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7권, 영조 4년 4월 6일 丙戌 10/11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이일 공초
국역
윤흥국(尹興國)과 이일(李溢)을 신문하였다. 처음에 호산군(壺山君) 정(檉)이 급변(急變)이 있다고 일컬으면서 청대(請對)하므로, 임금이 장전(帳殿)에서 인견(引見)하니, 이호(李浩)·윤흥국(尹興國) 등이 역모(逆謀)를 한다고 고하였는데, 조정에서는 처음에 이호를 망명(亡命)한 이호(李昈)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일을 잡아다 문초(問招)하자, 윤흥국은 불복(不服)하고 이일은 공초하기를,
"3월 12일에 안엽(安熀)의 아우 안정(安𤊟)이 신의 집을 지나면서 말하기를, ‘너를 보고 일을 말하려고 했으나 손님이 있어서 말을 할 수가 없으므로 호산군의 집으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날 2경(二更)에 호산군은 남여(藍輿)를 타고서 종10여 인을 거느리고, 안정은 말을 타고 와서 찾기에 신이 나가서 만났더니, 호산군이 ‘조용하지 못하니 안방에 앉아 술을 얻어 마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안정이 호산군에게 ‘밤이 깊었으니 마땅히 돌아가야 합니다.’ 하므로, 신이 배행(陪行)하여 한 언덕 모퉁이를 넘겨주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안정이 다시 와서 신을 불러 ‘너는 근래의 소란스런 일을 아느냐?’ 하기에, 신이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더니, 안정이 ‘이것은 곧 우리 나라의 소란스러움이다. 나의 형님이 너를 쓸만하다 하여 일을 시키고자 하지만, 네가 일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만약 누설된다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내가 우선 너에게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만, 5, 6일 뒤에는 스스로 마땅히 알게 될 것이니, 비록 처자(妻子)일지라도 누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안정이 손을 이끌고 호산군의 집으로 갔는데, 반쯤 가서 사람 없는 곳에 이르자 안정은 신으로 하여금 가서 호산군에게 ‘내가 여기에 있으니, 여서(女壻) 신택주(申宅周)와 함께 오되 남여는 타지 말게 하라.’고 알리게 하였습니다. 신이 가려고 하지 않으니, 안정이 ‘이곳까지 와서 만약 듣지 않는다면 마땅히 큰 일을 당할 것이다.’라고 하므로, 신이 어쩔 수 없이 가서 알렸습니다. 호산군이 그 사위 신가(申哥)와 함께 지팡이를 끌고 나와 자리에 함께 하여 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하였는데, 안정이 호산군에게 ‘만약 이와 같다면 영감(令監)께서는 반드시 능히 일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니, 호산군이 대답하기를, ‘내가 만약 남의 뒷전이 된다면 어찌 괴롭지 않겠는가?’ 하였으며, 조금 있다가 또 나즈막한 말이 몇 번 오고 갔으나 듣지 못하였습니다. 호산군이 ‘만약 보전(保全)된다면 여기도 임금이고 그도 임금이니 어찌 관계하겠는가?’라고 하였으며, 또 안정에게 ‘조용히 서로 만나서 한 번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길 옆이 되어 사람의 보는 눈이 놀라게 될 것이니, 자리를 파(罷)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기에, 신이 먼저 돌아왔습니다.
