그들에 있어서는 양이(量移)395) 가 될 것이고 또 뒷날의 걱정도 없게 될 것이다. 민(閔)·윤(尹)의 족류(族類)들과 이인좌(李麟佐)의 족당(族黨)들을 정배(定配)한 곳의 관장(官長)에게 분부하여 그들을 착실하게 점고(點考)하도록 하라."

하였다. 형조 판서 채팽윤(蔡彭胤)과 참의 이승원(李承源)이 형조의 죄인을 초출(招出)한 책자(冊子)를 올렸다. 이여(李畬)에 이르러 임금이 이르기를,

"그대로 두라."

하였다. 김태윤(金泰潤)·김화윤(金華潤)에 이르러 채팽윤이 아뢰기를,

"김태윤은 김언량(金彦良)과 종형제(從兄弟) 사이인데도 경사(慶事)나 흉사(凶事)에 서로 내왕이 없다고 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석방시키라."

하였다. 유뇌(柳耒)·유매(柳楳)에 이르렀는데, 이들은 유내(柳徠)의 동생(同生)이다. 임금이 이르기를,

"그대로 두라."

하였다. 남하운(南夏運)에 이르러 이태좌가 아뢰기를,

"남하운은 곧 이의징(李義徵)의 여서(女壻)인데, 유내와 서로 친밀합니다."

하고, 윤동형(尹東衡)은 아뢰기를,

"경솔하게 의논해서는 안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석방시키라."

하였다. 이심(李審)·전익민(全益敏)에 이르러 임금이 이르기를,

"그대로 두라."

하였다. 심상관(沈尙觀)에 이르러 이태좌가 아뢰기를,

"한(韓)·유(柳)의 자리 위에 한 그루 소나무[韓柳席上一株松]’라고 한 등등의 말은 의심스럽습니다."

하고, 조현명은 아뢰기를,

"‘강녀(江女)와 중매로 결혼했다[江女媒婚]’는 말은 곧 수적(水賊)과 교통(交通)하여 선척(船隻)을 살 때의 은어(隱語)라고 합니다."

하였으며, 송인명은 아뢰기를,

"심성연(沈成衍)은 무고(誣告)한 것 때문에 복법(伏法)되었는데 옥사(獄事)의 정상이 음비(陰祕)스러우니, 경솔히 석방해서는 안됩니다."

하고, 조현명은 아뢰기를,

"신이 도순무(都巡撫)의 진중(陣中)에서 올라올 적에 양지(陽智)의 좌찬진(佐贊陣)에 이르러 들은 바에 의하면, 죽산(竹山)의 미륵촌(彌勒村)에 사는 송가(宋哥)의 일문(一門)이 모두 역적을 따르고 있는데 바야흐로 술을 빚고 곡식을 쌓아놓고서 역적을 영접할 계책을 세우고 있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심성연이 심상관(沈尙觀) 등을 발고(發告)하기에 이르렀고 그 뒤에 송가(宋哥)들이 옥사(獄事)에 많이 개입되었으니, 신이 좌찬진에서 들은 것과 서로 들어맞았습니다. 심상관의 옥사는 매우 수상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그대로 두라."

하였다. 유경유(柳慶裕)에 이르러 임금이 이르기를,

"이 사람은 임인옥(壬寅獄)에 들어 있는 자이다. 이 또한 의심스러운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그는 외로운 쥐요 썩은 병아리와 같은데 따질 것이 뭐 있겠는가?"

하니, 조현명이 아뢰기를,

"유경유의 임인옥(壬寅獄)은 매우 수상했는데도 김일경(金一鏡)이 두루 가로막아 감싸주었기 때문에 오서종(吳瑞鍾)은 지레 죽었고 따라서 유경유는 또한 철저히 신문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김일경이 오서종과 유경유를 철저히 신문하지 않은 것은 그의 소행이 반드시 발로(發露)될 것을 염려한 때문인 것이다."

하고, 이어 석방시키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신정모(申正模)는 어떠한가?"

하니, 조현명이 아뢰기를,

"신정모가 거창 현감(居昌縣監)으로 있을 때 적병이 갑자기 들이닥치자 신정모가 도주했기 때문에 감사(監司)가 곤장을 때렸습니다. 박당(朴鏜)은 청주 목사(淸州牧使)로서 도주했었는데 비국(備局)에 보고한 일이 있다고 하므로 다시 목사에 제배(除拜)했습니다. 그런데 신정모는 아직도 적적(謫籍)에 들어 있으니, 신은 그것이 균일한 조처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자, 임금이 이르기를,

"석방시키라."

