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6권, 영조 4년 3월 28일 戊寅 2/12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오명항에게 개선치 말고 민들을 진정시킬 것을 유시하다
국역
도순무사 오명항에게 유시하기를,
"경은 단번에 미친 적을 소탕해 섬멸하였는데도 전열(前列)의 한 졸병도 잃지 않았으니, 전고(前古)에 없던 일이다. 이는 오직 경이 충의(忠義)를 분발한 효험으로 내가 실로 가상하게 여겨 겨우 포양(褒揚)해 유시한 바 있었다. 외방의 노천(露天)에서 지낸 지 이제 이미 여러 날이 되어 마땅히 즉시 개선(凱旋)하여 서울로 돌아오게 해야 할 것이나, 다만 생각건대, 미친 적들이 좌전(左甸) 6, 7읍(邑)에서 소란을 일으켜 백성들이 놀라 흩어져 여염의 마을이 거의 비게 되었다. 게다가 군사를 일으킨 탓으로 번거로운 비용이 여지가 없고, 간혹 그릇되게 적과 내통하였다가 문득 다시 깨닫고도 놀라고 의심하여 아직 진정되지 않은 자도 있으려니와, 또한 협종(脅從)한 무리로 패산(敗散)하여 도망한 자도 있을 것이니, 이는 모름지기 경이 한동안 머물면서 진정시켜 흩어져 도망한 자는 불러모아 구업(舊業)을 회복하게 하고,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자는 융석(融釋)시켜 스스로 앞길을 막게 함이 없게 해야 할 것이다. 또 굶주리고 지친 백성을 진대(賑貸)해 구제하여 때에 미쳐 있는 힘을 다하여 농사짓는 데 진력할 것을 늦추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거듭 생각하건대, 잘못 생각하고 협종한 자도 비록 한결같이 탕척(蕩滌)하는데 들어 있지만, 그 흉악하고 교활하게 역모하여 적의 심복(心腹)이 된 부류는 반드시 끝까지 체포해서 탕멸하여 그 역기(逆氣)로 하여금 싸늘하게 식게 한 후에야 비로소 영원한 안녕을 기할 수 있으니, 이것 역시 모름지기 경이 한 번 수고해야 할 것이다. 지금 호남 번신(藩臣)의 장계를 다시 보건대, 이달 23일 운봉 현감(雲峰縣監) 손명대(孫命大)의 치보(馳報)에 일컫기를, ‘안음에 적도가 크게 모여 방자하게 창고의 곡식을 먹고 군기(軍器)를 약탈하여 본현에서 이미 수백 명의 군사를 다 내어 영애(嶺隘)를 막고 있다.’ 하였으니, 적도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그들이 불러모아 함부로 날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시 양남(兩南)의 수신(帥臣)과 도신(道臣)에게 분부하여 즉시 편의에 따라 토멸하게 하였는데, 향후의 일은 조정에서 멀리서 지휘하기가 어려우니, 경은 깊이 생각하여 호남·영남 사이의 편리하고 합당한 곳으로 진주(進駐)하여 척후(斥候)를 많이 풀어 적의 정세를 자세히 탐지하고, 모든 영(營)의 여러 진(陣)을 잘 지휘하여 기회를 엿보아 편한 때에 즉시 소탕하여 남쪽을 돌보아야 할 근심을 누그러뜨리도록 하라. 경이 거느린 마군(馬軍)은 우선 머물러 두고, 보군(步軍)은 경이 주둔하고 있는 가까운 영의 군사와 교체하고, 경병(京兵) 잡색(雜色)은 늙은이와 약한 자를 뽑아 돌려보내고 단지 정장(丁壯)만 머물러 두도록 하라."
