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6권, 영조 4년 3월 26일 丙子 4/15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오명항에게 ‘지확공고’ 네 자를 써 주고 유시하다
국역
임금이 손수 ‘지확공고(志確功高)’란 네 자를 써서 도순무사 오명항(吳命恒)에게 하사하고, 인하여 유시하기를,
"이번 남쪽 적은 바로 하나의 추류(醜類)이니 어찌 왕장(王章)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다만 이 적은 온양(醞讓)해 온 지 이미 여러 해 되었고, 또 승평(昇平)한 지 오래여서 군사들의 싸움이 어떨지 몰랐으니, 내가 염려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경은 본래 문재(文宰)로서 무사(武事)를 익히지 않았는데도 밤중 장전(帳殿)에서 강개하게 가기를 청하였으니, 그 마음에 탄복하였고, 그 뜻이 가상하였다. 그래서 특별히 청한 바를 윤허하고 인해 상방검(尙方劍)을 하사하여 편의대로 일을 행하게 했지만 어찌 수일 사이에 연달아 첩보(捷報)가 올라올 줄 뜻했으랴? 지금은 역괴(逆魁)와 여러 적들이 차례로 죽임을 당했으니, 그 공이 일세에 빛나고 이름이 역사에 남는다고 하겠다. 응당 행하여야 할 모든 전례(典禮)는 개선(凱旋)한 후에 마땅히 거행하겠으나 먼저 몇 줄의 수서(手書)로써 내가 가상하게 여기는 뜻을 보이고, 이어서 또 네 자를 특별히 종이 끝에 써서 경의 언행(言行)이 서로 부합됨을 표한다. 인하여 생각건대, 해마다 기근이 든 나머지 이와 같은 병란(兵亂)을 만났으니, 우리 생령(生靈)들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경이 이미 순무사의 명호를 띠었으니 유민(流民)을 안집(安集)시켜 농사를 권하고 진휼(賑恤)하는 등의 일에 뜻을 두어 거행하되, 농량(農糧)과 종자(種子)가 어려운 자에게 면세(免稅)하는 일같은 것은 내사(內司)에서 관리하는 것을 막론하고 편의대로 나누어 주라. 백성들 가운데 적을 붙잡아 바친 자가 있으면 등급을 나누어 즉시 계문(啓聞)하여 먼저 상을 줄 터전을 마련하라. 여러 날 노숙(露宿)하여 군병들이 반드시 많이 상했을 것이다. 생각이 이에 미치니 옥식(玉食)이 어찌 편하겠는가? 이런 뜻으로 장교(將校)와 군졸(軍卒)들을 위로하라."
하고, 또 유시하기를,
"남쪽의 적보(賊報)가 또 이르렀으나, 경은 우선 호서(湖西)에 머물러 본도를 지휘하여 완전히 평정되기를 기약하라. 안성과 죽산의 싸움에서 한 병졸도 상하지 않았음을 내가 또 기뻐한다."
하였다.
원문
○上手書志確功高四字, 賜都巡撫使吳命恒, 仍諭曰:
今玆南賊, 卽一醜類, 豈逭王章? 而但此賊之其所醞釀, 已有多年, 且昇平日久, 不知兵戰之如何, 予之所以慮之者, 正此耳。 卿本文宰, 不閑武事, 而半夜帳殿, 慷慨請行, 其心可歎, 其志可尙。 特允所請, 仍賜尙方劍, 使之便宜行事, 豈意數日之內, 連上捷報乎? 今則逆魁諸賊, 次第就戮, 可謂功耀一世, 名垂竹帛矣。 凡諸應行之典, 旋凱後其當擧行, 而先以數行手書, 示予嘉尙之意, 仍又四字, 特書紙端, 表卿言行之相孚焉。 仍念連歲荐饑之餘, 遭此兵刃, 念我生靈, 何以支堪? 卿旣帶巡撫之名, 安集流民, 勸農賑恤等事, 着意擧行, 而其若農糧種子之艱乏者, 則免稅之類, 勿論內司句管, 便宜分給。 而民人中捕納賊徒者, 分等卽爲啓聞, 以爲先賞之地。 累日暴露, 軍兵必多傷焉。 言念及此, 玉食奚安? 以此意, 慰勞將校軍卒。
又諭之曰:
南報又至, 卿姑留湖西, 指揮本道, 期於盡平。 安城、竹山之戰, 不折一卒, 予又豫焉。
영조 4년 (1728) 3월 26일
- 이사성·이유익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다
- 박세재·한세준 등으로 도순무 대군의 후원이 되게 하다
- 장붕익이 이배를 포박해 보내다
- 오명항에게 ‘지확공고’ 네 자를 써 주고 유시하다
- 조현명이 돌아와 이인좌 등에 대해 아뢰다
- 이정제가 연강 민호의 징발을 장계하다
- 이형좌가 가흥·흥원의 미곡을 서울로 운반할 것을 장계하다
- 김시형으로 박필현을 기포케 하다
- 이인좌의 공초
- 정조윤·곽중희의 공초
- 박필몽과 박필현 부자를 현상하여 잡게 하다
- 각진의 귀농시킬 군사를 뽑아 권농케 하다
- 박필현을 잡아 참하다
- 이인좌의 초사에 지명된 이삼에 대해 용서하다
- 헌부·간원에서 한종희·박필후 등의 일을 아뢰다
