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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4권, 영조 1년 3월 28일 丙寅 3번째기사 1725년 청 옹정(雍正) 3년

우의정 민진원이 차자를 올려 대신의 반열에 있는 국적의 처단을 논하다

우의정(右議政) 민진원(閔鎭遠)이 차자(箚子)를 올렸는데, 대략 이르기를,

"나타나지 않은 원통함을 모두 씻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되었는데, 국적(國賊)이 아직도 대신(大臣)의 반열에 있지만 성상의 뜻은 끝내 움직여 옮겨질 희망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해이해진 체제에서 굳은 의지를 가진 이가 없습니다. 겸해서 또 성상의 자질이 인자(仁慈)함은 너무 지나친데다 강직하고 과감함은 부족하시면서 기필코 아랫사람의 마음을 곡진히 생각하려다가 더러 대체(臺體)를 손상시키는 데 이르기도 하며, 여러 신하들도 또한 모두 가까이서 친밀하여 은혜를 믿고 점점 게을러지는 마음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무(事務)에 익숙한 권성(權𢜫) 같은 이와 학식(學識)이 정밀하고 명확한 김진상(金鎭商) 같은 이는 아직도 조정에 나올 뜻이 없으니, 그것은 대체로 국가의 일을 다시 바라볼 것이 없다고 여기고 단지 일신[身命]만 스스로 보전하려고 할 뿐입니다. 또 듣건대, 좌의정[左相]도 장차 떠나려 한다고 하는데, 좌의정이 비록 늙고 병이 들었다고는 하더라도 합문(閤門)에 누워 진언(進言)하며 나라의 일을 바로잡고 보필하는 것이 어찌 천균(千勻)의 힘뿐이겠습니까마는, 백구(白駒)638) 를 매어 두기가 어려우므로, 장차 조정에서는 단지 국록(國祿)이나 바라고 지위나 보전하려는 한 사람의 천신(賤臣)이 있음을 볼 뿐이니, 신도 또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는데 어찌 차마 혼자 머물겠습니까?

바라건대 뭇 신하들을 신칙하고 면려하여 전하(殿下)께서도 의당 스스로 계책을 도모하여 바른 말을 받아들이기를 물이 흐르듯이 하고, 죄를 토주(討誅)하기를 반드시 엄중하게 하여 이미 지나간 후회스러움은 깊이 진사(陳謝)하고 지난날의 풍습은 통렬하게 고쳐 너그럽게 하되 위엄있게 하여 방탕한 데 이르지 않게 하며, 엄격하게 하되 너그럽게 하여 각박한 데 이르지 않도록 하여 조정의 윗사람으로 하여금 풍채(風采)가 즉시 변하게 하고, 정령(政令)을 내는 사이에서는 보고 듣는 사람이 모두 용솟음치게 하여 조정에 있으면서 돌아가기를 생각하는 신하에게는 지성(至誠)으로 머물도록 힘쓰고, 초야(草野)에 있으면서 나오지 않는 사람에게는 예(禮)를 다하여 불러 맞이하여 임금과 신하가 한 마음으로 하늘이 맡긴 직무를 함께 다스려 우리 조종(祖宗)의 3백 년 기업(基業)을 떨어뜨리지 말게 하소서."

