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7권, 영조 4년 4월 5일 乙酉 8/8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나숭대 공초
국역
나숭대(羅崇大)에게 물으니, 나숭대가 공초하기를,
"신은 이호(李昈)와 전후(前後)에 서로 본 일이 없고, 금년 2월에 이호가 나숭의(羅崇誼)를 찾아 보고 와서 신을 만났습니다. 신의 7촌 나만치(羅晩致)는 괴이한 인물로서 문식(文識)도 없고 무략(武略)도 없으면서 발자취가 닿지 않는 곳이 없어 삼남(三南) 지방의 인물로 서로 알지 못하는 이가 없습니다. 이호가 말하기를, ‘원례(元禮)와 서로 친하다.’고 하였는데, 원례는 곧 나만치의 자(字) 입니다. 밤에 같이 잘 때에 이호가 신의 의중을 넌지시 떠보기를, ‘그대는 호남(湖南)의 세가(世家)로서 이처럼 침체(沈滯)되었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나의 조부(祖父) 같은 분도 과거에 오로지 못하였는데, 나 같은 자가 어찌 지나친 바람이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이호가 말하기를, ‘남아(男兒)가 문관(文官)·무관(武官)이 되는 외에 어찌 다른 방도(方道)가 없겠는가?’ 하기에, 신이 웃으며, ‘준마(駿馬)와 가희(佳姬)가 또한 남아의 일이지마는 궁곤한 선비가 또한 어찌 쉽게 마련하겠는가?’고 하였더니, 이호가 전마(戰馬)를 사려면 값이 얼마인가?’고 하길래 신이 ‘좋으면 백금(百金)이나 들고 적더라도 30냥(兩)을 밑돌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이호의 말이 또 나만치의 아우 진사(進士) 나만서(羅晩瑞) 및 나만규(羅晩揆)에게 미쳐서 ‘이 세 사람은 나와 더불어 정의(情誼)가 자별하다.’고 하고, 또 ‘나만서의 아들에 아명(兒名)이 갑손(甲孫)이라는 자는 웅재 장략(雄才將略)이 있다'고 하며 칭찬하여 마지않았으니, 갑손은 곧 청주(淸州)의 적괴(賊魁) 이인좌(李麟佐)의 매부(妹夫)이고, 나만규의 사위는 또 이인좌의 막내아우입니다. 이오의 말이 또 정원형(鄭元亨)에 미쳤는데, 이 사람은 자(字)가 백숙(伯叔)이고 청파(靑坡)에 사는 자로 ‘조만간에 마땅히 그대를 찾게 될 것이다.’고 하기에, 신이 ‘어떤 사람인가?’ 하고 물었더니, ‘색목(色目)은 남소북(南小北)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수작(酬酌)하고서 자리를 파하였던 것입니다. 이호가 처음 이름을 통할 때에 이름을 이만(李晩)이라 하였는데, 간 뒤에 신이 나숭의에게 ‘이만이 너를 찾아왔다가 네가 진잠(鎭岑)에 갔기 때문에, 내 집에서 자고 갔다.’고 하였더니, 나숭의가 그 형상(形狀)을 묻고서 말하기를, ‘이는 이만이 아니라, 곧 ‘날일[日]’자 변에, ‘지게 호(戶), 자를 한 글자를 이름으로 하는 자다.’고 하였으므로, 신이 비로소 그 성명(姓名)을 변환(變幻)하여 종적(踪迹)이 수상한 것을 의심하였습니다. 그 후에 정생(鄭生)이 찾아왔으나 신이 밖에 나갔다고 핑계대고 만나지 않았으니, 이는 이만의 말을 의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생은 나두동(羅斗冬)의 집에서 자고 돌아갔으니, 신이 과연 이와 더불어 동모(同謨)하였다면 어찌 이만이 부탁한 정생을 만나지 않을 이치가 있었겠습니까? 대저 이 화근(禍根)을 양성(養成)한 자는 나만치가 수괴(首魁)가 되는데, 나만치가 비록 신과 7촌의 사이나 일찍이 틈이 있었습니다. 나만치가 이미 청주(淸州)의 역모(逆謀)에 참여하였다면 어찌 괘서(掛書)의 변(變)에 참여하지 않았겠습니까? 신의 가정(家丁)258) 이 10명에도 차지 않으니, 설령 신이 참으로 불측(不測)한 마음이 있었을지라도 어느 곳에서 군사를 얻어 거느리고 가겠습니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17권 6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37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 [註 258] 가정(家丁) : 자기 집에서 부리는 남자 일꾼.