하였다. 조현명이 아뢰기를,

"한일운(韓日運)의 일도 신정모의 경우와 같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그도 석방시키라."

하였다. 김시환(金始煥)이 이경열(李景說)을 금고(禁錮)시키라는 명을 환수(還收)할 것을 청하였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교하기를,

"듣건대, 유정(柳綎)은 치적(治績)이 도내(道內)에서 제일이라고 하고 이경열은 매우 탐오스러웠다고 한다."

하였다. 송인명이 아뢰기를,

"전 청주 목사(淸州牧使) 조언신(趙彦臣)은 변란을 당하여서도 임소(任所)로 달려가기를 우후(虞詡)396) 가 조가(朝歌)로 달려간 것과 다름없이 하여 남은 역적들을 쓸어 없애고 민인(民人)을 안집(安集)시켰습니다. 그리고 어사(御史) 김시형(金始炯)의 장계에 의거하여 살펴본즉 치적이 도내에서 으뜸이라고 했고 또 적괴(賊魁)의 아내인 자정(紫貞)이 고한 것을 올려보냈는데, 거기에 역적들의 정절(情節)이 낭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정법(正法)에 처하기도 하고 형장(刑杖)을 맞다가 죽기도 하였는데, 이번 원종(原從)397) 에서 누락되었으니, 의당 추가로 넣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숙마(熟馬)를 사급(賜給)하라."

하였다. 송인명이 아뢰기를,

"변란이 일어났을 적에 경상 감사(慶尙監司) 황선(黃璿)의 공이 가장 많았으니 의당 녹훈(錄勳)되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일이 지났습니다. 군관(軍官) 김진옥(金振玉)은 대구(大丘)의 영장(營將)이 병이 있다는 것으로 가영장(假營將)에 차임했었는데, 군사를 이끌고 합천(陜川)에 이르러 많은 군공(軍功)을 세웠습니다만, 원종(原從)에서 누락되었습니다. 고령 현감(高靈縣監) 유언철(兪彦哲)은 처음 이보혁(李普赫)의 중군(中軍)으로서 군사를 나누어 가지고 가서 적로(賊路)를 지켰고 합천의 역적들이 평정된 뒤에는 우두령(牛頭嶺) 아래로 나아가 주둔하고서 정희량(鄭希亮)의 진루(陣壘)를 핍박하였습니다. 초계 군수(草溪郡守) 정양빈(鄭暘賓)은 이보혁을 따라가서 합천을 평정하였고, 또 정희량이 체포되던 날에는 함께 거창으로 진군했는데도 상(賞)이 승서(陞敍)에 그쳤고 원종(原從)에는 들지 못하였으므로 개연(慨然)해 하고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황선은 직분상 해야 할 일을 한 것에 불과하다."

하였다. 이태좌가 아뢰기를,

"김진옥이 황선의 전령(傳令)이라고 빙자하면서 이정필(李廷弼)을 5리(里) 밖에서 잡아들여 순영(巡營)으로 결박지워 압송했으므로 이종성(李宗城)이 어사(御史)로 있을 적에 말하기를, ‘이정필은 승지(承旨)를 지낸 사람인데 가영장(假營將)이 어떻게 감히 잡아들일 수 있느냐?’고 하면서 김진옥을 잡아들여 곤장(棍杖) 다섯 대를 쳤다고 합니다."

하였다. 송인명이 아뢰기를,

"서원(書院) 가운데 조정에 새로 건립한다고 품하지 않은 것과 겹쳐 설치된 것을 훼철(毁撤)하는 것을 어느 해로부터 결단을 내려야 합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기해년398) 의 성명(成命)을 기준으로 결단하도록 하라."

하고, 전 상신(相臣) 정호(鄭澔)와 정미년399) 에 진주(陳奏)했던 사신(使臣)은 사유(赦宥)하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이태좌에게 하문하기를,

"정호는 경(卿)이 지난번에 그 단서를 은미하게 말로 했었는데, 정호의 소위는 통분스럽고 놀랍다. 그러나 이미 나이가 늙어 쇠하였으므로 옛날의 정호가 아니다. 석방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니, 이태좌가 아뢰기를,

"다 같이 죄를 진 사람인데 한 사람은 석방하고 한 사람은 그대로 두는 것이 되기 때문에 신이 진달한 바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자, 임금이 이르기를,

"종전에 그를 보았더니 노쇠하고 혼모(昏耗)했었다. 범한 것이 비록 중하였지만, 이는 노쇠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적소(謫所)에서 죽는다면 조정에서 죽인 것과 어찌 다름이 있겠는가? 지난해에 원찬(遠竄)시킨 것만으로도 벌이 이미 시행된 것이다. 특별히 석방시키라."

