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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5권, 영조 1년 4월 9일 丙子 4/9 기사 / 1725년 청 옹정(雍正) 3년

정언 한덕전이 시비, 의리의 명변을 말하고 윤봉구, 한원진 등을 추천하다

국역

정언(正言) 한덕전(韓德全)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전하께서 비록 학문하시는 뜻은 있으나, 실로 학문하시는 방도를 알지 못하십니다. 대저 이른바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꼼짝 하지 않고 앉아서 글을 읽으며 과정(課程)만을 쫓아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름지기 시비(是非)의 귀착점을 분명히 알고 사정(邪正)의 분별을 자세히 살펴서 사의(私意)를 깨끗이 떨쳐 없애고 한결같이 의리(義理)의 정도(正道)를 따를 수 있게 된 후에야 바야흐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인(古人)이 학문을 논하는 방도는 조문[條緖]이 아무리 많더라도 궁리(窮理)를 근본으로 삼는 것이며, 궁리의 방도에 있어서는 지름길이 한둘이 아니지만 실견(實見)이 요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치가 이미 밝아졌고 견해가 이미 실다워졌으면 시비(是非)와 사정(邪正)은 각기 분계(分界)가 있으므로 어떤 일이 눈앞에 닥쳐도 손이 가는 대로 판결이 나게 될 것이니, 문득 어긋나고 머뭇거리는 근심이 없는 법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그렇지 않으셔서, 문의(文義)의 끝머리와 경지(經旨)의 사이에 비록 부지런히 공부하시지만, 일을 처리하는 때에 미쳐서는 거기서 힘을 얻는 효과가 없으십니다. 더러는 음양(陰陽)의 구별에 어두우셔서 두리뭉실하게 처리하시는 것이 있기도 하고, 더러는 마음속으로 선악(善惡)을 구별하셔서 사정을 보아가며 해결하시는 것이 있기도 합니다만, 끝내 일도 양단(一刀兩斷)하시어 일을 결단내리시는 뜻이 없으십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학문의 도(道)는 겸손한 마음을 기본으로 삼고, 사령(辭令)의 사이에는 간결 중후한 것을 요점으로 삼는 것입니다. 가만히 살펴보건대, 전하께서는 예성(睿性)이 뛰어나셨으나 스스로 너그러우신 듯이 자처(自處)하시면서 다른 사람은 편협하다고 여기시는 뜻이 있으며, 언사(言辭)가 쾌활하나 영기(英氣)가 너무 드러나는 병통이 있으신데, 이것은 모두 학자들이 크게 꺼리는 것이고 군도(君道)로서 지극히 경계하는 것입니다. 선유(先儒)가 기질(氣質)을 변화시키는 도를 논하기를, ‘극기(克己)는 성품이 치우쳐 극복(克服)하기 어려운 데로 좇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하였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엄중하게 개혁(改革)을 가하여 정치하는 근본을 세우소서. 또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는 일마다 문구(文具)를 배척하시고 말끝마다 성실히 하라고 하십니다. 문구란 본래 가증스럽고 성실이란 본래 귀히 여길 만하나, 오늘 한 가지 성실을 행하고 내일 한 가지 문구를 제거하여 조금씩 쌓아서 모은 뒤에나 될 수 있는 것이지, 외적(外的)인 말만 가지고 가려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유(先儒)의 말에, ‘《주역(周易)》을 잘 아는 자는 《주역》을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계사(繫辭)에도 이르기를, ‘묵묵히 이루어가면 말하지 아니하여도 믿는다.’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하께서 행하시는 일이 문구에 가깝다.’ 했으니, 전하의 마음에 성실하지 못한 바가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원하건대, 전하께서 행하시는 일이 문구에 가깝다.’했으니, 전하의 마음에 성실하지 못한 바가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스스로 돌이켜 반성하며 묵묵히 점검하시어 허물이 있으면 고치시고 허물이 없으면 더욱 힘쓰소서."

하고, 이어서 청하기를,

"초야(草野)에 숨어 있는 선비를 초빙하시되, 직명(職名)의 유무(有無)를 막론하고 별유(別諭)로 부르시고, 직사(職事)를 강제로 맡기지 마시고, 그를 경연(經筵)에서 윤번(輪番)으로 시강(侍講)하게 하소서."

