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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16권, 영조 4년 3월 25일 乙亥 8/13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이사성의 공술

국역

역적 이사성(李思晟)이 붙잡혀 서울에 왔다. 이사성은 평소 재주가 있다고 일컬어져 금오랑(金吾郞)을 발송한 후 조정에서 깊이 염려했었다. 평산 부사(平山富使) 심준(沈埈)이 이사성의 사람을 붙잡아 이사성의 집에 올리는 편지를 얻었는데, 모두 잗단 부녀자들의 말이었다. 임금이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염려할 것이 없다."

하였는데, 과연 붙잡힌 것이다. 임금이 인정문(仁政門)에 나아가 친히 국문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너의 관직이 곤수(閫帥)에 이르렀으니, 나라에서 너를 박하게 대접하지 않았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이러한 흉역을 저질렀느냐?"

하니, 이사성이 공술하기를,

"호남(湖南)·영남(嶺南)에 적도(賊徒)가 번성한데, 심유현(沈維賢)과 박필현(朴弼顯)이 모주(謀主)가 되어 용감한 사람을 모집하여 삼남 지방과 교통(交通)하고 있음을 사람들이 많이 전파하고 있었으나, 신의 생각에는 끝내 실정을 정탐해 얻지 못할 것 같아 그들이 하는 대로 맡겨두었다가, 과연 혹 난을 일으킨다면 백성들이 도탄(塗炭)에 빠지고 종사(宗社)가 위망(危亡)하게 될 것이므로, 신이 그 실정을 탐지하여 고변(告變)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그 적당(賊黨)에 들어가 박필현·한세홍(韓世弘)과 더불어 깊이 사귀면서 마음을 같이하는 자를 물었더니, 단지 심유현·이유익(李有翼)·이하(李河) 등만 말하고, 그 나머지 10여인은 단지 그 성(姓)만 말하고 그 이름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장수 재목이 없어 필경에는 군사를 모은 후에 신을 대장으로 삼았습니다. 신이 평안 병영으로 부임한 후 12월의 10일에서 보름 사이에 용인(龍仁)에 사는 안엽(安熀)과 용인의 적 정세윤(鄭世胤)이 박필현의 편지를 받아가지고 종을 찾으러 왔다고 핑계하고 왔습니다. 하루 저녁에는 안엽이 말하기를, ‘정세윤은 녹림(綠林)의 도둑 1백여 명과 인연이 있는데, 만약 수백 냥의 은자(銀子)만 있으면 3, 4백 명은 모을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처음 그들 무리에 들어간 것은 그 적의 숫자를 탐지하고자 해서였고 원래 많이 얻으려는 뜻이 없었기 때문에 답하기를, ‘창고의 저축이 영세하여 함부로 쓸 수가 없다. 2, 3월 사이에 마땅히 빚준 은을 받아들일 터이니, 적도를 많이 모집한 후에 지명(地名) 및 사람 수를 써서 보고하면 마땅히 넉넉하게 보내겠다.’ 하고는 끝내 1전(錢)의 은도 주지 않고 단지 전냥(錢兩)과 무명베만 주었습니다. 3월 초 6일에 한세홍이 와서 전하기를, ‘호남의 도적이 1천 명 가까이 되고 영남의 도적이 거의 수천에 이르니, 만약 더 보충하는 일만 있으면 거사하기에 족하다. 원컨대, 백은(白銀) 5, 6백 냥만 얻었으면 한다.’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창고의 저축이 이미 고갈되었고 준 빛 역시 받아들이지 못해 줄 수가 없다. 그러나 모집한 지 이미 오래되어 사람들의 말이 두려우니, 속히 돌아가라. 어느 고을의 어느 사람이 어느 곳을 공격할 것만 지휘하고 이내 은냥을 보내 주겠다. 