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6권, 영조 4년 3월 23일 癸酉 6/15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성탁 공술
국역
성탁(成琢)을 문초하니, 성탁이 공술하기를,
"3월 13일 신이 중미(中彌) 주막에 이르니, 김옥성(金玉成)이 뒤좇아 이르러 주막 사람과 서로 말을 나누었습니다. 신이 옆에서 그 말을 들으니, 김옥성이 말하기를, ‘어제 아침 소사(素沙)·갈원(葛院) 사람들이 흩어져 달아났기에 나 역시 그곳에서 도망해 돌아온 것이다. 이는 바로 이곳 의병장(義兵將)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하고, 또 말하기를, ‘내 이름 역시 적의 성책(成冊) 가운데 들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김옥성에게 말하기를, ‘의병장이란 누구를 말하는가?’ 하니, 김옥성이 말하기를, ‘이곳의 20명이 변산(邊山)·지리산(智異山)의 적과 화응(和應)하여 이번 3월 16일에 한 사람마다 1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기다리고 있는데, 기일이 점차 임박하자 갈원과 소사 백성으로 적의 성책에 들어 있는 자들이 모두 스스로 놀라 흩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적장들 역시 모두 도주해 적소(賊所)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김옥성에게 말하기를, ‘그렇다면 이는 바로 적병(賊兵)인데 의병(義兵)이라고 말하니 너무 무식하다.’ 하였더니, 김옥성이 말하기를, ‘적병이냐 의병이냐를 논할 것이 없이 일의 기미가 이와 같다.’ 하였습니다. 이어 스스로 적중의 사정을 분명하게 안다고 칭하기 때문에 신이 즉시 붙잡아 고발하고자 하였으나, 강하고 약함이 같지 못하고, 그곳이 적도들이 출몰하는 곳 같기 때문에 계책을 써서 유치(誘致)하여 청파(靑坡)에 이르러 붙잡아 고한 것입니다. 강도(江都)와 남한(南漢)에 대한 이야기는 금시 초문이며, 원래 지휘하거나 모의한 일이 없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24면
원문
○問成琢, 琢供: "三月十三日, 臣到中彌酒幕, 金玉成追到, 與酒幕人相語。 臣側聽其語, 則玉成謂: ‘昨朝素沙、葛院人奔散, 吾亦自其處奔還。 此乃此處義兵將之所致。’ 又曰: ‘吾名亦入於賊兵成冊中。’ 臣謂玉成曰: ‘義兵將者何謂也?’ 玉成曰: ‘此處二十人, 與邊山、智異山賊和應, 今三月十六日, 每一人率百名軍, 相約以待, 期日漸迫, 葛院、素沙民人, 入於成冊者, 皆自驚散。 故賊將亦皆奔往於賊所。’ 云。 臣謂玉成曰: ‘然則此乃賊兵, 謂之義兵, 太無識矣。’ 玉成曰: ‘無論賊兵義兵, 事機如此。’ 仍自稱明知賊中事情, 故臣欲卽捕告, 而强弱不敵, 其處似是賊徒出沒之地, 故以計誘致, 到靑坡, 始爲捕告。 至於江都、南漢之說, 今始初聞, 元無指揮謀議之事。"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24면
영조 4년 (1728) 3월 23일
- 송인명이 스스로 가서 독전을 청하니 윤허치 않다
- 김동필이 유척기가 미음강으로 옮길 것 등을 장계하다
- 송인명이 적병에 대해 장계하니 신하들과 의논하고 유순이 싸움터로 가다
- 윤덕유의 공술
- 이문저·안추 공술
- 성탁 공술
- 오명항이 안성에서 적군과 싸워 크게 이기다
- 적장 설동린을 잡아 들이다
- 죽산 적의 계책
- 적군의 말
- 김화구리를 호역을 면제해 주고 향장관으로 승차시키다
- 김재로에게 충주 안무사를 겸하게 하다
- 신노가 관군 지체, 김재로·조지빈 등의 일을 상소하다
- 당의를 끼고 상소문을 올린 신노의 관직을 삭탈하고 문외출송하다
- 권혁이 성민으로 군병 삼을 계책 등을 상소하다
