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8권, 영조 4년 7월 13일 壬戌 1/4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대신 비국 당상을 인견하고 죄수들에 대한 처결을 내리다
국역
임금이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당상(堂上)을 인견(引見)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죄수들이 이 한더위에 줄곧 잡혀 있는 것은 왕자(王者)의 흠휼(欽恤)하는 도리가 아니다. 혹 용서할 자도 없지 않을 것인데, 번번이 추국(推鞫)하는 일이 끝나지 않았다 하여 아직도 버려 두었으니, 참작할 방도가 없어서는 안된다. 윤경제(尹景濟) 부자는 이인좌(李麟佐)의 처부(妻父)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할 의리가 없으니, 윤경제·윤상덕(尹相悳)·윤상정(尹相靖)·윤상헌(尹相憲)은 판부(判付)527) 대로 모두 절도(絶島)에 정배(定配)하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조문보(趙文普)·조제보(趙濟普)·조덕보(趙德普) 세 사람 가운데에서 조덕보는 죄가 조금 가벼우므로 참작하여 처치하려 한다. 김덕조(金德祚)는 곧 한세홍(韓世弘)의 외삼촌인데 한세능(韓世能)을 잡아서 관가에 바친 자이며, 오상억(吳尙億)·오상직(吳尙稷)은 오가(吳家) 마을에서 군사를 모았다는 말이 있으므로 의심스러운 점이 없지 않으니, 극변(極邊)에 정배하라. 김덕유(金德裕)·김덕조(金德祚)·신필인(申弼仁)은 원지(遠地)에 정배하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신필회(申弼誨)가 군사를 징발하여 서로 화응(和應)하였다는 것은 강세윤(姜世胤)·이광적(李光績)의 일과 서로 같다."
하니, 오명항(吳命恒)이 말하기를,
"신필회는 그 논의가 매우 괴이하고 이미 군사를 거느리고 진친 곳에 나아간 것은 또한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먼곳에 정배(定配)하라."
하였다. 오명항이 말하기를,
"정덕좌(鄭德佐)는 시골에서 짚자리를 엮는 무리에 지나지 않는데 당초에 혼동하여 잡았습니다. 혹 정우좌(鄭禹佐)인가 의심하여 형신(刑訊)하였으나, 실은 애매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정덕좌는 놓아 보내라. 충주(忠州)에서 잡아 가둔 정요좌(鄭堯佐) 등 여러 사람도 놓아 보내라. 홍계일(洪啓一)은 그대로 가두어 두어 결말(結末)을 기다리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오언빈(吳彦賓)의 일은 어떠한가?"
하매, 오명항이 말하기를,
"오언빈은 신(臣)의 의친(懿親)인데, 어찌 감히 가부를 말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오언빈은 별로 물을 일이 없으니, 입시(入侍)하지 않은 대신에게 물어서 품처(稟處)하라. 목중형(睦重衡)·김구령(金九齡)의 일은 어떠한가?"
하매, 오명항이 말하기를,
"목사청(睦泗淸)을 잡아 올 때 나졸(羅卒)이 말을 누설한 자취가 있고 그 사람됨이 분명하지 않으므로 한 차례 형신하였으나, 별로 잡아서 물을 일이 없습니다. 누설한 정상은 나졸과 함께 형조(刑曹)로 옮겨 보내어 상세히 핵사(覈査)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목사청·창협(昌協)은 추조(秋曹)528) 로 옮겨 보내어 나졸과 마찬가지로 사문(査問)하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최장오(崔章五)는 놓아 보내라. 송국휴(宋國休)·송해(宋楷)·송중홍(宋重弘)은 그대로 가두어 두라."
하매, 오명항이 말하기를,
"신이 군사를 돌이켜 공주(公州)에 이르렀을 때에 김구령이 감영(監營)의 중군(中軍)이었는데 나와서 신을 보고 사기(辭氣)가 강개(慷慨)하였으니, 역적을 따른 일이 없을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김구령은 놓아 보내라. 권협만(權協萬)은 형장(刑杖)을 가하여 신문하고 이명의(李明誼)는 그대로 가두어 두어 결말을 기다리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목중형(睦重衡)·목광원(睦光遠)·남수언(南壽彦)의 일은 마찬가지이다."
하매, 장령(掌令) 강필신(姜必愼)이 말하기를,
"목중형·남수언은 신효조(辛孝祚)529) 의 공초(供招)에 같이 나왔으므로 정적(情跡)이 의심스럽습니다."