그러나 군도(群盜)가 혹 한 곳에 모이면 누설되기가 쉬우니, 각각 부(部)를 나누어 밤을 타고 아무 고을로 들어가거라. 그러면 고을 사람들이 나와 막지 못할 것이며, 고을에 들어간 후에는 단지 환곡(還穀)만 취하여 군사를 호궤(犒饋)하고, 읍수(邑倅)는 죽이지 말라. 그리고 백성은 한 사람도 죽이지 말고,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지 말며, 부인들을 겁탈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고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 감사(監司)·병사(兵使)·영장(營將)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문죄(問罪)하게 되면 오합지졸(烏合之卒)이 대항하지 못할 것이니, 여러 영(營)의 군사가 도착하기 전에 밤을 타서 먼저 가되, 전일의 도적들이 역적질을 하듯이 한다면 추격해 와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산군(山郡)이면 산골짜기에 숨고, 강변(江邊) 고을이면 바닷섬에 모이면 거사하는 날 군사를 합치는 데 편리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가르쳐 준 자는 비록 신(臣)이었으나 신의 생각으로는 군도(郡盜) 1만여 명을 비록 모조리 붙잡는다 하더라도 하나 하나 다 죽일 수가 없고, 더군다나 한곳에 모여 있으면 민병(民兵)을 쓰기 전에는 붙잡기가 어렵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먼저 부를 나누어 정해 두고 그 모집한 영장(領將)을 알아둔 후에 별도로 경아문(京衙門)의 포도 군관(捕盜軍官)으로서 영리한 자를 정해 영장(領將)의 군사를 조발(調發)해 다른 곳에 있는 도적을 잡게 하여 영장(領將)의 무리들을 제거하고 군졸들은 그 군적(軍籍)을 조사해 그들이 거주하는 고을로 하여금 별도로 사찰(伺察)하게 하면, 군도를 비록 다 죽이지 않더라도 스스로 환난을 늦출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관직이 재열(宰列)에 이르러 있는데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계책을 세워 외곤(外閫)으로 출재(出宰)하였으나, 이미 함께 일을 할 사람이 없어서 즉시 탐지하여 장문(狀聞)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고발을 당해 끝내 악역(惡逆)의 죄과에 돌아갔으니, 어찌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정세윤에게 처음 은을 주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영남의 일이 만약 전일 정세윤의 일과 같았다면 일이 공허한 데로 돌아가 반드시 장차 화를 부를 것이기 때문에 우선 인정(人情)에 따라 임서호(任瑞虎)에게 군복(軍服)을 주었고, 이유익(李有翼)에게 혼수(婚需)를 주었습니다. 안추(安樞)는 계청(啓請)으로 몇 달 동안 수행(隨行)시키다가 돌아갈 때에 예에 의해 첩(帖)을 주었으나, 적들과 교통했는지 여부는 알지 못합니다. 신의 몸이 평안 병사가 되었는데 어찌 은화(銀貨)가 없었겠습니까? 정세윤이 요구한 은이 불과 수십 냥이었고, 한세홍이 요구한 바는 5, 6백 냥에 불과했는데도 1전의 은도 끝내 주지 않았습니다. 그 뜻은 군도를 많이 얻으려고 재물을 허비하는 데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였다. 1차 형신하니, 이사성이 또 공술하기를,

