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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17권, 영조 4년 4월 9일 己丑 8/15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한세홍 공초

국역

임금이 인정문(仁政門)에 나가서 친국(親鞫)하였다. 한세홍(韓世弘)을 신문하였으나 승복(承服)하지 않으므로, 한 차례 형벌하니, 공초하기를,

"지난해부터 이유익(李有翼)·박필현(朴弼顯)·이인좌(李麟佐)가 군사를 모집하였으며, 심유현(沈維賢)이 영천 군수(永川郡守)가 되었을 때, 박필현이 그 연소(年少)하고 사리(事理)에 밝음을 일컬었습니다. 신이 들으니, 그 이름난 도적은 밖에서는 양성(陽城)·진위(振威)·용인(龍仁) 사이에서 매우 대단하였고 안에서는 남태징(南泰徵)이 이를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성(李思晟)이 ‘사람들이 모두 바쁘게 서두르고 있으니 이것이 매우 걱정스럽다.’고 하고, 또 ‘전라도(全羅道)는 비록 도적이 있을지라도 장사(壯士)가 4, 5백 명에 지나지 않고, 양성의 도적도 또한 4, 5백 명을 넘지 못하므로, 허술하기가 매우 심하니, 이것으로 어떻게 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이 몸은 가을을 기다려 하고자 하는데, 술수(術數)가 이와 같다.’고 하였으며, 또 ‘그대는 다시 오지 못하더라도 편비(褊裨)는 장차 왕래하는 일이 있을 것이니, 서로 의논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편비란 원재린(元再麟)입니다. 이사성이 또 ‘서울 안의 여러 도적이 날더러 미복(微服) 차림으로 올라오라고 하니 인사(人事)가 이와 같았으므로, 역적질은 진실로 논할 것 없지만 비록 절도(竊盜)라도 또한 능히 알 수가 없다.’고 하므로, 신이 그렇게 여겼습니다. 이유익은 처음부터 서로 친하였는데, 재작년에 서울에 올라왔더니, 이유익이 신의 얼굴을 관찰하고 말하기를, ‘복(福)이 적다.’고 하였습니다. 며칠 뒤에 다시 갔더니, 이유익이 ‘일조의 괴악(怪惡)한 무리가 반역(叛逆)을 꾀하는 일이 있는데, 그대가 일을 같이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기에, 신이 ‘일이 두려울 뿐만 아니라 나는 마음이 옹졸하고 복이 적으니 어찌 능히 큰 일을 처리 할수가 있겠는가?’라고 답하였습니다. 이유익·박필현·이사성 및 도적 이하(李河)가 난만(爛漫)하게 서로 의논하였습니다. 서울 안은 이유익이 주장하고 그 다음은 이사성이 계려(計慮)가 있으므로 이 두 사람이 괴수(魁首)가 되고, 남태징은 그 무리들이 용렬하다고 여겨서 이유익 외에는 이하(李河)가 다음이 되었습니다. 민관효(閔觀孝)는 한강 밖에 있기 때문에 상면(相面)하였을 뿐이므로 능히 자주 왕래하지 못하였으며, 내응(內應)하는 일은 이유익이 가장 빈틈이 없었습니다. 2월 25일 무렵에 이인좌가 서울에 들어와 ‘그대는 용렬하니, 내가 영남(嶺南)에서 모사(謀事)를 같이할 사람 10여 명을 얻었는데, 정희량(鄭希亮) 등이다.’라고 하였는데, 많은 사람이 자리에 있었으므로, 아무아무라고 성명(姓名)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15일의 일은 신이 평안도(平安道)에 갔었기 때문에 능히 알지 못합니다. 내응(內應)의 일은, 각 사람은 가동(家僮)을 모으고, 남태징은 포도청(捕盜廳)의 군사가 있었으므로, 이하가 또 박필현의 말을 전하기를, ‘홍화문(弘化門)과 돈화문(敦化門)의 두 문은 열기 가장 어려우니, 만약 화약(火藥)을 많이 쌓아 두고 화전(火箭)으로 쏜다면 문을 깰 수 있다.’고 하고, 이유익은 ‘마땅히 군사를 성안에 모아야 한다.’고 하고, 이하는 ‘마땅히 군사를 동소문(東小門) 밖에 모아야 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전년 9월에 이유익·이하와 더불어 함께 의논한 말입니다. 이인좌가 이하에게 ‘그대는 어떻게 군사를 모으겠는가?’ 하니, 이하가 ‘5, 60명은 있고 그 밖에 노복(奴僕) 같은 것이 5, 60인이며 중서(中庶)276) 가 또한 5, 60이니, 합쳐 계산하면 마땅히 1백 5, 60인은 될 것이다.’ 하였으니, 아마도 여산(礪山)에 큰 전장(田庄)이 있기 때문에 군정(軍丁)이 호남에서 많이 나왔던 것입니다. 재작년에 신이 상주(尙州)에 있을 때 대계(臺啓)에 ‘음모 비계(陰謀祕計)로써 장차 16, 7인을 논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신이 상주에 있는지 겨우 1년 남짓에 박필현이 또한 와서 ‘한세홍이 있기 때문에 나도 또한 따라 왔다.’라고 말을 퍼뜨렸으니, 세상에서 신을 박필현의 주인으로 여겨 16, 7인 속에 신과 박필현이 들어 있고 그 나머지는 윤덕유(尹德裕)·민원해(閔元楷)·이하·이사성·이유익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그 말에 놀라 두려워하였는데, 대계(臺啓)는 과연 발론(發論)되지 않았지마는, 반역을 도모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니, 참형(斬刑)에 처하고 노적(孥籍)을 법대로 하였다.