하고, 김동필(金東弼)이 말하기를,
"남수언은 신이 남한(南漢)에 있을 때에 군사를 거느리고 성에 들어왔습니다. 만약 반역을 꾀한 일이 있다면 그가 어찌 군사를 거느리고 왔겠습니까? 두 사람의 일은 상세히 심사하는 방도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고, 오명항이 말하기를,
"목중형·남수언의 일은 반신반의인 듯하나, 목중형은 그 외사촌인 나만적(羅萬迪)을 포교(捕校)가 잡지 못한 것을 그가 능히 잡아 바쳤으니, 이 한 가지는 반역을 꾀한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남수언·목중형은 그대로 가두어 두고 다시 추문(推問)하라. 목광원은 그대로 가두어 두어 결말을 기다리라. 윤성시(尹聖時)는 극변에 정배하라. 남태적(南泰績)은 별로 어긴 단서가 없다."
하였다. 오명항이 말하기를,
"남태적은 철산 부사(鐵山府使)이었을 때에 가장 성적(聲績)이 있었고 무예가 뛰어났습니다. 신이 그와 함께 강변(江邊) 고을들을 동행하면서 쓸 만한 인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반역한 정상을 잡은 것이 없다면 용서할 꼬투리가 없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현(李玹)·박계상(朴啓祥)은 아까워할 것도 없으니, 살려 두더라도 앞으로 어디에 쓰겠습니까? 이정(李檉)은 혹 용서할 만한 일이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명하여 판부(判付)를 쓰게 하기를,
"남태적은 역적의 괴수 이인좌의 공초 가운데에 ‘남태징은 어리석은 자이므로 들어왔을 것이나 남태적을 많이 속여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였으므로 용서할 꼬투리가 없지 않고, 여러 차례 엄히 형신하여도 단서가 없으니, 사형을 감면하여 절도(絶島)에 정배하라. 윤수(尹邃)는 당초 역적의 공초에서 끌어댄 것이 ‘들어온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였으니, 어찌 문득 엄히 형신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의 공초 가운데에 있는 역적 이유익(李有翼)·역적 이하(李河)와 서로 만났다는 말은 매우 수상하다. 그러나 만약 역적들과 공모하였다면 어찌 별안간 다른 사람의 집에서 수작할 수 있겠는가? 사형을 감면하여 절도에 정배하라. 윤연(尹㝚)은 역적의 공초에서 끌어댄 것에 달리 긴밀한 것이 없고 이미 시종(侍從)을 지냈는데 그 사람됨이 본디 간사한 무리가 아니나, 근신하였다면 형제가 어찌 역적의 공초에 나왔겠는가? 먼 곳에 정배하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조덕정(趙德鼎)은 이미 죽었다. 경들은 오늘 입시하게 한 데에는 내 뜻이 있으니, 맨 먼저 쓴 자를 경들은 생각하라."
하고, 임금이 이어서 슬피 눈물을 흘리며 하교하기를,
"밀풍군(密豐君) 이탄(李坦)은 사람됨이 결코 이인좌 등과 반역할 자가 아니다. 흉적(凶賊)의 관문(關文)·격문(檄文)에 그 이름이 낭자하나, 추대한 사람을 어찌 글에 나타내어 고할 수 있겠는가? 조덕정을 형신할 때마다 혹 밀풍에게 해로운 일이 있으까 염려하였는데, 마침내 형장(刑杖)을 맞다가 죽었다. 조덕정은 역적 김일경(金一鏡)의 외손이고 역적 이하의 사위인데, 그가 밀풍에 끌어댈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어찌 형장을 참고 승복하지 않으려 하겠는가? 전에 비몽사몽간에 문득 밀풍과 서로 만나 느껴 울다가 목이 메어 놀라 깨었다. 그때에 처분하려 하였으나, 조동규(趙東奎)의 공초에 마침 나왔으므로 결말을 짓지 못하였다. 이는 조덕정이 죽었으므로 내 마음에는 의심할 만한 것이 없다고 여겨지나, 이것은 여흥(驪興)530) 의 일과 다르므로 전석(全釋)하자면 조종(祖宗) 때에 법을 세운 뜻에 어그러질 것이니, 참작하여 부처(付處)531) 하라."