"괘서(掛書)와 흉격(凶檄)에 대해서는 신은 실로 모르며, 이사백(李思百)은 원래 신의 영(營)에 내려온 일이 없습니다. 양명하(粱命夏)가 이 일을 위해 신의 영에 왔고, 한세홍은 이유익과 박필현의 무리에 의해 보내진 자인데, 한세홍 지금 문경(聞慶)에 있으며, 양명하는 청파(靑坡)에 있고, 이사백은 이천(利川)에 있으며, 이사필(李思弼)은 도주하던 날에 통지한 일이 없고, 전에도 역시 함께 모의한 일이 없습니다. 호남의 적은 정세윤이 주관했고, 영남의 적은 한세홍이 주관했으며, 양명하는 광주(廣州)·포천(抱川) 등지의 가동(家僮) 무리를 모으는 데 불과했는데, 각기 주관하는 자가 있었으나 장령(將領)은 없었습니다. 남인(南人)과 소북(小北)이 모두 그 가운데 들었으니, 한세홍은 남인이고 양명하는 소북인데, 그들 말로는 친구간으로 왕래한다고 했습니다. 정세윤은 군사를 일으킬 때 영남에 통지하기를, ‘일이 급하니, 청컨대 서로 구해 달라.’고 하였는데, 자기들 가운데서 고변하고자 하는 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세홍은 말하기를, ‘정세윤이 오활하여 가는 곳마다 말을 했기 때문에 일이 장차 누설되게 되었다.’ 하면서 신으로 하여금 급히 기병(起兵)하게 하였으나, 신은 ‘나는 장차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겠다.’고 답하였습니다. 한세홍이 말하기를, ‘영남에 구원을 청하고자 하나 날짜가 미치지 못하고, 또 비록 반드시 이르지는 않을 것이고, 또 반드시 수하(手下) 사람에게 죽음을 당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이사성에서 낙형(烙刑)으로 위세를 보이니, 이사성이 공초하기를,

