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8권, 영조 4년 5월 9일 己未 3/5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성득하·이한초 공초
국역
성득하(成得夏)를 추문(推問)하니, 성득하가 공초(供招)하기를,
"정세윤(鄭世允)은 곧 신의 사촌인데, 올해 3월에 조상(弔喪)한다고 신의 집에 왔습니다. 낯을 모르는 한 사람이 정세윤과 같이 왔기에 그 이름을 물으니 원만주(元萬周)이었습니다. 같이 잘 때에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장사(壯士) 네 명이 방안에 들어왔는데, 그 사람을 보니 모두 여덟 자의 큰 키에 큰 칼을 찼으므로, 마음이 매우 떨렸습니다. 정세윤이 말하기를, ‘우리들에게 생각하는 바가 있는데, 네가 만약 듣지 않으면 곧 죽이겠다.’ 하므로, 신이 답하기를,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는가?’ 하니, 정세윤이 말하기를, ‘내응(內應)·외응(外應)이 있으니 조금도 의심하고 염려할 것이 없다. 내응은 남태징(南泰徵)이고 외응은 평안 병사(平安兵使)이니, 일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태인(泰仁)의 원[倅]과 서로 약속하고 왔다.’ 하기에, 신이 잠시의 목숨을 늘이려고 허락하였습니다. 동내 사람 이경구(李景九) 등이 마침 신의 집에 왔는데, 원만주가 상격(相格)이 매우 좋다고 하며 이어서 거사를 언급하니, 이경구 등이 허락하였습니다. 정세윤이 장사 한 사람을 거느리고 충청도로 가면서 신과 원만주에게 뒤따라서 여산(礪山)의 황화정(皇華亭)으로 오라고 하였습니다. 14일에 원만주가 신을 데리고 가려 하였으나, 신이 숨어 피하였다가 일이 안정된 뒤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였다. 이한초(李漢楚)를 추문하니, 이한초가 공초하기를,
"3월 초에 금구(金溝) 사는 김일채(金一彩)가 여러 번 신을 청하므로 신이 가서 밤을 지내는데, 한 사람이 옆에 있었습니다. 김일채가 칼을 뽑고 말하기를, ‘이 물건이 쓰이는 데를 너는 아는가?’ 하고 이어서 말하기를, ‘태인의 원이 바야흐로 군사를 일으키니 너도 따라서 참여하라. 만약 듣지 않으면 이 칼로 쳐죽이겠다.’ 하기에, 신이 마지못하여 따라서 참여하겠다는 뜻을 말하였습니다. 14일에 신이 고부(古阜) 평교(平橋)에 갔더니, 김일채·성득하와 김일채의 사촌 김선필(金善弼) 등 예닐곱 사람이 모였는데, 성득하가 말하기를, ‘이곳 군사의 수가 거의 육칠십 명쯤 되는데 오늘 우세(雨勢)가 이러하므로 죄다 흩어져 갔다.’ 하고, 또 말하기를, ‘원가(元哥)·정가(鄭哥)는 먼저 충청도로 갔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18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7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원문
○問成得夏, 得夏供: "鄭世允, 卽臣四寸, 今年三月, 稱以弔喪, 來臣家。 不知面一人, 與世允同來, 問其名, 元萬周也。 同宿時, 壯丁四名, 不知自何來, 入房內, 觀其人, 俱是八尺長身, 佩大劍, 心甚戰憟。 世允言: ‘吾等有所懷, 汝若不聽, 卽屠殺。’ 臣答曰: ‘何以出此言?’ 世允曰: ‘有內、外應, 少無疑慮。 內應則南泰徵, 外應則平安兵使, 事可成矣。 吾與泰仁倅相約來到。 臣欲延頃刻之命, 許諾。 洞內人李景九等, 適來臣家, 則萬周謂相格極好, 仍以擧事言及, 則景九等許諾。 世允率壯士一人, 往忠淸道, 令臣與萬周, 追後來到于礪山 皇華亭。 十四日, 萬周欲率臣去, 臣隱避, 事定後還家。" 問李漢楚, 漢楚供: "三月初, 金溝 金一彩屢請臣, 臣進往經宿, 一人在傍。 一彩拔劍言曰: ‘是物用處, 汝知之乎?’ 仍言: ‘泰仁倅, 今方擧兵, 汝亦隨參。 若不聽, 當以此劍打殺。’ 臣不得已言隨參之意。 十四日, 臣往古阜 平橋, 則金一彩、成得夏及一彩四寸金善弼等六七人, 聚會, 而得夏言: ‘此處軍數幾至六七十名, 今日雨勢如此, 盡爲散去。’ 又言: ‘元哥、鄭哥, 先往忠淸道。’ 云。"
- 【태백산사고본】 15책 18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7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영조 4년 (1728) 5월 9일
