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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16권, 영조 4년 3월 19일 己巳 11/15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민관효와 신광원을 대질시키다

국역

민관효(閔觀孝)를 문초하였으나 불복하였으므로, 민관효와 신광원(愼光遠)을 대질시켰다. 신광원이 말하기를,

"이달 초여드렛날 네가 어찌 ‘우리 무리가 장차 모조리 죽게 되었다.’라고 하지 않았으며, 네가 또 이하(李河)와 함께 우리 집에 오지 않았느냐? 네가 주머니에 은(銀) 40냥, 견설금(犬舌金) 12편(片), 기은(棊銀) 3편을 넣어서 나에게 주면서 양성(陽城) 권서린(權瑞麟)의 집으로 가서 무리들을 먹이라고 권하지 않았느냐?"

하니, 민관효가 말하기를,

"허무맹랑한 말이다."

하였다. 신광원이 말하기를,

"네가 ‘이 은은 강상(江上)의 창산군(昌山君)168) 집에서 가져 왔다.’고 하지 않았느냐? 창산군의 아들이 네 집에 오자, 네가 ‘이는 말을 숨길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라고 하지 않았느냐? 나를 양성으로 가라고 권할 때 너와 이하가 힘써 권하였고, 어찌 창산군의 인마(人馬)를 보내 주지 않았느냐?"

하고, 또 말하기를,

"내가 양성에 갈 때 이하가 어찌 권서린에게 편지 쓰기를, ‘그 일은 이 벗에게 물으면 알 수 있다.’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니, 민관효가 말하기를,

"근래에 네가 이하를 만나서 혹 한 말이 있었느냐? 나는 원래 수작한 바가 없다. 창산군 집은 종실(宗室) 중에서 가난한 집인데, 어떻게 은자를 마련하겠느냐?"

하였다. 신광원이 말하기를,

"네가 매양 이유익(李有翼)의 자(字)를 일컬으면서 ‘성례(聖禮)는 마땅히 태평 재상(太平宰相)이 될 것인지라, 내가 늘 일을 의논하고 있다. 이인좌가 이달 10일에 군사를 일으켜 14일에 모두 안동(安東)에서 만나고, 권서린(權瑞麟)은 13일에 양성에서 군사를 일으켜 15일에 모두 청주에서 모여 충청 병사를 참(斬)하기로 하였다.’라고 하고는, 네가 나를 시켜 이런 소식을 양성에서 탐지하도록 하지 않았느냐? 권서린이 13일에 출발하고자 하였는데 이인좌가 약속한 기일에 이르지 않아 고민하였다."

하고, 또 말하기를,

"남태징(南泰徵)의 일은 너와 이하에게 들었다."

하니, 민관효가 말하기를,

"네가 온 세상을 일망타진하려 하는구나."

하였다. 신광원이 말하기를,

"초여드렛날, 내가 과천(果川)에 있을 때 네가 종을 보내 나를 불렀기 때문에 배를 타고 현석(玄石)에서 왔는데, 그날 빗속에 창산군의 아들이 와 돈을 내어 돼지 고기를 사 먹었다. 그때 네가 ‘이제 곧 사람을 평안 병영으로 들여보내 40금(金)으로 말을 사서 기다리고자 한다.’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였다. 민관효를 1차 형신하였으나 불복하니, 임금이 명하기를,

"남태징·신광원·민관효·이세룡을 진문(陣門) 밖에서 참(斬)하라."

하였다. 남태징은 평소 경박하고 어리석었는데, 김일경(金一鏡)·박필몽(朴弼夢)에게 붙어서 통제사(統制使)에 제수되고 차례로 장임(將任)에 올랐다. 호남 괘서(掛書) 사건이 일어나자 훈장(訓將) 이삼(李森)이 기찰(譏察)을 보내도록 권고했는데, 핑계해 미루고 응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전주영(全州營)의 기찰하는 장교(將校)가 변산(邊山)의 적도에게 죽임을 당하였다는 말까지 지어내어 이삼을 공갈했다. 14일에 상변(上變)하기에 이르러서는 남태징이 이삼을 와서 보았는데, 평지(平地)에서 세 번이나 넘어져 사람들이 그의 마음이 동요되어 있는 것을 괴이하게 여겼다. 이때에 이르러 모역한 형상이 환히 드러나자, 임금이 그냥 두었다가는 변이 생길까 염려하여 신광원 등과 함께 빨리 죽이게 하니, 이로부터 인심이 조금 진정되고 적의 기세 역시 크게 꺾이어 모두 임금의 독단(獨斷)을 칭송하였다고 한다. 이하(李河)를 문초하였으나 불복하므로, 임금이 이하와 신광원을 대질(對質)시키도록 했다. 신광원이 말하기를,

"초여드렛날 네가 비를 맞으며 와서 양성(陽城) 권서룡(權瑞龍)의 서찰에 대한 일을 묻지 않았느냐?"