"전년 6월 사이에 신이 박필현 및 한세홍과 함께 묵동(墨洞) 박필현의 서제(庶弟) 박 만호(朴萬戶)의 집에서 회의를 하였습니다. 한세홍이 말하기를, ‘여주(驪州)·이천(利川)·광주(廣州)의 친구로 함께 모의하는 자가 10여 인이다.’ 하였는데, 그때 혹 그 성만 말하고 그 이름은 말하지 않았으니, 대개 상의할 때에는 각기 친한 자가 있으나 그 사람과 친하다고 남에게 언급하지 않는 것은 후일 일이 혹 누설되어도 대질(對質)할 증빙이나 증거를 없애려는 계책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10여 인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27면

원문

○賊思晟就拿, 至京。 思晟, 素以才稱, 發送金吾郞後, 朝廷深以爲慮。 平山府使沈埈捉思晟人, 得上思晟家書, 皆細瑣婦女語。 上喜以爲, 無足憂。 果就捕。 上御仁政門, 親鞫。 上曰: "汝官至閫帥, 國家待汝不薄, 何所不足, 作此凶逆?" 思晟供: "湖南、嶺南賊徒繁盛, 而沈維賢、朴弼顯爲謀主, 募得勇敢士, 交通三南, 賊徒人多傳播, 臣意終不探得實情, 任其所爲, 果或作亂, 則人民塗炭, 宗社危亡, 臣欲探實告變。 先入賊黨, 與弼顯、世弘深交, 問其同心者, 則只言沈維賢、李有翼、李河等, 而其餘十餘人, 只道其姓, 不言其名。 其中無將才, 畢竟聚軍後, 使臣爲將。 臣赴平營後, 十二月旬望間, 龍仁居安熀與龍仁賊鄭世亂受弼顯書, 稱以推奴來。 一夕熀言: ‘鄭生有綠林盜百餘名, 若有數百兩銀子, 可募三四百人。’ 臣初入其黨者, 欲探其賊數而已, 元無多得之意, 故答 ‘以庫儲零星, 不可擅用, 二三月間, 當有捧債之銀, 多募賊徒後, 地名及名數書報, 則當優送,’ 終不給一錢銀, 只給錢兩木疋。 三月初六日, 韓世弘來傳, ‘湖南盜近千名, 嶺南幾至數千, 若有添補之事, 則亦足以擧事。 願得白銀五六百兩。’ 臣言: ‘庫儲已竭, 債亦未捧, 不得許給。 而募得已久, 人言可畏, 斯速歸去。 以某邑某人攻某處事, 指揮, 仍資送銀兩。 而群盜或聚一處, 則漏泄非難, 各各部分, 乘夜入于某邑, 則邑民不敢出防, 入邑之後, 只取還穀犒饋軍兵, 不殺邑倅。 不殺一民, 不奪民財, 勿怯婦人, 則民皆喜而無怨。 久留一處, 監ㆍ兵使、營將領兵問罪, 則以烏合之卒, 不可抵當, 諸營兵未到之前, 乘夜先往, 有若前日群盜作賊之形, 則追不能及矣。 山郡則藏於山谷, 江邊則聚于海島, 擧事之日, 合兵爲便。’ 云。 指敎者雖臣, 而臣之意, 群盜萬餘名, 雖爲盡捉, 不可一一殺之, 況聚在一處, 則不用民兵之前, 捉得未易。 先定部分, 知其募聚之領將後, 別定京衙門捕盜軍官伶俐者, 調發營將之兵, 捕得他處所在之盜, 領將輩則除去之, 軍卒等則按其軍籍, 使所居邑, 別爲伺察, 則群盜雖不盡殺, 自可弛患。 官至宰列, 冒恥設計, 出宰外閫, 旣無同事之人, 不卽探知狀聞之前, 被人所告, 竟歸惡逆之科, 豈不冤痛? 鄭世允, 初, 不給銀, 嶺南之事, 若如前日世允之事, 則事歸空虛, 必將取禍, 故姑循人情, 軍服次給於任瑞虎, 婚需給於李有翼。 安樞則以啓請軍官, 數月隨行, 還歸時依例帖給, 而與賊交通與否, 知不得。 臣身爲平兵, 豈無銀貨? 而世允之求銀, 不過數十兩, 世弘之所求, 不過五六百兩, 一錢銀終不出給。 其意之不在於多得群盜, 而費財可知。" 刑一次, 思晟又供: "掛書、凶檄之事, 臣實不知, 李思百元無下來臣營之事。 梁命夏爲此事, 來臣營, 韓世弘爲有翼、弼顯輩所送, 而世弘今在聞慶, 命夏在靑坡, 思百在利川, 李思弼逃走之日, 無所通之事, 在前亦無同謀之事。 湖南賊, 世允主之, 嶺南賊世弘主之, 命夏不過聚廣州、抱川等地家僮輩, 而各有主者, 而無將領。 南人、小北, 皆入其中, 世弘南人, 命夏小北, 而渠等言親舊間往來云矣。 世允起兵時, 通于嶺南曰: ‘事急矣, 請相救。’ 以自中有欲告變者故也。 世弘言: ‘世允迂闊, 到處言說, 故事將漏泄。’ 使臣急速起兵, 臣以吾將坐而待死爲答。 世弘以爲: ‘求救於嶺南, 而日字不可及期, 且雖使發兵, 兵必不赴, 又必見殺於手下兵。’云。" 以烙刑施威, 思晟供: "前年六月間, 臣與弼顯及世弘, 會議於墨洞 弼顯庶弟朴萬戶家。 世弘以爲: ‘驪州、利川、廣州親舊, 同謀十餘人。’ 云, 而其時或言其姓, 不言其名, 而蓋相議時, 各有所親, 而不以此人所親, 言及於彼人, 他日事或泄, 而以爲無憑面質之計。 故十餘人未能知得矣。"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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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16권, 영조 4년 3월 25일 乙亥 8/13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이사성의 공술

