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6권, 영조 4년 3월 26일 丙子 10/15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정조윤·곽중희의 공초
국역
죄인 정조윤(鄭祚胤)을 문초하니, 정조윤이 공초하기를,
"신이 적중(賊中)에 있으면서 거짓으로 복병군(伏兵軍)으로 가기를 청했더니, 과연 허락하므로 정세윤(鄭世胤)의 가죽 주머니를 훔쳐가지고 왔습니다. 가죽 주머니에 든 것은 바로 가짜로 만든 비변사(備邊司)의 공사(公事)로 성지(聖旨)를 가탁하여 익산(益山)·여산(礪山)·고부(古阜)·부안(扶安) 등 네 고을에 분부하여 군사를 내어 변산의 적을 잡으라는 것이었는데, 실제로는 정세윤이 만든 것으로서 군사를 모으려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적이 이천(利川)으로 향하고자 하기에 신이 말하기를, ‘이와 같이 단약(單弱)한 군사를 가지고 어떻게 이런 거조를 하겠는가? 하였더니, 정세윤이 답하기를, ‘호남과 영남의 원군(援軍)을 네가 어찌 알겠느냐?’ 하였습니다. 신이 또 말하기를, ‘그대의 모역(謀逆)은 스스로 하려는 것인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인가?’ 하니, 정세윤이 답하기를, ‘장차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세윤은 부원수(副元帥)가 된 후에 이름을 행민(行旻)으로 고쳤습니다. 정세윤이 또 말하기를, ‘일이 실패하면 마땅히 조령(鳥嶺)을 넘어가야 한다.’ 하였습니다. 신이 죽산(竹山)에 가서 동병(動兵)하는 상황을 보고는 놀라움을 이기지 못해 밤중에 도주하면서 가죽 주머니를 훔쳐 가지고 와 여주(驪州) 관아에 고했습니다. 이인좌(李麟佐)가 그 무리 가운데서 가장 낫기 때문에 대원수(大元帥)로 삼고, 최경우(崔擎宇)는 상인(喪人)으로서 우장군(右將軍)이 되었습니다."
하였다. 곽중휘(郭重輝)를 문초하니, 곽중휘가 공초하기를,
"이달 17일에 신이 안성장(安城場)에 갔다가 적도를 만나 청주 병영(兵營)으로 몰려 들어갔는데, 들으니, 이인좌가 병사(兵使)가 되었다가 후에 대원수(大元帥)로 승격되었으며, 신씨(申氏) 성을 가진 사람이 그 대신 병사가 되고, 정세윤이 영장(營將)이 되었다가 후에 부원수가 되었으며, 곽장(郭長)이 목천 현감(木川縣監), 이지경(李之慶)이 진천 현감(鎭川縣監), 목함경(睦涵敬)이 청안 현감(淸安縣監)이 되었으며, 좌장군(左將軍)은 최경우(崔擎宇)였고, 우장군(右將軍)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가(李哥)였습니다. 각 고을의 군사를 모아 21일에 양영(兩營)이 습진(習陣)한 후에 산성으로 들어갔는데, 신은 뛰쳐 나올 수가 없어서 죽산(竹山)으로 따라 가다가 중도에서 도망하였습니다."