하였다. 대신과 제신들과 삼사(三司)가 잇달아서 성명(成命)을 빨리 거두기를 힘껏 청하였으나, 임금이 누누이 하교하고 끝내 윤허하지 않았다. 사간(司諫) 강필경(姜必慶)·장령(掌令) 강필신(姜必愼)이 전에 합계(合啓)한 일을 다시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강필경이 전에 아뢴 일을 다시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예전부터 종신(宗臣)이 추대된 죄명을 지고도 천지 사이에서 편히 사는 자는 없었습니다. 역적의 공초와 격문이 낭자하여 엄폐하기 어려운데다가, 법이 지극히 중대하고 공론이 또한 엄하므로 한때의 사사로운 은혜로 굽힐 수는 없으니, 청컨대 죄인 탄(坦)532) 을 참작하여 부처하라는 명을 빨리 거두고 율문(律文)에 따라 처단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간(臺諫)이 아뢰어 쟁집(爭執)하는 것은 사의(事宜)에 맞는다마는, 성인(聖人)이 다스릴 때에 유언(流言)을 면하지 못하였다. 오늘 참작하여 처치하는 뜻은 이미 하교한 데에 다 있으니, 빨리 멈추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죄인 오상직·오상억은 역적 민백효(閔百孝)의 공초에 긴요하게 나왔는데, 영남(嶺南)의 역적을 영접하였다고 말하기까지 하였고 또 병기(兵器)를 감추었다는 말이 있으므로 결코 지레 짐작하여 처치하여서는 안되겠으니, 청컨대 오상직·오상억을 원지에 정배하라는 명을 빨리 거두고 엄히 국문(鞫問)하여 정상을 알아내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강필신이 전에 아뢴 일을 다시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법이 지극히 엄하므로 한때의 사사로운 은혜로 굽힐 수 없고, 더구나 탄의 죄는 종사(宗社)에 관계되는데 왕법(王法)을 펴지 못하여 여정(輿情)이 모두 분개하니, 청컨대 탄을 참작하여 부처하라는 명을 빨리 거두시고 율에 의하여 처단하소서. 이하·이유익·윤수는 모인 것이 주무(綢繆)하고 정상이 음비(陰祕)하므로 먼저 마감하여 처치하는 것은 참으로 추국(推鞫)하는 체례(體例)를 엄하게 하는 도리에 어그러지니, 청컨대 윤수를 사형을 감면하여 절도에 정배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고 이어서 엄히 국문하게 하소서. 남태적은 자신이 무변(武弁)533) 이면서 이름이 역적의 공초에 나왔으므로 여러 번 형신을 겪었으나 끝내 항거하였는데 참작하여 처치하는 것은 추국하는 체례를 중히 여기는 도리에 매우 어그러지니, 청컨대 남태적을 절도에 정배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고 이어서 엄히 국문하게 하소서."
하였으나, 모두 따르지 않았다.
- [註 527] 판부(判付) : 신하가 아뢰어 청한 일을 임금이 윤허(允許)하던 것. 《숙종실록》 제63권에 보면 ‘무릇 공사(公事)에서 글을 내려 상교(上敎)를 낸 것을 판부(判付)라 한다.’ 하였음. 판하(判下).
- [註 528] 추조(秋曹) : 형조(刑曹).
- [註 529] 신효조(辛孝祚) : 신효조(辛孝祖).
- [註 530] 여흥(驪興) : 여흥군(驪興君) 해(垓).
- [註 531] 부처(付處) : 유배(流配)에 처한 죄인에게 그 정상을 너그럽게 참작하여 배소(配所)로 가는 도중에 한 곳을 정하여 지내게 함.
- [註 532] 탄(坦) : 밀풍군(密豐君).
- [註 533] 무변(武弁) : 무인(武人).
원문