영조실록18권, 영조 4년 5월 9일 己未 3/5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성득하·이한초 공초
국역
성득하(成得夏)를 추문(推問)하니, 성득하가 공초(供招)하기를,
"정세윤(鄭世允)은 곧 신의 사촌인데, 올해 3월에 조상(弔喪)한다고 신의 집에 왔습니다. 낯을 모르는 한 사람이 정세윤과 같이 왔기에 그 이름을 물으니 원만주(元萬周)이었습니다. 같이 잘 때에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장사(壯士) 네 명이 방안에 들어왔는데, 그 사람을 보니 모두 여덟 자의 큰 키에 큰 칼을 찼으므로, 마음이 매우 떨렸습니다. 정세윤이 말하기를, ‘우리들에게 생각하는 바가 있는데, 네가 만약 듣지 않으면 곧 죽이겠다.’ 하므로, 신이 답하기를,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는가?’ 하니, 정세윤이 말하기를, ‘내응(內應)·외응(外應)이 있으니 조금도 의심하고 염려할 것이 없다. 내응은 남태징(南泰徵)이고 외응은 평안 병사(平安兵使)이니, 일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태인(泰仁)의 원[倅]과 서로 약속하고 왔다.’ 하기에, 신이 잠시의 목숨을 늘이려고 허락하였습니다. 동내 사람 이경구(李景九) 등이 마침 신의 집에 왔는데, 원만주가 상격(相格)이 매우 좋다고 하며 이어서 거사를 언급하니, 이경구 등이 허락하였습니다. 정세윤이 장사 한 사람을 거느리고 충청도로 가면서 신과 원만주에게 뒤따라서 여산(礪山)의 황화정(皇華亭)으로 오라고 하였습니다. 14일에 원만주가 신을 데리고 가려 하였으나, 신이 숨어 피하였다가 일이 안정된 뒤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였다. 이한초(李漢楚)를 추문하니, 이한초가 공초하기를,
"3월 초에 금구(金溝) 사는 김일채(金一彩)가 여러 번 신을 청하므로 신이 가서 밤을 지내는데, 한 사람이 옆에 있었습니다. 김일채가 칼을 뽑고 말하기를, ‘이 물건이 쓰이는 데를 너는 아는가?’ 하고 이어서 말하기를, ‘태인의 원이 바야흐로 군사를 일으키니 너도 따라서 참여하라. 만약 듣지 않으면 이 칼로 쳐죽이겠다.’ 하기에, 신이 마지못하여 따라서 참여하겠다는 뜻을 말하였습니다. 14일에 신이 고부(古阜) 평교(平橋)에 갔더니, 김일채·성득하와 김일채의 사촌 김선필(金善弼) 등 예닐곱 사람이 모였는데, 성득하가 말하기를, ‘이곳 군사의 수가 거의 육칠십 명쯤 되는데 오늘 우세(雨勢)가 이러하므로 죄다 흩어져 갔다.’ 하고, 또 말하기를, ‘원가(元哥)·정가(鄭哥)는 먼저 충청도로 갔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18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7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원문
○問成得夏, 得夏供: "鄭世允, 卽臣四寸, 今年三月, 稱以弔喪, 來臣家。 不知面一人, 與世允同來, 問其名, 元萬周也。 同宿時, 壯丁四名, 不知自何來, 入房內, 觀其人, 俱是八尺長身, 佩大劍, 心甚戰憟。 世允言: ‘吾等有所懷, 汝若不聽, 卽屠殺。’ 臣答曰: ‘何以出此言?’ 世允曰: ‘有內、外應, 少無疑慮。 內應則南泰徵, 外應則平安兵使, 事可成矣。 吾與泰仁倅相約來到。 臣欲延頃刻之命, 許諾。 洞內人李景九等, 適來臣家, 則萬周謂相格極好, 仍以擧事言及, 則景九等許諾。 世允率壯士一人, 往忠淸道, 令臣與萬周, 追後來到于礪山 皇華亭。 十四日, 萬周欲率臣去, 臣隱避, 事定後還家。" 問李漢楚, 漢楚供: "三月初, 金溝 金一彩屢請臣, 臣進往經宿, 一人在傍。 一彩拔劍言曰: ‘是物用處, 汝知之乎?’ 仍言: ‘泰仁倅, 今方擧兵, 汝亦隨參。 若不聽, 當以此劍打殺。’ 臣不得已言隨參之意。 十四日, 臣往古阜 平橋, 則金一彩、成得夏及一彩四寸金善弼等六七人, 聚會, 而得夏言: ‘此處軍數幾至六七十名, 今日雨勢如此, 盡爲散去。’ 又言: ‘元哥、鄭哥, 先往忠淸道。’ 云。"
- 【태백산사고본】 15책 18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57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원본
영조 4년 (1728) 5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