하니, 비답(批答)하기를,

"내가 요즈음의 일에 너무 너그럽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난날의 칼날로 서로 싸운 것에 대행조(大行朝)의 지극한 인애와 융성한 덕이 아니었으면 그 전해지는 해독(害毒)이 어떠하였겠는가? 나는 위로 양조(兩朝)639) 의 덕스러운 뜻을 준수하려 하는데 경(卿)들은 어찌 지난날의 독수(毒手)를 경계하지 않는가? 만약 그 한 짓을 논한다면 귀양 보내는 것도 또한 가벼운 벌이라고 말하겠지만 귀양 보내는 것도 이미 20명에 지났으니, 길가의 사람들이 반드시 서로 고하기를, ‘저 무리들이 착한 사람들을 해치니 참혹하고 각박하다. 오늘 귀양을 가게 된 것은 이것이 누구의 잘못인가?’고 한다면 그만이겠으나, 만일 말하기를, ‘지난날의 귀양간 것은 예전에 없었던 바인데 거마(車馬)가 겨우 돌아오자 또 그 길에 계속 〈귀양을 가니〉 비록 저 무리들이 정인(正人)을 해롭게 한 원인이긴 하나 조정의 처분이 앞날을 거울로 삼을 의도(意圖)가 없다.’고 한다면 화기(和氣)를 감상(感傷)시킨 것이 마땅히 어떠하겠는가? 만약 이 일에 구애되어 즉시 처분하지 못한다면 이는 진실로 사사로운 뜻인 것이다. 내가 어찌 차마 이렇게 하겠는가? 오늘의 처분은 나의 뜻이 아니고 선조(先朝)의 뜻을 본받은 것이니, 따르거나 따르지 않는 것은 고집하거나 고집하지 않는 데 관계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신하들이 이 일로 인하여 멀리 떠나려고 하니 나의 정성이 얕은 소치라 아니할 수 없다. 자신에게 돌려 반성하며 세상을 서글프게 여겨 탄식을 할 뿐이다. 아! 내가 비록 덕이 적지마는 받은 것은 양조(兩朝)에서 물려주신 어려운 일이니, 여러 신하들이 비록 오늘은 생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특히 양조(兩朝)의 은혜만은 생각하지 않겠는가? 좌의정은 힘을 다하여 머물도록 힘쓰는 것이 마땅하다. 권면하고 경계하는 말이 절실하고 지극하니 잊지 않고 지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卿)은 지나치게 사양하지 말고 내가 미치지 못하는 점을 돕도록 하라."

하고, 또 비망기(備忘記)를 내리고 사관(史官)을 보내어 좌의정(左議政) 정호(鄭澔)를 힘써 머물도록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494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인사(人事)

  • [註 638]
    백구(白駒) : 빛이 흰 말. 현인(賢人)이 타고 온 말을 가리킴.
  • [註 639]
    양조(兩朝) : 숙종조와 경종조.

○右議政閔鎭遠上箚。 略曰:

幽冤畢伸, 群情少定, 而國賊尙在大臣之列, 聖意終無轉移之望, 人皆解體, 無有固志。 兼且聖質仁慈太過, 剛毅有歉, 必欲曲體下情, 或至有損臺體, 群下亦皆狎愛恃恩, 漸萠懈怠之心。 練達事務如權𢜫, 學識精明如金鎭商者, 尙無赴朝之意, 蓋以國事爲無復可望, 只欲自保身命而已。 又聞左相將去。 左相雖老病, 臥閤進言, 匡輔於國者, 奚啻千勻之力, 而白駒難縶, 將見朝著之間, 只有懷祿保位之一賤臣而已, 臣亦有羞惡之心, 何忍獨留爲哉? 乞飭勵群工, 殿下亦宜自謀, 聽言如流, 討罪必嚴, 深陳旣往之悔, 痛改前日之習。 寬而栗, 毋至於流, 嚴而泰, 毋至於刻, 使朝廷之上, 風采立變, 政令之間, 觀聽皆聳。 在朝思歸之臣, 至誠勉留, 在野不赴之人, 盡禮招延, 君臣一心, 共治天職, 毋墜我祖宗三百年基業。

批曰: "予於近事, 非欲太寬。 向來鋒刃, 非大行朝至仁盛德, 其流之害如何? 予則上遵兩朝德意, 卿等豈不戒往日毒手乎? 若論其所爲, 則流竄亦云末矣, 而竄配已過卄數。 道路之人, 必相告曰: ‘彼輩戕害善類, 慘矣刻矣, 今日被謫, 是誰之愆?’ 云則已, 若曰: ‘向日謫行, 前古所無, 而車馬纔還, 又續其道。 雖因渠輩毒正, 朝家處分, 無鑑前之意’ 云, 則感傷和氣, 當如何? 若拘於此, 而不卽處分, 則是誠私意也, 予豈忍爲此? 今日處分, 非予之意, 體先朝之意, 從與不從, 非關係於固與不固。 諸臣因此欲長往, 莫非誠淺之致。 反躬自省, 嗟世發歎而已。 噫! 予雖涼德, 所受者兩朝之遺艱也。 諸臣雖不念於今日, 獨不念兩朝之恩乎? 左相當竭力勉留。 勉戒之言切至, 可不服膺? 卿勿過辭, 補我不逮。" 又下備忘, 遣史官, 勉留左議政鄭澔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494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司法) / 변란(變亂) / 인사(人事)