하였다. 이태좌(李台佐)가 아뢰기를,

"심수현(沈壽賢)이 작년의 봉사(奉使) 때 그곳에서 망극한 모욕을 받았으니 남의 신하가 된 몸으로 당연히 목숨을 걸고 다투었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그의 죄가 아닐 수 있습니까? 그러나 마침 옹정(雍正)400) 이 사납고 괴팍하여 제멋대로 할 때를 만나 인력(人力)으로 어찌할 수 없어 모욕을 받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때의 대신(臺臣)들이 한때의 분통스런 마음에서 발고(發告)했기 때문에 조사(措辭)를 가리지 않았습니다만, 심수현의 정세(情勢)는 매우 억울하고 원통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진주(陳奏)한 세 사신(使臣)에 대해 대신(臺臣)이 벌을 주기를 청하였으나, 그 일은 이미 통촉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사(上使)의 계(啓)에 대해서는 해가 바뀌도록 윤허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끝에 가서 참작하여 부처(付處)401) 하라고 한 것은 또한 뜻 둔 데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벌이 이미 행하여졌다. 부사(副使)는 다른 죄 때문에 정배(定配)되었다. 상사(上使)와 서장관(書狀官)은 아울러 석방시키라."

하였다. 사간(司諫) 윤동형(尹東衡)이 전에 아뢴 것을 전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지평(持平) 이성효(李性孝)가 전에 아뢴 것을 전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이소(李炤)는 역적 이항(李杭)402) 의 아들인데, 처신(處身)과 행사(行事)가 세상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았으므로 선조(先祖) 때부터 대계(臺啓)가 해가 바뀌도록 고집하여 논쟁했는데, 이는 이미 깊고 통렬하게 증오하는 뜻에서 나온 조치였으며, 작년에 도배(島配)한 것은 또 국가의 장래를 우려한 데에서 나온 조처였습니다. 그런데 막바로 먼저 특별히 석방시키는 것은 크게 물정(物情)에 어긋나는 조처이니, 방귀 전리(放歸田里)하게 하라는 명을 환수(還收)하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 [註 392] 삼군문(三軍門) : 훈련 도감·금위영·어영청.
  • [註 393] 이항(李杭) : 동평군(東平君).
  • [註 394] 방귀 전리(放歸田里) : 형벌의 한 가지. 벼슬을 삭탈하고 제 시골로 내리쫓음. 유배(流配)보다 한 등 가벼운 형(刑)임. 방축 향리(放逐鄕里). 방축(放逐).
  • [註 395] 양이(量移) : 섬이나 변방 지역으로 멀리 귀양가 있는 죄인을 감형하여 내지(內地)나 서울 가까운 곳으로 적소(謫所)를 옮기던 일.
  • [註 396] 우후(虞詡) : 후한(後漢) 무평(武平) 사람. 한 안제(漢安帝) 때 강(羌)이란 만족(蠻族)이 변경(邊境)을 침범하여 살상(殺傷)·약탈(掠奪)을 자행하였는데, 우후가 조가(朝哥)의 장(長)에 임명되어 그 지방의 장사(壯士)를 모집해서 적중(賊中)에 들여보내 위협하고 노략질하게 하고 복병(伏兵)으로 적 수백 명을 죽여 강호(羌胡)를 소탕시킨 고사(故事)가 있음.
  • [註 397] 원종(原從) : 원종 공신.
  • [註 398] 기해년 : 1719 숙종 45년.
  • [註 399] 정미년 : 1727 영조 3년.
  • [註 400] 옹정(雍正) : 청 세종(淸世宗)의 연호로, 세종을 가리킴.
  • [註 401] 부처(付處) : 유배(流配)에 처한 죄인에게 그 정상을 너그럽게 참작하여 배소(配所)로 가는 도중에 한 곳을 정하여 지내게 함.
  • [註 402] 이항(李杭) : 동평군(東平君).