하고, 또 말하기를,

"11일에 민관효가 은을 가지고 오고 이하가 권서린에게 보내는 글을 지어가지고 와서 이어 신을 시켜 임서호(任瑞虎)를 가서 보게 하였는데, 그의 집을 몰라서 가서 보지 못하였습니다. 임서호는 바로 임서봉(任瑞鳳)의 아우입니다."

하고, 이하는 말하기를,

"민관효를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민관효가 어느 날 왔기에 사는 곳을 물었더니, 민관효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찾아온 까닭을 물었더니, 민관효가 말하기를, ‘근일 영남에 큰 거조(擧措)가 있다.’ 하기에 내가 무슨 거조냐고 물었더니, 민관효가 ‘영남 사람들이 군사를 일으켜 반역하기로 하였다. 그대가 박필현(朴弼顯)과 친한데 이 일을 어찌 모르는가?’ 하였습니다. 그후 민관효가 세 번 와서 신광원의 일을 말하기를, ‘양성의 대적(大賊)이 영남의 적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신광원이 말하기를,

"만약 이하에게 물으면 어떻게 우리집에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니, 이하가 말하기를,

"내가 민관효에게 묻기를, ‘누가 양성을 왕래하고 있는가?’ 하니, 민관효가 말하기를, ‘그런 사람이 있다.’라고 하여 함께 신광원의 집에 가서 서로 만나보고 돌아왔습니다."

하였다. 신광원이 말하기를,

"이하가 말하기를, ‘내가 원룡(元龍)대감을 만나 상의할 일이 많은데, 그 집은 이목이 번잡해 내가 가서 만나볼 수가 없어 피차 모두 늦추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이하가 말하기를,

"원룡은 남태징(南泰徵)의 자(字)인 듯합니다."

하였다. 신광원이 말하기를,

"영남과 호남에서 회합할 기약을 어기자 이하가 나를 시켜 임서호에게 가서 물어보도록 했는데, 그 사람을 모르기 때문에 가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이하를 1차 형신하니, 이하가 공술하기를,

"신은 박필현과 중년에 서로 친하게 되었는데, 박필현이 말하기를, ‘영남과 서울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없지 않은데, 너도 그 무리에 들고자 하는가?’ 하기에, 신이 누구누구가 들어 있는가 물었습니다. 박필현이 말하기를, ‘영남 및 평안 병사(平安兵使)가 군사를 일으켜 들어오면, 일이 성취될 것이다. 함께 일하는 자는 나와 한세홍(韓世弘)·이인좌(李麟佐), 동계(桐溪)169) 의 자손인 정가(鄭哥)로 이름을 모르는 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박필현이 장차 태인(泰仁)으로 부임하려 할 때 말하기를 ‘양성에 정세윤(鄭世胤)이란 자가 있어 충청도 일을 주관한다.’고 하였는데, 하루는 정세윤이 신의 집에 와서 묻기를, ‘박평중(朴平仲)170) 을 아는가?’라고 하므로, 신이 안다고 하였습니다. 정세윤이 말하기를, ‘평중을 안다면 내 일도 알 것이다. 내가 이제 군사를 모아 모반(謀叛)하려 하는데 영남이 모두 일어나고, 양성의 최경우(崔擎宇)·권서린(權瑞麟)도 군사를 모으는데 괴수(魁帥)는 바로 나다. 서울에서는 이유익(李有翼)·양명하(粱命夏)가 일을 주관하는데 남태징 역시 참여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영남의 군사는 정세윤의 무리가 안에서 일어나고 평안 병사가 군사를 일으켜 들어오면 반드시 일이 성취될 것이며, 남인(南人)은 민관효(閔觀孝)가 주관하고, 소북(小北)은 양명하가 주관하며, 소론(少論)은 박필현·이유익·윤덕유(尹德裕)가 주관하는데, 박필현이 비록 읍재(邑宰)로 나가 있지만, 사실상 괴수(魁帥)이며, 창산군(昌山君) 역시 그 가운데 들어 있어 내병(內兵)은 창산군이 그 집 종들을 모으고 양성의 군사 절반을 서울로 올라오게 해 쓰며, 한유(韓游)·한순(韓洵)·한광(韓光)·윤천경(尹天擎), 정가(鄭哥)로 자(字)가 백통(伯通)인 자, 윤연(尹㝚)·윤수(尹邃)·남태적(南泰績)·이정(李檉) 역시 그 가운데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두 박필현과 한광의 말로서 신은 그 얼굴을 모르며, 한음(漢陰)의 자손 이지인(李志仁)은 바로 신광원(愼光遠)의 주인(主人)인데, 이지인의 4촌인 이흥인(李興仁)은 어떤 사람은 들었다 하기도 하고 혹은 들지 않았다고 하기도 합니다. 박필몽의 큰 아들과 무겸(武兼)으로 황씨(黃氏) 성을 가진 자와 사인(士人) 이사백(李師白)이 평안(平安) 병영으로 간 것은 대개 이 일을 위해서인데, 가서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민관효가 양성의 군사를 호궤(犒饋)하기 위해 처음에 돈 3백 냥을 보냈고, 재차 보낸 은(銀)은 몇 냥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외에도 들어간 사람이 없지 않은 듯하나 전한 말이 자세하지 못합니다."

