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8권, 영조 4년 5월 16일 丙寅 1/9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민백효 공초
국역
임금이 인정문(仁政門)에 나아가 친국(親鞫)하였다. 민백효(閔百孝)를 다시 추문(推問)하였는데, 세 차례 형신(刑訊)하니, 민백효가 공초(供招)하기를,
"민관효(閔觀孝)는 곧 신의 일가인데, 민관효가 처형되었는다는 말을 듣고 조덕보(趙德普) 형제가 서로 말하기를, ‘그가 화를 입은 집안의 살아 남은 사람으로서 이런 흉악한 일을 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망하게 하는 때이다.’ 하였습니다. 지난해 3월에 신이 서울에 올라가 마침 서강(西江)에 가서 민관효를 보았습니다. 때마침 사람이 없었는데, 민관효가 말하기를, ‘한세홍(韓世弘)과 이유익(李有翼)·이하(李河)와 내가 국가의 큰 변을 만들어 내려 한다.’ 하기에, 신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위험한 말을 내는가?’ 하니, 민관효가 말하기를, ‘네가 가흥(可興)에 가면 한덕징(韓德徵)을 볼 수 있을 것이니 이 말을 전하라.’ 하였습니다. 신이 가흥에 갔으나, 한덕징이 원주(原州)에 갔으므로 전하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조덕보가 막 서울에서 와서 민관효의 일을 전하며 말하기를, ‘역모(逆謀)가 낭자하니 화가 장차 네집까지 미칠 것이라 하더라.’ 하였습니다. 하늘이 망하게 한다는 말은 이 때문에 나온 것인데, 조덕보 형제는 민관효가 처형되기 전에 그가 반역한다는 말을 들어서 알았고 조덕보의 아우가 그 가운데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신이 재작년 봄에 여주(驪州)에 가서 청심루(淸心樓)에 앉아 있는데 임서호(任瑞虎)가 그 제자 안귀만(安龜萬)을 보내어 말을 전하기를, ‘어찌하면 서로 만나겠는가?’ 하기에, 신이 안귀만에게 말하기를, ‘영남(嶺南) 군사가 크게 일어나려 하는데, 이인좌(李麟佐)는 본디 일을 좋아하는 무리이고 또 임서호와 공을 다투려는 마음을 가졌고 또 그 대장(大將)을 다투므로 반드시 저해하려 할 것이니, 그대가 모름지기 한세홍에게 말하여 중간에 들어 조정하는 바탕을 만들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이때 한세홍이 바야흐로 조덕징(趙德徵)의 집에 있었습니다. 지난해 정시(庭試) 때에 신이 향교항(香橋項)에 홀로 앉아 있는데 한세홍이 마침 왔기에, 신이 말하기를, ‘그 일은 지금 어떠한가?’ 하니, 한세홍이 말하기를, ‘거의 조정되었으나 그래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임서호의 의논에 들어간 자는 조관규(趙觀奎)·조일규(趙一奎)와 조관규의 아들 조수(趙鐩)와 조우경(趙宇擎)과 여주의 도둑 도등패(都等牌)인데 역변(逆變) 전에 이미 죽었고 한세홍의 외삼촌 김덕유(金德裕)·김덕조(金德祚)와 김덕유의 매부(妹夫) 신필인(申弼仁)도 한세홍의 당(黨)이며 조관규의 아우 조명규(趙命奎)도 그 가운데에 들어갔습니다. 신의 집에서 한세홍과 같이 역모하였는데, 관가에서 보낸 사람이 만약 오면 신이 종 담사리(淡沙里)를 시켜 놓은 곳에 올라 망보다가 포(砲)를 쏘아 죽이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집안에서는 신의 종 말종(末終)이 능장(稜杖)을 메고 교생(校生) 민제상(閔齊尙)에게는 조총(鳥銃)을 주어 관군(官軍)이 신의 집에 침범하지 못하게 하려 하였습니다. 이것이 곧 멀리서 망보고 가까이서 망보게 한 것입니다. 군복(軍服) 20여 건(件)과 화약(火藥) 8봉(封)을 과연 가지고 가서 장차 청주(淸州)의 적진(賊陣)에 같이 들어가려 하였으나 뜻밖에 청주의 적병이 패하여 미처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군복은 죄다 불사르고 화약은 죄다 물에 가라앉혔습니다. 민덕효(閔德孝)·민경효(閔景孝)는 정상을 알았고 민성효(閔性孝)는 같이 참여하였습니다. 반역을 꾀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였다.