  • [註 276] 중서(中庶) : 중인(中人)과 서얼(庶孽).

원문

○上御仁政門, 親鞫。 問韓世弘不服, 刑一次, 世弘供: "自前年有翼、弼顯、麟佐募軍, 沈維賢爲永川郡守時, 弼顯稱其年少解事。 臣聞其名盜賊, 外則陽城、振威、龍仁之間甚盛, 內則南泰徵知之。 思晟言: "人皆忙迫, 是可悶也" 思晟又以爲: "全羅道雖有盜, 不過壯士四五百, 陽城盜亦不過四五百, 虛踈莫甚, 此何以有爲? 思晟則欲待秋爲之, 術數如此。’ 云, 且言: ‘君則不可復來, 而褊裨將有往來之事, 可以相議。’ 褊裨則元再麟也。 思晟又言: ‘京中諸賊, 要我微服上來, 人事如此, 逆賊固無論, 雖竊盜, 亦不能爲。’ 臣以爲然矣。 有翼自初相親, 再昨年上京, 則有翼相臣之貌以爲, 福薄。 數日後更往, 則有翼以爲: ‘有一種怪惡之輩, 謀逆之事, 君可同事否?’ 臣答以事不但可怕, 吾心拙福薄, 何能辦大事?’ 有翼、弼顯、思晟及賊河, 爛熳相議。 京中則有翼主張, 其次思晟有計慮, 此二人爲魁, 泰徵則渠輩以爲庸劣, 有翼之外, 李河爲次。 閔觀孝在江外, 故相面而已, 不能數往來, 內應事, 有翼最緊。 二月二十五日間, 麟佐入京, 以爲君則庸劣, 吾則嶺南得同謀之人十餘, 鄭希亮等。’ 云, 而多人在座, 不言某某名姓。 十五日事, 臣往平安道, 故不能知。 內應事, 各人聚家僮, 泰徵有捕盜廳軍士, 河又傳弼顯之言曰: ‘弘化、敦化兩門開之最難, 若多積火藥, 以火箭射之, 門可自破。’ 有翼則言: ‘當聚軍於城內。’ 河則言: ‘當聚軍東小門外。’ 此則前年九月, 與有翼、河共議之言。 麟佐謂河曰: ‘君何以聚軍?’ 河云: ‘有五六十名, 其外如奴者, 五六十人中, 庶者亦五六十人, 合以計之, 當爲百五六十人。’ 蓋有大庄於礪山, 故軍丁多出於湖南。 再昨年臣在尙州, 聞臺啓, 以陰謀秘計, 將論十六七人, 臣居尙州纔一年餘, 弼顯亦來倡言曰: ‘韓世弘來, 故吾亦隨來。’ 世以臣爲弼顯主人, 十六七人, 臣及弼顯在其中, 其餘尹德裕、閔元楷、李河、李思晟、李有翼云。 故臣驚怕其言, 而臺啓不果發, 謀逆是實。" 處斬, 孥籍如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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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17권, 영조 4년 4월 9일 己丑 8/15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한세홍 공초