하였다. 2차 형신하니, 이하가 또 공술하기를,

"모의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문관(文官) 조상(趙鏛)이 누락되었습니다. 이지인(李志仁)은 장사(壯士)여서 신광원과 친한 장사가 이지인의 집에 많이 모이는데, 만약 신광원에게 물으면 그 이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이지인의 조카가 있어 ‘원룡(元龍) 대감’의 말을 조카와 수작하였는데, 내용은 ‘일이 이루어지면 훈장(訓將)은 점칠 수 있는 것인데, 이삼(李森)의 어머님 병이 바야흐로 중하니, 만일 상을 당한다면 내가 마땅히 훈장을 차지할 것이다.’고 한 데 불과했을 뿐입니다. 영남의 군사는 숫자가 도합 8천 명이요, 양성의 군사는 3천 명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3차 형신하니, 처음 문초할 때와 같이 불복(不服)하였다. 인엽(人燁)을 문초하니, 인엽이 공술하기를,

"신은 민관효와 사촌 남매(娚妹)간입니다. 정월 사이에 민관효가 은냥(銀兩)을 요청하기에 80냥을 빌려 주었지 40냥이 아닙니다. 말은 8, 9일 전에 민관효가 보령(保寧)으로 간다고 와서 빌리기에 신이 과연 빌려 주었는데, 은자는 지금 호군(犒軍)하는 데 썼고 말을 빌린 것이 양성으로 가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신이 몰랐습니다. 신광원은 한 차례 민관효의 집에서 만났으나 대화한 일은 없습니다."

하였다. 윤연(尹㝚)을 문초하였으나, 불복하였다. 윤수(尹邃)를 문초하니, 윤수가 공초하기를,

"신이 별시(別試) 초시(初試)를 보기 위해 이유익(李有翼)과 동접(同接)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마침 이유익을 길에서 만나 내려가 여염집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들어오기에 물으니, 이하(李河)였습니다."

하였다. 한광(韓洸)·한유(韓游)·한순(韓洵)·최봉소(崔鳳韶)·이세록(李世祿)을 문초하였으나, 모두 불복하였다. 안호(安鎬)와 막실(莫實)은 석방하였다.

  • [註 168] 창산군(昌山君) : 이름은 상(相).
  • [註 169] 동계(桐溪) : 정온(鄭蘊)의 호.
  • [註 170] 박평중(朴平仲) : 평중은 박필현의 자(字).

