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6권, 영조 4년 3월 17일 丁卯 3/12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순토사 김중기가 머뭇거리므로 추고하다
국역
어영 대장(御營大將) 조문명(趙文命)이 말하기를,
"어영 상번군(上番軍)이 호남은 3초(哨), 호서는 2초가 이번에 올라오는데, 중도에서 적의 협박을 받으면 투항해 들어갈 염려가 없지 않고, 비록 적을 따르지 않더라도 반드시 환산(渙散)할 우려가 없지 않습니다. 청컨대 장교(將校)를 보내 중로에서 맞아 오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교리(校理) 조현명(趙顯命)이 청하기를,
"종사관(從事官)으로서 순토사(巡討使) 김중기(金重器)를 따라 죽음으로써 공을 세우게 해 주소서."
하니, 허락하고 이어 연로(沿路)를 안무(安撫)하라고 명하였다. 김중기가 입대(入對)하여 말하기를,
"신이 평시에 군사를 거느린 일이 없었으니, 단기(單騎)로 내려가는 것은 신중한 도리가 아닙니다. 청컨대 장단(長湍)의 군사가 올라오면 거느리고 가겠습니다."
하니, 오명항이 말하기를,
"곽자의(郭子儀)157) 는 13기(騎)로 토번(吐蕃)의 군영에 들어갔고, 주아부(周亞夫)158) 는 행군하면서 군사를 모아 낙양(洛陽)에 이르러 오(吳)·초(楚)의 간담(肝膽)을 서늘하게 했으니, 김중기의 말은 잘못입니다."
하고, 이광좌는 말하기를,
"이런 위난(危難)한 때를 당하여 분발해 몸을 돌아보지 않고 분개하여 즉시 가는 것이 곧 장수의 일입니다. 총융청(摠戎廳)의 표하군(標下軍)이 본래 적지 않고, 수원(水原)으로 출진(出陳)하면 또 7천 명의 군사와 말이 있는데 어찌 군사가 없다고 사피하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참으로 이른바 의논을 정할 때 노(虜)는 이미 강을 건넜다는 것과 같다. 박찬신(朴纘新)을 어제도 내보내지 못하였으니, 오늘날의 군신(君臣)은 참으로 느슨하다고 이를 만하다. 일이 급한데 어느 겨를에 기읍(畿邑)의 군사를 기다리겠는가? 순토사는 오늘 과천(果川)으로 나가 군사를 합쳐 전진해야 옳다."
하니, 김중기가 또 말이 없다는 핑계를 댔다. 정자(正字) 이종성(李宗城)이 말하기를,
"김중기가 친히 면대하여 명을 받고도 아직껏 머뭇거리고 또 말이 없다고 번거로이 품(稟)하고 있으니, 청컨대 중히 책망하여 경칙(謦飭)하소서."
하니, 임금이 추고(推考)하라 명하였다. 대사간 송인명(宋寅明)이 ‘박찬신이 막 사조(辭朝)한 뒤에 도성 안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출발한 것은 기율(紀律)에 관계가 있다.’ 하여 추고를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때 김중기는 관망(觀望)을 핑계대었고, 박찬신은 사조한 뒤에 도성 안에서 하룻밤을 자고 비로소 출발하였으니, 적의 초사에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그들이 흉모(凶謀)를 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 죄를 성토하여 죽이지 못하고 추고하고 율(律)로써 경계해 책망하고자 했으니, 군율이 이와 같았는데도 나라가 위태롭지 않은 것이 천행(天幸)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18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군사-중앙군(中央軍)
- [註 157] 곽자의(郭子儀) : 당(唐)나라 때의 명장(名將). 당 현종(唐玄宗) 때 안사(安史)의 난을 평정하고, 적은 군사로 토번(吐蕃)을 정벌하여 분양군왕(汾陽郡王)에 봉해졌음.