원문
○丙寅/上御仁政門, 親鞫。 更推閔百孝, 刑三次, 百孝供: "觀孝, 卽臣一家, 聞觀孝伏法, 趙德普兄弟相謂曰: ‘渠以禍家餘生, 爲此凶惡之事, 此天亡之秋也。’ 上年三月, 臣上京, 適往西江, 見觀孝。 適無人, 觀孝曰: ‘韓世弘與李有翼、李河及吾, 欲做出國家之大變。’ 臣曰: ‘何爲出危言?’ 觀孝曰: ‘汝往可興, 得見韓德徵, 傳此言。’ 臣往可興, 德徵往原州, 故不傳而還, 德普新自京, 來傳及觀孝事曰: ‘逆謀狼藉, 禍將及汝家。’ 云。 天亡之說, 所以發也, 德普兄弟, 聞知其逆說於觀孝伏法之前, 德普之弟, 入其中。 臣再昨年春, 往驪州坐淸心樓, 瑞虎遣其弟子安龜萬傳言: ‘何以則相見?’ 臣謂龜萬曰: ‘嶺兵欲大起, 而麟佐自是喜事之輩, 且有與瑞虎爭功之心, 又爭其大將, 必欲沮敗, 君須言於韓世弘, 以爲居間調劑之地。’ 時, 世弘方在德徵家矣。 前年庭試時, 臣獨坐香橋項, 世弘適到, 臣曰: ‘其事今何如?’ 世弘曰: ‘幾爲調劑, 而猶不無念慮矣。’ 入於瑞虎議者, 趙觀奎、一奎、觀奎子鐩、趙宇擎、驪州賊都等牌, 而逆變前, 已身死, 世弘外三寸金德裕、德祚、德裕妹夫申弼仁, 亦世弘之黨, 趙觀奎弟命奎, 同入其中。 臣家與世弘, 同爲逆謀, 官差若來, 則臣使奴淡沙里, 登高觀望, 放砲殺之爲計。 家內則臣奴末終擔稜杖, 校生閔齊尙給鳥銃, 欲使官軍, 不得入犯臣家。 此乃遠望近望也。 軍服二十餘件, 火藥八封, 果爲持去, 將同入於淸州賊陣, 不意淸州賊兵敗, 未及達, 故軍服盡燒之, 火藥盡沈水。 德孝、景孝知情, 性孝同參。 謀逆是實。"
영조실록18권, 영조 4년 5월 16일 丙寅 1/9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민백효 공초
국역
임금이 인정문(仁政門)에 나아가 친국(親鞫)하였다. 민백효(閔百孝)를 다시 추문(推問)하였는데, 세 차례 형신(刑訊)하니, 민백효가 공초(供招)하기를,
"민관효(閔觀孝)는 곧 신의 일가인데, 민관효가 처형되었는다는 말을 듣고 조덕보(趙德普) 형제가 서로 말하기를, ‘그가 화를 입은 집안의 살아 남은 사람으로서 이런 흉악한 일을 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망하게 하는 때이다.’ 하였습니다. 지난해 3월에 신이 서울에 올라가 마침 서강(西江)에 가서 민관효를 보았습니다. 때마침 사람이 없었는데, 민관효가 말하기를, ‘한세홍(韓世弘)과 이유익(李有翼)·이하(李河)와 내가 국가의 큰 변을 만들어 내려 한다.’ 하기에, 신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위험한 말을 내는가?’ 하니, 민관효가 말하기를, ‘네가 가흥(可興)에 가면 한덕징(韓德徵)을 볼 수 있을 것이니 이 말을 전하라.’ 하였습니다. 신이 가흥에 갔으나, 한덕징이 원주(原州)에 갔으므로 전하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조덕보가 막 서울에서 와서 민관효의 일을 전하며 말하기를, ‘역모(逆謀)가 낭자하니 화가 장차 네집까지 미칠 것이라 하더라.’ 하였습니다. 하늘이 망하게 한다는 말은 이 때문에 나온 것인데, 조덕보 형제는 민관효가 처형되기 전에 그가 반역한다는 말을 들어서 알았고 조덕보의 아우가 그 가운데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신이 재작년 봄에 여주(驪州)에 가서 청심루(淸心樓)에 앉아 있는데 임서호(任瑞虎)가 그 제자 안귀만(安龜萬)을 보내어 말을 전하기를, ‘어찌하면 서로 만나겠는가?’ 