원문

○問觀孝不服, 令觀孝、愼光遠面質。 光遠曰: "今月初八日, 汝豈不曰: ‘吾輩將盡死云乎?’ 汝又不與李河同來我家乎? 汝不囊儲銀四十兩、犬舌金十二片、棊銀三片, 勸我往陽城 權瑞麟家, 饋徒黨乎?" 觀孝曰: "虛無。" 光遠曰: "不曰: ‘厥銀, 自江上昌山君家持來乎?’ 昌山君子來汝家, 汝不以爲此, 非諱言之人乎? 勸我往陽城時, 汝與李河力勸, 豈不送昌山君人馬乎?" 又曰: "我往陽城時, 李河豈不作書於權瑞麟曰: ‘厥事問于此友, 則可知。’ 云爾乎?" 觀孝曰: "近來汝逢李河, 或有所言否? 我則元無酬酢矣。 昌山君家, 宗室之貧者, 何能辦得銀子耶?" 光遠曰: "汝每稱李有翼之字曰: ‘聖禮當爲太平宰相, 吾每事議之矣。 李麟佐今月十日起兵, 十四日都會安東, 權瑞麟十三日起兵陽城, 十五日都會淸州, 斬忠淸兵使。’ 汝不使我, 探此消息於陽城乎? 瑞麟, 十三日欲爲離發, 而以麟佐之期會不至爲悶矣。" 又曰: "南泰徵事, 因汝與李河聞之矣。" 觀孝曰: "汝欲網打一世矣。" 光遠曰: "初八日, 吾在果川時, 汝送奴招我, 故乘舟來玄石, 其日雨中, 昌山君子來, 出錢買喫猪肉。 其時, 汝不言方欲送人平安兵營, 以四十金買馬以待云耶?" 刑觀孝一次不服, 上命斬泰徵、光遠、觀孝、世龍於陣門外。 泰徵, 素浮悖愚騃, 附一鏡、弼夢, 除統閫, 節次陞將任。 當湖南掛書事發, 訓將李森勸令送譏察, 推托不應, 至以全州營譏察將校, 見殺於邊山賊, 造言恐喝森。 及有十四日上變, 泰徵來見森, 平地三跌仆, 人怪其心動。 至是逆狀顯著, 上慮留置生變, 竝光遠等亟誅之, 自此人心小定, 賊氣亦大挫, 咸頌上之獨斷云。 問李河不服, 上令河、愼光遠面質。 光遠曰: "初八日, 汝不冒雨, 來問陽城 權瑞麟書札事乎? 十一日, 觀孝持銀而來, 河作抵瑞麟書而來, 仍使臣往見任瑞虎, 而不知厥家, 不爲往見。 瑞虎, 卽瑞鳳之弟也。" 河曰: "觀孝吾何以知之? 觀孝一日來, 吾問居何處, 觀孝曰: ‘居在不遠。’ 吾問來見之, 故觀孝曰: ‘近日嶺南有大擧措矣。’ 吾問何擧措, 觀孝曰: ‘嶺南人起兵爲逆。 君旣親朴弼顯, 豈不知此事乎?’ 其後, 觀孝三次來見言光遠事曰: ‘陽城大賊, 與嶺南賊相連。’ 云矣。" 光遠曰: "若問河以何以到吾家則可知矣。" 河曰: "吾問觀孝曰: ‘何人往來陽城乎?’ 觀孝曰: ‘自有其人。’ 偕往光遠家, 相見而還矣。" 光遠曰: "河言: ‘吾欲見元龍台, 多有相議之事, 而其家耳目煩多, 吾不能往見, 彼此皆泄泄。’ 云矣。" 河曰: "元龍, 似是泰徵之字也。" 光遠曰: "嶺南、湖南之誤了期會, 河使吾, 往問於瑞虎處, 而不知其人, 故不往矣。" 刑河一次, 河供: "臣與弼顯, 中歲相親, 弼顯言: ‘嶺南、京中, 不無同志之人, 汝欲入其黨乎?’ 臣問入者誰某。 弼顯曰: ‘嶺南及平安兵使起兵入來, 事可成矣。 同事者, 渠及韓世弘、李麟佐、桐溪子孫鄭哥名不知者。’ 云。 弼顯將赴泰仁時曰: ‘陽城有鄭世胤者, 主忠淸道事。’ 一日, 世胤來臣家問曰: ‘知朴平仲乎?’ 臣曰: ‘知之。’ 世胤曰: ‘知平仲, 則知吾事矣。 吾方聚兵謀叛, 嶺南盡起, 陽城 崔擎宇、權瑞麟聚軍, 魁帥, 乃我也。 京中則李有翼、梁命夏主事, 南泰徵亦與焉。’ 嶺南軍則世胤輩從中起, 平安兵使起兵入來, 事必成矣, 南人則閔觀孝主之, 小北則梁命夏主之, 少論則朴弼顯、李有翼、尹德裕主之, 弼顯雖出宰, 實爲魁帥, 昌山君亦入其中, 內兵則昌山聚其家僮, 以陽城兵一半, 上京用之, 韓游、韓洵、韓洸、尹天擎、鄭哥字伯通、尹㝚、尹邃、南泰績、李檉, 亦入其中。 此皆弼顯、韓洸之言, 臣不知其面, 漢陰子孫李志仁, 是光遠主人, 志仁四寸興仁, 或云入或云不入。 朴弼夢長子及武兼黃姓人士人李師白往平安兵營, 蓋爲此事, 而往未及來云矣。 觀孝爲犒陽城軍, 初送錢三百兩, 再送銀不知幾兩。 此外似不無人, 而傳言不詳矣。" 刑二次, 河又供: "參謀人文官趙鏛落漏矣。 李志仁壯士, 光遠所親壯士, 多聚於志仁家, 若問光遠則可知其名。 又有志仁之侄子矣, 元龍台之說, 與侄酬酢, 而不過以爲事成, 則可占訓將, 而李森母病方重, 森若遭喪, 則吾當占訓將, 不過如斯而已。 嶺南兵都數八千, 陽城兵三千。" 云矣。 刑三次, 供如初問, 相不服。 問人燁, 人燁供: "臣與觀孝, 爲四寸娚妹。 正月間, 觀孝請得銀兩, 故許貸八十兩, 非四十兩也。 馬則八九日前, 觀孝稱往保寧, 來借, 故臣果許借, 銀子今用於犒軍, 借馬之爲往陽城, 臣不知也。 光遠一次逢着於觀孝家, 而無接話之事。" 問尹㝚, 㝚不服。 問尹邃, 邃供: "臣爲別試初試, 欲與李有翼, 同接。 適逢有翼於路次, 下坐閭家談話, 忽有一人入來, 問之爲河也。" 問韓洸、韓游、韓洵、崔鳳韶、李世祿, 竝不服。 放安鎬、莫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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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16권, 영조 4년 3월 19일 己巳 11/15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민관효와 신광원을 대질시키다

