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8권, 영조 4년 7월 13일 壬戌 2/4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권일형이 금산에서 추풍으로 가는 한 길에 독진을 설치할 것을 상소하다
국역
정언(正言) 권일형(權一衡)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말하기를,
"금산(金山)에서 추풍(秋風)으로 가는 한 길은 영남·호서 사이의 지름길인데, 전에 진수(鎭守)하는 시설이 없었습니다. 이번 흉적(凶賊)이 안음(安陰)·거창(居昌)에서 날뛴 것은 그 계획이 진실로 나아가 호서의 적병과 합하여 곧바로 서울 교외를 범하려는 것이었으므로 장차 조석간에 고개를 넘어올 형세이었는데, 본군(本郡)의 군사는 선산(善山)에 넘겨주었으므로 다시 방어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만일 적의 형세가 장구(長驅)하였다면 장차 막을 곳이 없었을 것이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본군에 독진(獨鎭)을 따로 두고 이어서 부(府)로 승격하고 또 본군에 입적(入籍)된 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의 기병(騎兵)·보병(步兵)과 속오군(束伍軍)·아병(牙兵)을 각 영문(營門)의 각 군보(軍保)와 함께 본군에 전속(專屬)시키고 신역(身役)이 없는 무리를 조사해 내어 성주(星州)의 독용진(禿用鎭)과 마찬가지로 대오(隊伍)를 만들면, 관방(關防)을 굳게 하는 방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조령(鳥嶺)에 성을 쌓은 것은 참으로 우연한 것이 아니니, 칠원(漆原)·곡성(谷城)의 규례처럼 성안에 읍치(邑治)를 옮겨 설치하되 빨리 도신(道臣)·수신(帥臣)을 시켜 상세히 살펴서 변통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나라의 군제(軍制)는 급할 때에 믿을 것이 속오군과 아병뿐이므로 변란을 당하여 징발할 때에는 명령을 듣고 일제히 도착하여도 기계(器械)가 썩고 무디고 앉고 서고 나아가고 물러가는 법을 모르며 봄·가을의 순점(巡點)은 이따금 그만두는 일이 많으니, 장차 적을 대할 때에 어떻게 쓰겠습니까? 별다른 양식으로 수정(修整)하여 자주 점열(點閱)해야 하겠습니다. 각 고을의 역리(驛吏)·역노(驛奴)로 대오를 만드는 것은 전에 조정의 명령이 있었고, 각 역리·역노로 말하면 또한 더 많으니, 마땅히 속오군·아병과 마찬가지로 단속하여 대오를 만들고 찰방(察訪)을 시켜 봄·가을에 시열(試閱)하고 군기(軍器)를 획급(劃給)하고 힘에 따라 새로 장만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찌 뒷날 힘을 얻는 방도가 되지 않겠습니까? 전 경상 병사(慶尙兵使) 이시번(李時蕃)은 적이 성읍(城邑)을 함락시켜 사기(事機)가 위급하던 때에 조금도 경동(驚動)할 뜻이 없다가 형세가 파죽(破竹)같이 된 뒤에야 천천히 행군하여 겨우 70리 되는 곳에서 멈추었으니, 그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 참으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군율(軍律)을 시행하지 않으면 앞으로 뒷날을 징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전 상주 영장(尙州營將) 한날(韓㻋)은 군사를 거느리고 스스로 지키며 겁을 낼 뿐이었고 가장 뒤에 행군하여 40리 가서 머물러 자고 다시 그대로 머무르려다가 도순무(都巡撫)가 고개를 넘었다는 말을 듣고는 나아가 40리 되는 곳에서 또 수일 동안 잤으니, 군율로 논하면 죽어도 남은 죄가 있을 것 입니다. 이제 역적 박필현(朴弼顯)을 베었다 하여 그 사죄(死罪)를 용서한 것은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에 해롭지 않으나, 사형을 감면하여 충군(充軍)하는 것은 결단코 그만둘 수 없습니다."
