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7권, 영조 4년 4월 7일 丁亥 4/8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전라 감사가 이원휘·정돌시를 효시하였음을 장계하다
국역
전라 감사(全羅監司) 이광덕(李匡德)의 장계에 이르기를,
"금산 군수(錦山郡守) 이덕린(李德隣)이 도적의 군사 이원휘(李元暉)·정돌시(鄭突屎) 등을 잡았는데, 이원휘는 공초하기를, ‘청주(淸州)의 도적이 봉서(封書)를 내어 주면서 무주(茂朱)의 적진(敵陣)에 전하라고 하기에, 무주로 갔더니, 적괴(賊魁)는 부(府)의 동서쪽 50리 되는 태산(泰山) 장곡(長谷) 속에 있고, 모인 적당(賊黨)이 거의 수십 초(哨)에 가까웠으며, 청주의 적장(賊將)의 청병(請兵)으로 인하여 수삼 초(哨)의 군병이 연달아 끊어지지 않게 올라가고 있었으나 뒤에 청주 패군(淸州敗軍)의 보고를 듣고는 무주의 도적도 또한 차츰 도망하여 흩어져서 남은 것이 3, 4초라고 하였습니다. 무주의 도당은 바로 청주의 후진(後陣)이며 모여 있는 곳은 곧 집 없는 빈 산으로서 밤낮으로 노처(露處)하니, 이른바 장수가 군막(軍幕)을 베풀어서 거처한다는 것입니다.’고 하였고, 정돌시는 공초하기를, ‘3월 17일에 청주 읍내(邑內)로 들어갔더니, 읍촌(邑村)이 거의 텅 비어 있고 홀로 한 백성이 들에서 밭을 갈고 있었는데, 적도(賊徒)가 불러들여 술을 주고 상(賞)을 주므로, 이 말을 듣고 그 무리에 들어갔습니다. 19일에 적장이 1봉(封)의 서찰을 내어 주면서, 전라 감영(全羅監營)에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정사효(鄭思孝)가 전라 감사로 되었는데, 도적의 위세에 겁을 내어 서봉(書封)을 가지고 전주(全州)의 북문(北門) 밖에 이르니, 성문을 이미 닫아 문 지키는 자도 대부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서봉을 문 지키는 사람에게 주고 그 곳에서 즉시 무주의 도적 있는 곳으로 도망하였습니다.’고 하므로, 모두 효시(梟示)하였습니다.
하였다.
원문
○全羅監司李匡德狀啓言:
錦山郡守李德隣捉賊卒李元暉、鄭突屎等, 元暉供: "淸州賊, 出給封書, 使之傳致茂朱賊陳, 往茂朱, 賊魁在於府之東西五十里泰山 長谷中, 所聚賊黨, 殆近數十哨, 因淸州賊將之請兵, 數三哨陸續上去, 後聞淸州敗軍之報, 茂朱賊, 亦稍稍散亡, 所餘三四哨。 茂朱徒黨, 乃淸州之後陣, 所聚之處, 乃是無家空山, 晝夜露處, 所謂將帥, 設軍幕以居。" 突屎供: "三月十七日, 進往淸州邑內, 邑村殆空, 獨有一民, 耕於野, 賊徒招入饋酒給賞, 聞此言入其黨。 十九日賊將出付一封書曰: ‘傳于全羅監營。’ 時, 鄭思孝爲全羅監司, 怯於賊威, 持書封往全州北門外, 則城門已閉, 守門者多不得入, 授書封於守門人, 自其處卽逃于茂朱賊所。" 云, 幷梟示。
영조실록17권, 영조 4년 4월 7일 丁亥 4/8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전라 감사가 이원휘·정돌시를 효시하였음을 장계하다
국역
전라 감사(全羅監司) 이광덕(李匡德)의 장계에 이르기를,
"금산 군수(錦山郡守) 이덕린(李德隣)이 도적의 군사 이원휘(李元暉)·정돌시(鄭突屎) 등을 잡았는데, 이원휘는 공초하기를, ‘청주(淸州)의 도적이 봉서(封書)를 내어 주면서 무주(茂朱)의 적진(敵陣)에 전하라고 하기에, 무주로 갔더니, 적괴(賊魁)는 부(府)의 동서쪽 50리 되는 태산(泰山) 장곡(長谷) 속에 있고, 모인 적당(賊黨)이 거의 수십 초(哨)에 가까웠으며, 청주의 적장(賊將)의 청병(請兵)으로 인하여 수삼 초(哨)의 군병이 연달아 끊어지지 않게 올라가고 있었으나 뒤에 청주 패군(淸州敗軍)의 보고를 듣고는 무주의 도적도 또한 차츰 도망하여 흩어져서 남은 것이 3, 4초라고 하였습니다. 무주의 도당은 바로 청주의 후진(後陣)이며 모여 있는 곳은 곧 집 없는 빈 산으로서 밤낮으로 노처(露處)하니, 이른바 장수가 군막(軍幕)을 베풀어서 거처한다는 것입니다.’고 하였고, 정돌시는 공초하기를, ‘3월 17일에 청주 읍내(邑內)로 들어갔더니, 읍촌(邑村)이 거의 텅 비어 있고 홀로 한 백성이 들에서 밭을 갈고 있었는데, 적도(賊徒)가 불러들여 술을 주고 상(賞)을 주므로, 이 말을 듣고 그 무리에 들어갔습니다. 19일에 적장이 1봉(封)의 서찰을 내어 주면서, 전라 감영(全羅監營)에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정사효(鄭思孝)가 전라 감사로 되었는데, 도적의 위세에 겁을 내어 서봉(書封)을 가지고 전주(全州)의 북문(北門) 밖에 이르니, 성문을 이미 닫아 문 지키는 자도 대부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서봉을 문 지키는 사람에게 주고 그 곳에서 즉시 무주의 도적 있는 곳으로 도망하였습니다.’고 하므로, 모두 효시(梟示)하였습니다.
하였다.
원문
○全羅監司李匡德狀啓言:
錦山郡守李德隣捉賊卒李元暉、鄭突屎等, 元暉供: "淸州賊, 出給封書, 使之傳致茂朱賊陳, 往茂朱, 賊魁在於府之東西五十里泰山 長谷中, 所聚賊黨, 殆近數十哨, 因淸州賊將之請兵, 數三哨陸續上去, 後聞淸州敗軍之報, 茂朱賊, 亦稍稍散亡, 所餘三四哨。 茂朱徒黨, 乃淸州之後陣, 所聚之處, 乃是無家空山, 晝夜露處, 所謂將帥, 設軍幕以居。" 突屎供: "三月十七日, 進往淸州邑內, 邑村殆空, 獨有一民, 耕於野, 賊徒招入饋酒給賞, 聞此言入其黨。 十九日賊將出付一封書曰: ‘傳于全羅監營。’ 時, 鄭思孝爲全羅監司, 怯於賊威, 持書封往全州北門外, 則城門已閉, 守門者多不得入, 授書封於守門人, 自其處卽逃于茂朱賊所。" 云, 幷梟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