○壬戌/上引見大臣備局堂上。 上曰: "諸罪囚當此炎熱, 一向逮繫, 非王者欽恤之道。 或不無原恕者, 而每以鞫事未了, 尙今置之, 不可無參酌之道。 尹景濟父子, 以麟佐之妻父, 無必殺之義, 尹景濟、尹相靖、尹相悳、尹相憲, 依判付, 竝絶島定配。" 上曰: "趙文普、濟普、德普三人中, 德普差輕, 欲爲酌處。 金德祚, 卽世弘之外三寸叔, 捕得世能而納官者也, 吳尙億、尙稷, 有吳家村聚兵之說, 不無可疑, 極邊定配。 金德裕、金德祚、申弼仁, 遠地定配。" 上曰: "申弼誨之發兵相應云者, 與姜世胤、李光績事, 相同矣。" 吳命恒曰: "申弼誨, 其論議極怪異, 而旣已領兵赴陣, 則亦無可疑之事。" 上曰: "遠地定配。" 命恒曰: "德佐不過爲在鄕織藁薦之徒, 而當初混捉, 或疑其爲禹佐而刑訊, 其實則曖昧。" 上曰: "鄭德佐放送。 忠州所捉囚鄭堯佐等諸人放送。 洪啓一, 仍囚以待結末。" 上曰: "吳彦賓事何如?" 命恒曰: "彦賓, 臣之懿親, 何敢可否?" 上曰: "彦賓則別無可問之事, 問于未入侍大臣稟處。 睦重衡、金九齡事何如?" 命恒曰: "聞睦泗淸拿來時, 羅卒有漏言之跡, 而渠之爲人未瑩, 施刑一次, 別無(模)〔摸〕 捉可問之事。 漏言情節, 與羅卒移送刑曹, 詳覈爲宜。" 上曰: "睦泗淸、昌協移送秋曹, 與羅卒, 一體行査。" 上曰: "崔章五放送。 宋國休、宋楷、宋重弘仍囚。" 命恒曰: "臣於班師, 到公州時, 金九齡爲監營中軍, 出來見臣, 辭氣慷慨, 似無從賊之事矣。" 上曰: "金九齡放送。 權協萬加刑訊問, 李明誼仍囚, 以待結末。" 上曰: "睦重衡、睦光遠、南壽彦事, 一體矣。" 掌令姜必愼曰: "睦重衡、南壽彦同出於孝祚之招, 情跡可疑矣。" 金東弼曰: "壽彦則臣在南漢時, 率軍入城。 若有謀逆事, 則渠豈領軍來赴乎? 兩人事, 宜有詳審之道。" 命恒曰: "重衡、壽彦事, 似在疑信之間, 而重衡則渠之外四寸, 羅萬迪捕校失捕者, 渠能捉納, 此一款, 與謀逆有間矣。" 上曰: "南壽彦、睦重衡仍囚, 更推。 睦光遠仍囚, 以待結末。 尹聖時極邊定配。 南泰績別無違端。" 命恒曰: "泰績爲鐵山府使, 最有聲績, 武藝絶等。 臣與之同行江邊列邑, 以爲可用之才。 旣無逆節之摸捉者, 則不無原恕之端。 李玹、朴啓祥, 無足惜矣, 假令生置, 亦將何用? 李檉則或有可恕之事矣。" 上命書判付曰:
南泰績, 賊魁麟佐招中, 泰徵愚者當入, 泰績多作不入云, 則不無容恕之端, 屢次嚴刑, 亦無端緖, 減死絶島定配。 尹邃, 當初賊招所引, 不過入之云, 豈可遽加嚴訊? 但渠招中, 與賊翼、逆河相逢之說, 極爲殊常。 然若與諸賊共謀, 則豈可瞥眼間酬酢他人之門乎? 減死絶島定配。 尹㝚賊招所引, 無他緊着, 而旣經侍從, 其爲人本非奸險之輩, 而但若謹愼, 兄弟豈出賊招乎? 遠地定配。
上曰: "德鼎已斃。 使卿等今日入侍者, 予意有在, 首題者卿等思量。" 上因於悒下涕而敎曰: "密豐爲人, 決非與麟佐輩爲逆者。 凶關、賊檄, 其名狼藉, 所推戴之人, 豈可發告於文字乎? 每於德鼎加刑時, 或慮有害於密豐, 而畢竟杖斃。 德鼎卽逆鏡外孫, 賊河女壻, 渠若有可援密豐之事, 則豈肯忍杖不服乎? 向日似夢非夢之間, 忽與密豐, 相遌感泣, 呑聲而驚覺。 伊時欲有處分, 而東奎之招適出, 故未果。 今則德鼎已斃, 予心則以爲無可疑, 而此與驪興事有異, 若欲全釋, 有違祖宗朝立法之意, 參酌付處。" 大臣諸臣三司, 相繼力請, 亟收成命, 上縷縷下敎, 終不允從。 司諫姜必慶、掌令姜必愼申前合啓, 不允。 必慶申前啓, 不允。 又啓言: "自古宗臣負推戴之名, 而偃息於覆載之間者, 未之有也。 逆招賊檄, 狼藉難掩, 三尺至重, 公議且嚴, 不可以一時私恩, 有所撓屈。 請亟寢罪人坦參酌付處之命, 依律處斷。" 上曰: "臺啓爭報得體, 而聖人亦不免流言矣。 今日酌處之意, 已悉於下敎, 亟停勿煩。" 又啓言: "罪人吳尙稷、尙億, 緊出於逆賊百孝之招, 至以迎接嶺賊爲言, 且有藏兵之說, 決不可徑先酌處, 請亟寢尙稷、尙億遠配之命, 嚴鞫得情。" 不允。 姜必愼申前啓, 不允。 又啓言: "三尺至嚴, 不可以一時私恩, 有所撓屈, 況坦所坐, 干係宗社, 而王法未伸, 輿情咸憤, 請亟寢坦參酌付處之命, 依律處斷。 河、有翼、邃聚會綢繆, 情狀陰秘, 徑先勘處, 實乖嚴鞫體之道, 請還收尹邃減死島配之命, 仍令嚴鞫。 南泰績身爲武弁, 名出賊招, 累經刑訊, 終始抵賴, 酌處殊非重鞫體之道, 請還收南泰績島配之命, 仍令嚴鞫。" 竝不從。
영조실록18권, 영조 4년 7월 13일 壬戌 1/4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대신 비국 당상을 인견하고 죄수들에 대한 처결을 내리다
국역