- [註 158] 주아부(周亞夫) : 한 문제(漢文帝) 때 사람. 경제(景帝) 때 오(吳)·초(楚) 등 7국(七國)이 반란을 일으키니, 흉노(匈奴)를 지키고 있던 주아부에게 명하여 치게 하여 격파하자 승상(丞相)을 제수하였음.
원문
○御營大將趙文命言: "御營上番軍, 湖南三哨, 湖西二哨, 今番上來, 中路逢賊被脅, 則不無投入之慮, 雖不從賊, 必有渙散之患。 請遣將校, 要於中路領來。" 從之。 校理趙顯命請以從事官, 從巡討使金重器, 以死自效, 許之。 仍命安撫沿路。 重器入對言: "臣平時無領軍之事, 單騎下往, 非愼重之道。 請待長湍兵上來領去。" 吳命恒曰: "郭子儀以十三騎, 入吐蕃軍, 周亞夫行收兵, 至洛陽、吳、楚破膽, 重器言非矣。" 光佐曰: "當此危難之際, 奮不顧身, 慨然卽行, 此將帥事。 摠戎廳標下軍, 本自不少, 出陣水原, 則亦有七千兵馬, 何可以無軍爲辭乎?" 上曰: "眞所謂議論定時虜已渡江。 朴纉新, 昨亦不能出送, 今日君臣, 可謂泄泄。 事急奚暇, 待畿邑軍乎? 巡討使今日出果川, 合兵前進可也。 重器又辭以無馬。 正字李宗城曰: "重器親承面命, 當今遲留, 且以無馬煩稟, 請重責警飭。" 上命推考。 大司諫宋寅明, 以朴纉新辭朝之後, 經宿都中, 今朝始發, 有關紀律, 請推考, 上從之。 時, 重器稱托觀望, 纉新辭朝, 經宿而始發, 不待賊招之出, 而可知其懷凶謀矣。 不能聲其罪而誅之, 欲以推考之律, 警責之, 師律如是, 而國之不危, 天也。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18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군사-중앙군(中央軍)
영조실록16권, 영조 4년 3월 17일 丁卯 3/12 기사 /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순토사 김중기가 머뭇거리므로 추고하다
국역
어영 대장(御營大將) 조문명(趙文命)이 말하기를,
"어영 상번군(上番軍)이 호남은 3초(哨), 호서는 2초가 이번에 올라오는데, 중도에서 적의 협박을 받으면 투항해 들어갈 염려가 없지 않고, 비록 적을 따르지 않더라도 반드시 환산(渙散)할 우려가 없지 않습니다. 청컨대 장교(將校)를 보내 중로에서 맞아 오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교리(校理) 조현명(趙顯命)이 청하기를,
"종사관(從事官)으로서 순토사(巡討使) 김중기(金重器)를 따라 죽음으로써 공을 세우게 해 주소서."
하니, 허락하고 이어 연로(沿路)를 안무(安撫)하라고 명하였다. 김중기가 입대(入對)하여 말하기를,
"신이 평시에 군사를 거느린 일이 없었으니, 단기(單騎)로 내려가는 것은 신중한 도리가 아닙니다. 청컨대 장단(長湍)의 군사가 올라오면 거느리고 가겠습니다."
하니, 오명항이 말하기를,
"곽자의(郭子儀)157) 는 13기(騎)로 토번(吐蕃)의 군영에 들어갔고, 주아부(周亞夫)158) 는 행군하면서 군사를 모아 낙양(洛陽)에 이르러 오(吳)·초(楚)의 간담(肝膽)을 서늘하게 했으니, 김중기의 말은 잘못입니다."
