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6권, 영조 4년 3월 27일 丁丑 8/17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최필번을 충군하고 한일운은 정배하다
국역
동부승지(同副承旨) 조현명(趙顯命)이 말하기를,
"죽산 부사(竹山府使) 최필번(崔必蕃)은 적의 관문(關文)을 보고 도망하여 양성(陽城)으로 숨었고, 현감(縣監) 한일운(韓日運)은 적을 보기도 전에 크게 놀라 밤중에 도주하였으니, 아울러 마땅히 별도로 논죄(論罪)하여야 합니다. 양성(陽城)의 좌수(座首)는 관병(官兵)을 이끌고 소사(素沙)에 와서 기다렸으니, 마땅히 가장(嘉奬)하여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하게 하여 최필번은 충군(充軍)하고, 한일운은 정배(定配)하고, 양성의 좌수 이사(李葸)는 상당한 직임을 제수하였다.
원문
영조 4년 (1728) 3월 27일
영조실록16권, 영조 4년 3월 27일 丁丑 8/17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최필번을 충군하고 한일운은 정배하다
국역
동부승지(同副承旨) 조현명(趙顯命)이 말하기를,
"죽산 부사(竹山府使) 최필번(崔必蕃)은 적의 관문(關文)을 보고 도망하여 양성(陽城)으로 숨었고, 현감(縣監) 한일운(韓日運)은 적을 보기도 전에 크게 놀라 밤중에 도주하였으니, 아울러 마땅히 별도로 논죄(論罪)하여야 합니다. 양성(陽城)의 좌수(座首)는 관병(官兵)을 이끌고 소사(素沙)에 와서 기다렸으니, 마땅히 가장(嘉奬)하여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의논해 처리하게 하여 최필번은 충군(充軍)하고, 한일운은 정배(定配)하고, 양성의 좌수 이사(李葸)는 상당한 직임을 제수하였다.
원문
원본
영조 4년 (1728) 3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