임금이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당상(堂上)을 인견(引見)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죄수들이 이 한더위에 줄곧 잡혀 있는 것은 왕자(王者)의 흠휼(欽恤)하는 도리가 아니다. 혹 용서할 자도 없지 않을 것인데, 번번이 추국(推鞫)하는 일이 끝나지 않았다 하여 아직도 버려 두었으니, 참작할 방도가 없어서는 안된다. 윤경제(尹景濟) 부자는 이인좌(李麟佐)의 처부(妻父)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할 의리가 없으니, 윤경제·윤상덕(尹相悳)·윤상정(尹相靖)·윤상헌(尹相憲)은 판부(判付)527) 대로 모두 절도(絶島)에 정배(定配)하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조문보(趙文普)·조제보(趙濟普)·조덕보(趙德普) 세 사람 가운데에서 조덕보는 죄가 조금 가벼우므로 참작하여 처치하려 한다. 김덕조(金德祚)는 곧 한세홍(韓世弘)의 외삼촌인데 한세능(韓世能)을 잡아서 관가에 바친 자이며, 오상억(吳尙億)·오상직(吳尙稷)은 오가(吳家) 마을에서 군사를 모았다는 말이 있으므로 의심스러운 점이 없지 않으니, 극변(極邊)에 정배하라. 김덕유(金德裕)·김덕조(金德祚)·신필인(申弼仁)은 원지(遠地)에 정배하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신필회(申弼誨)가 군사를 징발하여 서로 화응(和應)하였다는 것은 강세윤(姜世胤)·이광적(李光績)의 일과 서로 같다."
하니, 오명항(吳命恒)이 말하기를,
"신필회는 그 논의가 매우 괴이하고 이미 군사를 거느리고 진친 곳에 나아간 것은 또한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먼곳에 정배(定配)하라."
하였다. 오명항이 말하기를,
"정덕좌(鄭德佐)는 시골에서 짚자리를 엮는 무리에 지나지 않는데 당초에 혼동하여 잡았습니다. 혹 정우좌(鄭禹佐)인가 의심하여 형신(刑訊)하였으나, 실은 애매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정덕좌는 놓아 보내라. 충주(忠州)에서 잡아 가둔 정요좌(鄭堯佐) 등 여러 사람도 놓아 보내라. 홍계일(洪啓一)은 그대로 가두어 두어 결말(結末)을 기다리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오언빈(吳彦賓)의 일은 어떠한가?"
하매, 오명항이 말하기를,
"오언빈은 신(臣)의 의친(懿親)인데, 어찌 감히 가부를 말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오언빈은 별로 물을 일이 없으니, 입시(入侍)하지 않은 대신에게 물어서 품처(稟處)하라. 목중형(睦重衡)·김구령(金九齡)의 일은 어떠한가?"
하매, 오명항이 말하기를,
"목사청(睦泗淸)을 잡아 올 때 나졸(羅卒)이 말을 누설한 자취가 있고 그 사람됨이 분명하지 않으므로 한 차례 형신하였으나, 별로 잡아서 물을 일이 없습니다. 누설한 정상은 나졸과 함께 형조(刑曹)로 옮겨 보내어 상세히 핵사(覈査)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목사청·창협(昌協)은 추조(秋曹)528) 로 옮겨 보내어 나졸과 마찬가지로 사문(査問)하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최장오(崔章五)는 놓아 보내라. 송국휴(宋國休)·송해(宋楷)·송중홍(宋重弘)은 그대로 가두어 두라."
하매, 오명항이 말하기를,
"신이 군사를 돌이켜 공주(公州)에 이르렀을 때에 김구령이 감영(監營)의 중군(中軍)이었는데 나와서 신을 보고 사기(辭氣)가 강개(慷慨)하였으니, 역적을 따른 일이 없을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김구령은 놓아 보내라. 권협만(權協萬)은 형장(刑杖)을 가하여 신문하고 이명의(李明誼)는 그대로 가두어 두어 결말을 기다리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목중형(睦重衡)·목광원(睦光遠)·남수언(南壽彦)의 일은 마찬가지이다."
하매, 장령(掌令) 강필신(姜必愼)이 말하기를,
"목중형·남수언은 신효조(辛孝祚)529) 의 공초(供招)에 같이 나왔으므로 정적(情跡)이 의심스럽습니다."