국역

민관효(閔觀孝)를 문초하였으나 불복하였으므로, 민관효와 신광원(愼光遠)을 대질시켰다. 신광원이 말하기를,

"이달 초여드렛날 네가 어찌 ‘우리 무리가 장차 모조리 죽게 되었다.’라고 하지 않았으며, 네가 또 이하(李河)와 함께 우리 집에 오지 않았느냐? 네가 주머니에 은(銀) 40냥, 견설금(犬舌金) 12편(片), 기은(棊銀) 3편을 넣어서 나에게 주면서 양성(陽城) 권서린(權瑞麟)의 집으로 가서 무리들을 먹이라고 권하지 않았느냐?"

하니, 민관효가 말하기를,

"허무맹랑한 말이다."

하였다. 신광원이 말하기를,

"네가 ‘이 은은 강상(江上)의 창산군(昌山君)168) 집에서 가져 왔다.’고 하지 않았느냐? 창산군의 아들이 네 집에 오자, 네가 ‘이는 말을 숨길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라고 하지 않았느냐? 나를 양성으로 가라고 권할 때 너와 이하가 힘써 권하였고, 어찌 창산군의 인마(人馬)를 보내 주지 않았느냐?"

하고, 또 말하기를,

"내가 양성에 갈 때 이하가 어찌 권서린에게 편지 쓰기를, ‘그 일은 이 벗에게 물으면 알 수 있다.’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니, 민관효가 말하기를,

"근래에 네가 이하를 만나서 혹 한 말이 있었느냐? 나는 원래 수작한 바가 없다. 창산군 집은 종실(宗室) 중에서 가난한 집인데, 어떻게 은자를 마련하겠느냐?"

하였다. 신광원이 말하기를,

"네가 매양 이유익(李有翼)의 자(字)를 일컬으면서 ‘성례(聖禮)는 마땅히 태평 재상(太平宰相)이 될 것인지라, 내가 늘 일을 의논하고 있다. 이인좌가 이달 10일에 군사를 일으켜 14일에 모두 안동(安東)에서 만나고, 권서린(權瑞麟)은 13일에 양성에서 군사를 일으켜 15일에 모두 청주에서 모여 충청 병사를 참(斬)하기로 하였다.’라고 하고는, 네가 나를 시켜 이런 소식을 양성에서 탐지하도록 하지 않았느냐? 권서린이 13일에 출발하고자 하였는데 이인좌가 약속한 기일에 이르지 않아 고민하였다."

하고, 또 말하기를,

"남태징(南泰徵)의 일은 너와 이하에게 들었다."

하니, 민관효가 말하기를,

"네가 온 세상을 일망타진하려 하는구나."

하였다. 신광원이 말하기를,

"초여드렛날, 내가 과천(果川)에 있을 때 네가 종을 보내 나를 불렀기 때문에 배를 타고 현석(玄石)에서 왔는데, 그날 빗속에 창산군의 아들이 와 돈을 내어 돼지 고기를 사 먹었다. 그때 네가 ‘이제 곧 사람을 평안 병영으로 들여보내 40금(金)으로 말을 사서 기다리고자 한다.’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였다. 민관효를 1차 형신하였으나 불복하니, 임금이 명하기를,

"남태징·신광원·민관효·이세룡을 진문(陣門) 밖에서 참(斬)하라."

하였다. 남태징은 평소 경박하고 어리석었는데, 김일경(金一鏡)·박필몽(朴弼夢)에게 붙어서 통제사(統制使)에 제수되고 차례로 장임(將任)에 올랐다. 호남 괘서(掛書) 사건이 일어나자 훈장(訓將) 이삼(李森)이 기찰(譏察)을 보내도록 권고했는데, 핑계해 미루고 응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전주영(全州營)의 기찰하는 장교(將校)가 변산(邊山)의 적도에게 죽임을 당하였다는 말까지 지어내어 이삼을 공갈했다. 14일에 상변(上變)하기에 이르러서는 남태징이 이삼을 와서 보았는데, 평지(平地)에서 세 번이나 넘어져 사람들이 그의 마음이 동요되어 있는 것을 괴이하게 여겼다. 이때에 이르러 모역한 형상이 환히 드러나자, 임금이 그냥 두었다가는 변이 생길까 염려하여 신광원 등과 함께 빨리 죽이게 하니, 이로부터 인심이 조금 진정되고 적의 기세 역시 크게 꺾이어 모두 임금의 독단(獨斷)을 칭송하였다고 한다. 이하(李河)를 문초하였으나 불복하므로, 임금이 이하와 신광원을 대질(對質)시키도록 했다. 신광원이 말하기를,

"초여드렛날 네가 비를 맞으며 와서 양성(陽城) 권서룡(權瑞龍)의 서찰에 대한 일을 묻지 않았느냐?"

