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7권, 영조 4년 4월 14일 甲午 8/12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이종성에게 영남 어사를 제수하다
국역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 이종성(李宗城)을 영남 어사(嶺南御史)에 임명하여 당일로 내려보냈다. 이종성이 사폐(辭陛)하고 인하여 아뢰기를,
"난역(亂逆)이 이미 평정되었으니, 마땅히 경연(經筵)을 여셔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하교(下敎)하기를,
"이제 멀리 지방으로 나가는 때에도 오히려 헌체(獻替)310) 에 마음을 두니, 내가 가상하게 여긴다. 유신(儒臣)이 남쪽으로 내려간 뒤에 권면하여 경계한 말을 마땅히 유의하여 잊지 않겠다. 서치(鋤治)311) 1절(節)에 이르러서는 엄격을 숭상해야 하는 법이니, 비록 삼대(三代)의 뜻은 아니지마는, 제갈양(諸葛亮)이 촉한(蜀漢)을 다스릴 적에도 또한 오히려 엄격을 숭상했으니, 옛말에는 ‘간척(干戚)의 춤은 평성(平城)의 포위를 능히 풀 수가 없다.’312) 고 하였다. 백성을 불러 편안히 모으는 것이 비록 먼저 힘쓸 일이나 영상(領相)의 서치(鋤治)해야 한다는 말도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모름지기 은혜와 위엄을 다같이 시행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17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44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왕실-경연(經筵)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註 310] 헌체(獻替) : 바치는 것을 헌(獻), 없애는 것을 체(替)라 함. 곧 선(善)을 바치고 악(惡)을 없애는 것으로 군주(軍主)를 보좌하는 것을 말함.
- [註 311] 서치(鋤治) : 근본까지 아주 제거함.
- [註 312] ‘간척(干戚)의 춤은 평성(平城)의 포위를 능히 풀 수가 없다.’ : 후한(後漢)의 최식(崔寔)이 ‘성인(聖人)은 세상의 변화와 함께 잘 추이(推移)해 나가지만, 속된 선비는 변통(變通)할 줄을 몰라 간척(干戚)으로 평성(平城)의 포위를 족히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 데서 나온 말임. 간척(干戚)은 방패[干]와 도끼[戚]를 가지고 추는 무무(武舞). 우(禹)임금 때 묘족(苗族)들이 명령을 거스른 일이 있었는데, 우임금이 두 섬돌 사이에서 이 춤을 추자 묘족들이 70일 만에 감동하여 복종했다고 함. 평성(平城)은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흉노족에게 포위당해 곧 욕을 치른 곳. 즉 변화에 대응하지 않는 고식적인 문치책(文治策) 으로는 적(賊)을 제압할 수 없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음.
원문
영조실록17권, 영조 4년 4월 14일 甲午 8/12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이종성에게 영남 어사를 제수하다
국역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 이종성(李宗城)을 영남 어사(嶺南御史)에 임명하여 당일로 내려보냈다. 이종성이 사폐(辭陛)하고 인하여 아뢰기를,
"난역(亂逆)이 이미 평정되었으니, 마땅히 경연(經筵)을 여셔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하교(下敎)하기를,
"이제 멀리 지방으로 나가는 때에도 오히려 헌체(獻替)310) 에 마음을 두니, 내가 가상하게 여긴다. 유신(儒臣)이 남쪽으로 내려간 뒤에 권면하여 경계한 말을 마땅히 유의하여 잊지 않겠다. 서치(鋤治)311) 1절(節)에 이르러서는 엄격을 숭상해야 하는 법이니, 비록 삼대(三代)의 뜻은 아니지마는, 제갈양(諸葛亮)이 촉한(蜀漢)을 다스릴 적에도 또한 오히려 엄격을 숭상했으니, 옛말에는 ‘간척(干戚)의 춤은 평성(平城)의 포위를 능히 풀 수가 없다.’312) 고 하였다. 백성을 불러 편안히 모으는 것이 비록 먼저 힘쓸 일이나 영상(領相)의 서치(鋤治)해야 한다는 말도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모름지기 은혜와 위엄을 다같이 시행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17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44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왕실-경연(經筵)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註 310] 헌체(獻替) : 바치는 것을 헌(獻), 없애는 것을 체(替)라 함. 곧 선(善)을 바치고 악(惡)을 없애는 것으로 군주(軍主)를 보좌하는 것을 말함.
- [註 311] 서치(鋤治) : 근본까지 아주 제거함.
- [註 312] ‘간척(干戚)의 춤은 평성(平城)의 포위를 능히 풀 수가 없다.’ : 후한(後漢)의 최식(崔寔)이 ‘성인(聖人)은 세상의 변화와 함께 잘 추이(推移)해 나가지만, 속된 선비는 변통(變通)할 줄을 몰라 간척(干戚)으로 평성(平城)의 포위를 족히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 데서 나온 말임. 간척(干戚)은 방패[干]와 도끼[戚]를 가지고 추는 무무(武舞). 우(禹)임금 때 묘족(苗族)들이 명령을 거스른 일이 있었는데, 우임금이 두 섬돌 사이에서 이 춤을 추자 묘족들이 70일 만에 감동하여 복종했다고 함. 평성(平城)은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흉노족에게 포위당해 곧 욕을 치른 곳. 즉 변화에 대응하지 않는 고식적인 문치책(文治策) 으로는 적(賊)을 제압할 수 없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