하였다. 이때 오명항이 청주에 도착하여 영남의 적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는 추풍령(秋風嶺)을 넘어 행군하려 하다가 재의 길이 험하여 적이 매복해 있을까 염려하니, 종사관(從事官) 박문수(朴文秀)가 청하기를,
"제가 단군(單軍)으로 빨리 달려 조령(鳥嶺)을 따라 가면서 안동(安東)의 별포수(別砲手)를 거두어서 곧바로 적의 소굴로 쳐들어갈 터이니, 대군(大軍)은 다시 적이 물러갔다는 보고를 들은 뒤에 진지(進止)하소서."
하니, 오명항이 허락하였다. 박문수가 군중에서 따라가기를 원하는 자를 모집하여 정졸(精卒) 1백 수십 명을 얻어 교련관(敎鍊官) 권희학(權喜學)으로 하여금 거느리게 하였다. 장차 가려고 하는데, 오명항이 박문수에게 묻기를,
"종사관이 재의 길을 잘 알고 있으니, 대군이 재를 넘는 데 매복한 적이 없을 것을 보장하겠는가?"
하니, 박문수가 말하기를,
"적이 안음에서 일어났는데, 선산진(善山鎭)이 그 앞에 막혀 있고 상주(尙州)가 또 선산의 뒤에 있어 적이 반드시 이 두 진을 깨뜨리지 못할 것이니, 만약 군사가 행군하여 영을 지나가는데 적이 이미 길을 막고 있다면, 청컨대 이 박문수를 참하소서."
하니, 오명항이 박문수와 군사를 이끌고 추풍령을 넘었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32면
원문
○諭都巡撫使吳命恒曰:
卿一擧蕩滅狂寇, 而不損顔行一卒, 古未有也。 玆惟卿忠義奮發之效, 予實嘉焉, 纔有褒諭。 而暴露於外, 今旣多日, 宜令卽時振凱還京, 但念狂寇所擾亂左甸六七邑人民駭散, 閭里殆空。 重以師興, 煩費蕭然, 間有詿誤通賊, 旋復覺悟而驚疑未定者, 亦或有脅從之類, 敗散而奔還者, 此須卿淹留鎭安散亡者, 招集復其舊業, 疑懼者融釋, 俾無自阻。 仍且賑貸饑疲, 及此時盡力耕農, 不可緩也。 重念詿誤脅從, 雖在於一幷蕩滌, 若其凶狡驚逆, 爲賊腹心之類, 必須窮捕蕩滅, 使逆氣索然灰冷, 然後方可以期永寧, 玆亦須卿一勞。 卽者復見湖南藩臣狀聞, 今月二十三日, 雲峰縣監孫命大馳報, 稱安陰賊徒大聚, 恣食倉穀, 掠奪軍器, 本縣旣盡發數百兵, 防守嶺隘, 未知賊徒, 果爲幾何, 而其嘯聚狂肆則可見爾。 卽分付兩南帥臣、道臣, 俾卽便宜勦討, 而向後事, 朝廷遠難指揮, 卿其深思, 進住湖、嶺間便當處, 多發斥候, 細探賊情, 諸營列陣, 善爲指授, 相機乘便, 卽爲掃蕩, 以寬南顧之憂。 卿之所領馬軍, 姑令留在, 步軍以卿所住附近營軍, 隨便交替, 京兵雜色, 抄還其老殘, 只留丁壯。 時, 命恒到淸州, 聞嶺賊之起, 欲踰秋風嶺行師, 慮嶺路險阻, 有賊伏, 從事官朴文秀請自以單師疾馳, 從鳥嶺, 行且收安東別砲手, 直擣賊巢, 大軍則更聞賊報進止。 命恒許之。 文秀募軍中願從者, 得精卒一百數十人, 使敎鍊官權喜學領之, 將行。 命恒復問文秀曰: "從事熟知嶺路, 大軍踰嶺, 可保無賊伏乎?" 文秀曰: "賊起安陰, 善山鎭拒其前, 尙州又在善山之後, 賊必不能破此兩鎭, 若行師過嶺, 而賊已遮路, 請斬文秀。" 命恒與文秀引兵踰秋風嶺。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32면