원문
○問羅崇大, 崇大供: "臣與李昈, 前後無相見之事, 今年二月, 昈訪羅崇誼而來, 歷見臣。 臣七寸羅晩致, 怪異人, 不文不武, 足跡無不到, 三南人物, 無不相知。 昈言: ‘與元禮相親。’ 元禮, 卽晩致字也。 夜間同宿之際, 昈探臣意曰: ‘君以湖南世家, 沈滯如此, 得無鬱鬱乎?’ 臣答以祖父不第, 如吾者有何過望? 昈曰: ‘男兒文武之外, 豈無他道?’ 臣笑曰: ‘駿馬、佳姬, 亦是男兒事, 而窮儒亦豈易辨耶?’ 昈曰: ‘欲買戰馬, 則價幾何?’ 臣曰: ‘好則百金, 少不下三十兩。’ 昈又語及晩致弟進士晩瑞及晩揆曰: ‘此三人, 與吾情誼自別。’ 又曰: ‘晩瑞之子兒名甲孫者, 有雄才將略, ' 稱贊不已, 甲孫, 卽淸州賊魁李麟佐之妹夫, 晩揆壻, 又麟佐之末弟也。 昈, 又語及鄭元亨, 字伯叔, 居靑坡者曰: ‘早晩當使訪君矣。’ 臣問何如人? 答曰: ‘色目, 則南小北也。’ 如是酬酢而罷。 昈初通名時, 以晩爲名, 去後臣問于崇誼曰: ‘李晩爲尋汝而來, 汝往鎭岑, 故宿吾家而去矣。’ 崇誼問其形狀曰: ‘此非李晩, 乃日邊戶爲名者也。’ 臣始疑其變幻姓名, 蹤跡殊常。 其後鄭生來訪, 而臣托出去不見, 蓋疑李晩之言也。 鄭生宿於羅斗冬家而還歸, 臣果與同謀, 則豈有不見李晩所托鄭生之理耶? 大抵釀此禍根者, 羅晩致爲首, 晩致與臣, 雖七寸間, 而曾有隙矣。 晩致旣參於淸州逆謀, 則豈不參於掛書之變乎? 臣之家丁, 不滿十名, 設令臣眞有不測之心, 何處得軍而領去乎?"
- 【태백산사고본】 14책 17권 6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37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영조실록17권, 영조 4년 4월 5일 乙酉 8/8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나숭대 공초
국역
나숭대(羅崇大)에게 물으니, 나숭대가 공초하기를,
"신은 이호(李昈)와 전후(前後)에 서로 본 일이 없고, 금년 2월에 이호가 나숭의(羅崇誼)를 찾아 보고 와서 신을 만났습니다. 신의 7촌 나만치(羅晩致)는 괴이한 인물로서 문식(文識)도 없고 무략(武略)도 없으면서 발자취가 닿지 않는 곳이 없어 삼남(三南) 지방의 인물로 서로 알지 못하는 이가 없습니다. 이호가 말하기를, ‘원례(元禮)와 서로 친하다.’고 하였는데, 원례는 곧 나만치의 자(字) 입니다. 밤에 같이 잘 때에 이호가 신의 의중을 넌지시 떠보기를, ‘그대는 호남(湖南)의 세가(世家)로서 이처럼 침체(沈滯)되었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나의 조부(祖父) 같은 분도 과거에 오로지 못하였는데, 나 같은 자가 어찌 지나친 바람이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이호가 말하기를, ‘남아(男兒)가 문관(文官)·무관(武官)이 되는 외에 어찌 다른 방도(方道)가 없겠는가?’ 하기에, 신이 웃으며, ‘준마(駿馬)와 가희(佳姬)가 또한 남아의 일이지마는 궁곤한 선비가 또한 어찌 쉽게 마련하겠는가?’고 하였더니, 이호가 전마(戰馬)를 사려면 값이 얼마인가?’고 하길래 신이 ‘좋으면 백금(百金)이나 들고 적더라도 30냥(兩)을 밑돌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이호의 말이 또 나만치의 아우 진사(進士) 나만서(羅晩瑞) 및 나만규(羅晩揆)에게 미쳐서 ‘이 세 사람은 나와 더불어 정의(情誼)가 자별하다.’고 하고, 또 ‘나만서의 아들에 아명(兒名)이 갑손(甲孫)이라는 자는 웅재 장략(雄才將略)이 있다'고 하며 칭찬하여 마지않았으니, 갑손은 곧 청주(淸州)의 적괴(賊魁) 이인좌(李麟佐)의 매부(妹夫)이고, 나만규의 사위는 또 이인좌의 막내아우입니다. 