하고, 또 말하기를,

"11일에 민관효가 은을 가지고 오고 이하가 권서린에게 보내는 글을 지어가지고 와서 이어 신을 시켜 임서호(任瑞虎)를 가서 보게 하였는데, 그의 집을 몰라서 가서 보지 못하였습니다. 임서호는 바로 임서봉(任瑞鳳)의 아우입니다."

하고, 이하는 말하기를,

"민관효를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민관효가 어느 날 왔기에 사는 곳을 물었더니, 민관효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찾아온 까닭을 물었더니, 민관효가 말하기를, ‘근일 영남에 큰 거조(擧措)가 있다.’ 하기에 내가 무슨 거조냐고 물었더니, 민관효가 ‘영남 사람들이 군사를 일으켜 반역하기로 하였다. 그대가 박필현(朴弼顯)과 친한데 이 일을 어찌 모르는가?’ 하였습니다. 그후 민관효가 세 번 와서 신광원의 일을 말하기를, ‘양성의 대적(大賊)이 영남의 적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신광원이 말하기를,

"만약 이하에게 물으면 어떻게 우리집에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니, 이하가 말하기를,

"내가 민관효에게 묻기를, ‘누가 양성을 왕래하고 있는가?’ 하니, 민관효가 말하기를, ‘그런 사람이 있다.’라고 하여 함께 신광원의 집에 가서 서로 만나보고 돌아왔습니다."

하였다. 신광원이 말하기를,

"이하가 말하기를, ‘내가 원룡(元龍)대감을 만나 상의할 일이 많은데, 그 집은 이목이 번잡해 내가 가서 만나볼 수가 없어 피차 모두 늦추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이하가 말하기를,

"원룡은 남태징(南泰徵)의 자(字)인 듯합니다."

하였다. 신광원이 말하기를,

"영남과 호남에서 회합할 기약을 어기자 이하가 나를 시켜 임서호에게 가서 물어보도록 했는데, 그 사람을 모르기 때문에 가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이하를 1차 형신하니, 이하가 공술하기를,

"신은 박필현과 중년에 서로 친하게 되었는데, 박필현이 말하기를, ‘영남과 서울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없지 않은데, 너도 그 무리에 들고자 하는가?’ 하기에, 신이 누구누구가 들어 있는가 물었습니다. 박필현이 말하기를, ‘영남 및 평안 병사(平安兵使)가 군사를 일으켜 들어오면, 일이 성취될 것이다. 함께 일하는 자는 나와 한세홍(韓世弘)·이인좌(李麟佐), 동계(桐溪)169) 의 자손인 정가(鄭哥)로 이름을 모르는 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박필현이 장차 태인(泰仁)으로 부임하려 할 때 말하기를 ‘양성에 정세윤(鄭世胤)이란 자가 있어 충청도 일을 주관한다.’고 하였는데, 하루는 정세윤이 신의 집에 와서 묻기를, ‘박평중(朴平仲)170) 을 아는가?’라고 하므로, 신이 안다고 하였습니다. 정세윤이 말하기를, ‘평중을 안다면 내 일도 알 것이다. 내가 이제 군사를 모아 모반(謀叛)하려 하는데 영남이 모두 일어나고, 양성의 최경우(崔擎宇)·권서린(權瑞麟)도 군사를 모으는데 괴수(魁帥)는 바로 나다. 서울에서는 이유익(李有翼)·양명하(粱命夏)가 일을 주관하는데 남태징 역시 참여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영남의 군사는 정세윤의 무리가 안에서 일어나고 평안 병사가 군사를 일으켜 들어오면 반드시 일이 성취될 것이며, 남인(南人)은 민관효(閔觀孝)가 주관하고, 소북(小北)은 양명하가 주관하며, 소론(少論)은 박필현·이유익·윤덕유(尹德裕)가 주관하는데, 박필현이 비록 읍재(邑宰)로 나가 있지만, 사실상 괴수(魁帥)이며, 창산군(昌山君) 역시 그 가운데 들어 있어 내병(內兵)은 창산군이 그 집 종들을 모으고 양성의 군사 절반을 서울로 올라오게 해 쓰며, 한유(韓游)·한순(韓洵)·한광(韓光)·윤천경(尹天擎), 정가(鄭哥)로 자(字)가 백통(伯通)인 자, 윤연(尹㝚)·윤수(尹邃)·남태적(南泰績)·이정(李檉) 역시 그 가운데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두 박필현과 한광의 말로서 신은 그 얼굴을 모르며, 한음(漢陰)의 자손 이지인(李志仁)은 바로 신광원(愼光遠)의 주인(主人)인데, 이지인의 4촌인 이흥인(李興仁)은 어떤 사람은 들었다 하기도 하고 혹은 들지 않았다고 하기도 합니다. 박필몽의 큰 아들과 무겸(武兼)으로 황씨(黃氏) 성을 가진 자와 사인(士人) 이사백(李師白)이 평안(平安) 병영으로 간 것은 대개 이 일을 위해서인데, 가서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민관효가 양성의 군사를 호궤(犒饋)하기 위해 처음에 돈 3백 냥을 보냈고, 재차 보낸 은(銀)은 몇 냥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외에도 들어간 사람이 없지 않은 듯하나 전한 말이 자세하지 못합니다."