하고, 또 아뢰기를,

"이간(李柬)의 통달하고 걸출함과 이이근(李頤根)의 조용하고 근신함과 윤봉구(尹鳳九)의 순박하고 온아함과 한원진(韓元震)의 해박하고 두루 아는 식견이 이번 선발에 참으로 합당합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춘궁(春宮)을 보도(輔導)하는 데는 마땅히 요속(僚屬)을 가려야 하는데, 세자부(世子府)를 열고 첫 번째 선발에 김시좌(金時佐)같이 탐람하여 수치를 몰라서 사류(士流)에 용납되지 못하는 자도 익위사(翊衛司)에 참여시켰으니, 다시 정밀하게 가려야 마땅합니다."

하고, 또 청하기를,

"윤선거(尹宣擧) 부자(父子)의 관작(官爵)과 시호(諡號)를 삭탈하고 그 사당(祠堂)을 헐어 없애는 것을 한결같이 숙묘(肅廟)의 처분대로 따르소서."

하고, 또 아뢰기를,

"성궁(聖躬)을 속여서 핍박하고 선류(善類)들을 장해(戕害)한 자가 어찌 적신(賊臣) 유봉휘(柳鳳輝)뿐이겠습니까? 근원을 소급해서 논한다면 조태구(趙泰耉)와 최석항(崔錫恒)이 괴수입니다. 무릇 조태구의 한 ‘혐(嫌)’ 자가 실로 전하를 위태롭게 만들고자 꾀한 장본입니다. 적신 유봉휘의 상소가 나오자 조태구가 변명하는 소장(疏章)을 잇따라 올렸으니, 그 내력이란 것이 벌써 분명하여 스스로 한 줄로 관통한 바가 있습니다. 요비(妖婢)와 역환(逆宦)이 궁궐 안에서 변고(變故)를 일으켜 화기(禍機)가 급박해져서 그 사이에 조금도 용납할 바가 없게 되었으니, 자성(慈聖)의 애통한 교서(敎書)는 진실로 대단히 위급한 데에서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조태구가 중간에서 조종(操縱)하여 그 때마다 문득 작환(繳還)하였으니, 새로 등극하신 임금께서 천륜(天倫)이 지극히 돈독하시고 우애(友愛)가 막힘 없이 친밀하시지 않았으면, 전하께서 어찌 오늘날 이렇게 보전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또 북문(北門)을 몰래 열고 우두머리가 된 자도 조태구요, 국문(鞫問)을 본부(本府)에 이관(移管)하여 일을 주장한 자도 조태구입니다. 그 수말(首末)을 상고하여 처단한다면 조태구의 죄는 어떻게 처리하여야 마땅하겠습니까? 최석항(崔錫恒)에 이르러서는 3년 동안 옥사(獄事)를 국문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주장하였는데, 잠시 늦추었다가 조급하게 하는 등 조종(操縱)하며 기관(機關)을 제멋대로 환롱(幻弄)하여 마침내 크나큰 화란을 빚었으니, 그가 범한 죄상을 논하면 어찌 적신(賊臣) 조태구와 차이가 있겠습니까? 마땅히 추죄(追罪)를 더해야 합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문천(門川)의 문포 서원(文浦書院)은 바로 선정신(先正臣) 송시열(宋時烈)을 향사(享祀)하던 곳인데, 이제까지 도신(道臣)과 본관(本官) 수령이 조정의 명령도 없이 임의로 훼철했으니, 모두 멀리 귀양 보내어야 마땅합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광흥 봉사(廣興奉事) 김수귀(金壽龜)는 지난날 상소를 올려 선정신(先正臣)을 더럽히고 욕보였으니, 마음쓰는 것이 음흉하고 참혹합니다. 절도(絶島)에 정배(定配)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황욱(黃昱)·김범갑(金范甲)의 흉소(凶疏) 또한 다를 바가 없으니 일체로 처리하여야 하고, 따라서 참가한 사람 중에 함부로 사로(仕路)에 통한 자 또한 조사하여 태거(汰去)시키소서."