해가 저물 때에 안정이 신에게 돈을 보내면서 ‘이것으로 술을 사고 너희 집에 닭이나 개가 있으면 이를 잡아 호산군의 집에 모이자.’고 하였으니, 신은 그 기색(氣色)이 수상함을 보고서 두려워 떨림을 견디지 못하였습니다. 술과 사고 닭을 잡아 호산군의 집으로 갔더니, 호산군이 아들·사위 및 안정과 같이 앉아 노래를 불렀는데, 안정의 가사(歌辭) 중에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非無信]’라는 한 구절을 여러 번 불렀으나, 기억하지 못하며 닭이 운 뒤에야 모임을 파하였습니다. 15일 밤에 호산군이 집을 닫고 도망갔다가 말을 듣고 신이 가서 보았더니 집은 이미 텅비어 있었으며, 다시 안정의 집에 갔더니 역시 집이 비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는 길에 차례로 정치신(丁致愼)·조철(趙鐵)을 만나보고 돌아왔습니다. 이달 3일에 호산군이 종을 보냈으므로, 가서 만났더니, 술 한 잔을 주어 마시게 하였습니다. 신이 ‘서울 일을 듣고자 한다.’고 하였더니 호산군이 ‘반드시 들을 것이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신이 ‘안가(安哥)의 일이 매우 괴이하다.’고 하였더니, 호산군이 ‘어찌 말을 꺼낼 필요가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을 머물게 하여 해가 저물자 ‘술이 있으면 마땅히 마셔야 한다.’ 하고 이어 동임(洞任) 20여 명을 불러 호산군이 호령하여서 신을 잡아 읍내(邑內)에 이르서 착가(着枷)264) 하여서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17권 7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38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 [註 264] 착가(着枷) : 죄인의 목에 칼을 씌움.
원문
○問尹興國、李溢。 初壺山君 檉稱有急變請對, 上引見於帳殿, 告李浩、尹興國等爲逆, 朝廷初以李浩爲亡命之李昈。 及拿問溢也, 興國不服, 溢供: "三月十二日, 安鎤弟安𤊟歷過臣曰: ‘欲見汝言事, 有客不得言, 往壺山君家矣。’ 當日二更, 壺山君乘藍輿, 率奴十餘人, 安𤊟乘馬來索, 臣出見則壺山以爲: ‘不從容, 坐內房得酒而飮之。’ 𤊟謂壺山曰: ‘夜深宜還歸。’ 臣陪行過一丘隅, 還家則𤊟更來呼臣曰: ‘汝知近來騷屑乎?’ 臣答不知, 𤊟曰: ‘此乃我國騷屑。 我兄以汝爲可欲使之, 而汝不省事。 若漏泄, 則大事出, 吾姑不詳說於汝, 而五六日後, 自當知之, 雖妻子, 亦勿漏泄也。’ 𤊟携手往壺山家, 至半道無人處, 𤊟使臣往報壺山曰: ‘我在此, 與女壻申宅周同來, 勿乘藍輿也。’ 臣欲勿往, 則𤊟曰: ‘到此地, 若不聽, 則當遭大事。’ 臣不得已往報, 則壺山與其壻申哥, 携杖而出, 同坐細語, 𤊟謂壺山曰: ‘若如此, 則令監必不能爲事。’ 壺山答曰: ‘我若爲人後, 則豈不若乎?’ 已而又細語數轉不得聞。 壺山曰: ‘保全則此亦君, 彼亦君, 豈關係乎?’ 壺山又謂𤊟曰: ‘從容相會一話則好矣。 路傍駭人視可罷矣。’ 臣先還。 日暮時, 𤊟送錢于臣曰: ‘以此沽酒, 汝家有鷄犬則殺之, 會于壺山家。’ 臣觀其氣色殊常, 不勝悚懼。 沽酒殺鷄, 往于壺山家, 則壺山與其子壻及𤊟, 同坐唱歌, 𤊟歌辭中, 屢唱, 非無信一句而不記, 鷄唱後罷會。 十五日夜, 聞壺山撤家亡去, 臣往見, 則宅已空矣, 又往安𤊟家, 則亦空。 來路歷見丁致愼、趙鐵而歸。 今月初三日, 壺山君送奴, 臣往見, 則飮以一盃酒。 臣言欲聞京事, 則壺山答以不必聞。 臣曰: ‘安哥事極怪異。’ 壺山曰: ‘何必提說?’ 留臣至日暮曰: ‘有酒當飮之。’ 仍招洞任二十餘名, 壺山號令捉臣至邑內, 着枷上京。"
- 【태백산사고본】 14책 17권 7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38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영조실록17권, 영조 4년 4월 6일 丙戌 10/11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이일 공초