하고, 김동필(金東弼)이 말하기를,
"남수언은 신이 남한(南漢)에 있을 때에 군사를 거느리고 성에 들어왔습니다. 만약 반역을 꾀한 일이 있다면 그가 어찌 군사를 거느리고 왔겠습니까? 두 사람의 일은 상세히 심사하는 방도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고, 오명항이 말하기를,
"목중형·남수언의 일은 반신반의인 듯하나, 목중형은 그 외사촌인 나만적(羅萬迪)을 포교(捕校)가 잡지 못한 것을 그가 능히 잡아 바쳤으니, 이 한 가지는 반역을 꾀한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남수언·목중형은 그대로 가두어 두고 다시 추문(推問)하라. 목광원은 그대로 가두어 두어 결말을 기다리라. 윤성시(尹聖時)는 극변에 정배하라. 남태적(南泰績)은 별로 어긴 단서가 없다."
하였다. 오명항이 말하기를,
"남태적은 철산 부사(鐵山府使)이었을 때에 가장 성적(聲績)이 있었고 무예가 뛰어났습니다. 신이 그와 함께 강변(江邊) 고을들을 동행하면서 쓸 만한 인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반역한 정상을 잡은 것이 없다면 용서할 꼬투리가 없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현(李玹)·박계상(朴啓祥)은 아까워할 것도 없으니, 살려 두더라도 앞으로 어디에 쓰겠습니까? 이정(李檉)은 혹 용서할 만한 일이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명하여 판부(判付)를 쓰게 하기를,
"남태적은 역적의 괴수 이인좌의 공초 가운데에 ‘남태징은 어리석은 자이므로 들어왔을 것이나 남태적을 많이 속여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였으므로 용서할 꼬투리가 없지 않고, 여러 차례 엄히 형신하여도 단서가 없으니, 사형을 감면하여 절도(絶島)에 정배하라. 윤수(尹邃)는 당초 역적의 공초에서 끌어댄 것이 ‘들어온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였으니, 어찌 문득 엄히 형신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의 공초 가운데에 있는 역적 이유익(李有翼)·역적 이하(李河)와 서로 만났다는 말은 매우 수상하다. 그러나 만약 역적들과 공모하였다면 어찌 별안간 다른 사람의 집에서 수작할 수 있겠는가? 사형을 감면하여 절도에 정배하라. 윤연(尹㝚)은 역적의 공초에서 끌어댄 것에 달리 긴밀한 것이 없고 이미 시종(侍從)을 지냈는데 그 사람됨이 본디 간사한 무리가 아니나, 근신하였다면 형제가 어찌 역적의 공초에 나왔겠는가? 먼 곳에 정배하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조덕정(趙德鼎)은 이미 죽었다. 경들은 오늘 입시하게 한 데에는 내 뜻이 있으니, 맨 먼저 쓴 자를 경들은 생각하라."
하고, 임금이 이어서 슬피 눈물을 흘리며 하교하기를,
"밀풍군(密豐君) 이탄(李坦)은 사람됨이 결코 이인좌 등과 반역할 자가 아니다. 흉적(凶賊)의 관문(關文)·격문(檄文)에 그 이름이 낭자하나, 추대한 사람을 어찌 글에 나타내어 고할 수 있겠는가? 조덕정을 형신할 때마다 혹 밀풍에게 해로운 일이 있으까 염려하였는데, 마침내 형장(刑杖)을 맞다가 죽었다. 조덕정은 역적 김일경(金一鏡)의 외손이고 역적 이하의 사위인데, 그가 밀풍에 끌어댈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어찌 형장을 참고 승복하지 않으려 하겠는가? 전에 비몽사몽간에 문득 밀풍과 서로 만나 느껴 울다가 목이 메어 놀라 깨었다. 그때에 처분하려 하였으나, 조동규(趙東奎)의 공초에 마침 나왔으므로 결말을 짓지 못하였다. 이는 조덕정이 죽었으므로 내 마음에는 의심할 만한 것이 없다고 여겨지나, 이것은 여흥(驪興)530) 의 일과 다르므로 전석(全釋)하자면 조종(祖宗) 때에 법을 세운 뜻에 어그러질 것이니, 참작하여 부처(付處)531) 하라."