하고, 또 아뢰기를,

"김제 군수(金堤郡守) 양득중(梁得中)은 행실에 허물이 많아 향리(鄕里)에서 상종(相從)하지 않았으며, 재결(災結)을 몰래 도둑질하고 사사로이 환곡(還穀)을 빼냈습니다. 영광 군수(靈光郡守) 황익재(黃翼再)는 기사년675) 의 흉얼(凶孽)로서 때를 따라 꼬리치는 것이 여우나 쥐와 같았습니다. 적신(賊臣) 김일경(金一鏡)이 배소(配所)에 가는 길에 황익재가 몰래 가서 손을 잡고 자기 재물을 가져다가 그에게 바쳤으니, 모두 사판(仕版)에서 삭제(削除)하여야 마땅합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후사(喉司)의 신하는 봉박(封駁)하는 것으로 직임을 삼는 것입니다. 지난날 승정원에 내리신 전교(傳敎)는 이미 실언(失言)을 면하지 못하였는데, 후원(喉院)에서는 이 전교를 들은 후로부터 기상(氣象)이 소침(消忱)해져서 일마다 시들하게 여기고는, 오로지 임금의 명을 봉행(奉行)하면서 곡진히 삼가고 공경하는 것만 직무(職務)로 삼고 있습니다. 흉인(凶人)들의 배단(配單)이 자주 바뀌고, 참소(譖訴)하고 무고(誣告)하는 흉적(凶賊)들의 상소도 곧장 받아들이고는 머리를 수그리고 물러나 처분만 기다리며 감히 그 사이에서 한 마디 말조차 하지 못합니다. 조종조(祖宗朝) 이래로 3백 년의 법규가 하루아침에 무너졌으니, 어찌 가슴 아프지 않겠습니까? 만약 문서(文書)만을 출납(出納)할 뿐이라면 원리(院吏) 한 명만 있어도 넉넉합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인원을 쓰겠습니까? 한 번 책려(責勵)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겠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권면하고 경계하는 것이 절실하고 극진하니, 유의(留意)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요사이 내린 처분은 나에게도 역시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문(斯文)의 시비(是非)가 어찌 관직(官職)과 관계가 있겠는가? 기타 논한 것은 비록 시절을 슬퍼하고 격동한 데에서 나온 의논이기는 하나, 내가 취하지 않는 바이다. 양득중(梁得中)은 일찍이 계방(桂坊)676) 에서 보니 성격이 본래 질박하고 진실되었는데, 윤문(尹門)에서 수학(受學)했다는 것 때문에 갑자기 탐장(貪贓)의 죄과를 입었으니, 이것은 사리(事理)를 바로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다. 황익재(黃翼再)의 일은 다시 자세히 살펴서 처리하겠다. 후원(喉院)에서 작환(繳還)하는 것도 고사(故事)가 있는 것이며, 이것은 일마다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일마다 작환하고 상소마다 논계(論啓)한다면 태아(太阿)677) 의 소중함이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5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499면
  • [註 675] 기사년 : 1689 숙종 15년.
  • [註 676] 계방(桂坊) : 세자 익위사(世子翊衛司)의 별칭.
  • [註 677] 태아(太阿) : 명검(名劍)의 이름. 권병(權柄)을 잡음을 뜻함.

원문

○正言韓德全上疏, 略曰:

殿下雖有爲學之志, 實未知爲學之方也。 夫所謂學者, 非兀坐讀書, 趁課趲程之謂也。 必須明於是非之歸, 審於邪正之分, 克祛私意, 一聽於義理之正, 然後方可謂之學也。 是故, 古人論學之方, 條緖雖多, 而窮理爲本, 窮理之道, 蹊逕不一, 而實見爲要。 理旣明矣, 見旣實矣, 是非邪正, 各有分界, 事到面前, 隨手剖判, 便無齟齬遲疑之患矣。 今殿下則不然, 其於文義之末, 經旨之間, 用工雖勤, 而及至做事之時, 未有得力之效。 或昧陰陽之別, 而囫圇而處之者有焉, 或心知淑慝之辨, 而假借而用之者有焉, 終無一刀兩段, 斬釘截鐵底意。

又曰:

學問之道, 以遜志爲基, 辭令之間, 以簡重爲要。 竊觀殿下, 睿性超越, 有自廣狹人之意, 言辭暢快, 有英氣太露之病。 此皆學者之大忌, 君道之至戒。 先儒論變化氣質之道而曰: ‘克已, 須從性偏難克處, 克將去。’ 伏願殿下, 痛加矯革, 以立出治之本焉。 且伏見殿下, 事事而斥文具, 言言而稱誠實。 文具固可惡, 而誠實固可貴, 然必須今日行一誠實, 明日祛一文具, 銖累寸積而後得之, 非外面言語所可掩而有之也。 先儒稱善易者, 不言易, 而繫辭亦云: ‘默而成之, 不言而信。’ 或者殿下行事, 有近於文具, 而殿下之心, 有未誠實者耶? 亦願殿下, 反顧諸身, 默加點檢, 有則改之, 無則加勉。

仍請招徠草茅之士, 無論職名有無, 別諭召致, 勿以職事强之, 使之輪侍講筵。 且言:

李柬之通邁, 李頤根之恬飭、尹鳳九之醇雅、韓元震之該識, 允合玆選。

又言:

輔導春宮, 宜擇僚屬, 而開府第一選, 如金時佐之麤婪無恥, 不容士流者, 亦廁衛司, 宜更精擇。

又請尹宣擧父子追削官謚, 毁撤其祠, 一依肅廟處分。 又曰:

誣逼聖躬, 戕害善類者, 豈特輝賊而已? 溯源而論之, 則泰耉、錫恒爲之魁。 夫泰耉一嫌字, 實爲謀危殿下之張本。 當其輝賊之疏出, 而泰耉分疏之章繼上, 來歷較然, 自有一線子相貫。 及至妖婢、逆宦, 作變宮闈, 禍機交急, 間不容髮。 慈聖哀痛之敎, 實出於萬萬危急, 而泰耉從中操切, 隨輒繳還。 如非新陟王天倫篤至, 友愛無間, 殿下安得保有今日也? 且潛啓北門作頭者泰耉, 移鞫本府主事者泰耉。 考其首末而斷之, 則泰耉之罪, 當如何處也? 至於錫恒, 則三年鞫獄, 終始主張, 乍緩乍急, 若操若縱, 簸弄機關, 終構巨禍。 論其負犯, 奚遽有間於耉賊? 宜加追罪。

又言:

文川 文浦書院, 乃先正臣宋時烈揭虔之所, 向來道臣及本官, 乃於朝令之外, 任自折毁。 宜竝遠配。

又言:

廣興奉事金壽龜向日疏, 汚辱先正, 用意陰慘。 宜島配。 黃昱、金范甲凶疏, 亦無異同, 宜一體處之, 隨參人中濫通仕路者, 亦宜考汰。

又言:

金堤郡守梁得中, 行已多疪, 不齒鄕里, 偸竊災結, 私出官糴。 靈光郡守黃翼再, 以己巳凶孽, 隨時搖尾, 有同狐鼠. 賊鏡赴謫之路, 翼再潛往握手, 傾財贐遺, 宜竝削版。

又曰:

喉司之臣, 封駁爲職, 而頃日下政院之敎, 已未免失言。 喉院自聞此敎, 氣象消墜, 事事萎餒, 惟以奉行上命, 曲謹小敬爲務。 凶人之配單屢改, 譖誣之賊疏直入, 而俛首退聽, 不敢措一辭其間。 祖宗以來, 三百年之規, 一朝壞了, 豈不痛心? 若出納文書而已, 則一院吏足矣。 安用此多員爲也? 一番責勵, 不可已也。

批曰: "勉戒切至, 可不留意? 近日處分, 予亦有意見故也。 斯文是非, 何與官職? 其他所論, 雖由慨時層激之論, 予所不取。 梁得中曾於桂坊見之, 性本質實, 而以受學尹門, 忽被貪贓之科, 此正觀理處也。 黃翼再事, 更加詳察處之。 喉院繳還, 亦有故事。 此非隨事而爲之也。 若事事繳還, 隨疏論啓, 則太阿之重, 果安在哉?"