국역

임금이 인정문(仁政門)에 나가서 친국(親鞫)하였다. 한세홍(韓世弘)을 신문하였으나 승복(承服)하지 않으므로, 한 차례 형벌하니, 공초하기를,

"지난해부터 이유익(李有翼)·박필현(朴弼顯)·이인좌(李麟佐)가 군사를 모집하였으며, 심유현(沈維賢)이 영천 군수(永川郡守)가 되었을 때, 박필현이 그 연소(年少)하고 사리(事理)에 밝음을 일컬었습니다. 신이 들으니, 그 이름난 도적은 밖에서는 양성(陽城)·진위(振威)·용인(龍仁) 사이에서 매우 대단하였고 안에서는 남태징(南泰徵)이 이를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성(李思晟)이 ‘사람들이 모두 바쁘게 서두르고 있으니 이것이 매우 걱정스럽다.’고 하고, 또 ‘전라도(全羅道)는 비록 도적이 있을지라도 장사(壯士)가 4, 5백 명에 지나지 않고, 양성의 도적도 또한 4, 5백 명을 넘지 못하므로, 허술하기가 매우 심하니, 이것으로 어떻게 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이 몸은 가을을 기다려 하고자 하는데, 술수(術數)가 이와 같다.’고 하였으며, 또 ‘그대는 다시 오지 못하더라도 편비(褊裨)는 장차 왕래하는 일이 있을 것이니, 서로 의논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편비란 원재린(元再麟)입니다. 이사성이 또 ‘서울 안의 여러 도적이 날더러 미복(微服) 차림으로 올라오라고 하니 인사(人事)가 이와 같았으므로, 역적질은 진실로 논할 것 없지만 비록 절도(竊盜)라도 또한 능히 알 수가 없다.’고 하므로, 신이 그렇게 여겼습니다. 이유익은 처음부터 서로 친하였는데, 재작년에 서울에 올라왔더니, 이유익이 신의 얼굴을 관찰하고 말하기를, ‘복(福)이 적다.’고 하였습니다. 며칠 뒤에 다시 갔더니, 이유익이 ‘일조의 괴악(怪惡)한 무리가 반역(叛逆)을 꾀하는 일이 있는데, 그대가 일을 같이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기에, 신이 ‘일이 두려울 뿐만 아니라 나는 마음이 옹졸하고 복이 적으니 어찌 능히 큰 일을 처리 할수가 있겠는가?’라고 답하였습니다. 이유익·박필현·이사성 및 도적 이하(李河)가 난만(爛漫)하게 서로 의논하였습니다. 서울 안은 이유익이 주장하고 그 다음은 이사성이 계려(計慮)가 있으므로 이 두 사람이 괴수(魁首)가 되고, 남태징은 그 무리들이 용렬하다고 여겨서 이유익 외에는 이하(李河)가 다음이 되었습니다. 민관효(閔觀孝)는 한강 밖에 있기 때문에 상면(相面)하였을 뿐이므로 능히 자주 왕래하지 못하였으며, 내응(內應)하는 일은 이유익이 가장 빈틈이 없었습니다. 2월 25일 무렵에 이인좌가 서울에 들어와 ‘그대는 용렬하니, 내가 영남(嶺南)에서 모사(謀事)를 같이할 사람 10여 명을 얻었는데, 정희량(鄭希亮) 등이다.’라고 하였는데, 많은 사람이 자리에 있었으므로, 아무아무라고 성명(姓名)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15일의 일은 신이 평안도(平安道)에 갔었기 때문에 능히 알지 못합니다. 내응(內應)의 일은, 각 사람은 가동(家僮)을 모으고, 남태징은 포도청(捕盜廳)의 군사가 있었으므로, 이하가 또 박필현의 말을 전하기를, ‘홍화문(弘化門)과 돈화문(敦化門)의 두 문은 열기 가장 어려우니, 만약 화약(火藥)을 많이 쌓아 두고 화전(火箭)으로 쏜다면 문을 깰 수 있다.’고 하고, 이유익은 ‘마땅히 군사를 성안에 모아야 한다.’고 하고, 이하는 ‘마땅히 군사를 동소문(東小門) 밖에 모아야 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전년 9월에 이유익·이하와 더불어 함께 의논한 말입니다. 이인좌가 이하에게 ‘그대는 어떻게 군사를 모으겠는가?’ 하니, 이하가 ‘5, 60명은 있고 그 밖에 노복(奴僕) 같은 것이 5, 60인이며 중서(中庶)276) 가 또한 5, 60이니, 합쳐 계산하면 마땅히 1백 5, 60인은 될 것이다.’ 하였으니, 아마도 여산(礪山)에 큰 전장(田庄)이 있기 때문에 군정(軍丁)이 호남에서 많이 나왔던 것입니다. 재작년에 신이 상주(尙州)에 있을 때 대계(臺啓)에 ‘음모 비계(陰謀祕計)로써 장차 16, 7인을 논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신이 상주에 있는지 겨우 1년 남짓에 박필현이 또한 와서 ‘한세홍이 있기 때문에 나도 또한 따라 왔다.’라고 말을 퍼뜨렸으니, 세상에서 신을 박필현의 주인으로 여겨 16, 7인 속에 신과 박필현이 들어 있고 그 나머지는 윤덕유(尹德裕)·민원해(閔元楷)·이하·이사성·이유익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그 말에 놀라 두려워하였는데, 대계(臺啓)는 과연 발론(發論)되지 않았지마는, 반역을 도모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니, 참형(斬刑)에 처하고 노적(孥籍)을 법대로 하였다.