하였다. 대신과 제신들과 삼사(三司)가 잇달아서 성명(成命)을 빨리 거두기를 힘껏 청하였으나, 임금이 누누이 하교하고 끝내 윤허하지 않았다. 사간(司諫) 강필경(姜必慶)·장령(掌令) 강필신(姜必愼)이 전에 합계(合啓)한 일을 다시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강필경이 전에 아뢴 일을 다시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예전부터 종신(宗臣)이 추대된 죄명을 지고도 천지 사이에서 편히 사는 자는 없었습니다. 역적의 공초와 격문이 낭자하여 엄폐하기 어려운데다가, 법이 지극히 중대하고 공론이 또한 엄하므로 한때의 사사로운 은혜로 굽힐 수는 없으니, 청컨대 죄인 탄(坦)532) 을 참작하여 부처하라는 명을 빨리 거두고 율문(律文)에 따라 처단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간(臺諫)이 아뢰어 쟁집(爭執)하는 것은 사의(事宜)에 맞는다마는, 성인(聖人)이 다스릴 때에 유언(流言)을 면하지 못하였다. 오늘 참작하여 처치하는 뜻은 이미 하교한 데에 다 있으니, 빨리 멈추고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죄인 오상직·오상억은 역적 민백효(閔百孝)의 공초에 긴요하게 나왔는데, 영남(嶺南)의 역적을 영접하였다고 말하기까지 하였고 또 병기(兵器)를 감추었다는 말이 있으므로 결코 지레 짐작하여 처치하여서는 안되겠으니, 청컨대 오상직·오상억을 원지에 정배하라는 명을 빨리 거두고 엄히 국문(鞫問)하여 정상을 알아내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강필신이 전에 아뢴 일을 다시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법이 지극히 엄하므로 한때의 사사로운 은혜로 굽힐 수 없고, 더구나 탄의 죄는 종사(宗社)에 관계되는데 왕법(王法)을 펴지 못하여 여정(輿情)이 모두 분개하니, 청컨대 탄을 참작하여 부처하라는 명을 빨리 거두시고 율에 의하여 처단하소서. 이하·이유익·윤수는 모인 것이 주무(綢繆)하고 정상이 음비(陰祕)하므로 먼저 마감하여 처치하는 것은 참으로 추국(推鞫)하는 체례(體例)를 엄하게 하는 도리에 어그러지니, 청컨대 윤수를 사형을 감면하여 절도에 정배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고 이어서 엄히 국문하게 하소서. 남태적은 자신이 무변(武弁)533) 이면서 이름이 역적의 공초에 나왔으므로 여러 번 형신을 겪었으나 끝내 항거하였는데 참작하여 처치하는 것은 추국하는 체례를 중히 여기는 도리에 매우 어그러지니, 청컨대 남태적을 절도에 정배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고 이어서 엄히 국문하게 하소서."
하였으나, 모두 따르지 않았다.
- [註 527] 판부(判付) : 신하가 아뢰어 청한 일을 임금이 윤허(允許)하던 것. 《숙종실록》 제63권에 보면 ‘무릇 공사(公事)에서 글을 내려 상교(上敎)를 낸 것을 판부(判付)라 한다.’ 하였음. 판하(判下).
- [註 528] 추조(秋曹) : 형조(刑曹).
- [註 529] 신효조(辛孝祚) : 신효조(辛孝祖).
- [註 530] 여흥(驪興) : 여흥군(驪興君) 해(垓).
- [註 531] 부처(付處) : 유배(流配)에 처한 죄인에게 그 정상을 너그럽게 참작하여 배소(配所)로 가는 도중에 한 곳을 정하여 지내게 함.
- [註 532] 탄(坦) : 밀풍군(密豐君).
- [註 533] 무변(武弁) : 무인(武人).
원문