하니, 명하여 군문(軍門)에 회부하여 효시(梟示)한 후 노적(孥籍)을 추가해 행하도록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30면
원문
○問罪人鄭祚胤, 祚胤供: "臣在賊中, 詐以伏兵軍請往, 果許之, 盜鄭世胤皮囊而來。 皮囊所儲, 乃假造備邊司公事, 而假托聖旨, 分付益山、礪山、古阜、扶安等四邑, 發軍捕邊山賊, 鄭世胤實造之, 蓋出於聚軍之意。 賊欲向利川, 臣以爲: ‘以此單弱之軍, 何能作此擧措?’ 世胤答以湖南、嶺南之援兵, 汝何知之? 臣又曰: ‘君謀逆, 欲自爲之耶? 爲他人耶?’ 世胤答以將來自當知之。 世胤爲副元帥, 後改名行旻。 世胤又曰: ‘事敗則當踰鳥嶺而去。’ 云。 臣往見竹山動兵之狀, 不勝驚心, 夜半逃走, 偸來皮囊, 告驪州官。 李麟佐, 衆中最優, 故爲大元帥, 崔擎宇以喪人, 爲右將軍。" 問郭重輝, 重輝供: "今月十七日, 臣往安城場, 遇賊驅入淸州兵營, 聞李麟佐爲兵使, 後陞爲大元帥, 申姓人代爲兵使, 鄭世胤爲營將, 後陞爲副元帥, 郭長爲木川縣監, 李之慶爲鎭川縣監, 睦涵敬爲淸安縣監, 左將軍崔擎宇, 右將軍李哥名不記。 聚各邑軍, 二十一日兩營習陣後, 入山城, 臣不得出, 隨向竹山, 中路逃。" 命付軍門梟示後, 追行孥籍。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30면
영조 4년 (1728) 3월 26일
- 이사성·이유익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다
- 박세재·한세준 등으로 도순무 대군의 후원이 되게 하다
- 장붕익이 이배를 포박해 보내다
- 오명항에게 ‘지확공고’ 네 자를 써 주고 유시하다
- 조현명이 돌아와 이인좌 등에 대해 아뢰다
- 이정제가 연강 민호의 징발을 장계하다
- 이형좌가 가흥·흥원의 미곡을 서울로 운반할 것을 장계하다
- 김시형으로 박필현을 기포케 하다
- 이인좌의 공초
- 정조윤·곽중희의 공초
- 박필몽과 박필현 부자를 현상하여 잡게 하다
- 각진의 귀농시킬 군사를 뽑아 권농케 하다
- 박필현을 잡아 참하다
- 이인좌의 초사에 지명된 이삼에 대해 용서하다
- 헌부·간원에서 한종희·박필후 등의 일을 아뢰다
영조실록16권, 영조 4년 3월 26일 丙子 10/15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정조윤·곽중희의 공초
국역
죄인 정조윤(鄭祚胤)을 문초하니, 정조윤이 공초하기를,
"신이 적중(賊中)에 있으면서 거짓으로 복병군(伏兵軍)으로 가기를 청했더니, 과연 허락하므로 정세윤(鄭世胤)의 가죽 주머니를 훔쳐가지고 왔습니다. 가죽 주머니에 든 것은 바로 가짜로 만든 비변사(備邊司)의 공사(公事)로 성지(聖旨)를 가탁하여 익산(益山)·여산(礪山)·고부(古阜)·부안(扶安) 등 네 고을에 분부하여 군사를 내어 변산의 적을 잡으라는 것이었는데, 실제로는 정세윤이 만든 것으로서 군사를 모으려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적이 이천(利川)으로 향하고자 하기에 신이 말하기를, ‘이와 같이 단약(單弱)한 군사를 가지고 어떻게 이런 거조를 하겠는가? 하였더니, 정세윤이 답하기를, ‘호남과 영남의 원군(援軍)을 네가 어찌 알겠느냐?’ 하였습니다. 신이 또 말하기를, ‘그대의 모역(謀逆)은 스스로 하려는 것인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인가?’ 하니, 정세윤이 답하기를, ‘장차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세윤은 부원수(副元帥)가 된 후에 이름을 행민(行旻)으로 고쳤습니다. 정세윤이 또 말하기를, ‘일이 실패하면 마땅히 조령(鳥嶺)을 넘어가야 한다.’ 하였습니다. 신이 죽산(竹山)에 가서 동병(動兵)하는 상황을 보고는 놀라움을 이기지 못해 밤중에 도주하면서 가죽 주머니를 훔쳐 가지고 와 여주(驪州) 관아에 고했습니다. 이인좌(李麟佐)가 그 무리 가운데서 가장 낫기 때문에 대원수(大元帥)로 삼고, 최경우(崔擎宇)는 상인(喪人)으로서 우장군(右將軍)이 되었습니다."