영조실록16권, 영조 4년 3월 28일 戊寅 2/12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오명항에게 개선치 말고 민들을 진정시킬 것을 유시하다
국역
도순무사 오명항에게 유시하기를,
"경은 단번에 미친 적을 소탕해 섬멸하였는데도 전열(前列)의 한 졸병도 잃지 않았으니, 전고(前古)에 없던 일이다. 이는 오직 경이 충의(忠義)를 분발한 효험으로 내가 실로 가상하게 여겨 겨우 포양(褒揚)해 유시한 바 있었다. 외방의 노천(露天)에서 지낸 지 이제 이미 여러 날이 되어 마땅히 즉시 개선(凱旋)하여 서울로 돌아오게 해야 할 것이나, 다만 생각건대, 미친 적들이 좌전(左甸) 6, 7읍(邑)에서 소란을 일으켜 백성들이 놀라 흩어져 여염의 마을이 거의 비게 되었다. 게다가 군사를 일으킨 탓으로 번거로운 비용이 여지가 없고, 간혹 그릇되게 적과 내통하였다가 문득 다시 깨닫고도 놀라고 의심하여 아직 진정되지 않은 자도 있으려니와, 또한 협종(脅從)한 무리로 패산(敗散)하여 도망한 자도 있을 것이니, 이는 모름지기 경이 한동안 머물면서 진정시켜 흩어져 도망한 자는 불러모아 구업(舊業)을 회복하게 하고,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자는 융석(融釋)시켜 스스로 앞길을 막게 함이 없게 해야 할 것이다. 또 굶주리고 지친 백성을 진대(賑貸)해 구제하여 때에 미쳐 있는 힘을 다하여 농사짓는 데 진력할 것을 늦추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거듭 생각하건대, 잘못 생각하고 협종한 자도 비록 한결같이 탕척(蕩滌)하는데 들어 있지만, 그 흉악하고 교활하게 역모하여 적의 심복(心腹)이 된 부류는 반드시 끝까지 체포해서 탕멸하여 그 역기(逆氣)로 하여금 싸늘하게 식게 한 후에야 비로소 영원한 안녕을 기할 수 있으니, 이것 역시 모름지기 경이 한 번 수고해야 할 것이다. 지금 호남 번신(藩臣)의 장계를 다시 보건대, 이달 23일 운봉 현감(雲峰縣監) 손명대(孫命大)의 치보(馳報)에 일컫기를, ‘안음에 적도가 크게 모여 방자하게 창고의 곡식을 먹고 군기(軍器)를 약탈하여 본현에서 이미 수백 명의 군사를 다 내어 영애(嶺隘)를 막고 있다.’ 하였으니, 적도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그들이 불러모아 함부로 날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시 양남(兩南)의 수신(帥臣)과 도신(道臣)에게 분부하여 즉시 편의에 따라 토멸하게 하였는데, 향후의 일은 조정에서 멀리서 지휘하기가 어려우니, 경은 깊이 생각하여 호남·영남 사이의 편리하고 합당한 곳으로 진주(進駐)하여 척후(斥候)를 많이 풀어 적의 정세를 자세히 탐지하고, 모든 영(營)의 여러 진(陣)을 잘 지휘하여 기회를 엿보아 편한 때에 즉시 소탕하여 남쪽을 돌보아야 할 근심을 누그러뜨리도록 하라. 경이 거느린 마군(馬軍)은 우선 머물러 두고, 보군(步軍)은 경이 주둔하고 있는 가까운 영의 군사와 교체하고, 경병(京兵) 잡색(雜色)은 늙은이와 약한 자를 뽑아 돌려보내고 단지 정장(丁壯)만 머물러 두도록 하라."