원문

○引見大臣、備堂。 右議政李台佐奏: "義禁府以李弘邁議讞事, 請議, 大臣未免失體矣。 請禁堂推考。" 上問判義禁金始煥, 始煥對曰: "弘邁以大同米作錢九百二十餘兩, 皆私用, 自服。 律文贓四十貫以上, 皆極律, 而人命至重, 故以議大臣爲請矣。" 上曰: "不斬朴致遠, 而獨斬弘邁, 則不亦謬乎?" 命詳考文案稟處。 台佐陳: "亂後, 嶺南則送李宗城曉諭。 趙顯命, 今因實錄奉安, 下往湖南, 請歷路曉諭。" 允之, 仍命湖西, 一體曉諭。 訓鍊大將李森請北京賞銀, 出征將士外, 扈衛軍兵, 一體分給, 允之。 森奏三軍門巡邏, 請依古例, 分日, 允之。 台佐稟昨年因臺言竄配者, 至李濟兼, 台佐曰: "變亂之際, 走還其家, 罪不輕矣。" 上曰: "仍。" 至李之榦ㆍ金沃ㆍ李萬春, 上曰: "放送。" 至韓師億, 台佐曰: "此人締結雜類至此矣。" 上曰: "減等。" 至權叙經, 上曰: "減等。" 至鄭思孝, 趙顯命曰: "思孝之罪, 南中人藉藉言之。 弼顯雖極凶, 若不與監司相通, 則必不敢驅兵直扺營下矣。" 吏曹判書李㙫曰: "終不追捕弼顯者, 極可疑矣。" 禮曹參判宋寅明曰: "弼顯有所恃, 故驅兵直到矣。" 上曰: "仍。" 至朴景淳ㆍ李慶佐ㆍ楨佐ㆍ命佐ㆍ李千祿ㆍ姜栢, 上曰: "仍。" 至炤, 炤, 杭之子也。 上曰: "先朝時免坐之人, 今何可置之絶島乎?" 大司成趙顯命曰: "此人行止凶惡, 垂其頭髮, 不見天日云矣。" 上曰: "炤之啓, 卽李夏源所發, 而出於倉卒間, 慮患之意, 無深意矣。 安置本郡, 使其官長, 拘束好矣。" 仍命依前放歸田里。 至裵胤命, 寅明曰: "其人頗有才, 而不吉云矣。" 㙫曰: "聞胤命爲人, 極其奸詐矣。" 上曰: "仍。" 至金海嗚ㆍ全近思ㆍ金泰壽ㆍ李文標ㆍ李熙齡, 上曰: "放送。" 至李太元, 台佐曰: "敎文中一字贊改者也。" 顯命曰: "逆鏡所謂不負朋友, 卽指太元云矣。" 上曰: "鄭錫三, 前言太元之助一字, 何重罪耶云矣。 特爲減等。" 寅明曰: "象極之用律斑駁。 若以逆律用之, 母當爲婢子, 當處絞, 而子與姪, 皆爲奴絶島, 其母則在家, 律名無着落。 其姪比其子, 似有差等矣。" 顯命曰: "象極, 以景宗大王八年, 書於賊陣報狀中, 情狀極凶矣。" 上曰: "八年之說, 極凶獰。 此何可論也?" 上曰: "閔哥、尹哥, 眞難兄難弟者也。 尹哥一族, 置之一島, 亦多可憂, 依閔哥例, 十四歲以下放送。 其餘幷與閔哥, 分配水陸, 則在渠爲量移, 又無後慮矣。 閔、尹族類及麟佐族黨, 分付配所官, 着實點考可也。" 刑曹參判蔡彭胤、參議李承源進刑曹罪人抄出冊子。 至李畬, 上曰: "仍。" 至金泰潤ㆍ華潤, 彭胤曰: "泰潤與彦良, 爲從兄弟, 而不爲慶弔云矣。" 上曰: "放送。" 至柳耒ㆍ柳楳, 徠之同生也。 上曰: "仍。" 至南夏運, 台佐曰: "夏運, 卽義徵女壻, 而與徠相親矣。" 尹東衡曰: "不可輕議矣。" 上曰: "放送。" 至李審ㆍ全益敏, 上曰: "仍。" 至沈尙觀, 台佐曰: "韓、柳席上一株松等語, 可疑矣。" 顯命曰: "江女媒婚, 卽與水賊交通, 買船時隱語云矣。" 寅明曰: "成衍以誣告伏法, 而獄情陰秘, 不可經放矣。" 顯命曰: "臣自都巡撫陣中上來時, 到陽智佐贊陣, 聞竹山 彌勒村 宋哥一門, 盡爲從賊, 方釀酒積粟, 爲迎賊計云。 及成衍發告尙觀等, 後其宋哥, 多入於獄事, 與臣佐贊陣所聞相符。 