이오의 말이 또 정원형(鄭元亨)에 미쳤는데, 이 사람은 자(字)가 백숙(伯叔)이고 청파(靑坡)에 사는 자로 ‘조만간에 마땅히 그대를 찾게 될 것이다.’고 하기에, 신이 ‘어떤 사람인가?’ 하고 물었더니, ‘색목(色目)은 남소북(南小北)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수작(酬酌)하고서 자리를 파하였던 것입니다. 이호가 처음 이름을 통할 때에 이름을 이만(李晩)이라 하였는데, 간 뒤에 신이 나숭의에게 ‘이만이 너를 찾아왔다가 네가 진잠(鎭岑)에 갔기 때문에, 내 집에서 자고 갔다.’고 하였더니, 나숭의가 그 형상(形狀)을 묻고서 말하기를, ‘이는 이만이 아니라, 곧 ‘날일[日]’자 변에, ‘지게 호(戶), 자를 한 글자를 이름으로 하는 자다.’고 하였으므로, 신이 비로소 그 성명(姓名)을 변환(變幻)하여 종적(踪迹)이 수상한 것을 의심하였습니다. 그 후에 정생(鄭生)이 찾아왔으나 신이 밖에 나갔다고 핑계대고 만나지 않았으니, 이는 이만의 말을 의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생은 나두동(羅斗冬)의 집에서 자고 돌아갔으니, 신이 과연 이와 더불어 동모(同謨)하였다면 어찌 이만이 부탁한 정생을 만나지 않을 이치가 있었겠습니까? 대저 이 화근(禍根)을 양성(養成)한 자는 나만치가 수괴(首魁)가 되는데, 나만치가 비록 신과 7촌의 사이나 일찍이 틈이 있었습니다. 나만치가 이미 청주(淸州)의 역모(逆謀)에 참여하였다면 어찌 괘서(掛書)의 변(變)에 참여하지 않았겠습니까? 신의 가정(家丁)258) 이 10명에도 차지 않으니, 설령 신이 참으로 불측(不測)한 마음이 있었을지라도 어느 곳에서 군사를 얻어 거느리고 가겠습니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17권 6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37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
- [註 258] 가정(家丁) : 자기 집에서 부리는 남자 일꾼.
원문
○問羅崇大, 崇大供: "臣與李昈, 前後無相見之事, 今年二月, 昈訪羅崇誼而來, 歷見臣。 臣七寸羅晩致, 怪異人, 不文不武, 足跡無不到, 三南人物, 無不相知。 昈言: ‘與元禮相親。’ 元禮, 卽晩致字也。 夜間同宿之際, 昈探臣意曰: ‘君以湖南世家, 沈滯如此, 得無鬱鬱乎?’ 臣答以祖父不第, 如吾者有何過望? 昈曰: ‘男兒文武之外, 豈無他道?’ 臣笑曰: ‘駿馬、佳姬, 亦是男兒事, 而窮儒亦豈易辨耶?’ 昈曰: ‘欲買戰馬, 則價幾何?’ 臣曰: ‘好則百金, 少不下三十兩。’ 昈又語及晩致弟進士晩瑞及晩揆曰: ‘此三人, 與吾情誼自別。’ 又曰: ‘晩瑞之子兒名甲孫者, 有雄才將略, ' 稱贊不已, 甲孫, 卽淸州賊魁李麟佐之妹夫, 晩揆壻, 又麟佐之末弟也。 昈, 又語及鄭元亨, 字伯叔, 居靑坡者曰: ‘早晩當使訪君矣。’ 臣問何如人? 答曰: ‘色目, 則南小北也。’ 如是酬酢而罷。 昈初通名時, 以晩爲名, 去後臣問于崇誼曰: ‘李晩爲尋汝而來, 汝往鎭岑, 故宿吾家而去矣。’ 崇誼問其形狀曰: ‘此非李晩, 乃日邊戶爲名者也。’ 臣始疑其變幻姓名, 蹤跡殊常。 其後鄭生來訪, 而臣托出去不見, 蓋疑李晩之言也。 鄭生宿於羅斗冬家而還歸, 臣果與同謀, 則豈有不見李晩所托鄭生之理耶? 大抵釀此禍根者, 羅晩致爲首, 晩致與臣, 雖七寸間, 而曾有隙矣。 晩致旣參於淸州逆謀, 則豈不參於掛書之變乎? 臣之家丁, 不滿十名, 設令臣眞有不測之心, 何處得軍而領去乎?"
- 【태백산사고본】 14책 17권 6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37면
- 【분류】사법-재판(裁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