하였다. 곽중휘(郭重輝)를 문초하니, 곽중휘가 공초하기를,
"이달 17일에 신이 안성장(安城場)에 갔다가 적도를 만나 청주 병영(兵營)으로 몰려 들어갔는데, 들으니, 이인좌가 병사(兵使)가 되었다가 후에 대원수(大元帥)로 승격되었으며, 신씨(申氏) 성을 가진 사람이 그 대신 병사가 되고, 정세윤이 영장(營將)이 되었다가 후에 부원수가 되었으며, 곽장(郭長)이 목천 현감(木川縣監), 이지경(李之慶)이 진천 현감(鎭川縣監), 목함경(睦涵敬)이 청안 현감(淸安縣監)이 되었으며, 좌장군(左將軍)은 최경우(崔擎宇)였고, 우장군(右將軍)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가(李哥)였습니다. 각 고을의 군사를 모아 21일에 양영(兩營)이 습진(習陣)한 후에 산성으로 들어갔는데, 신은 뛰쳐 나올 수가 없어서 죽산(竹山)으로 따라 가다가 중도에서 도망하였습니다."
하니, 명하여 군문(軍門)에 회부하여 효시(梟示)한 후 노적(孥籍)을 추가해 행하도록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30면
원문
○問罪人鄭祚胤, 祚胤供: "臣在賊中, 詐以伏兵軍請往, 果許之, 盜鄭世胤皮囊而來。 皮囊所儲, 乃假造備邊司公事, 而假托聖旨, 分付益山、礪山、古阜、扶安等四邑, 發軍捕邊山賊, 鄭世胤實造之, 蓋出於聚軍之意。 賊欲向利川, 臣以爲: ‘以此單弱之軍, 何能作此擧措?’ 世胤答以湖南、嶺南之援兵, 汝何知之? 臣又曰: ‘君謀逆, 欲自爲之耶? 爲他人耶?’ 世胤答以將來自當知之。 世胤爲副元帥, 後改名行旻。 世胤又曰: ‘事敗則當踰鳥嶺而去。’ 云。 臣往見竹山動兵之狀, 不勝驚心, 夜半逃走, 偸來皮囊, 告驪州官。 李麟佐, 衆中最優, 故爲大元帥, 崔擎宇以喪人, 爲右將軍。" 問郭重輝, 重輝供: "今月十七日, 臣往安城場, 遇賊驅入淸州兵營, 聞李麟佐爲兵使, 後陞爲大元帥, 申姓人代爲兵使, 鄭世胤爲營將, 後陞爲副元帥, 郭長爲木川縣監, 李之慶爲鎭川縣監, 睦涵敬爲淸安縣監, 左將軍崔擎宇, 右將軍李哥名不記。 聚各邑軍, 二十一日兩營習陣後, 入山城, 臣不得出, 隨向竹山, 中路逃。" 命付軍門梟示後, 追行孥籍。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30면
원본
영조 4년 (1728) 3월 26일
- 이사성·이유익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다
- 박세재·한세준 등으로 도순무 대군의 후원이 되게 하다
- 장붕익이 이배를 포박해 보내다
- 오명항에게 ‘지확공고’ 네 자를 써 주고 유시하다
- 조현명이 돌아와 이인좌 등에 대해 아뢰다
- 이정제가 연강 민호의 징발을 장계하다
- 이형좌가 가흥·흥원의 미곡을 서울로 운반할 것을 장계하다
- 김시형으로 박필현을 기포케 하다
- 이인좌의 공초
- 정조윤·곽중희의 공초
- 박필몽과 박필현 부자를 현상하여 잡게 하다
- 각진의 귀농시킬 군사를 뽑아 권농케 하다
- 박필현을 잡아 참하다
- 이인좌의 초사에 지명된 이삼에 대해 용서하다
- 헌부·간원에서 한종희·박필후 등의 일을 아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