尙觀之獄, 極殊常矣。" 上曰: "仍。" 至柳慶裕, 上曰: "此人入於壬寅獄者也。 此亦出於疑慮, 而孤鼠腐雛, 何足數哉?" 顯命曰: "慶裕壬寅獄事, 極殊常, 而一鏡周遮, 故吳瑞鍾經斃, 慶裕亦不得究問矣。" 上曰: "一鏡之不爲究問瑞鍾、慶裕者, 以渠之所爲, 必發露故也。" 仍命放送。 上曰: "申正模何如?" 顯命曰: "正模爲居昌縣監時, 賊兵猝至, 正模逃走, 故監司決棍。 朴鏜則以淸州牧使逃走, 而謂有報備局之事, 而除拜牧使。 正模則尙在謫籍, 臣未知其均一矣。" 上曰: "放送。" 顯命曰: "韓日運事, 亦與正模同矣。" 上曰: "亦放送。" 始煥請還收李景說禁錮, 上不許。 且敎曰: "聞柳綎則治績爲一道最, 而景說則極貪汚矣。" 寅明曰: "前淸州牧使趙彦臣, 當亂赴任, 無異虞詡之赴朝歌, 掃除餘賊安集。 民人以御史金始炯狀啓見之, 治爲一道之最, 且上送賊魁妻紫貞所告, 諸賊逆節狼藉。 或正法或杖斃, 而見漏於原從, 宜追入矣。" 上曰: "熟馬賜給。" 寅明曰: "變亂時, 慶尙監司黃璿之功最多, 宜錄勳, 而今則事過矣。 軍官金振玉, 以大丘營將之有病, 差假營將, 領軍至陜川, 多有軍功, 而見漏原從。 高靈縣監兪彦哲, 則初以李普赫中軍, 分兵往守賊路, 陜川賊平後, 進次牛頭嶺下, 以逼希亮之壘。 草溪郡守鄭暘賓, 則從李普赫平陜川, 又於希亮被擒日, 同爲進軍居昌, 而賞止陞敍, 不入原從, 慨然矣。" 上曰: "黃璿不過職分內事矣。" 台佐曰: "振玉憑藉黃璿傳令, 拿入李廷弼於五里之外, 縛送巡營, 故李宗城爲御史時, 以爲: ‘廷弼旣經承旨, 假營將何敢拿入?’云, 而捉入振玉, 決棍五度云矣。" 寅明稟, 書院不稟朝家新建者, 及疊設者毁撤, 當自何年爲斷? 上曰: "以己亥成命後爲斷可也。" 命宥前相臣鄭澔及丁未陳奏使臣。 上問台佐曰: "鄭澔, 卿於頃者, 微發其端, 澔所爲雖痛駭。 蓋其年老衰敗, 非昔日鄭澔也。 放釋何如?" 台佐曰: "同罪之人, 一放一仍, 臣以是有所達矣。" 上曰: "向來見之, 則衰敗無知。 所犯雖重, 此非衰耗之人所可辦也。 死於謫所, 則何異於朝家殺之耶? 經年遠竄, 罰已行矣。 特爲放送。" 台佐曰: "沈壽賢, 昨年奉使時, 受罔極之辱, 爲人臣子, 所當以死爭之, 而不能爲之。 此豈非其罪乎? 然適會雍正之狠愎自用, 不能容人力, 而至於受辱之境。 伊時臺臣, 只以一時憤惋之意發告, 而不擇措辭, 壽賢情勢, 則極冤枉矣。" 上曰: "陳奏三使臣, 臺臣請罰, 而本事已洞燭, 故上使之啓, 經歲靳允。 末梢參酌付處者, 意亦有在故也, 今則罰已行矣。 副使以他罪被配。 上使、書狀, 竝放送。" 司諫尹東衡傳前啓, 不允。 持平李性孝傳前啓, 不允。 又啓: "炤以賊杭子, 處身行事, 爲世指疑, 自先朝臺啓之經年爭執, 旣出深惡痛嫉之意, 昨年島配, 又出爲國長慮。 徑先特放, 大咈物情, 請還收放歸田里之命。" 不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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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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