하였다. 이때 오명항이 청주에 도착하여 영남의 적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는 추풍령(秋風嶺)을 넘어 행군하려 하다가 재의 길이 험하여 적이 매복해 있을까 염려하니, 종사관(從事官) 박문수(朴文秀)가 청하기를,
"제가 단군(單軍)으로 빨리 달려 조령(鳥嶺)을 따라 가면서 안동(安東)의 별포수(別砲手)를 거두어서 곧바로 적의 소굴로 쳐들어갈 터이니, 대군(大軍)은 다시 적이 물러갔다는 보고를 들은 뒤에 진지(進止)하소서."
하니, 오명항이 허락하였다. 박문수가 군중에서 따라가기를 원하는 자를 모집하여 정졸(精卒) 1백 수십 명을 얻어 교련관(敎鍊官) 권희학(權喜學)으로 하여금 거느리게 하였다. 장차 가려고 하는데, 오명항이 박문수에게 묻기를,
"종사관이 재의 길을 잘 알고 있으니, 대군이 재를 넘는 데 매복한 적이 없을 것을 보장하겠는가?"
하니, 박문수가 말하기를,
"적이 안음에서 일어났는데, 선산진(善山鎭)이 그 앞에 막혀 있고 상주(尙州)가 또 선산의 뒤에 있어 적이 반드시 이 두 진을 깨뜨리지 못할 것이니, 만약 군사가 행군하여 영을 지나가는데 적이 이미 길을 막고 있다면, 청컨대 이 박문수를 참하소서."
하니, 오명항이 박문수와 군사를 이끌고 추풍령을 넘었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32면
원문
○諭都巡撫使吳命恒曰:
卿一擧蕩滅狂寇, 而不損顔行一卒, 古未有也。 玆惟卿忠義奮發之效, 予實嘉焉, 纔有褒諭。 而暴露於外, 今旣多日, 宜令卽時振凱還京, 但念狂寇所擾亂左甸六七邑人民駭散, 閭里殆空。 重以師興, 煩費蕭然, 間有詿誤通賊, 旋復覺悟而驚疑未定者, 亦或有脅從之類, 敗散而奔還者, 此須卿淹留鎭安散亡者, 招集復其舊業, 疑懼者融釋, 俾無自阻。 仍且賑貸饑疲, 及此時盡力耕農, 不可緩也。 重念詿誤脅從, 雖在於一幷蕩滌, 若其凶狡驚逆, 爲賊腹心之類, 必須窮捕蕩滅, 使逆氣索然灰冷, 然後方可以期永寧, 玆亦須卿一勞。 卽者復見湖南藩臣狀聞, 今月二十三日, 雲峰縣監孫命大馳報, 稱安陰賊徒大聚, 恣食倉穀, 掠奪軍器, 本縣旣盡發數百兵, 防守嶺隘, 未知賊徒, 果爲幾何, 而其嘯聚狂肆則可見爾。 卽分付兩南帥臣、道臣, 俾卽便宜勦討, 而向後事, 朝廷遠難指揮, 卿其深思, 進住湖、嶺間便當處, 多發斥候, 細探賊情, 諸營列陣, 善爲指授, 相機乘便, 卽爲掃蕩, 以寬南顧之憂。 卿之所領馬軍, 姑令留在, 步軍以卿所住附近營軍, 隨便交替, 京兵雜色, 抄還其老殘, 只留丁壯。 時, 命恒到淸州, 聞嶺賊之起, 欲踰秋風嶺行師, 慮嶺路險阻, 有賊伏, 從事官朴文秀請自以單師疾馳, 從鳥嶺, 行且收安東別砲手, 直擣賊巢, 大軍則更聞賊報進止。 命恒許之。 文秀募軍中願從者, 得精卒一百數十人, 使敎鍊官權喜學領之, 將行。 命恒復問文秀曰: "從事熟知嶺路, 大軍踰嶺, 可保無賊伏乎?" 文秀曰: "賊起安陰, 善山鎭拒其前, 尙州又在善山之後, 賊必不能破此兩鎭, 若行師過嶺, 而賊已遮路, 請斬文秀。" 命恒與文秀引兵踰秋風嶺。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3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