하였다. 2차 형신하니, 이하가 또 공술하기를,

"모의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문관(文官) 조상(趙鏛)이 누락되었습니다. 이지인(李志仁)은 장사(壯士)여서 신광원과 친한 장사가 이지인의 집에 많이 모이는데, 만약 신광원에게 물으면 그 이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이지인의 조카가 있어 ‘원룡(元龍) 대감’의 말을 조카와 수작하였는데, 내용은 ‘일이 이루어지면 훈장(訓將)은 점칠 수 있는 것인데, 이삼(李森)의 어머님 병이 바야흐로 중하니, 만일 상을 당한다면 내가 마땅히 훈장을 차지할 것이다.’고 한 데 불과했을 뿐입니다. 영남의 군사는 숫자가 도합 8천 명이요, 양성의 군사는 3천 명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3차 형신하니, 처음 문초할 때와 같이 불복(不服)하였다. 인엽(人燁)을 문초하니, 인엽이 공술하기를,

"신은 민관효와 사촌 남매(娚妹)간입니다. 정월 사이에 민관효가 은냥(銀兩)을 요청하기에 80냥을 빌려 주었지 40냥이 아닙니다. 말은 8, 9일 전에 민관효가 보령(保寧)으로 간다고 와서 빌리기에 신이 과연 빌려 주었는데, 은자는 지금 호군(犒軍)하는 데 썼고 말을 빌린 것이 양성으로 가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신이 몰랐습니다. 신광원은 한 차례 민관효의 집에서 만났으나 대화한 일은 없습니다."

하였다. 윤연(尹㝚)을 문초하였으나, 불복하였다. 윤수(尹邃)를 문초하니, 윤수가 공초하기를,

"신이 별시(別試) 초시(初試)를 보기 위해 이유익(李有翼)과 동접(同接)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마침 이유익을 길에서 만나 내려가 여염집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들어오기에 물으니, 이하(李河)였습니다."

하였다. 한광(韓洸)·한유(韓游)·한순(韓洵)·최봉소(崔鳳韶)·이세록(李世祿)을 문초하였으나, 모두 불복하였다. 안호(安鎬)와 막실(莫實)은 석방하였다.

  • [註 168] 창산군(昌山君) : 이름은 상(相).
  • [註 169] 동계(桐溪) : 정온(鄭蘊)의 호.
  • [註 170] 박평중(朴平仲) : 평중은 박필현의 자(字).