  • [註 276] 중서(中庶) : 중인(中人)과 서얼(庶孽).

원문

○上御仁政門, 親鞫。 問韓世弘不服, 刑一次, 世弘供: "自前年有翼、弼顯、麟佐募軍, 沈維賢爲永川郡守時, 弼顯稱其年少解事。 臣聞其名盜賊, 外則陽城、振威、龍仁之間甚盛, 內則南泰徵知之。 思晟言: "人皆忙迫, 是可悶也" 思晟又以爲: "全羅道雖有盜, 不過壯士四五百, 陽城盜亦不過四五百, 虛踈莫甚, 此何以有爲? 思晟則欲待秋爲之, 術數如此。’ 云, 且言: ‘君則不可復來, 而褊裨將有往來之事, 可以相議。’ 褊裨則元再麟也。 思晟又言: ‘京中諸賊, 要我微服上來, 人事如此, 逆賊固無論, 雖竊盜, 亦不能爲。’ 臣以爲然矣。 有翼自初相親, 再昨年上京, 則有翼相臣之貌以爲, 福薄。 數日後更往, 則有翼以爲: ‘有一種怪惡之輩, 謀逆之事, 君可同事否?’ 臣答以事不但可怕, 吾心拙福薄, 何能辦大事?’ 有翼、弼顯、思晟及賊河, 爛熳相議。 京中則有翼主張, 其次思晟有計慮, 此二人爲魁, 泰徵則渠輩以爲庸劣, 有翼之外, 李河爲次。 閔觀孝在江外, 故相面而已, 不能數往來, 內應事, 有翼最緊。 二月二十五日間, 麟佐入京, 以爲君則庸劣, 吾則嶺南得同謀之人十餘, 鄭希亮等。’ 云, 而多人在座, 不言某某名姓。 十五日事, 臣往平安道, 故不能知。 內應事, 各人聚家僮, 泰徵有捕盜廳軍士, 河又傳弼顯之言曰: ‘弘化、敦化兩門開之最難, 若多積火藥, 以火箭射之, 門可自破。’ 有翼則言: ‘當聚軍於城內。’ 河則言: ‘當聚軍東小門外。’ 此則前年九月, 與有翼、河共議之言。 麟佐謂河曰: ‘君何以聚軍?’ 河云: ‘有五六十名, 其外如奴者, 五六十人中, 庶者亦五六十人, 合以計之, 當爲百五六十人。’ 蓋有大庄於礪山, 故軍丁多出於湖南。 再昨年臣在尙州, 聞臺啓, 以陰謀秘計, 將論十六七人, 臣居尙州纔一年餘, 弼顯亦來倡言曰: ‘韓世弘來, 故吾亦隨來。’ 世以臣爲弼顯主人, 十六七人, 臣及弼顯在其中, 其餘尹德裕、閔元楷、李河、李思晟、李有翼云。 故臣驚怕其言, 而臺啓不果發, 謀逆是實。" 處斬, 孥籍如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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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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