하였는데, 비답(批答)하기를,
"소 가운데에 아뢴 것은 다 의견이 있으나, 일이 변통하는 것에 관계되니, 묘당(廟堂)을 시켜 의논하여 처치하게 하라. 소 끝의 일은 아뢴 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18권 37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7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역(軍役) / 군사-특수군(特殊軍)
원문
○正言權一衡上疏, 略曰:
金山之秋風一路, 乃嶺湖間捷徑, 曾無鎭守設施。 今番凶賊, 猖獗於安陰、居昌, 其計固欲進合湖賊, 直犯王坰, 勢將朝夕踰嶺, 而本郡軍兵, 領付善山, 更無備御之道。 如使賊勢長驅, 將無所遮截, 寧不寒心? 別設獨鎭於本郡, 仍陞爲府, 且以本郡入籍禁、御騎ㆍ步、束伍、牙兵, 與各營門各軍保, 專屬本郡, 而無役之流, 査出作隊, 一如星州 禿用鎭, 則庶可爲壯關防之道。 鳥嶺築城, 誠非偶然, 移設邑治於城中, 如柒原、谷城之規, 亟令道臣、帥臣, 詳察變通。 我國軍制, 緩急所恃, 只是束伍與牙兵, 變亂調發之時, 聞令齊到, 而器械朽鈍, 不識坐作進退, 春秋巡點, 間多停廢, 將安用於對敵之際? 別樣修整, 頻數點閱。 各官驛吏、奴作隊, 曾有朝令, 而至於各驛吏、奴, 亦尤夥然, 宜令團束作隊, 一如束伍、牙兵, 使察訪, 春秋試閱, 劃給軍器, 隨力新備。 豈不爲日後得力之方乎? 前慶尙兵使李時蕃, 於賊陷城邑事機危迫之日, 略無驚動之意, 及勢若破竹之後, 緩緩行軍, 堇止七十里之地, 其心所在, 誠不可測。 若不施軍律, 將無以懲日後也。 前尙州營將韓㻋, 擁兵自衛, 徒生恇怯, 最後行軍, 至四十里留宿, 更欲仍留, 聞都巡撫踰嶺, 前進於四十里, 又宿數日, 論以軍律, 死有餘罪。 今以斬顯賊而貸其死, 不害爲好生之德, 而減死充軍, 斷不可已也。
批曰: "疏中所陳, 俱有意見, 而事係變通, 令廟堂議處。 疏末事, 依施。"
- 【태백산사고본】 15책 18권 37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7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역(軍役) / 군사-특수군(特殊軍)
영조실록18권, 영조 4년 7월 13일 壬戌 2/4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권일형이 금산에서 추풍으로 가는 한 길에 독진을 설치할 것을 상소하다
국역
정언(正言) 권일형(權一衡)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말하기를,
"금산(金山)에서 추풍(秋風)으로 가는 한 길은 영남·호서 사이의 지름길인데, 전에 진수(鎭守)하는 시설이 없었습니다. 이번 흉적(凶賊)이 안음(安陰)·거창(居昌)에서 날뛴 것은 그 계획이 진실로 나아가 호서의 적병과 합하여 곧바로 서울 교외를 범하려는 것이었으므로 장차 조석간에 고개를 넘어올 형세이었는데, 본군(本郡)의 군사는 선산(善山)에 넘겨주었으므로 다시 방어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만일 적의 형세가 장구(長驅)하였다면 장차 막을 곳이 없었을 것이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본군에 독진(獨鎭)을 따로 두고 이어서 부(府)로 승격하고 또 본군에 입적(入籍)된 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의 기병(騎兵)·보병(步兵)과 속오군(束伍軍)·아병(牙兵)을 각 영문(營門)의 각 군보(軍保)와 함께 본군에 전속(專屬)시키고 신역(身役)이 없는 무리를 조사해 내어 성주(星州)의 독용진(禿用鎭)과 마찬가지로 대오(隊伍)를 만들면, 관방(關防)을 굳게 하는 방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조령(鳥嶺)에 성을 쌓은 것은 참으로 우연한 것이 아니니, 칠원(漆原)·곡성(谷城)의 규례처럼 성안에 읍치(邑治)를 옮겨 설치하되 빨리 도신(道臣)·수신(帥臣)을 시켜 상세히 살펴서 변통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나라의 군제(軍制)는 급할 때에 믿을 것이 속오군과 아병뿐이므로 변란을 당하여 징발할 때에는 명령을 듣고 일제히 도착하여도 기계(器械)가 썩고 무디고 앉고 서고 나아가고 물러가는 법을 모르며 봄·가을의 순점(巡點)은 이따금 그만두는 일이 많으니, 장차 적을 대할 때에 어떻게 쓰겠습니까? 