원문

○問觀孝不服, 令觀孝、愼光遠面質。 光遠曰: "今月初八日, 汝豈不曰: ‘吾輩將盡死云乎?’ 汝又不與李河同來我家乎? 汝不囊儲銀四十兩、犬舌金十二片、棊銀三片, 勸我往陽城 權瑞麟家, 饋徒黨乎?" 觀孝曰: "虛無。" 光遠曰: "不曰: ‘厥銀, 自江上昌山君家持來乎?’ 昌山君子來汝家, 汝不以爲此, 非諱言之人乎? 勸我往陽城時, 汝與李河力勸, 豈不送昌山君人馬乎?" 又曰: "我往陽城時, 李河豈不作書於權瑞麟曰: ‘厥事問于此友, 則可知。’ 云爾乎?" 觀孝曰: "近來汝逢李河, 或有所言否? 我則元無酬酢矣。 昌山君家, 宗室之貧者, 何能辦得銀子耶?" 光遠曰: "汝每稱李有翼之字曰: ‘聖禮當爲太平宰相, 吾每事議之矣。 李麟佐今月十日起兵, 十四日都會安東, 權瑞麟十三日起兵陽城, 十五日都會淸州, 斬忠淸兵使。’ 汝不使我, 探此消息於陽城乎? 瑞麟, 十三日欲爲離發, 而以麟佐之期會不至爲悶矣。" 又曰: "南泰徵事, 因汝與李河聞之矣。" 觀孝曰: "汝欲網打一世矣。" 光遠曰: "初八日, 吾在果川時, 汝送奴招我, 故乘舟來玄石, 其日雨中, 昌山君子來, 出錢買喫猪肉。 其時, 汝不言方欲送人平安兵營, 以四十金買馬以待云耶?" 刑觀孝一次不服, 上命斬泰徵、光遠、觀孝、世龍於陣門外。 泰徵, 素浮悖愚騃, 附一鏡、弼夢, 除統閫, 節次陞將任。 當湖南掛書事發, 訓將李森勸令送譏察, 推托不應, 至以全州營譏察將校, 見殺於邊山賊, 造言恐喝森。 及有十四日上變, 泰徵來見森, 平地三跌仆, 人怪其心動。 至是逆狀顯著, 上慮留置生變, 竝光遠等亟誅之, 自此人心小定, 賊氣亦大挫, 咸頌上之獨斷云。 問李河不服, 上令河、愼光遠面質。 光遠曰: "初八日, 汝不冒雨, 來問陽城 權瑞麟書札事乎? 十一日, 觀孝持銀而來, 河作抵瑞麟書而來, 仍使臣往見任瑞虎, 而不知厥家, 不爲往見。 瑞虎, 卽瑞鳳之弟也。" 河曰: "觀孝吾何以知之? 觀孝一日來, 吾問居何處, 觀孝曰: ‘居在不遠。’ 吾問來見之, 故觀孝曰: ‘近日嶺南有大擧措矣。’ 吾問何擧措, 觀孝曰: ‘嶺南人起兵爲逆。 君旣親朴弼顯, 豈不知此事乎?’ 其後, 觀孝三次來見言光遠事曰: ‘陽城大賊, 與嶺南賊相連。’ 云矣。" 光遠曰: "若問河以何以到吾家則可知矣。" 河曰: "吾問觀孝曰: ‘何人往來陽城乎?’ 觀孝曰: ‘自有其人。’ 偕往光遠家, 相見而還矣。" 光遠曰: "河言: ‘吾欲見元龍台, 多有相議之事, 而其家耳目煩多, 吾不能往見, 彼此皆泄泄。’ 云矣。" 河曰: "元龍, 似是泰徵之字也。" 光遠曰: "嶺南、湖南之誤了期會, 河使吾, 往問於瑞虎處, 而不知其人, 故不往矣。" 刑河一次, 河供: "臣與弼顯, 中歲相親, 弼顯言: ‘嶺南、京中, 不無同志之人, 汝欲入其黨乎?’ 臣問入者誰某。 弼顯曰: ‘嶺南及平安兵使起兵入來, 事可成矣。 同事者, 渠及韓世弘、李麟佐、桐溪子孫鄭哥名不知者。’ 云。 弼顯將赴泰仁時曰: ‘陽城有鄭世胤者, 主忠淸道事。’ 一日, 世胤來臣家問曰: ‘知朴平仲乎?’ 臣曰: ‘知之。’ 世胤曰: ‘知平仲, 則知吾事矣。 吾方聚兵謀叛, 嶺南盡起, 陽城 崔擎宇、權瑞麟聚軍, 魁帥, 乃我也。 京中則李有翼、梁命夏主事, 南泰徵亦與焉。’ 嶺南軍則世胤輩從中起, 平安兵使起兵入來, 事必成矣, 南人則閔觀孝主之, 小北則梁命夏主之, 少論則朴弼顯、李有翼、尹德裕主之, 弼顯雖出宰, 實爲魁帥, 昌山君亦入其中, 內兵則昌山聚其家僮, 以陽城兵一半, 上京用之, 韓游、韓洵、韓洸、尹天擎、鄭哥字伯通、尹㝚、尹邃、南泰績、李檉, 亦入其中。 此皆弼顯、韓洸之言, 臣不知其面, 漢陰子孫李志仁, 是光遠主人, 志仁四寸興仁, 或云入或云不入。 朴弼夢長子及武兼黃姓人士人李師白往平安兵營, 蓋爲此事, 而往未及來云矣。 觀孝爲犒陽城軍, 初送錢三百兩, 再送銀不知幾兩。 此外似不無人, 而傳言不詳矣。" 刑二次, 河又供: "參謀人文官趙鏛落漏矣。 李志仁壯士, 光遠所親壯士, 多聚於志仁家, 若問光遠則可知其名。 又有志仁之侄子矣, 元龍台之說, 與侄酬酢, 而不過以爲事成, 則可占訓將, 而李森母病方重, 森若遭喪, 則吾當占訓將, 不過如斯而已。 嶺南兵都數八千, 陽城兵三千。" 云矣。 刑三次, 供如初問, 相不服。 問人燁, 人燁供: "臣與觀孝, 爲四寸娚妹。 正月間, 觀孝請得銀兩, 故許貸八十兩, 非四十兩也。 馬則八九日前, 觀孝稱往保寧, 來借, 故臣果許借, 銀子今用於犒軍, 借馬之爲往陽城, 臣不知也。 光遠一次逢着於觀孝家, 而無接話之事。" 問尹㝚, 㝚不服。 問尹邃, 邃供: "臣爲別試初試, 欲與李有翼, 同接。 適逢有翼於路次, 下坐閭家談話, 忽有一人入來, 問之爲河也。" 問韓洸、韓游、韓洵、崔鳳韶、李世祿, 竝不服。 放安鎬、莫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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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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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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