국역

역적 이사성(李思晟)이 붙잡혀 서울에 왔다. 이사성은 평소 재주가 있다고 일컬어져 금오랑(金吾郞)을 발송한 후 조정에서 깊이 염려했었다. 평산 부사(平山富使) 심준(沈埈)이 이사성의 사람을 붙잡아 이사성의 집에 올리는 편지를 얻었는데, 모두 잗단 부녀자들의 말이었다. 임금이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염려할 것이 없다."

하였는데, 과연 붙잡힌 것이다. 임금이 인정문(仁政門)에 나아가 친히 국문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너의 관직이 곤수(閫帥)에 이르렀으니, 나라에서 너를 박하게 대접하지 않았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이러한 흉역을 저질렀느냐?"

하니, 이사성이 공술하기를,

"호남(湖南)·영남(嶺南)에 적도(賊徒)가 번성한데, 심유현(沈維賢)과 박필현(朴弼顯)이 모주(謀主)가 되어 용감한 사람을 모집하여 삼남 지방과 교통(交通)하고 있음을 사람들이 많이 전파하고 있었으나, 신의 생각에는 끝내 실정을 정탐해 얻지 못할 것 같아 그들이 하는 대로 맡겨두었다가, 과연 혹 난을 일으킨다면 백성들이 도탄(塗炭)에 빠지고 종사(宗社)가 위망(危亡)하게 될 것이므로, 신이 그 실정을 탐지하여 고변(告變)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그 적당(賊黨)에 들어가 박필현·한세홍(韓世弘)과 더불어 깊이 사귀면서 마음을 같이하는 자를 물었더니, 단지 심유현·이유익(李有翼)·이하(李河) 등만 말하고, 그 나머지 10여인은 단지 그 성(姓)만 말하고 그 이름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장수 재목이 없어 필경에는 군사를 모은 후에 신을 대장으로 삼았습니다. 신이 평안 병영으로 부임한 후 12월의 10일에서 보름 사이에 용인(龍仁)에 사는 안엽(安熀)과 용인의 적 정세윤(鄭世胤)이 박필현의 편지를 받아가지고 종을 찾으러 왔다고 핑계하고 왔습니다. 하루 저녁에는 안엽이 말하기를, ‘정세윤은 녹림(綠林)의 도둑 1백여 명과 인연이 있는데, 만약 수백 냥의 은자(銀子)만 있으면 3, 4백 명은 모을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처음 그들 무리에 들어간 것은 그 적의 숫자를 탐지하고자 해서였고 원래 많이 얻으려는 뜻이 없었기 때문에 답하기를, ‘창고의 저축이 영세하여 함부로 쓸 수가 없다. 2, 3월 사이에 마땅히 빚준 은을 받아들일 터이니, 적도를 많이 모집한 후에 지명(地名) 및 사람 수를 써서 보고하면 마땅히 넉넉하게 보내겠다.’ 하고는 끝내 1전(錢)의 은도 주지 않고 단지 전냥(錢兩)과 무명베만 주었습니다. 3월 초 6일에 한세홍이 와서 전하기를, ‘호남의 도적이 1천 명 가까이 되고 영남의 도적이 거의 수천에 이르니, 만약 더 보충하는 일만 있으면 거사하기에 족하다. 원컨대, 백은(白銀) 5, 6백 냥만 얻었으면 한다.’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창고의 저축이 이미 고갈되었고 준 빛 역시 받아들이지 못해 줄 수가 없다. 그러나 모집한 지 이미 오래되어 사람들의 말이 두려우니, 속히 돌아가라. 어느 고을의 어느 사람이 어느 곳을 공격할 것만 지휘하고 이내 은냥을 보내 주겠다. 그러나 군도(群盜)가 혹 한 곳에 모이면 누설되기가 쉬우니, 각각 부(部)를 나누어 밤을 타고 아무 고을로 들어가거라. 그러면 고을 사람들이 나와 막지 못할 것이며, 고을에 들어간 후에는 단지 환곡(還穀)만 취하여 군사를 호궤(犒饋)하고, 읍수(邑倅)는 죽이지 말라. 그리고 백성은 한 사람도 죽이지 말고,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지 말며, 부인들을 겁탈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고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 감사(監司)·병사(兵使)·영장(營將)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문죄(問罪)하게 되면 오합지졸(烏合之卒)이 대항하지 못할 것이니, 여러 영(營)의 군사가 도착하기 전에 밤을 타서 먼저 가되, 전일의 도적들이 역적질을 하듯이 한다면 추격해 와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산군(山郡)이면 산골짜기에 숨고, 강변(江邊) 고을이면 바닷섬에 모이면 거사하는 날 군사를 합치는 데 편리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가르쳐 준 자는 비록 신(臣)이었으나 신의 생각으로는 군도(郡盜) 1만여 명을 비록 모조리 붙잡는다 하더라도 하나 하나 다 죽일 수가 없고, 더군다나 한곳에 모여 있으면 민병(民兵)을 쓰기 전에는 붙잡기가 어렵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먼저 부를 나누어 정해 두고 그 모집한 영장(領將)을 알아둔 후에 별도로 경아문(京衙門)의 포도 군관(捕盜軍官)으로서 영리한 자를 정해 영장(領將)의 군사를 조발(調發)해 다른 곳에 있는 도적을 잡게 하여 영장(領將)의 무리들을 제거하고 군졸들은 그 군적(軍籍)을 조사해 그들이 거주하는 고을로 하여금 별도로 사찰(伺察)하게 하면, 군도를 비록 다 죽이지 않더라도 스스로 환난을 늦출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관직이 재열(宰列)에 이르러 있는데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계책을 세워 외곤(外閫)으로 출재(出宰)하였으나, 이미 함께 일을 할 사람이 없어서 즉시 탐지하여 장문(狀聞)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고발을 당해 끝내 악역(惡逆)의 죄과에 돌아갔으니, 어찌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정세윤에게 처음 은을 주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영남의 일이 만약 전일 정세윤의 일과 같았다면 일이 공허한 데로 돌아가 반드시 장차 화를 부를 것이기 때문에 우선 인정(人情)에 따라 임서호(任瑞虎)에게 군복(軍服)을 주었고, 이유익(李有翼)에게 혼수(婚需)를 주었습니다. 안추(安樞)는 계청(啓請)으로 몇 달 동안 수행(隨行)시키다가 돌아갈 때에 예에 의해 첩(帖)을 주었으나, 적들과 교통했는지 여부는 알지 못합니다. 신의 몸이 평안 병사가 되었는데 어찌 은화(銀貨)가 없었겠습니까? 정세윤이 요구한 은이 불과 수십 냥이었고, 한세홍이 요구한 바는 5, 6백 냥에 불과했는데도 1전의 은도 끝내 주지 않았습니다. 그 뜻은 군도를 많이 얻으려고 재물을 허비하는 데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였다. 1차 형신하니, 이사성이 또 공술하기를,