별다른 양식으로 수정(修整)하여 자주 점열(點閱)해야 하겠습니다. 각 고을의 역리(驛吏)·역노(驛奴)로 대오를 만드는 것은 전에 조정의 명령이 있었고, 각 역리·역노로 말하면 또한 더 많으니, 마땅히 속오군·아병과 마찬가지로 단속하여 대오를 만들고 찰방(察訪)을 시켜 봄·가을에 시열(試閱)하고 군기(軍器)를 획급(劃給)하고 힘에 따라 새로 장만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찌 뒷날 힘을 얻는 방도가 되지 않겠습니까? 전 경상 병사(慶尙兵使) 이시번(李時蕃)은 적이 성읍(城邑)을 함락시켜 사기(事機)가 위급하던 때에 조금도 경동(驚動)할 뜻이 없다가 형세가 파죽(破竹)같이 된 뒤에야 천천히 행군하여 겨우 70리 되는 곳에서 멈추었으니, 그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 참으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군율(軍律)을 시행하지 않으면 앞으로 뒷날을 징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전 상주 영장(尙州營將) 한날(韓㻋)은 군사를 거느리고 스스로 지키며 겁을 낼 뿐이었고 가장 뒤에 행군하여 40리 가서 머물러 자고 다시 그대로 머무르려다가 도순무(都巡撫)가 고개를 넘었다는 말을 듣고는 나아가 40리 되는 곳에서 또 수일 동안 잤으니, 군율로 논하면 죽어도 남은 죄가 있을 것 입니다. 이제 역적 박필현(朴弼顯)을 베었다 하여 그 사죄(死罪)를 용서한 것은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에 해롭지 않으나, 사형을 감면하여 충군(充軍)하는 것은 결단코 그만둘 수 없습니다."
하였는데, 비답(批答)하기를,
"소 가운데에 아뢴 것은 다 의견이 있으나, 일이 변통하는 것에 관계되니, 묘당(廟堂)을 시켜 의논하여 처치하게 하라. 소 끝의 일은 아뢴 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18권 37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7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역(軍役) / 군사-특수군(特殊軍)
원문
○正言權一衡上疏, 略曰:
金山之秋風一路, 乃嶺湖間捷徑, 曾無鎭守設施。 今番凶賊, 猖獗於安陰、居昌, 其計固欲進合湖賊, 直犯王坰, 勢將朝夕踰嶺, 而本郡軍兵, 領付善山, 更無備御之道。 如使賊勢長驅, 將無所遮截, 寧不寒心? 別設獨鎭於本郡, 仍陞爲府, 且以本郡入籍禁、御騎ㆍ步、束伍、牙兵, 與各營門各軍保, 專屬本郡, 而無役之流, 査出作隊, 一如星州 禿用鎭, 則庶可爲壯關防之道。 鳥嶺築城, 誠非偶然, 移設邑治於城中, 如柒原、谷城之規, 亟令道臣、帥臣, 詳察變通。 我國軍制, 緩急所恃, 只是束伍與牙兵, 變亂調發之時, 聞令齊到, 而器械朽鈍, 不識坐作進退, 春秋巡點, 間多停廢, 將安用於對敵之際? 別樣修整, 頻數點閱。 各官驛吏、奴作隊, 曾有朝令, 而至於各驛吏、奴, 亦尤夥然, 宜令團束作隊, 一如束伍、牙兵, 使察訪, 春秋試閱, 劃給軍器, 隨力新備。 豈不爲日後得力之方乎? 前慶尙兵使李時蕃, 於賊陷城邑事機危迫之日, 略無驚動之意, 及勢若破竹之後, 緩緩行軍, 堇止七十里之地, 其心所在, 誠不可測。 若不施軍律, 將無以懲日後也。 前尙州營將韓㻋, 擁兵自衛, 徒生恇怯, 最後行軍, 至四十里留宿, 更欲仍留, 聞都巡撫踰嶺, 前進於四十里, 又宿數日, 論以軍律, 死有餘罪。 今以斬顯賊而貸其死, 不害爲好生之德, 而減死充軍, 斷不可已也。
批曰: "疏中所陳, 俱有意見, 而事係變通, 令廟堂議處。 疏末事, 依施。"
- 【태백산사고본】 15책 18권 37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70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역(軍役) / 군사-특수군(特殊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