  • 【태백산사고본】 4책 5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4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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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5권, 영조 1년 4월 9일 丙子 4/9 기사 / 1725년 청 옹정(雍正) 3년

정언 한덕전이 시비, 의리의 명변을 말하고 윤봉구, 한원진 등을 추천하다

국역

정언(正言) 한덕전(韓德全)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전하께서 비록 학문하시는 뜻은 있으나, 실로 학문하시는 방도를 알지 못하십니다. 대저 이른바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꼼짝 하지 않고 앉아서 글을 읽으며 과정(課程)만을 쫓아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름지기 시비(是非)의 귀착점을 분명히 알고 사정(邪正)의 분별을 자세히 살펴서 사의(私意)를 깨끗이 떨쳐 없애고 한결같이 의리(義理)의 정도(正道)를 따를 수 있게 된 후에야 바야흐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인(古人)이 학문을 논하는 방도는 조문[條緖]이 아무리 많더라도 궁리(窮理)를 근본으로 삼는 것이며, 궁리의 방도에 있어서는 지름길이 한둘이 아니지만 실견(實見)이 요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치가 이미 밝아졌고 견해가 이미 실다워졌으면 시비(是非)와 사정(邪正)은 각기 분계(分界)가 있으므로 어떤 일이 눈앞에 닥쳐도 손이 가는 대로 판결이 나게 될 것이니, 문득 어긋나고 머뭇거리는 근심이 없는 법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그렇지 않으셔서, 문의(文義)의 끝머리와 경지(經旨)의 사이에 비록 부지런히 공부하시지만, 일을 처리하는 때에 미쳐서는 거기서 힘을 얻는 효과가 없으십니다. 더러는 음양(陰陽)의 구별에 어두우셔서 두리뭉실하게 처리하시는 것이 있기도 하고, 더러는 마음속으로 선악(善惡)을 구별하셔서 사정을 보아가며 해결하시는 것이 있기도 합니다만, 끝내 일도 양단(一刀兩斷)하시어 일을 결단내리시는 뜻이 없으십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학문의 도(道)는 겸손한 마음을 기본으로 삼고, 사령(辭令)의 사이에는 간결 중후한 것을 요점으로 삼는 것입니다. 가만히 살펴보건대, 전하께서는 예성(睿性)이 뛰어나셨으나 스스로 너그러우신 듯이 자처(自處)하시면서 다른 사람은 편협하다고 여기시는 뜻이 있으며, 언사(言辭)가 쾌활하나 영기(英氣)가 너무 드러나는 병통이 있으신데, 이것은 모두 학자들이 크게 꺼리는 것이고 군도(君道)로서 지극히 경계하는 것입니다. 선유(先儒)가 기질(氣質)을 변화시키는 도를 논하기를, ‘극기(克己)는 성품이 치우쳐 극복(克服)하기 어려운 데로 좇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하였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엄중하게 개혁(改革)을 가하여 정치하는 근본을 세우소서. 또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는 일마다 문구(文具)를 배척하시고 말끝마다 성실히 하라고 하십니다. 문구란 본래 가증스럽고 성실이란 본래 귀히 여길 만하나, 오늘 한 가지 성실을 행하고 내일 한 가지 문구를 제거하여 조금씩 쌓아서 모은 뒤에나 될 수 있는 것이지, 외적(外的)인 말만 가지고 가려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유(先儒)의 말에, ‘《주역(周易)》을 잘 아는 자는 《주역》을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계사(繫辭)에도 이르기를, ‘묵묵히 이루어가면 말하지 아니하여도 믿는다.’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하께서 행하시는 일이 문구에 가깝다.’ 했으니, 전하의 마음에 성실하지 못한 바가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원하건대, 전하께서 행하시는 일이 문구에 가깝다.’했으니, 전하의 마음에 성실하지 못한 바가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스스로 돌이켜 반성하며 묵묵히 점검하시어 허물이 있으면 고치시고 허물이 없으면 더욱 힘쓰소서."

하고, 이어서 청하기를,

"초야(草野)에 숨어 있는 선비를 초빙하시되, 직명(職名)의 유무(有無)를 막론하고 별유(別諭)로 부르시고, 직사(職事)를 강제로 맡기지 마시고, 그를 경연(經筵)에서 윤번(輪番)으로 시강(侍講)하게 하소서."

