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9권, 영조 2년 5월 24일 乙卯 1/1 기사 / 1726년 청 옹정(雍正) 4년
고려 태조의 이름을 기휘하는 일을 논의하다
국역
소대를 행하여 《강목(綱目)》을 강(講)하다가 임금이 유신(儒臣)에게 묻기를,
"진(晉)나라가 사신(使臣)을 고려(高麗)에 보냈다는 대문(大文) 아래에 있는 고려 태조(高麗太祖)의 이름을 마땅히 휘(諱)277) 하여야 되지 않겠는가?"
하자, 시독관(侍讀官) 윤심형(尹心衡)이 말하기를,
"비록 삼대(三代)의 성군(聖君)이라도 모두 휘하지 않았는데, 고려 태조의 이름이라고 휘하여야 할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고려 태조는 전대(前代)의 제왕(帝王)과는 다른 바가 있다. 아조(我朝)의 4왕(王)이 모두 고려조(高麗朝)에 벼슬하였으니, 고려 태조의 이름을 지금의 신하들은 비록 휘할 필요가 없다고 할지라도 군왕의 입장으로서는 마땅히 휘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하였다. 검토관(檢討官) 김용경(金龍慶)이 말하기를,
"다만 고려 태조만 휘한다는 것입니까? 고려의 모든 왕(王)도 다 휘한다는 것입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다만 태조(太祖)만을 휘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9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592면
- [註 277] 휘(諱) : 높은 이의 이름 부르기를 피함.
원문
영조 2년 (1726) 5월 24일
영조실록9권, 영조 2년 5월 24일 乙卯 1/1 기사 / 1726년 청 옹정(雍正) 4년
고려 태조의 이름을 기휘하는 일을 논의하다
국역
소대를 행하여 《강목(綱目)》을 강(講)하다가 임금이 유신(儒臣)에게 묻기를,
"진(晉)나라가 사신(使臣)을 고려(高麗)에 보냈다는 대문(大文) 아래에 있는 고려 태조(高麗太祖)의 이름을 마땅히 휘(諱)277) 하여야 되지 않겠는가?"
하자, 시독관(侍讀官) 윤심형(尹心衡)이 말하기를,
"비록 삼대(三代)의 성군(聖君)이라도 모두 휘하지 않았는데, 고려 태조의 이름이라고 휘하여야 할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고려 태조는 전대(前代)의 제왕(帝王)과는 다른 바가 있다. 아조(我朝)의 4왕(王)이 모두 고려조(高麗朝)에 벼슬하였으니, 고려 태조의 이름을 지금의 신하들은 비록 휘할 필요가 없다고 할지라도 군왕의 입장으로서는 마땅히 휘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하였다. 검토관(檢討官) 김용경(金龍慶)이 말하기를,
"다만 고려 태조만 휘한다는 것입니까? 고려의 모든 왕(王)도 다 휘한다는 것입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다만 태조(太祖)만을 휘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9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592면
- [註 277] 휘(諱) : 높은 이의 이름 부르기를 피함.
원문
원본
영조 2년 (1726) 5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