하고, 이광좌는 말하기를,
"이런 위난(危難)한 때를 당하여 분발해 몸을 돌아보지 않고 분개하여 즉시 가는 것이 곧 장수의 일입니다. 총융청(摠戎廳)의 표하군(標下軍)이 본래 적지 않고, 수원(水原)으로 출진(出陳)하면 또 7천 명의 군사와 말이 있는데 어찌 군사가 없다고 사피하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참으로 이른바 의논을 정할 때 노(虜)는 이미 강을 건넜다는 것과 같다. 박찬신(朴纘新)을 어제도 내보내지 못하였으니, 오늘날의 군신(君臣)은 참으로 느슨하다고 이를 만하다. 일이 급한데 어느 겨를에 기읍(畿邑)의 군사를 기다리겠는가? 순토사는 오늘 과천(果川)으로 나가 군사를 합쳐 전진해야 옳다."
하니, 김중기가 또 말이 없다는 핑계를 댔다. 정자(正字) 이종성(李宗城)이 말하기를,
"김중기가 친히 면대하여 명을 받고도 아직껏 머뭇거리고 또 말이 없다고 번거로이 품(稟)하고 있으니, 청컨대 중히 책망하여 경칙(謦飭)하소서."
하니, 임금이 추고(推考)하라 명하였다. 대사간 송인명(宋寅明)이 ‘박찬신이 막 사조(辭朝)한 뒤에 도성 안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출발한 것은 기율(紀律)에 관계가 있다.’ 하여 추고를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때 김중기는 관망(觀望)을 핑계대었고, 박찬신은 사조한 뒤에 도성 안에서 하룻밤을 자고 비로소 출발하였으니, 적의 초사에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그들이 흉모(凶謀)를 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 죄를 성토하여 죽이지 못하고 추고하고 율(律)로써 경계해 책망하고자 했으니, 군율이 이와 같았는데도 나라가 위태롭지 않은 것이 천행(天幸)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18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군사-중앙군(中央軍)
- [註 157] 곽자의(郭子儀) : 당(唐)나라 때의 명장(名將). 당 현종(唐玄宗) 때 안사(安史)의 난을 평정하고, 적은 군사로 토번(吐蕃)을 정벌하여 분양군왕(汾陽郡王)에 봉해졌음.
- [註 158] 주아부(周亞夫) : 한 문제(漢文帝) 때 사람. 경제(景帝) 때 오(吳)·초(楚) 등 7국(七國)이 반란을 일으키니, 흉노(匈奴)를 지키고 있던 주아부에게 명하여 치게 하여 격파하자 승상(丞相)을 제수하였음.
원문
○御營大將趙文命言: "御營上番軍, 湖南三哨, 湖西二哨, 今番上來, 中路逢賊被脅, 則不無投入之慮, 雖不從賊, 必有渙散之患。 請遣將校, 要於中路領來。" 從之。 校理趙顯命請以從事官, 從巡討使金重器, 以死自效, 許之。 仍命安撫沿路。 重器入對言: "臣平時無領軍之事, 單騎下往, 非愼重之道。 請待長湍兵上來領去。" 吳命恒曰: "郭子儀以十三騎, 入吐蕃軍, 周亞夫行收兵, 至洛陽、吳、楚破膽, 重器言非矣。" 光佐曰: "當此危難之際, 奮不顧身, 慨然卽行, 此將帥事。 摠戎廳標下軍, 本自不少, 出陣水原, 則亦有七千兵馬, 何可以無軍爲辭乎?" 上曰: "眞所謂議論定時虜已渡江。 朴纉新, 昨亦不能出送, 今日君臣, 可謂泄泄。 事急奚暇, 待畿邑軍乎? 巡討使今日出果川, 合兵前進可也。 重器又辭以無馬。 正字李宗城曰: "重器親承面命, 當今遲留, 且以無馬煩稟, 請重責警飭。" 上命推考。 大司諫宋寅明, 以朴纉新辭朝之後, 經宿都中, 今朝始發, 有關紀律, 請推考, 上從之。 時, 重器稱托觀望, 纉新辭朝, 經宿而始發, 不待賊招之出, 而可知其懷凶謀矣。 不能聲其罪而誅之, 欲以推考之律, 警責之, 師律如是, 而國之不危, 天也。
- 【태백산사고본】 13책 16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18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군사-중앙군(中央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