○壬戌/上引見大臣備局堂上。 上曰: "諸罪囚當此炎熱, 一向逮繫, 非王者欽恤之道。 或不無原恕者, 而每以鞫事未了, 尙今置之, 不可無參酌之道。 尹景濟父子, 以麟佐之妻父, 無必殺之義, 尹景濟、尹相靖、尹相悳、尹相憲, 依判付, 竝絶島定配。" 上曰: "趙文普、濟普、德普三人中, 德普差輕, 欲爲酌處。 金德祚, 卽世弘之外三寸叔, 捕得世能而納官者也, 吳尙億、尙稷, 有吳家村聚兵之說, 不無可疑, 極邊定配。 金德裕、金德祚、申弼仁, 遠地定配。" 上曰: "申弼誨之發兵相應云者, 與姜世胤、李光績事, 相同矣。" 吳命恒曰: "申弼誨, 其論議極怪異, 而旣已領兵赴陣, 則亦無可疑之事。" 上曰: "遠地定配。" 命恒曰: "德佐不過爲在鄕織藁薦之徒, 而當初混捉, 或疑其爲禹佐而刑訊, 其實則曖昧。" 上曰: "鄭德佐放送。 忠州所捉囚鄭堯佐等諸人放送。 洪啓一, 仍囚以待結末。" 上曰: "吳彦賓事何如?" 命恒曰: "彦賓, 臣之懿親, 何敢可否?" 上曰: "彦賓則別無可問之事, 問于未入侍大臣稟處。 睦重衡、金九齡事何如?" 命恒曰: "聞睦泗淸拿來時, 羅卒有漏言之跡, 而渠之爲人未瑩, 施刑一次, 別無(模)〔摸〕 捉可問之事。 漏言情節, 與羅卒移送刑曹, 詳覈爲宜。" 上曰: "睦泗淸、昌協移送秋曹, 與羅卒, 一體行査。" 上曰: "崔章五放送。 宋國休、宋楷、宋重弘仍囚。" 命恒曰: "臣於班師, 到公州時, 金九齡爲監營中軍, 出來見臣, 辭氣慷慨, 似無從賊之事矣。" 上曰: "金九齡放送。 權協萬加刑訊問, 李明誼仍囚, 以待結末。" 上曰: "睦重衡、睦光遠、南壽彦事, 一體矣。" 掌令姜必愼曰: "睦重衡、南壽彦同出於孝祚之招, 情跡可疑矣。" 金東弼曰: "壽彦則臣在南漢時, 率軍入城。 若有謀逆事, 則渠豈領軍來赴乎? 兩人事, 宜有詳審之道。" 命恒曰: "重衡、壽彦事, 似在疑信之間, 而重衡則渠之外四寸, 羅萬迪捕校失捕者, 渠能捉納, 此一款, 與謀逆有間矣。" 上曰: "南壽彦、睦重衡仍囚, 更推。 睦光遠仍囚, 以待結末。 尹聖時極邊定配。 南泰績別無違端。" 命恒曰: "泰績爲鐵山府使, 最有聲績, 武藝絶等。 臣與之同行江邊列邑, 以爲可用之才。 旣無逆節之摸捉者, 則不無原恕之端。 李玹、朴啓祥, 無足惜矣, 假令生置, 亦將何用? 李檉則或有可恕之事矣。" 上命書判付曰:
南泰績, 賊魁麟佐招中, 泰徵愚者當入, 泰績多作不入云, 則不無容恕之端, 屢次嚴刑, 亦無端緖, 減死絶島定配。 尹邃, 當初賊招所引, 不過入之云, 豈可遽加嚴訊? 但渠招中, 與賊翼、逆河相逢之說, 極爲殊常。 然若與諸賊共謀, 則豈可瞥眼間酬酢他人之門乎? 減死絶島定配。 尹㝚賊招所引, 無他緊着, 而旣經侍從, 其爲人本非奸險之輩, 而但若謹愼, 兄弟豈出賊招乎? 遠地定配。
上曰: "德鼎已斃。 使卿等今日入侍者, 予意有在, 首題者卿等思量。" 上因於悒下涕而敎曰: "密豐爲人, 決非與麟佐輩爲逆者。 凶關、賊檄, 其名狼藉, 所推戴之人, 豈可發告於文字乎? 每於德鼎加刑時, 或慮有害於密豐, 而畢竟杖斃。 德鼎卽逆鏡外孫, 賊河女壻, 渠若有可援密豐之事, 則豈肯忍杖不服乎? 向日似夢非夢之間, 忽與密豐, 相遌感泣, 呑聲而驚覺。 伊時欲有處分, 而東奎之招適出, 故未果。 今則德鼎已斃, 予心則以爲無可疑, 而此與驪興事有異, 若欲全釋, 有違祖宗朝立法之意, 參酌付處。" 大臣諸臣三司, 相繼力請, 亟收成命, 上縷縷下敎, 終不允從。 司諫姜必慶、掌令姜必愼申前合啓, 不允。 必慶申前啓, 不允。 又啓言: "自古宗臣負推戴之名, 而偃息於覆載之間者, 未之有也。 逆招賊檄, 狼藉難掩, 三尺至重, 公議且嚴, 不可以一時私恩, 有所撓屈。 請亟寢罪人坦參酌付處之命, 依律處斷。" 上曰: "臺啓爭報得體, 而聖人亦不免流言矣。 今日酌處之意, 已悉於下敎, 亟停勿煩。" 又啓言: "罪人吳尙稷、尙億, 緊出於逆賊百孝之招, 至以迎接嶺賊爲言, 且有藏兵之說, 決不可徑先酌處, 請亟寢尙稷、尙億遠配之命, 嚴鞫得情。" 不允。 姜必愼申前啓, 不允。 又啓言: "三尺至嚴, 不可以一時私恩, 有所撓屈, 況坦所坐, 干係宗社, 而王法未伸, 輿情咸憤, 請亟寢坦參酌付處之命, 依律處斷。 河、有翼、邃聚會綢繆, 情狀陰秘, 徑先勘處, 實乖嚴鞫體之道, 請還收尹邃減死島配之命, 仍令嚴鞫。 南泰績身爲武弁, 名出賊招, 累經刑訊, 終始抵賴, 酌處殊非重鞫體之道, 請還收南泰績島配之命, 仍令嚴鞫。" 竝不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