"괘서(掛書)와 흉격(凶檄)에 대해서는 신은 실로 모르며, 이사백(李思百)은 원래 신의 영(營)에 내려온 일이 없습니다. 양명하(粱命夏)가 이 일을 위해 신의 영에 왔고, 한세홍은 이유익과 박필현의 무리에 의해 보내진 자인데, 한세홍 지금 문경(聞慶)에 있으며, 양명하는 청파(靑坡)에 있고, 이사백은 이천(利川)에 있으며, 이사필(李思弼)은 도주하던 날에 통지한 일이 없고, 전에도 역시 함께 모의한 일이 없습니다. 호남의 적은 정세윤이 주관했고, 영남의 적은 한세홍이 주관했으며, 양명하는 광주(廣州)·포천(抱川) 등지의 가동(家僮) 무리를 모으는 데 불과했는데, 각기 주관하는 자가 있었으나 장령(將領)은 없었습니다. 남인(南人)과 소북(小北)이 모두 그 가운데 들었으니, 한세홍은 남인이고 양명하는 소북인데, 그들 말로는 친구간으로 왕래한다고 했습니다. 정세윤은 군사를 일으킬 때 영남에 통지하기를, ‘일이 급하니, 청컨대 서로 구해 달라.’고 하였는데, 자기들 가운데서 고변하고자 하는 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세홍은 말하기를, ‘정세윤이 오활하여 가는 곳마다 말을 했기 때문에 일이 장차 누설되게 되었다.’ 하면서 신으로 하여금 급히 기병(起兵)하게 하였으나, 신은 ‘나는 장차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겠다.’고 답하였습니다. 한세홍이 말하기를, ‘영남에 구원을 청하고자 하나 날짜가 미치지 못하고, 또 비록 반드시 이르지는 않을 것이고, 또 반드시 수하(手下) 사람에게 죽음을 당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이사성에서 낙형(烙刑)으로 위세를 보이니, 이사성이 공초하기를,