하고, 또 아뢰기를,

"이간(李柬)의 통달하고 걸출함과 이이근(李頤根)의 조용하고 근신함과 윤봉구(尹鳳九)의 순박하고 온아함과 한원진(韓元震)의 해박하고 두루 아는 식견이 이번 선발에 참으로 합당합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춘궁(春宮)을 보도(輔導)하는 데는 마땅히 요속(僚屬)을 가려야 하는데, 세자부(世子府)를 열고 첫 번째 선발에 김시좌(金時佐)같이 탐람하여 수치를 몰라서 사류(士流)에 용납되지 못하는 자도 익위사(翊衛司)에 참여시켰으니, 다시 정밀하게 가려야 마땅합니다."

하고, 또 청하기를,

"윤선거(尹宣擧) 부자(父子)의 관작(官爵)과 시호(諡號)를 삭탈하고 그 사당(祠堂)을 헐어 없애는 것을 한결같이 숙묘(肅廟)의 처분대로 따르소서."

하고, 또 아뢰기를,

"성궁(聖躬)을 속여서 핍박하고 선류(善類)들을 장해(戕害)한 자가 어찌 적신(賊臣) 유봉휘(柳鳳輝)뿐이겠습니까? 근원을 소급해서 논한다면 조태구(趙泰耉)와 최석항(崔錫恒)이 괴수입니다. 무릇 조태구의 한 ‘혐(嫌)’ 자가 실로 전하를 위태롭게 만들고자 꾀한 장본입니다. 적신 유봉휘의 상소가 나오자 조태구가 변명하는 소장(疏章)을 잇따라 올렸으니, 그 내력이란 것이 벌써 분명하여 스스로 한 줄로 관통한 바가 있습니다. 요비(妖婢)와 역환(逆宦)이 궁궐 안에서 변고(變故)를 일으켜 화기(禍機)가 급박해져서 그 사이에 조금도 용납할 바가 없게 되었으니, 자성(慈聖)의 애통한 교서(敎書)는 진실로 대단히 위급한 데에서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조태구가 중간에서 조종(操縱)하여 그 때마다 문득 작환(繳還)하였으니, 새로 등극하신 임금께서 천륜(天倫)이 지극히 돈독하시고 우애(友愛)가 막힘 없이 친밀하시지 않았으면, 전하께서 어찌 오늘날 이렇게 보전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또 북문(北門)을 몰래 열고 우두머리가 된 자도 조태구요, 국문(鞫問)을 본부(本府)에 이관(移管)하여 일을 주장한 자도 조태구입니다. 그 수말(首末)을 상고하여 처단한다면 조태구의 죄는 어떻게 처리하여야 마땅하겠습니까? 최석항(崔錫恒)에 이르러서는 3년 동안 옥사(獄事)를 국문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주장하였는데, 잠시 늦추었다가 조급하게 하는 등 조종(操縱)하며 기관(機關)을 제멋대로 환롱(幻弄)하여 마침내 크나큰 화란을 빚었으니, 그가 범한 죄상을 논하면 어찌 적신(賊臣) 조태구와 차이가 있겠습니까? 마땅히 추죄(追罪)를 더해야 합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문천(門川)의 문포 서원(文浦書院)은 바로 선정신(先正臣) 송시열(宋時烈)을 향사(享祀)하던 곳인데, 이제까지 도신(道臣)과 본관(本官) 수령이 조정의 명령도 없이 임의로 훼철했으니, 모두 멀리 귀양 보내어야 마땅합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광흥 봉사(廣興奉事) 김수귀(金壽龜)는 지난날 상소를 올려 선정신(先正臣)을 더럽히고 욕보였으니, 마음쓰는 것이 음흉하고 참혹합니다. 절도(絶島)에 정배(定配)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황욱(黃昱)·김범갑(金范甲)의 흉소(凶疏) 또한 다를 바가 없으니 일체로 처리하여야 하고, 따라서 참가한 사람 중에 함부로 사로(仕路)에 통한 자 또한 조사하여 태거(汰去)시키소서."