영조실록16권, 영조 4년 3월 23일 癸酉 6/15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성탁 공술
국역
성탁(成琢)을 문초하니, 성탁이 공술하기를,
"3월 13일 신이 중미(中彌) 주막에 이르니, 김옥성(金玉成)이 뒤좇아 이르러 주막 사람과 서로 말을 나누었습니다. 신이 옆에서 그 말을 들으니, 김옥성이 말하기를, ‘어제 아침 소사(素沙)·갈원(葛院) 사람들이 흩어져 달아났기에 나 역시 그곳에서 도망해 돌아온 것이다. 이는 바로 이곳 의병장(義兵將)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하고, 또 말하기를, ‘내 이름 역시 적의 성책(成冊) 가운데 들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김옥성에게 말하기를, ‘의병장이란 누구를 말하는가?’ 하니, 김옥성이 말하기를, ‘이곳의 20명이 변산(邊山)·지리산(智異山)의 적과 화응(和應)하여 이번 3월 16일에 한 사람마다 1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기다리고 있는데, 기일이 점차 임박하자 갈원과 소사 백성으로 적의 성책에 들어 있는 자들이 모두 스스로 놀라 흩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적장들 역시 모두 도주해 적소(賊所)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김옥성에게 말하기를, ‘그렇다면 이는 바로 적병(賊兵)인데 의병(義兵)이라고 말하니 너무 무식하다.’ 하였더니, 김옥성이 말하기를, ‘적병이냐 의병이냐를 논할 것이 없이 일의 기미가 이와 같다.’ 하였습니다. 이어 스스로 적중의 사정을 분명하게 안다고 칭하기 때문에 신이 즉시 붙잡아 고발하고자 하였으나, 강하고 약함이 같지 못하고, 그곳이 적도들이 출몰하는 곳 같기 때문에 계책을 써서 유치(誘致)하여 청파(靑坡)에 이르러 붙잡아 고한 것입니다. 강도(江都)와 남한(南漢)에 대한 이야기는 금시 초문이며, 원래 지휘하거나 모의한 일이 없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24면
원문
○問成琢, 琢供: "三月十三日, 臣到中彌酒幕, 金玉成追到, 與酒幕人相語。 臣側聽其語, 則玉成謂: ‘昨朝素沙、葛院人奔散, 吾亦自其處奔還。 此乃此處義兵將之所致。’ 又曰: ‘吾名亦入於賊兵成冊中。’ 臣謂玉成曰: ‘義兵將者何謂也?’ 玉成曰: ‘此處二十人, 與邊山、智異山賊和應, 今三月十六日, 每一人率百名軍, 相約以待, 期日漸迫, 葛院、素沙民人, 入於成冊者, 皆自驚散。 故賊將亦皆奔往於賊所。’ 云。 臣謂玉成曰: ‘然則此乃賊兵, 謂之義兵, 太無識矣。’ 玉成曰: ‘無論賊兵義兵, 事機如此。’ 仍自稱明知賊中事情, 故臣欲卽捕告, 而强弱不敵, 其處似是賊徒出沒之地, 故以計誘致, 到靑坡, 始爲捕告。 至於江都、南漢之說, 今始初聞, 元無指揮謀議之事。"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24면
원본
영조 4년 (1728) 3월 23일
- 송인명이 스스로 가서 독전을 청하니 윤허치 않다
- 김동필이 유척기가 미음강으로 옮길 것 등을 장계하다
- 송인명이 적병에 대해 장계하니 신하들과 의논하고 유순이 싸움터로 가다
- 윤덕유의 공술
- 이문저·안추 공술
- 성탁 공술
- 오명항이 안성에서 적군과 싸워 크게 이기다
- 적장 설동린을 잡아 들이다
- 죽산 적의 계책
- 적군의 말
- 김화구리를 호역을 면제해 주고 향장관으로 승차시키다
- 김재로에게 충주 안무사를 겸하게 하다
- 신노가 관군 지체, 김재로·조지빈 등의 일을 상소하다
- 당의를 끼고 상소문을 올린 신노의 관직을 삭탈하고 문외출송하다
- 권혁이 성민으로 군병 삼을 계책 등을 상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