하기에, 신이 안귀만에게 말하기를, ‘영남(嶺南) 군사가 크게 일어나려 하는데, 이인좌(李麟佐)는 본디 일을 좋아하는 무리이고 또 임서호와 공을 다투려는 마음을 가졌고 또 그 대장(大將)을 다투므로 반드시 저해하려 할 것이니, 그대가 모름지기 한세홍에게 말하여 중간에 들어 조정하는 바탕을 만들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이때 한세홍이 바야흐로 조덕징(趙德徵)의 집에 있었습니다. 지난해 정시(庭試) 때에 신이 향교항(香橋項)에 홀로 앉아 있는데 한세홍이 마침 왔기에, 신이 말하기를, ‘그 일은 지금 어떠한가?’ 하니, 한세홍이 말하기를, ‘거의 조정되었으나 그래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임서호의 의논에 들어간 자는 조관규(趙觀奎)·조일규(趙一奎)와 조관규의 아들 조수(趙鐩)와 조우경(趙宇擎)과 여주의 도둑 도등패(都等牌)인데 역변(逆變) 전에 이미 죽었고 한세홍의 외삼촌 김덕유(金德裕)·김덕조(金德祚)와 김덕유의 매부(妹夫) 신필인(申弼仁)도 한세홍의 당(黨)이며 조관규의 아우 조명규(趙命奎)도 그 가운데에 들어갔습니다. 신의 집에서 한세홍과 같이 역모하였는데, 관가에서 보낸 사람이 만약 오면 신이 종 담사리(淡沙里)를 시켜 놓은 곳에 올라 망보다가 포(砲)를 쏘아 죽이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집안에서는 신의 종 말종(末終)이 능장(稜杖)을 메고 교생(校生) 민제상(閔齊尙)에게는 조총(鳥銃)을 주어 관군(官軍)이 신의 집에 침범하지 못하게 하려 하였습니다. 이것이 곧 멀리서 망보고 가까이서 망보게 한 것입니다. 군복(軍服) 20여 건(件)과 화약(火藥) 8봉(封)을 과연 가지고 가서 장차 청주(淸州)의 적진(賊陣)에 같이 들어가려 하였으나 뜻밖에 청주의 적병이 패하여 미처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군복은 죄다 불사르고 화약은 죄다 물에 가라앉혔습니다. 민덕효(閔德孝)·민경효(閔景孝)는 정상을 알았고 민성효(閔性孝)는 같이 참여하였습니다. 반역을 꾀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였다.
원문
○丙寅/上御仁政門, 親鞫。 更推閔百孝, 刑三次, 百孝供: "觀孝, 卽臣一家, 聞觀孝伏法, 趙德普兄弟相謂曰: ‘渠以禍家餘生, 爲此凶惡之事, 此天亡之秋也。’ 上年三月, 臣上京, 適往西江, 見觀孝。 適無人, 觀孝曰: ‘韓世弘與李有翼、李河及吾, 欲做出國家之大變。’ 臣曰: ‘何爲出危言?’ 觀孝曰: ‘汝往可興, 得見韓德徵, 傳此言。’ 臣往可興, 德徵往原州, 故不傳而還, 德普新自京, 來傳及觀孝事曰: ‘逆謀狼藉, 禍將及汝家。’ 云。 天亡之說, 所以發也, 德普兄弟, 聞知其逆說於觀孝伏法之前, 德普之弟, 入其中。 臣再昨年春, 往驪州坐淸心樓, 瑞虎遣其弟子安龜萬傳言: ‘何以則相見?’ 臣謂龜萬曰: ‘嶺兵欲大起, 而麟佐自是喜事之輩, 且有與瑞虎爭功之心, 又爭其大將, 必欲沮敗, 君須言於韓世弘, 以爲居間調劑之地。’ 時, 世弘方在德徵家矣。 前年庭試時, 臣獨坐香橋項, 世弘適到, 臣曰: ‘其事今何如?’ 世弘曰: ‘幾爲調劑, 而猶不無念慮矣。’ 入於瑞虎議者, 趙觀奎、一奎、觀奎子鐩、趙宇擎、驪州賊都等牌, 而逆變前, 已身死, 世弘外三寸金德裕、德祚、德裕妹夫申弼仁, 亦世弘之黨, 趙觀奎弟命奎, 同入其中。 臣家與世弘, 同爲逆謀, 官差若來, 則臣使奴淡沙里, 登高觀望, 放砲殺之爲計。 家內則臣奴末終擔稜杖, 校生閔齊尙給鳥銃, 欲使官軍, 不得入犯臣家。 此乃遠望近望也。 軍服二十餘件, 火藥八封, 果爲持去, 將同入於淸州賊陣, 不意淸州賊兵敗, 未及達, 故軍服盡燒之, 火藥盡沈水。 德孝、景孝知情, 性孝同參。 謀逆是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