국역
윤흥국(尹興國)과 이일(李溢)을 신문하였다. 처음에 호산군(壺山君) 정(檉)이 급변(急變)이 있다고 일컬으면서 청대(請對)하므로, 임금이 장전(帳殿)에서 인견(引見)하니, 이호(李浩)·윤흥국(尹興國) 등이 역모(逆謀)를 한다고 고하였는데, 조정에서는 처음에 이호를 망명(亡命)한 이호(李昈)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일을 잡아다 문초(問招)하자, 윤흥국은 불복(不服)하고 이일은 공초하기를,
"3월 12일에 안엽(安熀)의 아우 안정(安𤊟)이 신의 집을 지나면서 말하기를, ‘너를 보고 일을 말하려고 했으나 손님이 있어서 말을 할 수가 없으므로 호산군의 집으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날 2경(二更)에 호산군은 남여(藍輿)를 타고서 종10여 인을 거느리고, 안정은 말을 타고 와서 찾기에 신이 나가서 만났더니, 호산군이 ‘조용하지 못하니 안방에 앉아 술을 얻어 마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안정이 호산군에게 ‘밤이 깊었으니 마땅히 돌아가야 합니다.’ 하므로, 신이 배행(陪行)하여 한 언덕 모퉁이를 넘겨주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안정이 다시 와서 신을 불러 ‘너는 근래의 소란스런 일을 아느냐?’ 하기에, 신이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더니, 안정이 ‘이것은 곧 우리 나라의 소란스러움이다. 나의 형님이 너를 쓸만하다 하여 일을 시키고자 하지만, 네가 일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만약 누설된다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내가 우선 너에게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만, 5, 6일 뒤에는 스스로 마땅히 알게 될 것이니, 비록 처자(妻子)일지라도 누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안정이 손을 이끌고 호산군의 집으로 갔는데, 반쯤 가서 사람 없는 곳에 이르자 안정은 신으로 하여금 가서 호산군에게 ‘내가 여기에 있으니, 여서(女壻) 신택주(申宅周)와 함께 오되 남여는 타지 말게 하라.’고 알리게 하였습니다. 신이 가려고 하지 않으니, 안정이 ‘이곳까지 와서 만약 듣지 않는다면 마땅히 큰 일을 당할 것이다.’라고 하므로, 신이 어쩔 수 없이 가서 알렸습니다. 호산군이 그 사위 신가(申哥)와 함께 지팡이를 끌고 나와 자리에 함께 하여 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하였는데, 안정이 호산군에게 ‘만약 이와 같다면 영감(令監)께서는 반드시 능히 일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니, 호산군이 대답하기를, ‘내가 만약 남의 뒷전이 된다면 어찌 괴롭지 않겠는가?’ 하였으며, 조금 있다가 또 나즈막한 말이 몇 번 오고 갔으나 듣지 못하였습니다. 호산군이 ‘만약 보전(保全)된다면 여기도 임금이고 그도 임금이니 어찌 관계하겠는가?’라고 하였으며, 또 안정에게 ‘조용히 서로 만나서 한 번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길 옆이 되어 사람의 보는 눈이 놀라게 될 것이니, 자리를 파(罷)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기에, 신이 먼저 돌아왔습니다.