영조실록16권, 영조 4년 3월 26일 丙子 4/15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오명항에게 ‘지확공고’ 네 자를 써 주고 유시하다
국역
임금이 손수 ‘지확공고(志確功高)’란 네 자를 써서 도순무사 오명항(吳命恒)에게 하사하고, 인하여 유시하기를,
"이번 남쪽 적은 바로 하나의 추류(醜類)이니 어찌 왕장(王章)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다만 이 적은 온양(醞讓)해 온 지 이미 여러 해 되었고, 또 승평(昇平)한 지 오래여서 군사들의 싸움이 어떨지 몰랐으니, 내가 염려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경은 본래 문재(文宰)로서 무사(武事)를 익히지 않았는데도 밤중 장전(帳殿)에서 강개하게 가기를 청하였으니, 그 마음에 탄복하였고, 그 뜻이 가상하였다. 그래서 특별히 청한 바를 윤허하고 인해 상방검(尙方劍)을 하사하여 편의대로 일을 행하게 했지만 어찌 수일 사이에 연달아 첩보(捷報)가 올라올 줄 뜻했으랴? 지금은 역괴(逆魁)와 여러 적들이 차례로 죽임을 당했으니, 그 공이 일세에 빛나고 이름이 역사에 남는다고 하겠다. 응당 행하여야 할 모든 전례(典禮)는 개선(凱旋)한 후에 마땅히 거행하겠으나 먼저 몇 줄의 수서(手書)로써 내가 가상하게 여기는 뜻을 보이고, 이어서 또 네 자를 특별히 종이 끝에 써서 경의 언행(言行)이 서로 부합됨을 표한다. 인하여 생각건대, 해마다 기근이 든 나머지 이와 같은 병란(兵亂)을 만났으니, 우리 생령(生靈)들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경이 이미 순무사의 명호를 띠었으니 유민(流民)을 안집(安集)시켜 농사를 권하고 진휼(賑恤)하는 등의 일에 뜻을 두어 거행하되, 농량(農糧)과 종자(種子)가 어려운 자에게 면세(免稅)하는 일같은 것은 내사(內司)에서 관리하는 것을 막론하고 편의대로 나누어 주라. 백성들 가운데 적을 붙잡아 바친 자가 있으면 등급을 나누어 즉시 계문(啓聞)하여 먼저 상을 줄 터전을 마련하라. 여러 날 노숙(露宿)하여 군병들이 반드시 많이 상했을 것이다. 생각이 이에 미치니 옥식(玉食)이 어찌 편하겠는가? 이런 뜻으로 장교(將校)와 군졸(軍卒)들을 위로하라."
하고, 또 유시하기를,
"남쪽의 적보(賊報)가 또 이르렀으나, 경은 우선 호서(湖西)에 머물러 본도를 지휘하여 완전히 평정되기를 기약하라. 안성과 죽산의 싸움에서 한 병졸도 상하지 않았음을 내가 또 기뻐한다."
하였다.
원문
○上手書志確功高四字, 賜都巡撫使吳命恒, 仍諭曰:
今玆南賊, 卽一醜類, 豈逭王章? 而但此賊之其所醞釀, 已有多年, 且昇平日久, 不知兵戰之如何, 予之所以慮之者, 正此耳。 卿本文宰, 不閑武事, 而半夜帳殿, 慷慨請行, 其心可歎, 其志可尙。 特允所請, 仍賜尙方劍, 使之便宜行事, 豈意數日之內, 連上捷報乎? 今則逆魁諸賊, 次第就戮, 可謂功耀一世, 名垂竹帛矣。 凡諸應行之典, 旋凱後其當擧行, 而先以數行手書, 示予嘉尙之意, 仍又四字, 特書紙端, 表卿言行之相孚焉。 仍念連歲荐饑之餘, 遭此兵刃, 念我生靈, 何以支堪? 卿旣帶巡撫之名, 安集流民, 勸農賑恤等事, 着意擧行, 而其若農糧種子之艱乏者, 則免稅之類, 勿論內司句管, 便宜分給。 而民人中捕納賊徒者, 分等卽爲啓聞, 以爲先賞之地。 累日暴露, 軍兵必多傷焉。 言念及此, 玉食奚安? 以此意, 慰勞將校軍卒。
又諭之曰:
南報又至, 卿姑留湖西, 指揮本道, 期於盡平。 安城、竹山之戰, 不折一卒, 予又豫焉。
원본
영조 4년 (1728) 3월 26일
- 이사성·이유익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다
- 박세재·한세준 등으로 도순무 대군의 후원이 되게 하다
- 장붕익이 이배를 포박해 보내다
- 오명항에게 ‘지확공고’ 네 자를 써 주고 유시하다
- 조현명이 돌아와 이인좌 등에 대해 아뢰다
- 이정제가 연강 민호의 징발을 장계하다
- 이형좌가 가흥·흥원의 미곡을 서울로 운반할 것을 장계하다
- 김시형으로 박필현을 기포케 하다
- 이인좌의 공초
- 정조윤·곽중희의 공초
- 박필몽과 박필현 부자를 현상하여 잡게 하다
- 각진의 귀농시킬 군사를 뽑아 권농케 하다
- 박필현을 잡아 참하다
- 이인좌의 초사에 지명된 이삼에 대해 용서하다
- 헌부·간원에서 한종희·박필후 등의 일을 아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