"전년 6월 사이에 신이 박필현 및 한세홍과 함께 묵동(墨洞) 박필현의 서제(庶弟) 박 만호(朴萬戶)의 집에서 회의를 하였습니다. 한세홍이 말하기를, ‘여주(驪州)·이천(利川)·광주(廣州)의 친구로 함께 모의하는 자가 10여 인이다.’ 하였는데, 그때 혹 그 성만 말하고 그 이름은 말하지 않았으니, 대개 상의할 때에는 각기 친한 자가 있으나 그 사람과 친하다고 남에게 언급하지 않는 것은 후일 일이 혹 누설되어도 대질(對質)할 증빙이나 증거를 없애려는 계책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10여 인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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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賊思晟就拿, 至京。 思晟, 素以才稱, 發送金吾郞後, 朝廷深以爲慮。 平山府使沈埈捉思晟人, 得上思晟家書, 皆細瑣婦女語。 上喜以爲, 無足憂。 果就捕。 上御仁政門, 親鞫。 上曰: "汝官至閫帥, 國家待汝不薄, 何所不足, 作此凶逆?" 思晟供: "湖南、嶺南賊徒繁盛, 而沈維賢、朴弼顯爲謀主, 募得勇敢士, 交通三南, 賊徒人多傳播, 臣意終不探得實情, 任其所爲, 果或作亂, 則人民塗炭, 宗社危亡, 臣欲探實告變。 先入賊黨, 與弼顯、世弘深交, 問其同心者, 則只言沈維賢、李有翼、李河等, 而其餘十餘人, 只道其姓, 不言其名。 其中無將才, 畢竟聚軍後, 使臣爲將。 臣赴平營後, 十二月旬望間, 龍仁居安熀與龍仁賊鄭世亂受弼顯書, 稱以推奴來。 一夕熀言: ‘鄭生有綠林盜百餘名, 若有數百兩銀子, 可募三四百人。’ 臣初入其黨者, 欲探其賊數而已, 元無多得之意, 故答 ‘以庫儲零星, 不可擅用, 二三月間, 當有捧債之銀, 多募賊徒後, 地名及名數書報, 則當優送,’ 終不給一錢銀, 只給錢兩木疋。 三月初六日, 韓世弘來傳, ‘湖南盜近千名, 嶺南幾至數千, 若有添補之事, 則亦足以擧事。 願得白銀五六百兩。’ 臣言: ‘庫儲已竭, 債亦未捧, 不得許給。 而募得已久, 人言可畏, 斯速歸去。 以某邑某人攻某處事, 指揮, 仍資送銀兩。 而群盜或聚一處, 則漏泄非難, 各各部分, 乘夜入于某邑, 則邑民不敢出防, 入邑之後, 只取還穀犒饋軍兵, 不殺邑倅。 不殺一民, 不奪民財, 勿怯婦人, 則民皆喜而無怨。 久留一處, 監ㆍ兵使、營將領兵問罪, 則以烏合之卒, 不可抵當, 諸營兵未到之前, 乘夜先往, 有若前日群盜作賊之形, 則追不能及矣。 山郡則藏於山谷, 江邊則聚于海島, 擧事之日, 合兵爲便。’ 云。 指敎者雖臣, 而臣之意, 群盜萬餘名, 雖爲盡捉, 不可一一殺之, 況聚在一處, 則不用民兵之前, 捉得未易。 先定部分, 知其募聚之領將後, 別定京衙門捕盜軍官伶俐者, 調發營將之兵, 捕得他處所在之盜, 領將輩則除去之, 軍卒等則按其軍籍, 使所居邑, 別爲伺察, 則群盜雖不盡殺, 自可弛患。 官至宰列, 冒恥設計, 出宰外閫, 旣無同事之人, 不卽探知狀聞之前, 被人所告, 竟歸惡逆之科, 豈不冤痛? 鄭世允, 初, 不給銀, 嶺南之事, 若如前日世允之事, 則事歸空虛, 必將取禍, 故姑循人情, 軍服次給於任瑞虎, 婚需給於李有翼。 安樞則以啓請軍官, 數月隨行, 還歸時依例帖給, 而與賊交通與否, 知不得。 臣身爲平兵, 豈無銀貨? 而世允之求銀, 不過數十兩, 世弘之所求, 不過五六百兩, 一錢銀終不出給。 其意之不在於多得群盜, 而費財可知。" 刑一次, 思晟又供: "掛書、凶檄之事, 臣實不知, 李思百元無下來臣營之事。 梁命夏爲此事, 來臣營, 韓世弘爲有翼、弼顯輩所送, 而世弘今在聞慶, 命夏在靑坡, 思百在利川, 李思弼逃走之日, 無所通之事, 在前亦無同謀之事。 湖南賊, 世允主之, 嶺南賊世弘主之, 命夏不過聚廣州、抱川等地家僮輩, 而各有主者, 而無將領。 南人、小北, 皆入其中, 世弘南人, 命夏小北, 而渠等言親舊間往來云矣。 世允起兵時, 通于嶺南曰: ‘事急矣, 請相救。’ 以自中有欲告變者故也。 世弘言: ‘世允迂闊, 到處言說, 故事將漏泄。’ 使臣急速起兵, 臣以吾將坐而待死爲答。 世弘以爲: ‘求救於嶺南, 而日字不可及期, 且雖使發兵, 兵必不赴, 又必見殺於手下兵。’云。" 以烙刑施威, 思晟供: "前年六月間, 臣與弼顯及世弘, 會議於墨洞 弼顯庶弟朴萬戶家。 世弘以爲: ‘驪州、利川、廣州親舊, 同謀十餘人。’ 云, 而其時或言其姓, 不言其名, 而蓋相議時, 各有所親, 而不以此人所親, 言及於彼人, 他日事或泄, 而以爲無憑面質之計。 故十餘人未能知得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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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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