해가 저물 때에 안정이 신에게 돈을 보내면서 ‘이것으로 술을 사고 너희 집에 닭이나 개가 있으면 이를 잡아 호산군의 집에 모이자.’고 하였으니, 신은 그 기색(氣色)이 수상함을 보고서 두려워 떨림을 견디지 못하였습니다. 술과 사고 닭을 잡아 호산군의 집으로 갔더니, 호산군이 아들·사위 및 안정과 같이 앉아 노래를 불렀는데, 안정의 가사(歌辭) 중에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非無信]’라는 한 구절을 여러 번 불렀으나, 기억하지 못하며 닭이 운 뒤에야 모임을 파하였습니다. 15일 밤에 호산군이 집을 닫고 도망갔다가 말을 듣고 신이 가서 보았더니 집은 이미 텅비어 있었으며, 다시 안정의 집에 갔더니 역시 집이 비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는 길에 차례로 정치신(丁致愼)·조철(趙鐵)을 만나보고 돌아왔습니다. 이달 3일에 호산군이 종을 보냈으므로, 가서 만났더니, 술 한 잔을 주어 마시게 하였습니다. 신이 ‘서울 일을 듣고자 한다.’고 하였더니 호산군이 ‘반드시 들을 것이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신이 ‘안가(安哥)의 일이 매우 괴이하다.’고 하였더니, 호산군이 ‘어찌 말을 꺼낼 필요가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을 머물게 하여 해가 저물자 ‘술이 있으면 마땅히 마셔야 한다.’ 하고 이어 동임(洞任) 20여 명을 불러 호산군이 호령하여서 신을 잡아 읍내(邑內)에 이르서 착가(着枷)264) 하여서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17권 7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38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 [註 264] 착가(着枷) : 죄인의 목에 칼을 씌움.
원문
○問尹興國、李溢。 初壺山君 檉稱有急變請對, 上引見於帳殿, 告李浩、尹興國等爲逆, 朝廷初以李浩爲亡命之李昈。 及拿問溢也, 興國不服, 溢供: "三月十二日, 安鎤弟安𤊟歷過臣曰: ‘欲見汝言事, 有客不得言, 往壺山君家矣。’ 當日二更, 壺山君乘藍輿, 率奴十餘人, 安𤊟乘馬來索, 臣出見則壺山以爲: ‘不從容, 坐內房得酒而飮之。’ 𤊟謂壺山曰: ‘夜深宜還歸。’ 臣陪行過一丘隅, 還家則𤊟更來呼臣曰: ‘汝知近來騷屑乎?’ 臣答不知, 𤊟曰: ‘此乃我國騷屑。 我兄以汝爲可欲使之, 而汝不省事。 若漏泄, 則大事出, 吾姑不詳說於汝, 而五六日後, 自當知之, 雖妻子, 亦勿漏泄也。’ 𤊟携手往壺山家, 至半道無人處, 𤊟使臣往報壺山曰: ‘我在此, 與女壻申宅周同來, 勿乘藍輿也。’ 臣欲勿往, 則𤊟曰: ‘到此地, 若不聽, 則當遭大事。’ 臣不得已往報, 則壺山與其壻申哥, 携杖而出, 同坐細語, 𤊟謂壺山曰: ‘若如此, 則令監必不能爲事。’ 壺山答曰: ‘我若爲人後, 則豈不若乎?’ 已而又細語數轉不得聞。 壺山曰: ‘保全則此亦君, 彼亦君, 豈關係乎?’ 壺山又謂𤊟曰: ‘從容相會一話則好矣。 路傍駭人視可罷矣。’ 臣先還。 日暮時, 𤊟送錢于臣曰: ‘以此沽酒, 汝家有鷄犬則殺之, 會于壺山家。’ 臣觀其氣色殊常, 不勝悚懼。 沽酒殺鷄, 往于壺山家, 則壺山與其子壻及𤊟, 同坐唱歌, 𤊟歌辭中, 屢唱, 非無信一句而不記, 鷄唱後罷會。 十五日夜, 聞壺山撤家亡去, 臣往見, 則宅已空矣, 又往安𤊟家, 則亦空。 來路歷見丁致愼、趙鐵而歸。 今月初三日, 壺山君送奴, 臣往見, 則飮以一盃酒。 臣言欲聞京事, 則壺山答以不必聞。 臣曰: ‘安哥事極怪異。’ 壺山曰: ‘何必提說?’ 留臣至日暮曰: ‘有酒當飮之。’ 仍招洞任二十餘名, 壺山號令捉臣至邑內, 着枷上京。"
- 【태백산사고본】 14책 17권 7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38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