하고, 또 아뢰기를,

"김제 군수(金堤郡守) 양득중(梁得中)은 행실에 허물이 많아 향리(鄕里)에서 상종(相從)하지 않았으며, 재결(災結)을 몰래 도둑질하고 사사로이 환곡(還穀)을 빼냈습니다. 영광 군수(靈光郡守) 황익재(黃翼再)는 기사년675) 의 흉얼(凶孽)로서 때를 따라 꼬리치는 것이 여우나 쥐와 같았습니다. 적신(賊臣) 김일경(金一鏡)이 배소(配所)에 가는 길에 황익재가 몰래 가서 손을 잡고 자기 재물을 가져다가 그에게 바쳤으니, 모두 사판(仕版)에서 삭제(削除)하여야 마땅합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후사(喉司)의 신하는 봉박(封駁)하는 것으로 직임을 삼는 것입니다. 지난날 승정원에 내리신 전교(傳敎)는 이미 실언(失言)을 면하지 못하였는데, 후원(喉院)에서는 이 전교를 들은 후로부터 기상(氣象)이 소침(消忱)해져서 일마다 시들하게 여기고는, 오로지 임금의 명을 봉행(奉行)하면서 곡진히 삼가고 공경하는 것만 직무(職務)로 삼고 있습니다. 흉인(凶人)들의 배단(配單)이 자주 바뀌고, 참소(譖訴)하고 무고(誣告)하는 흉적(凶賊)들의 상소도 곧장 받아들이고는 머리를 수그리고 물러나 처분만 기다리며 감히 그 사이에서 한 마디 말조차 하지 못합니다. 조종조(祖宗朝) 이래로 3백 년의 법규가 하루아침에 무너졌으니, 어찌 가슴 아프지 않겠습니까? 만약 문서(文書)만을 출납(出納)할 뿐이라면 원리(院吏) 한 명만 있어도 넉넉합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인원을 쓰겠습니까? 한 번 책려(責勵)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겠습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권면하고 경계하는 것이 절실하고 극진하니, 유의(留意)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요사이 내린 처분은 나에게도 역시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문(斯文)의 시비(是非)가 어찌 관직(官職)과 관계가 있겠는가? 기타 논한 것은 비록 시절을 슬퍼하고 격동한 데에서 나온 의논이기는 하나, 내가 취하지 않는 바이다. 양득중(梁得中)은 일찍이 계방(桂坊)676) 에서 보니 성격이 본래 질박하고 진실되었는데, 윤문(尹門)에서 수학(受學)했다는 것 때문에 갑자기 탐장(貪贓)의 죄과를 입었으니, 이것은 사리(事理)를 바로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다. 황익재(黃翼再)의 일은 다시 자세히 살펴서 처리하겠다. 후원(喉院)에서 작환(繳還)하는 것도 고사(故事)가 있는 것이며, 이것은 일마다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일마다 작환하고 상소마다 논계(論啓)한다면 태아(太阿)677) 의 소중함이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5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499면
  • [註 675] 기사년 : 1689 숙종 15년.
  • [註 676] 계방(桂坊) : 세자 익위사(世子翊衛司)의 별칭.
  • [註 677] 태아(太阿) : 명검(名劍)의 이름. 권병(權柄)을 잡음을 뜻함.

원문

○正言韓德全上疏, 略曰:

殿下雖有爲學之志, 實未知爲學之方也。 夫所謂學者, 非兀坐讀書, 趁課趲程之謂也。 必須明於是非之歸, 審於邪正之分, 克祛私意, 一聽於義理之正, 然後方可謂之學也。 是故, 古人論學之方, 條緖雖多, 而窮理爲本, 窮理之道, 蹊逕不一, 而實見爲要。 理旣明矣, 見旣實矣, 是非邪正, 各有分界, 事到面前, 隨手剖判, 便無齟齬遲疑之患矣。 今殿下則不然, 其於文義之末, 經旨之間, 用工雖勤, 而及至做事之時, 未有得力之效。 或昧陰陽之別, 而囫圇而處之者有焉, 或心知淑慝之辨, 而假借而用之者有焉, 終無一刀兩段, 斬釘截鐵底意。

又曰:

學問之道, 以遜志爲基, 辭令之間, 以簡重爲要。 竊觀殿下, 睿性超越, 有自廣狹人之意, 言辭暢快, 有英氣太露之病。 此皆學者之大忌, 君道之至戒。 先儒論變化氣質之道而曰: ‘克已, 須從性偏難克處, 克將去。’ 伏願殿下, 痛加矯革, 以立出治之本焉。 且伏見殿下, 事事而斥文具, 言言而稱誠實。 文具固可惡, 而誠實固可貴, 然必須今日行一誠實, 明日祛一文具, 銖累寸積而後得之, 非外面言語所可掩而有之也。 先儒稱善易者, 不言易, 而繫辭亦云: ‘默而成之, 不言而信。’ 或者殿下行事, 有近於文具, 而殿下之心, 有未誠實者耶? 亦願殿下, 反顧諸身, 默加點檢, 有則改之, 無則加勉。

仍請招徠草茅之士, 無論職名有無, 別諭召致, 勿以職事强之, 使之輪侍講筵。 且言:

李柬之通邁, 李頤根之恬飭、尹鳳九之醇雅、韓元震之該識, 允合玆選。

又言:

輔導春宮, 宜擇僚屬, 而開府第一選, 如金時佐之麤婪無恥, 不容士流者, 亦廁衛司, 宜更精擇。

又請尹宣擧父子追削官謚, 毁撤其祠, 一依肅廟處分。 又曰:

誣逼聖躬, 戕害善類者, 豈特輝賊而已? 溯源而論之, 則泰耉、錫恒爲之魁。 夫泰耉一嫌字, 實爲謀危殿下之張本。 當其輝賊之疏出, 而泰耉分疏之章繼上, 來歷較然, 自有一線子相貫。 及至妖婢、逆宦, 作變宮闈, 禍機交急, 間不容髮。 慈聖哀痛之敎, 實出於萬萬危急, 而泰耉從中操切, 隨輒繳還。 如非新陟王天倫篤至, 友愛無間, 殿下安得保有今日也? 且潛啓北門作頭者泰耉, 移鞫本府主事者泰耉。 考其首末而斷之, 則泰耉之罪, 當如何處也? 至於錫恒, 則三年鞫獄, 終始主張, 乍緩乍急, 若操若縱, 簸弄機關, 終構巨禍。 論其負犯, 奚遽有間於耉賊? 宜加追罪。

又言:

文川 文浦書院, 乃先正臣宋時烈揭虔之所, 向來道臣及本官, 乃於朝令之外, 任自折毁。 宜竝遠配。

又言:

廣興奉事金壽龜向日疏, 汚辱先正, 用意陰慘。 宜島配。 黃昱、金范甲凶疏, 亦無異同, 宜一體處之, 隨參人中濫通仕路者, 亦宜考汰。

又言:

金堤郡守梁得中, 行已多疪, 不齒鄕里, 偸竊災結, 私出官糴。 靈光郡守黃翼再, 以己巳凶孽, 隨時搖尾, 有同狐鼠. 賊鏡赴謫之路, 翼再潛往握手, 傾財贐遺, 宜竝削版。

又曰:

喉司之臣, 封駁爲職, 而頃日下政院之敎, 已未免失言。 喉院自聞此敎, 氣象消墜, 事事萎餒, 惟以奉行上命, 曲謹小敬爲務。 凶人之配單屢改, 譖誣之賊疏直入, 而俛首退聽, 不敢措一辭其間。 祖宗以來, 三百年之規, 一朝壞了, 豈不痛心? 若出納文書而已, 則一院吏足矣。 安用此多員爲也? 一番責勵, 不可已也。

批曰: "勉戒切至, 可不留意? 近日處分, 予亦有意見故也。 斯文是非, 何與官職? 其他所論, 雖由慨時層激之論, 予所不取。 梁得中曾於桂坊見之, 性本質實, 而以受學尹門, 忽被貪贓之科, 此正觀理處也。 黃翼再事, 更加詳察處之。 喉院繳還, 亦有故事。 此非隨事而爲之也。 若事事繳還, 隨疏論啓, 則太阿之重, 果安在哉?"

  • 【태백산사고본】 4책 5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41책 4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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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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